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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65화 (265/375)

〈 265화 〉 일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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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일상? #4

홀린 듯이 다가가자 광휘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귀금속이 정렬된 진열장 앞에서 멈춰서자 다소 앳되어 보이는 직원이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어, 어서 오십시오 손님...! 이곳은 저희 매장에서 장신구를 취급하는 장소입니다! 혹시 원하시는 디자인이나 재질이 있으십니까?”

“....”

손가락으로 한 열쇠고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거 얼마에요?”

“자개 말이시구나...! 안목도 좋으셔라!! 이건 금조개의 패각을 줄톱으로 다듬고 얇게 썬 건데 베라스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

“네, 넷...! 40실링입니다!! 이게 제일 큰 사이즈라 조금 비싸요... 작은 건 20실링부터 시작입니다.”

“40실링이라...”

시장에서 봤던 물건. 니아가 넋 놓고 구경했던 바로 그 장신구다.

물론 품질은 그때와 비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고급이지만.

가격이 좀 더 저렴했으면 선물로 고려해봤겠으나 너무 비싸다. 도저히 부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선뜻 지출하기엔 망설이게 되는 금액. 그렇다고 자그마한 걸 사기엔 너무 쥐꼬리만 해서 티도 안 날 테고.

라디랑 아리엘한테도 뭔가 하나 해주고 싶은데...

턱을 짚고 고민하자 점원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저... 제가 혹시 결례를 범한 건...”

“아,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혹시 이 중에 선물용으로 적합한 게 있을까요?”

“선물이요?”

“네, 애인 두 명한테 선물할 건데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아니 좀 가격이 나가더라도 괜찮은 걸로요. 디자인은 조금 달라도 되는데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두 분이라... 네? 두 분? 그럼 니아 님은...”

머쓱하게 목덜미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니아 님은 제 연인이 아니라 그냥 지인이에요.”

“그, 그래요...?! 하지만 소문대로라면...”

“소문이 어쨌는데요?”

“그게...”

여자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더니 귀 끝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털어놓았다.

“...엄청나게 예쁜 아내가 두 분이나 있으시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니아 님한테까지 마수를 펼치는 희대의 난봉꾼이라고 들었어요..! 어마어마하게 변태인 데다 야외 플레이를 즐겨 하... 어, 어디까지나 저도 들은 얘기에요...!”

“.....”

푸우우욱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신문사 길드를 다 때려부수든가 해야지 원....

검은 머리칼을 후드로 덮으며 말했다.

“...다 헛소문이에요. 기자들이 어떻게든 자극적인 기사만 쓰려고 하니까.. 그보다 아까 말씀드렸던 장신구는 있나요?”

“아 예... 그러니까 아마 이쪽이...”

“도란님! 어디 계세요?”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요.”

탈의실 쪽에서 라디의 목소리가 들려와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돌아섰다.

최대한 전방에 시선을 고정해 헐벗은 마네킹들을 무시하며 걷자 곧 작은 칸막이가 나왔다.

가림막이 슬쩍 젖혀지더니 라디가 고개를 쏙 내밀고 말했다.

“...어디 갔었던 거에요. 당연히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미안, 잠시 요 앞에 둘러보러 다녀왔지. 옷은 다 갈아입은 거야?”

“네, 들어오세요.”

녀석이 팔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잠시 시선이 뜸해진 틈을 타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서자 라디 특유의 은은한 우유 향 체취가 물씬 풍겨왔다.

아무도 보지 못했음에 안도하고 뒤돌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새하얀 살결에 대비되는 다크 그레이 톤의 고혹적인 속옷, 샹들리에의 조명을 받아 뽀샤시하게 빛나는 쇄골 라인과 그 아래 탐스러운 과실, 부끄러움에 살짝 붉게 물들면서도 당당한 라디의 표정이 내 이성을 앗아갔기에.

그녀가 은근하게 미소짓고는 슬그머니 꼬리를 살랑이며 뇌리에 속삭였다.

“...어때요?”

“.....”

“나름 도란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데... 맘에 들지 않아요?”

대답 대신 충동적으로 입술을 덮치자 라디의 귀가 쫑긋 섰다.

나는 가냘픈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강하게 끌어안았고, 라디도 은근슬쩍 허벅지를 감으며 몸을 밀착했다.

짧은 키스가 끝난 후 입술을 떼자 사파이어를 빼다 박은 듯한 눈동자엔 애정이 듬뿍 묻어나오고 있었다.

라디가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며 안겨들더니 내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나는 그녀의 연색 머리칼을 상냥하게 걷어주며 말했다.

“...속옷 진짜 잘 어울린다. 우리 이거 사자.”

“네... 그래야겠네요.. 도란님이 이렇게 흥분하신 걸 보니...”

“....”

나는 다시금 라디의 옷차림을 둘러보았다.

안개 낀 숲처럼 포근한 잿빛 귀와 꼬리에 깔맞춤하기라도 한 양 일체감을 주는 색상과, 매끄러운 몸의 곡선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디자인을 보면 이 속옷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더군다나 수인용으로 특별히 나 있는 구멍으로 삐져나와 간질간질거리는 꼬리를 봐 버리면...

녀석의 어깨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라디야.”

“네, 말씀하세요 도란님.”

“꼬리 만질래.”

“가, 갑자기요?”

“안 돼?”

“아니 뭐... 안 될 건 없지만...”

“그럼 이리 와.”

“.....”

라디가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녀석을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양 손바닥으로 칸막이를 짚게 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꼬리를 내미는 자세가 되었고, 나는 굳은살 박인 손끝으로 잘록한 허리를 타고 내려가 뿌리 부근을 움켜쥐었다.

라디가 몸을 움찔하며 벽으로 들러붙었지만 나는 계속 행위를 이어갔다. 천천히 팔을 위아래로 왕복하자 손바닥에 말캉말캉한 감촉이 느껴졌고, 그녀는 허리를 꼬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은밀하게 귓가에 속삭였다.

“...소리 내면 안 된다?”

“다, 당연하죠...! 여기서 이런 짓을 했다는 걸 들키면 온 도시에 소문이 퍼질 거라고요!”

“그러게... 언제 이렇게 대담하게 됐데.”

“이게 다 도란님이... 꺄읏?!”

순간, 라디가 손바닥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을 틀어막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나는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고,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입술로 훑었다.

작달막한 까치발이 서서히 들리며 목소리에 희미한 물기가 묻어나오던 차­

“여기요? 이쪽은 탈의실이잖아요.”

“응! 여기서 소년의 냄새가 난다니까!”

“그래도 만약 엉뚱한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괜찮아~ 괜찮아~!”

가림막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라디의 입을 틀어막고 숨죽였지만, 내 필사적인 기도가 무색하게도 커튼이 젖혀지며 익숙한 두 소녀가 나타났다.

황금빛 눈동자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재빨리 도약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읍!!”

“자, 잠깐..! 다 설명할 테니 일단 진정하세요!”

“읍!! 으읍!!!”

“제, 젠장!! 아리엘! 커튼 쳐!!”

“....”

­촤륵..

아리엘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가림천을 잡아당기자 반 평짜리 밀실이 완성되었다.

나는 니아의 입을 붙잡은 채 긴박하게 속삭였다.

“해명할 테니 가만히 좀 있으세요!”

“읍!!”

“제발 좀...!”

“읍읍 읍!!!”

도무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마구 날뛰고 있지는 않다는 게 다행이지만, 이러다간 언제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 몰려올지 모른다.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이 나도는 마당에 이번 일이 대외로 퍼져나갔다간...

“라디! 아리엘! 팔 붙잡아!!”

니아를 벽에 몰아붙이고 맹렬히 사고했다.

이 여자를 진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새끼 고양이를 다루듯 목덜미를 붙잡아도 보고, 저번처럼 귀를 만져도 봤지만 이번에는 도통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사납게 일그러지는 눈꼬리, 내 허리를 움켜쥔 채 다분한 악력이 실리기 시작한 손아귀를 보며 식겁하자 라디가 다급하게 외쳤다.

“도란님 꼬리!!”

“뭐?! 하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잖아요! 소문이 퍼져나갔다간 저도 곤란해진다고요!!”

“.....”

에라 모르겠다.

“으냑?!!”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니아의 꼬리를 덥석 움켜쥐자 정전기라도 오른 것처럼 그녀의 귀가 쭈뼛 섰다.

저항이 멎고, 등등하던 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에 감탄하며 꼬리를 쪼물딱거리고 있자니 아리엘이 팔을 놓으며 말했다.

“꼬리가 약점인 건 모든 수인 공통인가 보네... 신기하다.”

“뭐...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긴 한데 대부분 그래요. 대상한테 호감이 없으면 오히려 역효과고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그러게... 잘해 봐 도란.”

“.....”

헛!!

라디와 아리엘이 남 일처럼 물러나고 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제 수습할 시간이다.

나는 오만 가지 감정이 해일처럼 휘몰아치는 금빛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저... 니아 님...?”

“.....”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 당황하지 말고 들으세요.”

“...리.”

“네?”

“...꼬리.”

“아.”

그제야 무심코 주무르고 있던 꼬리를 놓았다. 말랑말랑하고 녹실거리는 라디의 꼬리와는 달리 제법 탄탄한 맛이 있어 이것 역시 묘한 중독성이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맵쌀로 만든 떡과 찹쌀로 만든 떡 정도의 차이...

“소년.”

“네, 네...? 니아 님...?”

“이번이 두 번째야.”

“....?”

“네가 내 꼬리를 만지는 게.”

“.....”

황급히 라디와 아리엘에게 손사래 치고 외쳤다.

“제, 제가 언제요?!!”

“발뺌할 거야?”

“바, 발뺌이 아니라...! 정말로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 제가 대체 언제...”

“내가 베라스틴에 온 첫날. 기억 안 나?”

“.....”

아, 설마...

“그, 그건 동전 지갑을 넣어주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어쨌든 만졌잖아!! 내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게다가 이번엔 어떻게 변명할 건데! 네가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즉 내 손에 뒤졌어!!”

“....”

변명거리가 없다.

뒤로 물러나며 침묵하자 그녀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읊조렸다.

“...그리고 애초에 너희들은 왜 그러고 있었던 건데? 라디는 옷까지 홀라당 벗고 있고.”

“.....”

난처하게 라디와 시선을 교환하고 대답했다.

“...라디의 속옷을 골라주고 있었어요. 다른 의도는 없었...”

“그런 것치고는 아주 재미있어 보이던데? 목에 그 자국은 뭐야.”

“.....”

라디가 목 언저리에 난 멍 자국을 손바닥으로 감추며 둘러댔다.

“으음... 이건... 아까 실수로 진열대에 부딪혀서...”

“거짓말. 소년의 체취가 진하게 나고 있거든? 우리 수인끼리는 냄새로 다 알잖아.”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니아 님도 아예 모르진 않을 거 아녜요. 보아하니 라디랑 아리엘한테 이런저런 얘기도 들으신 거 같던데.”

“.....”

“...그럼 이제 여기서 나가죠. 라디 너도 옷 입고. ...쇼핑은 다 끝나신 거예요?”

“....”

니아는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 아직.. 너한테 골라 달라고 하려 했는데... 아, 아니 그보다 말 돌리지 말고...!!”

“뭘요, 설명은 다 했는데. 또 물어보면 그냥 돌아갈 거예요.”

“치, 치사해...!!”

“원래 세상은 야속한 거예요.”

새침하게 웃으며 니아의 머리를 다독였다.

꼬리는 뭐... 이따가 제대로 사과해야지.

우리는 라디가 옷을 다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소란을 듣고 몰려든 귀부인들로 작은 인파가 만들어진 뒤였다.

나는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점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아무 이상이 없음을 알리고는 사람들을 제치며 인파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속닥이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걷고 있자니 아리엘이 슬쩍 귓가에 속삭였다.

“...조금 자중했어야지 도란. 신난 건 이해하지만...”

“미안, 무심결에...”

“뭐... 딱히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 대신 내 속옷도 골라줘야 한다?”

“...알았어.”

그동안 니아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걱정이다만...

‘...장신구 가격이 40실링이라 했던가..?’

간만에 지갑을 열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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