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251화 (251/375)

〈 251화 〉 검은 토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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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검은 토끼 #5

니아와 함께 동물원을 거닐다 보니 멀찌감치서 뒤따라오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두 분의 귀중한 시간을 방해해서 송구합니다만... 혹시 시설은 마음에 드십니까...?”

“아... 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해서 놀랐어요. 이 근방에선 볼 수 없는 생소한 동물도 많아서 좋았고요. 완공되면 꼭 다시 한번 찾아오고 싶을 정도에요.”

“가, 감사합니다...! 혹시 개선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음... 개선점이라고 하면... 중간중간 식수대를 배치하는 게 좋겠어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늘리거나 매점을 세워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매하는 것도 괜찮겠고요.”

“오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화색하더니 종이에 깃펜을 잔뜩 휘갈겼다.

피식 웃으며 그에게서 눈길을 떼고 마저 발걸음을 이어나가자 옆에서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아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왜요?”

“아니 그냥... 신기해서.”

“신기하다고요?”

“응, 소년처럼 특이한 사람은 처음 봐! 보통 강한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리다가도 약한 사람들은 막 대하는 게 보통이잖아. 근데 소년은 날 보고 전혀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으면서도 호텔 종업원들한테 친절하게 인사해줬고, 토끼 주인을 찾아줄 생각도 했고...”

“그 정도야 뭐... 보통이지 않아요? 게다가 붉은 매 길드에도 좋은 분들이 많잖아요.”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왠지 소년은 달라. 막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아. 왜 그럴까?”

“...잘못 보신 거예요.”

호박색 눈동자에 담긴 애정이 낯부끄러워 재빨리 시선을 회피했다.

다소 빠른 걸음으로 앞길을 재촉했지만, 니아는 해사하게 웃으며 내 보폭에 발을 맞추어 따라붙었다.

그녀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소년은 정말로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어? 내가 정말 정말 잘해줄 수 있는데... 아델이나 아실리도 엄청 기뻐할 테고.”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길드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편하기는 하겠지만 단점도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하니 개인 활동을 할 여유도 없을 테고요.”

라디, 아리엘, 란이와 보낼 시간이 짧아지는 건 물론이고, 단도의 능력을 조사하거나 혼자서 단련에 몰두할 시간도 모자랄 거다.

니아가 입술을 짚으며 읊조렸다.

“으음 그래...? 아쉽네... 그래도 강요할 순 없으니까...”

“네, 그래도 또 모르죠.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그보다 니아 님은 앞으로 계속 붉은 매 길드에 계시는 거예요? 그 도적단 리더를 잡고 난 뒤에도?”

“응,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젠 멤버들하고도 정이 많이 들었으니까. 일단 적어도 오십 년은 더 같이 다닐 것 같은데...”

“오십 년이라...”

단위부터가 다르다.

속으로 감탄하자 그녀가 내 허리춤을 꼬집었다.

“아얏...! 아파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무슨 생각 하는지 훤히 보였거든?”

“아 아! 잘못했어요!!”

아니 진짜 다들 어디서 독심술이라도 배우고 오나.

재빨리 물러나 얼얼한 옆구리를 매만지며 내뱉었다.

“아니, 뭐 이렇게 손이 매워... 평소에는 신체강화 좀 안 쓰면 안 돼요?”

“응? 이거 강화 안 한 건데? 만약 신체강화를 한 상태였다면 지금쯤 살점이 떨어져 나갔겠지.”

“아니 뭔... 대체 얼마나 센 거예요. 저도 한 맷집 하는 편인데...”

“음... 글쎄.. 누군가랑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진짜... 조심 좀 하세요. 당하는 사람은 아프다고요.”

“으음... 미안.”

니아가 묘한 눈길로 날 올려다보더니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 걸까?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당기며 전방을 가리켰다.

“그보다... 저기 좀 봐요! 표범도 있네! 니아 님 친구 아니에요?”

“친구는 무슨. 그런 사이 아니거든? 내가 다가가면 물어뜯지 못해 안달할 거야.”

“그래요? 의사소통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대는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표범과 표범 수인은 엄연히 다르니까. 정말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지. 그거 수인한테는 엄청 실례되는 말인데 몰랐어?”

“아.. 죄송해요...”

“괜찮아.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심해. 다른 수인이었다면 길길이 성을 내도 할 말 없으니까.”

“네...”

하기야, 잘 생각해 보면 인간더러 침팬지라고 부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고 있자니 그녀가 짐짓 쾌활하게 웃으며 내 팔뚝을 두드렸다.

“괜찮다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 나도 별로 기분 안 나빴고. 너답지 않게 왜 주눅 들고 그래?”

“그래도...”

“나도 방금 아프게 했으니 쌤쌤인 걸로 하자. 자, 괜찮으니까 기분 풀고... 저기 뭔가 있는데 한번 가보자! 빨리 와!!”

“.....”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나아가다 보니 머잖아 울타리로 구분해둔 별개의 구역이 나왔다.

야트막한 울타리 너머에는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통통하게 살찐 양떼가 평화롭게 잡초를 뜯고 있었다.

우리가 그 안으로 발을 디디자 남성이 다가와 첨언했다.

“이곳은 저희가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입니다.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 주기 체험을 해 볼 수 있죠. 혹시 흥미가 동하십니까?”

“네, 뭐 기왕 온 김에... 얼마죠?”

“하하, 영광스러운 저희 동물원의 첫 손님이자 니아 님 일행에게 돈을 받을 순 없죠! 조금만 기다리고 계십쇼, 금방 먹이를 가져오겠습니다!!”

남자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부지 구석의 축사로 달려갔다.

잠시 숨도 돌릴 겸, 작달막한 울타리에 걸터앉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한가로이 올려다보자 니아가 곁으로 다가와 살포시 어깨를 기대었다.

앞뒤로 흔들리는 두 다리, 살며시 감은 눈, 늦은 오후의 해그늘이 드리워 신비로운 분위기가 맴도는 금빛 소녀와 나란히 앉아있자니 문뜩 의문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판을 간질이고, 나는 어렵사리 말문을 텄다.

“...니아 님.”

“응, 듣고 있어.”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니아 님은 왜 저한테 이렇게 잘 해줘요? 암시장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대체 왜 아쉬울 것 하나 없는 A랭크가.

내 질문을 들은 니아는 저 멀리 새하얀 양 떼를 바라보며 선선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그녀가 날 돌아봤지만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를 품은 채 지긋이 응시해올 뿐이다.

그녀가 내 머리칼로 손을 뻗은 순간, 등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허억... 다, 다녀왔습니다...! 최대한 서두르는 바람에... 받으시지요!!”

사내가 건넨 바구니에는 셀러리와 당근 등 각종 채소가 푸짐하게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남자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한 후 들판으로 나섰다.

도중에 대화가 끊겼지만 다시 되묻기도 곤란해 바구니에서 야채를 꺼내자 냄새를 맡은 양이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데...

“으... 왜 나한테는 한 마리도 안 오지...?”

“...그러게요.”

내 주위를 에워싸고 득달같이 달라붙는 양들과는 대조적으로, 니아 근처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급기야 그녀가 가까이 접근하자 양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으며 피해다녔다.

큼지막한 눈망울에 촉촉한 습기가 고이기 시작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가갔다.

“...아무래도 니아 님은 정말 동물하고는 안 맞나 보네요.”

발치에 걸리적거리는 양을 지나쳐 니아 옆에 서자 그녀가 슬그머니 달라붙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들은 전혀 다가올 엄두를 내지 않았고, 내게 먹이를 조르던 놈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난처하게 입을 열었다.

“...이전에는 대체 어떡하셨요?”

“으응... 뭐가...?”

“동물들한테 먹이를 주거나 할 때...”

아니, 그럴 일이 없었으려나.

이곳에서도 반려동물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양치기나 사냥꾼 등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거나 일정 수준의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물며 어쩔 땐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거나, 의뢰를 떠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모험가의 특성상 동물을 기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렇다고 울시처럼 강인하고 똑똑한 녀석이 흔하게 널린 것도 아니고.

니아가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음... 먹이를 줘 본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우리 길드에는 짐을 끌기 위해 옐로우 리자드를 사육하는 거 알지?”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출산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트라함이 열심히 관리하던데.”

“응, 근데 나는 근처에만 가도 애들이 불안해한다면서 접근을 금지당했어... 한번은 규칙을 어기고 몰래 다가갔다가 흥분한 도마뱀들이 우리를 탈출해서 크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고... 난 그저 살짝 한 번만 안아보고 싶었을 뿐인데...”

“.....”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니아는 곧바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올려다봐왔지만, 나는 말없이 웃으며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 밀착하고는 손을 맞잡으며 야채를 쥐여주었다.

“...이거면 됐죠?”

“.....”

내가 니아의 귓가에 속삭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천천히 팔을 들어올리자 바짝 긴장한 그녀의 몸이 느껴졌다.

맞닿은 어깨 너머로는 희미한 고동이 전해져왔다.

허벅지에 맞닿아 살랑거리는 꼬리는 조금 간지러웠다.

니아를 경계했던 양들은 우리의 손아귀에 쥔 셀러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놀라면 안 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

녀석들은 좀처럼 먹이 앞까지 다가올 엄두를 내지 않았으나, 진득하게 기다리다 보니 양 한 마리가 쭈뼛쭈뼛 무리에서 걸어나왔다.

녀석이 용기를 내어 셀러리를 받아먹은 뒤로는 하나둘씩 니아에게 다가와 바구니에 든 채소를 달라고 졸라댔다.

“오 먹는다. ...거봐요. 동물들은 원래 밥 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니까요. 처음에만 어렵지 한 번 경계심을 풀면 그 뒤로는 쉽게 친해질 수 있어요. 이렇게 저랑 같이 있으면 아무리 니아 님이라도... 니아 님?”

“.....”

이름을 불러봐도 니아는 뻣뻣하게 굳어있을 뿐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려 했으나 그녀가 홱 고개를 돌려버린 까닭에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왜요, 동물들하고 친해지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요?”

“.....”

“알았어요. 바구니는 여기에 두고 갈 테니...”

나는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내 소맷자락을 붙잡는 어렴풋한 감촉이 느껴졌기에.

“...싱거운 사람이네.”

그래서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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