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수수께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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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수수께끼 #2
연금술 가게에서 헤프닝이 있었던 날이 지나고 하루가 더 흐른 시점.
라디와 아리엘을 데리고 저택을 나와 호텔로 향했다.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걷자 다행히 행인들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라디야,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저도 예전의 제가 아니니까요.”
“안심해도 되는 거 맞지...?”
“아마도요.”
“.....”
노심초사한 심정으로 라디의 손을 맞잡았다. 호텔 정문을 기사들이 지키고 있던 까닭.
평소엔 늘 침착하고 냉정하지만 기사 앞에만 서면 평정심을 잃는 녀석이니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다행히 아리엘이 라디의 반대편 손을 꼭 잡아줘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면했지만,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험한 말이 오갈 뻔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니아가 머무는 초호화 호텔의 부지 안으로 들어오자 아리엘이 난처하게 뺨을 매만지며 말했다.
“으음... 기사들은 도란이 못마땅한가 보네.. 엄청 째려보더라.”
“나도 쟤네 마음에 안 드니까 쌤쌤이지 뭐. 별것도 아닌 것들이 콧대만 높아가지고... 그러니까 이교도 같은 데 가담했다가 줫털린 거 아냐. 안 그래?”
“전적으로 동의해요. 착한 기사는 죽은 기사뿐이에요.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들...”
라디가 이를 갈며 뒤를 노려보자 재빨리 귀를 어루만져 진정시켜주었다.
로닌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기사는 사실 합법 깡패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그런 반응도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도 라디는 부모님이 눈앞에서 기사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봐 버렸으니.
아름다운 산책로를 거닐며 아리엘과 함께 살살 달래주자 잠시 후, 라디도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슬그머니 어깨를 기대왔다.
녀석이 이제 괜찮다는 듯 미소짓더니 머리 위 둥지에서 삐약삐약 울어대는 새끼 소쩍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확실히 A랭크인 니아 님이 머무는 호텔답게 엄청나게 호화로운 곳이네요. 이렇게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은 처음 봤어요.”
“내부로 들어가면 더 굉장할걸? 호텔 전체에 들인 보석이랑 황금을 녹이면 해자를 메꾸고도 남겠던데. 그렇게 많은 보석은 처음 봤어.”
“응... 여기만 봐도 예상이 가. 저기 저 둥글게 다듬어진 관목이랑 꽃밭 보여? 저건 요즘 귀족 사이에서 유행하는 조경 양식인데 분명 일류 정원사가 가담했을 거야. 이 정도면 매달 관리비만 해도 금액이 상당할 텐데... 예쁘다...”
아리엘이 새빨간 장미꽃을 매만지며 은은히 미소짓자 붉은 꽃잎이 투명한 은발과 대비되어 고혹적인 매력이 물씬 풍겼다.
나는 내심 두근거리는 속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지금 저택에도 정원이 있잖아. 그건 누가 다듬은 거야? 너 혼자 다 관리할 수도 없었을 텐데...”
“아 그거? 베라스틴에 있는 정원사 길드에 부탁한 거야. 마지막에 의뢰한 게 아마 작년 여름 즈음이었나? 면적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받는데 우리 저택은 한 30실링 정도 들었어.”
“30실링이라... 조금 비싸지만 넓이를 고려하면 적절한 것 같기도...”
“아마 다음번에는 더 저렴하게 의뢰할 수 있을 거야. 그때는 나무를 몇 개 옮겨심느라고 비용이 더 들었거든. 그리고 그거 알아? 우리 저택은 여름이 되면 훨씬 멋있다? 건물 외벽을 둘러싼 담쟁이 넝쿨에서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나거든!”
“오오, 그건 좀 궁금하다.”
“저도 꼭 한번 보고 싶네요. 그리고 만약 또 의뢰를 하게 된다면 연못 근처에 가로수를 추가로 심는 것도 문의해봐야겠어요. 혹여나 신문사 길드에서 나온 기자가 란이를 목격하면 곤란하니까요. 안 그래도 주목을 받는 처지인데...”
“.....”
아리엘과 라디가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머쓱하게 목덜미를 매만지며 발길을 재촉하자 곧 호텔 건물이 나왔다.
이미 일면식이 있는 접객원에게 깍듯한 대우를 받으며 통유리 회랑을 지나 승강기까지 도달하자 두 녀석은 발치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승강기가 점점 최상층에 가까워짐에 따라 라디가 불안하게 귀를 쫑긋거렸다.
“그, 근데 정말로 괜찮을까요 도란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도...”
“...오늘 찾아간다고 호텔 쪽에 전해 두었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넌 저번에 던전에서 이미 한 번 봤잖아. 왜 그렇게 긴장해?”
“그건 그렇지만... 아니, 그보다 언니는 왜 아무렇지도 않아요?”
라디가 아리엘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머리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응? 나? 음... 솔직히 하이랭커를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니까. 신전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왕도에서 파견 나온 고위 성기사가 인사하러 올 때도 있고, 어릴 때 아버지의 영지에서 연회가 열리면 유명 인사들이 찾아오곤 했어. 내게 마법을 가르쳐주신 과외 선생님도 대단한 분이셨고.”
“저희랑은 살아온 세상이 너무나도 다르네요... 아니, 그렇다고 하면 도란님이 제일 비정상인데...?”
“뭐, 그렇긴 하지... 니아한테는 내가 외진 산골 마을 출신이라고 둘러뒀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
“산골 마을이라... 도란님답네요. 알았어요.”
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맑은 차임벨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최상층에 도달하자 우리는 객실 문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크해도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하게 문고리를 쥐고 젖히자
“뭐야... 열려있는데? 자, 잠깐...?”
“이건... 탄 냄새?”
“여, 연기가...!”
문이 열리자마자 시꺼먼 연기가 모락모락 뿜어나왔다.
설마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걸까?
나는 아연실색한 라디와 아리엘을 제치고 객실 안으로 달려나갔다.
뿌연 시야 속에서 필사적으로 목청을 높여 외쳤다.
“니아 님! 어디 있어요?! 저희 왔어요!!”
......
“니아!! 괜찮─!!!”
끼이이익...
“...니, 니아 님?!”
“....”
순간, 객실 안쪽에서 걸어나온 니아를 보고 안도했지만 곧바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기에.
황급히 달려가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누가 니아 님한테...! 괘, 괜찮아요..?!”
“소년...”
“네, 말씀하세요...!”
“....”
그녀가 묵묵히 이끄는 대로 부엌에 들어서자 메케한 연기가 훅 끼쳐왔다.
재빨리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연기의 근원지를 확인하자 그곳엔 석탄처럼 생긴 그을음 덩어리가 오븐에 잔뜩 눌어붙어 있었다.
“....혹시 금이라도 연성하려다가 실패하셨어요? 저번 일을 계기로 연금술에 눈을 떴다거나...”
“그, 그게 아니라 사실은...”
“설명은 나중에 들을 테니 일단 여기서 벗어나죠. 연기가 빠질 때까지 나가 있는 게 좋겠어요.”
“...응.”
*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나는 지근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테라스의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직접 쿠키를 만들려다 실패했다는 거예요?”
“으응... 소년 일행이 오면 차랑 곁들여 내오려고 호텔 주방장한테서 레시피도 받아 왔는데...”
“저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여기.”
니아가 품 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은 종이쪽지를 건넸다.
천천히 받아들고 내용을 살피자
“...아니, 이 사람아.”
“왜, 왜... 이상해...?”
“이상하고 자시고 이건 쿠키 레시피가 아니잖아요. 위에 도자기 조제법이라고 떡하니 적혀있구만. 대체 주방장은 왜 이런 걸 가지고 있대...”
새하얀 백지 위에 쓰인 건 과자 조리법 따위가 아닌, 토기를 빗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레시피가 있었더라도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종이를 접으며 한숨을 내쉬자 니아가 의기소침하게 중얼거렸다.
“미안...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한 건데...”
“아뇨 미안할 것까진... 마음이라도 고맙게 받을게요. 그래도 저희를 생각해서 준비해 준 거니까요. 보니까 요리도 처음 해 본 것 같은데... 고생하셨어요.”
“으으...”
레시피를 돌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니아는 수치스러우면도 기쁜 듯 새빨간 얼굴로 뺨을 부풀리고 찻잔을 응시했다.
한데 의자에 도로 등을 기대고 홍차를 입에 머금으려던 차, 어쩐지 옆에서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저번에 봤을 땐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대체 요 며칠 사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신 거예요.”
“...나?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코흘리개 꼬마도 방금 대답은 안 믿을걸요.”
“.....”
난감하게 옆을 돌아보자 새침하게 찻잔을 기울이는 아리엘과도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딱히 별말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다분한 힐난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재빨리 시선을 피하자 니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아리엘, 이라고 했지?”
“네, 니아 님. 처음 뵙겠습니다. 비스마르크 서쪽령 에르티넬라 영지의 삼녀, 아리엘 데 에르티넬라 후작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에, 에르티넬라...?!”
니아가 흠칫 숨을 들이마시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는 묵례하며 대답했다.
“치, 친절한 소개 감사드립니다 아리엘 데 에르티넬라 양. 칼른베니아 제국의 소귀족, 니아 아르제입니다. 실제로 뵙는 건 두 번째지만, 정말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셨네요. 못 알아뵈었습니다.”
“어...? 잠깐만, 니아 님도 귀족이었어요?”
그건 전혀 예상 못 했는데.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니아가 황급히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냐...! 귀족이라고는 해도 몰락 귀족 같은 거라...! 남작 가문이긴 하지만 계승권도 없고 영지도 없어. 그냥 호칭만 귀족일 뿐이야.”
“그래도... 아니, 근데 두 번째로 봤다는 건 뭔데요. 아리엘, 너 예전에도 니아 님 본 적 있었어?”
“....?”
의아하게 아리엘을 돌아봤지만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에 없는 모양.
니아가 차를 머금으며 말했다.
“...십 년도 더 전에. 알다시피 난 제국 사람이라 막 국경을 건너올 때 에르티넬라 영지에 들린 적이 있단 말이야. 그때 영지민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어. 그땐 정말 귀여운 꼬마 공주님 같은 느낌이었는데... 착한 마음씨랑 아름다운 외모는 여전하네..”
“아...”
니아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아리엘을 응시했다. 평소의 천진난만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 그녀의 태도에서는 은은한 연상의 관록이 묻어나왔다.
그래봤자 이 자리에서 제일 어린 외모라 별 효용은 없었지만.
“그러셨구나... 죄송합니다 니아 아르제 님. 전혀 기억하질 못해서...”
“아니에요 에르티넬라 양. 저 혼자 먼발치에서 일방적으로 봤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보다 편하게 불러주셨으면 해요. 처음부터 니아... 라고까진 힘들어도 그냥 언니나 이름으로 불러도...”
“하지만 붉은 매 길드의 하이랭커이자 제국의 귀족이신 니아 아르제 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건...”
“괜찮아요. 전 어차피 명목뿐인 귀족이니까요. 대신 저도 아리엘 양이라고 편하게 부를게요. 그거면 됐죠?”
“그럼 그냥 아리엘이라고 불러주세요. ...니아 님.”
“응! 알았어 아리엘!”
니아가 밝게 웃자 아리엘이 뒤따라 미소지었다.
꽃다운 미소녀 두 명이 마주보고 웃으니 프리지아가 만발한 화원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
나는 테라스를 메웠던 거북한 공기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야... 근데 진짜 세상 참 좁네. 아무리 잠깐이라고는 해도 두 사람이 설마 과거에 만난 적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게요. 저도 살짝 놀랐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의 언니라... 조금 궁금하네요. 엄청 귀여웠을 것 같아요.”
“어린 아리엘이라...”
내 곁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홍차를 들이켜는 아리엘을 살짝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노라니 정면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
“네, 말씀하세요.”
“이전부터 느꼈던 건데... 너 진짜 인기 많네? 그것도 무지무지 예쁜 여자한테. 라디로도 모자라서 후작 소녀에, 아델도 너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았고, 길거리의 여자들이나 이곳 길드 접수원도... 평소에는 투구나 후드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주제에...”
“접수원...? 아, 카렌 말씀하시는 거예요? 걘 그냥 친한 거예요. 나름 오래 봤으니까요. 제 사정을 알고도 도와준 몇 안 되는 은인이기도 하고.”
“.....”
“왜, 왜요...?”
순간, 세 여자가 동시에 홍차를 머금으며 침묵했기에 당황하자 니아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으음... 그래도 살짝 놀랐어. 소년한테 새 애인이 생겼다고 해서 누군지 궁금했는데 설마 에르티넬라 후작 가문의 영애일 줄은 몰랐거든. 또 이렇게까지 예쁠 줄도 몰랐고.”
“과찬이에요 니아 님. 그리고 저도 솔직히 좀 놀랐어요. 직접 만나 뵈니 제가 알고 있던 니아 님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응? 어땠는데?”
아리엘이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며 읊조렸다.
“상당히 쾌활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항상 기운 넘치고 활동적이고, 또 많이 웃는다고요. 도란이 같이 있으면 즐거워지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 그래...? 음... 포장이 너무 과하긴 하지만 아마 맞을 거야. 평소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이거든. 근데 요즘은... .이게 다 도란 때문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고민 없이 속 시원하게 살았는데.”
“...제가 뭐요.”
“됐거든?”
그녀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조금 따가운 시선을 보내오는 라디와 아리엘을 짐짓 헛기침해 흘려넘기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일단 아침부터 먹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움직일 예정인데 괜찮죠? 오늘 조식은 번거롭게 밖에 나가지 말고 호텔에서 먹으려고요.”
“응, 난 좋아! 여기 밥이 엄청 맛있어서 꼭 같이 먹어보고 싶었거든. 투숙객 외에는 추가 요금이 붙지만 전부 내가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니아 님. 감사히 호의를 받아들일게요. ...그럼 차도 다 마셨고, 소개도 끝났으니까 슬슬 일어나죠.”
느긋하게 찻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호텔 고용인들이 정리하기 쉽도록 다기 그릇을 한데 모으고 테라스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객실을 떠나기 전, 열쇠를 챙기고 벽면에 고정된 마석을 가볍게 두드리자 실내 마석등이 일제히 소등되었다.
그렇게 막 승강기에 올라타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려던 찰나, 잊고 온 것이 떠올랐다.
“왜 소년? 뭐 두고 왔어?”
“네, 아까 환기하느라 열어둔 창문 닫는 걸 깜빡했네요. 금방 다녀올게요. 그냥 놔뒀다간 저녁에 벌레가 꼬일 수도 있으니까.”
“그, 그럼 내가...!”
“괜찮아요. 저도 곧 뒤따라 갈 테니 이야기라도 나누면서 먼저 내려가 계세요.”
가볍게 손을 내젓고 다시 객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는 빠른 걸음걸이로 융단 위를 지나 부엌으로 향했다.
초봄의 아침 햇살이 기운 창가로 다가가니 따스한 온기가 살갗에 옅은 문양을 그렸고, 불현듯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앞머리를 흩날렸다.
상쾌한 기운에 미소를 머금고 창문을 닫고자 막 상체를 기울인 순간,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불시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
[....]
정체불명의 두 그림자가 정원에서 날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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