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262화 (262/375)

〈 262화 〉 일상? #1

* * *

[262] 일상? #1

“저기... 혹시 말 좀 물을 수 있을까요?”

“뭐요? 물건 안 살 거면 저리 가...”

­짤랑...!

“크흠... 흠... 그래 어디 들어나 보지. 무슨 일인데 그러나.”

“...혹시 이곳 인근 목장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목장? 베라스틴에?”

“네, 서쪽 성문으로 나와서 남쪽으로 좀 내려가다 보면 곡창 지대가 나오잖아요. 그 너머 말이에요. 꽤 규모가 큰 목장인데...”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거긴 얼마 전만 해도 언데드가 활개 치던 곳이었는데. 저번에 싸그리 불태워서 아직 잿더미일걸? 잠깐... 그보다 자네 인상착의가 왠지 낯이 익는데...”

“...실례했습니다.”

노점을 뒤로하고 나왔다.

털레털레 시장길을 걷자 무수한 행인이 스쳐지나갔다.

생소한 얼굴들은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어 눈그늘이 지었을지언정 근심이나 불안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는 새털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갔고, 바람에 선선히 흩날리는 천막은 태평하다.

물론, 그 어디에서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질 거라 예고하는 징조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열명 남짓.

시장길을 전전하며 붙잡은 사람의 수.

하지만 목장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레에 한가득 담긴 유제품과 육류가 증발한 것도 아니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라디 일행을 먼저 저택으로 물리고 일전의 장소로 다시 찾아가 봤지만 그곳에는 목장은커녕 텅 빈 벌판과 약간의 그을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마치 여우한테 홀린 기분.

땅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심지 속에서도 잡목이 우거진 장소가 나왔다. 오솔길을 따라 나아가자 높은 담벼락이 보인다.

새까만 철창 앞에는 기자들이 서성거리며 남긴 발자국이 그득했고, 짓이겨진 풀잎이 쓸쓸한 정취를 자아냈다.

고즈넉한 돌길을 걸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날 기다리던 라디 일행과 시선이 마주쳤다.

라디가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그래.”

“어땠어 도란.”

“...목장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데. 심지어 여기서 평생 살아온 토박이도. 다시 들판에 찾아가도 그냥 불모지뿐이었고. ...정말로 너희는 마지막에 아무 일도 없었어?”

“응... 그냥 평범하게 작별해서 성문까지 걸어왔어. 그때까지는 도란도 아무 일 없이 평소랑 똑같았고. 갑자기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 주저앉긴 했지만...”

“왜 나만 마지막 기억이 없는 거지...? 혹시 오늘 목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

“네. 같이 건초 옮기고 우유 짰고, 오두막에서 식사한 뒤 치즈와 고기를 받아서 돌아왔어요.”

“...도중까진 같은데. 미쳐버리겠네.”

눈가를 짚으며 입을 다물자 라디가 조용히 외투를 벗겨주었다.

장검을 풀어내 우산꽂이에 거치하고 부츠 끈을 풀어내자 아리엘이 부드럽게 흑발을 어루만져주며 물었다.

“...그럼 도란은 목장에서 나올 때의 기억이 없다는 거지? 그 어르신이 손을 흔들어 주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성문 앞까지 도달해 있었고...”

“그래, 받아온 수레랑 치즈도 그대로 있는 데다가 전부 같은 경험을 한 걸 보니 허깨비는 아닌 모양인데... 혹시 짚이는 거 없어? 환술이라던가.”

“...그건 아닐 거야. 만약 환술의 일종이었다면 방아쇠가 될 만한 암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니아 님이 먼저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어. 무엇보다 치즈랑 고기가 남아 있는 게 말이 안 되고. 더군다나 무언가를 파괴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렇게 정교한 마법은...”

“하긴...”

아직도 암소의 젖을 짤 때의 촉감이 선연하게 남아있을 정도니.

손바닥을 내려다보자 니아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소년. 내가 조금만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어도 이런 일은..”

“아, 아녜요 니아 님...! 왜 니아 님이 사과해요? 어쩔 수 없는 건데.”

“맞아요 니아 님. 실제로 저희 중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잖아요.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네, 분명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 존재면 분명...”

“역시 그렇겠지...”

신.

현관에 기대어진 수레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짐작 가는 인물이 있어?”

“음... 일단 누가 봐도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으니까 여성 신은 아닐 거예요. 그럼 적어도 절반 정도는 후보가 줄어든다는 얘긴데... 혹시 낙농에 관련된 신이 있어요 언니?”

“글쎄... 있긴 한데 너무 많아서 문제야. 가축을 관장하는 신도 있고, 목축이나 축산을 전담하는 신도 있거든. 이쪽 분야는 워낙 소규모 신들이 많아서... 그리고 꼭 목장에 관련된 신이라는 보장도 없어. 자신의 분야와는 별개로 취미 생활을 즐기는 분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어디 다른 단서가...”

“....”

짚이는 부분이 있긴 있다.

오두막에서 보았던 이상 현상.

죽은 나무 속에서도 싹트는 씨앗, 끈질긴 곡물의 생명력, 급속한 성장 등.

그것이 신의 편린에서 비롯된 자연 현상이라고 친다면...

“...식물에 관련된 신?”

무심코 내뱉어진 니아의 말을 필두로 여러 추측이 터져나왔다.

“식물의 관련된 신 중 남성이라고 한다면... 잡목의 고드리나 대수림의 나가예드...”

“외형으로는 중장년 정도 나이뻘에 다부진 체구.. 키는 평범하고, 밀짚모자를 즐겨 쓰고... 갈색 콧수염에 짙은 고동색 눈... 일단 수인은 아닌 것 같았죠 니아 님?”

“응, 그리고 상당히 격이 높은 신 같아. 안디라 님을 존칭 없이 막 부를 정도였으니까.. 근데 소년은 왜 거기서 안디라 님을 숭배한다고 대답한 거야?”

“그건...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그보다 안디라 신을 존칭 없이 불렀다라... 정말로 그랬던 것 같네요. 방금은 굉장히 예리했어요. ...아리엘, 짐작 가는 신이 있어? 이 정도면 후보를 상당히 좁힐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분 있어. 근데 그분은 너무 격이 높으신 분이라..”

“누군데 그래?”

“....”

아리엘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며 내뱉었다.

“...농업의 신 티바르.”

“티, 티바르...?! 그분은... 격이 높아도 너무 높잖아요!”

“티바르면... 그, 그럴 수도 있겠네.. 조금 납득이 가...”

“....”

농업의 신이라...

농업 사회에서 농업의 신이면 입지가 엄청나지 않나...?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라디가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란님은 티바르 님이 누군지 아세요?”

“음... 조금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종종 들어보기도 했고, 이전에 아리엘이 짤막하게나마 언급하기도 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라디가 말을 이었다.

“티바르 님은 말씀드린 대로 농업을 관조하는 신이고, 그쪽 계열에서는 제일 격이 높은 신 중 한 분이에요. 농산물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덕에 각국에서 초빙하려고 애를 쓰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맞아. 그리고 특이하게도 가호를 내리기는 하는데 사람한테는 안 내리고 땅에 부여하고는 홀연히 사라지곤 해. 그래서 축복의 은둔자라는 이명이 있을 정도야. 은거 기인처럼 사람들 앞에 안 나서고 신출귀몰하기로 유명한데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건...”

“음... 하지만 우리라기보단...”

“.....”

세 명이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난처하게 뒤로 물러나자 라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꼭 도란님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았죠. 줄곧 도란님하고 같이 있었으니까요.”

“맞아. 계속 도란을 주시하더라고. 밀짚모자 아래로 빤히 바라보던데.”

“...나도 봤어. 티바르 님은 상당히 과묵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소년이 엄청 마음에 든 것 같더라고!”

“....”

다음에 이어질 말은 예상이 간다.

아리엘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도란... 혹시 이전에 티바르 님을 만난 적 있어?”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그랬으면 진작 알아봤겠지. 그분도 그런 소리는 안 했잖아.”

“...혹은 일부러 침묵하고 있었을 수도 있죠.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이 일부러 도란님에게 접촉했을 정도면 뭐가 있긴 한 건 분명한데...”

“혹시 다른 신에 관련된 내용 때문일까요? 그 왜... 식탁에서 그런 질문을 했었잖아요. 어떤 신을 믿느냐고... 그분이 정말로 티바르 님이었다면 저희가 축복을 받은 걸 몰랐을 리가 없는데...”

“...사실은 그때 살짝 떠본 건가? 하지만 그것 때문에 찾아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고 보니...”

내가 입을 열자 모두가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나는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털어놓았다.

“마지막에 작별하기 전에 머잖아 익숙한 존재가 찾아올 거라고 했어. ...기억나?”

“으음... 아뇨. 처음 듣는 얘기에요. 아마 도란님과 저희의 마지막 기억이 다른 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익숙한 존재...?”

“익숙한 존재라... 티바르 님의 지인 중에 도란에게 익숙한 존재면...”

“평범한 인간은 아닐 테고.. 또 다른 신? 하지만 그렇다면 예상이 가는 분은 딱 한 분밖에 없는데...”

“.....”

설마...

아니겠지...

순간, 죽음을 상징하는 세 글자 존함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농업의 신인 티바르 때와는 사뭇 다른 무게감에 침묵하자 니아가 라디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있잖아... 소년은 원래부터 이런 일이 종종 있었어?”

“음... 신을 직접 만난 건 처음이지만... 네, 비슷한 경우가 전에도 있긴 했어요.”

“도란하고 함께 다니면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지...”

“마물... 인줄 알았던 존재가 말을 걸어온다던가.. 고대 유적에서 미라에게 쫒긴다던가...”

“도시 지하로 잠입해서 이교도와 싸우기도 하고.. 길고양이 줍듯 정령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기도 하고...”

“이젠 신도 만났다는... 거지?”

“.....”

““.....””

세 쌍의 눈동자가 빤히 날 바라보고 불편한 침묵이 내리깔리자, 라디가 손뼉을 치며 정적을 깼다.

“...어쨌든 이제 도란님도 돌아왔으니 저희는 일단 목욕이라도 하면서 차분히 이야기해요. 도란님도 어서 가서 옷 갈아입고 쉬고요.”

“그럴까...”

“네, 이곳저곳 탐문하고 다니느라 지치셨잖아요. 니아 님도 어서 같이 올라가고요. 도중에 재밌는 걸 가르쳐드릴 테니.”

“재밌는 거?”

“네, 이건 던전에서 겪었던 일인데 하루는 도란님이...”

“.....”

나는 눈짓으로 그녀들을 배웅해주었다.

라디 일행이 층계를 올라가고 나자 텅 빈 거실에는 귀가 먹먹해질 만치의 적막이 내리깔렸다. 아직 낮이지만 짙게 드리워진 커튼은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 되겠다. 나도 좀 쉬자.”

나는 융단 덮인 복도를 가로질러 침실에 도달하자마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욱신거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덮자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들었지만, 어수선한 머릿속 탓에 도무지 잠들 수가 없다.

불편하게 몸을 뒤척거리자 방안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란이니?”

­.....

수통 마개가 떨어지더니 익숙한 감촉이 발끝에 느껴졌다.

란이는 천천히 내 하반신을 타고 오르더니 가슴과 팔 사이에 안착하며 포근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녀석을 다정하게 쓸어주며 물었다.

“...언니들이랑 같이 씻으러 간 거 아니었어?”

­.....

“아, 맞다. 혹시 인형이라도 가지고 놀래?”

­....

문뜩 연금술 용품점에서 받아온 토끼 인형이 생각나 건네봤지만, 란이는 그저 날 꼬옥 끌어안을 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취향에 안 맞는 걸까...?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줘야 하나..”

나는 피식 웃으며 란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봄 들판에 떨어지는 단비처럼 사랑스러운 란이와 끌어안고 있자니 창가로 새어 들어온 솔바람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정말 곤히 자네요..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어요.”

“꼭 아이 같아... 소년도 이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구나...”

“사실 도란만큼 순수한 사람도 드물 거예요. ...가끔 과하게 밝히는 게 문제긴 하지만. 이따금씩 란이에게 마력을 공급해줄 때면 어김없이 묘한 시선이...”

“아, 눈 떴다.”

“.....”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자 다정하게 날 내려다보는 세 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나른하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아까 타종이 울렸으니 아마... 오후 일곱 시 정도 됐을 거예요.”

“벌써...?”

“응... 정말 곤히 자더라고. ...혹시 우리가 괜히 깨운 걸까?”

“아니, 슬슬 일어나려던 참이었으니까. ...오래도 잤네.”

어지간히 피로했던 모양이지.

완전히 어두워져 검게 물든 창밖을 보자 후회가 막심했다. 또 잠든 날 둘러싸고 실컷 감상했을 그녀들을 생각하니 살짝 부끄럽다.

천천히 잠자리에서 벗어나자 아리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누워있어도 되는데....”

“괜찮아, 더 잤다간 새벽에 꼼짝없이 깨어있어야 할 테니까. 아까 같이 씻으러 간다더니 다들 목욕은 끝난 거야?”

“네, 저흰 진작에 씻었어요. 목욕물 새로 데워뒀으니까 도란님도 가서 씻고 오세요.”

“그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가슴팍에서 새근새근 잠든 란이를 그녀들에게 맡기고 막 침실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등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는 기척이 전해져왔다.

의아하게 돌아보자 니아가 머뭇거리며 운을 뗐다.

“저... 소년... 라디랑 아리엘한테 들은 건데 말이야...”

“네, 말씀하세요.”

“그... 혹시 등 밀어줄 사람 안 필요...”

“기각.”

“뭐? 이, 일단 내 말은 좀 다 듣고...!”

“.....”

이마를 짚으며 내뱉었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만약에라도 엿보러 오면 집에서 내쫓을 거예요. 얘들이 부추겼다고 핑계를 대도 마찬가지고요. 알았어요?”

“으냑...! 알겠어...”

“나 원...”

정곡을 찔린 듯 꼬리를 움찔하는 걸 보니 정말로 염탐하러 올 생각이었나 보다.

머쓱하게 웃는 니아에게 경고한 뒤 복잡한 심정을 갈무리하며 침실을 나섰다. 욕실에 도달하자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커튼까지 쳐두었다.

보안을 강화한 후, 커다란 욕조 안 찰랑이는 수면에 들어서자 커다란 파문이 인다.

나는 피부로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에 머릿속을 메웠던 상념들이 하나하나 허물어지는 걸 느끼며 사고에 잠겨들었다.

줄곧 날 괴롭혀왔던 의문.

“...내가 이전에 그 신과 만난 적이 있다고?”

그럴 리가.

그랬더라면 기억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최근 기묘한 사건과 연달아 맞닥뜨리긴 했지만 내 기억력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2~3년 안에 만났던 사람을 이렇게까지 까먹을 리 없으니까.

아니면...

‘외형을 바꿨나...?’

이 세계에 그런 마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전에 베라스틴 서쪽 시장가 근처에서 봤던 연금술사도 순간적으로 체형을 바꾸는 재주를 부린 적이 있으니까.

아마 신쯤 되면 그 정도 일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 위화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잘 안 드러내는 신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걸 보니 뭔가 목적이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누군가 내게 찾아올 거란 귀띔을 하기 위해서라기엔 조금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다.

설마 정말로 목장 일손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은 아닐 테고.

단순히 날 보고 싶어서?

아니면 정말로 구면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선지 셰퍼드 세 마리도 왠지 낯이 익기도 한 것 같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오랜 세월 망각하고 있었던 어렴풋한 미소가 떠오르는 듯하다.

허나 이 모든 게 얼마나 모순되었는지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낯선 이방인에 불과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쪽 세계로 넘어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던가...”

나는 자조적으로 뒷말을 머금었다.

그건 너무 비약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굳어버린 사고는 도통 실마리를 잡지 못했고, 끝끝내 무너져내리며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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