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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68화 (268/375)

〈 268화 〉 일상? #7

* * *

[268] 일상? #7

본격적으로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알코올에 다소 면역이 있는 라디도 위스키를 몇 잔 들이켜더니 취기가 오른 듯 쉴 새 없이 귀를 까딱거렸고, 아리엘과 니아에 이르러서는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호기심에 와인을 살짝 손가락에 찍어 맛보더니 질색을 하며 물러나는 란이의 입에 치즈를 넣어주자 니아가 날 지긋이 응시하며 읊조렸다.

“그런데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소년이 정령의 간택을 받았다니...”

“그러게요... 게다가 어디 험난한 오지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도시 근처 호숫가에서 만났으니까요. 누가 먼저 따라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운디네랑 계약한 인간 중에는 유독 강한 마력을 각성한 사람이 많다던데 소년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 오래오래 계속 보지! 물론 아리엘이랑 라디도!”

니아가 쾌활하게 외치자 라디가 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사실 제 부모님도 마법을 쓸 줄 알았다고 해서 살짝 기대하고 있어요. 마력 적성이 꼭 유전되는 것만은 아니지만요.”

“응!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거든!! 소년은 엄청난 대마법사가 될 테고!”

“.....”

내가 대마법사라...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지.

자조하며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자 녹아내린 얼음이 유리잔을 때렸다.

슬슬 더워지는 걸 자각해 옷깃을 느슨히 풀자 니아가 꼬리를 움찔했다.

나는 의아하게 돌아보다가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니아 님은 왜 무투가가 되신 거예요? 다른 선택지가 많았을 텐데... 흔한 직업군은 아니잖아요. 건틀렛도 여타 무기에 비하면 가격대가 꽤 나가는 편이고.”

“그러게요, 저도 전부터 그게 궁금했는데...”

“.....”

이 세계에서 무투가는 흔치 않다.

그도 그럴 게, 인간 덩치의 배를 웃도는 몬스터가 즐비한 이곳에서 완력만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심지어 무투가들이 주로 쓰는 건틀렛에는 마물의 급소를 꿰뚫을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것도 아니고, 유효 거리가 너무 짧은 탓에 필연적으로 적에게 틈을 노출하게 된다.

나 또한 단도를 쓰느라 상당한 곤욕을 치렀는데 그보다 짧은 건틀렛은 오죽할까.

더욱이 스스로의 완력에만 의지해야 하는 구조 탓에 내가 보기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월등하게 많은 무구다.

희한하게 쳐다보자 니아가 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음... 이유라면 있긴 하지만... 놀리지 마...?”

“네? 놀릴 만한 부분이 있어요?”

“으응... 사실 나도 아예 검을 써보려 해보지 않은 건 아닌데... 쓰는 족족 부숴먹었어. 내가 힘 조절이 좀 많이 서툴잖아.. 한번은 너무 많이 망가뜨려서 비아투스가 화를 낸 적도 있었고. 내 살림을 거덜 낼 생각이냐고 울먹이더라...”

“그 호방하신 어르신이... 그런데 그건 건틀렛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망가지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자 니아가 위스키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으음, 그렇긴 한데 검보다는 오래 가. 훨씬 두껍고 튼튼하니까. 게다가 내가 쓰는 건틀렛은 다른 건틀렛보다 간단하고 투박한 디자인이거든. 그편이 녹여서 다시 제작하기도 좋으니까.”

“하긴... 그러면 전투 도중에 망가져도 전선을 이탈할 필요가 없겠네요. 어차피 부서질 걸 아니까 예비용을 미리 여러 개 챙겨두면 되고, 건틀렛 없이도 육탄전으로 싸울 수 있으니까요. 반면 검사는 검이 부러지면 상당히 무력해지니...”

“그렇지! 바로 그거야! 애초에 난 신체 강화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 맨주먹이라도 마력을 실으면 성벽도 깨부술 수 있어!!”

“그건 한번 보고 싶네요... 아니, 그러면 안 되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

진짜로 언제 한 번 사고 낼 것 같아 두렵다.

짧게 건배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문뜩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데 저 멀리 성곽 너머에 내리치는 번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기척이 느껴진다.

천천히 앞을 돌아보자 니아가 턱을 괸 채 날 바라보며 실없이 웃고 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그녀의 눈매가 내 사소한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응시해왔기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왜요.”

“그냥... 멋있어서. 소년은 왜 이렇게 멋져? 키도 크고 늠름하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하고...”

“취했어요?”

“아니, 하나도 안 취했는뎨?”

“...적당히 마셔요. 내일 후회하지 말고.”

“응!!”

“.....”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피식 새어나오는 실소를 머금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런데 알딸딸한 취기의 여운을 즐기고 있자니 불현듯 허벅지에 이상야릇한 감촉이 느껴졌다.

천천히 내려다보자 조용히 잔을 기울이던 아리엘이 내게 밀착하며 애타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왜.”

“도란, 나 더워..”

“...그래? 벽난로 끌까?”

“아니 그거 말고...”

“....”

나는 힐끔 니아를 돌아본 후 난감하게 아리엘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피곤하면 먼저 잘래?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아니... 같이 가자... 나 오늘 도란이랑 같이 잘래...”

“응, 먼저 자고 있으면...”

“싫어! 같이 잘래!”

“.....”

이거 제대로 취했는데...

응석꾸러기가 되어버린 동갑내기를 보자 여러모로 난처했다. 이대로 그녀를 끌어안고 애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여기서 아리엘에게 말려들었다간 정말로 니아 앞에서 거사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니까.

라디도 연거푸 위스키를 홀짝거리더니 도중부터 점점 말수가 줄어들며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어쩐지 불안하고.

슬슬 파장해야 하나...

나는 적당히 때가 왔음을 짐작하고 헛기침하며 운을 뗐다.

“흠... 저 니아 님.”

“응, 왜 불러~?”

“사실... 니아 님을 위해 준비한 게 있어요.”

“준비한 거? 뭔데, 새로운 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잠시 눈 좀 감아주시겠어요?”

“눈? 갑자기 눈은 왜.”

“그게...”

“혹시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지...?”

니아가 미심쩍게 눈매를 좁히더니 문뜩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새침하게 눈을 감고는 소파에 드러누우며 앓는 체를 했다.

“으음... 어지러워.. 나 취했나 봐 소년... 지금이라면 살짝 만져도 눈치 못 챌 수도...”

“....”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한 짓 안 해요. 만약 정말로 그럴 심산이었으면 적어도 라디랑 아리엘이 없는 곳에서 했겠죠.”

“그래? 그럼... 소년! 나 갑자기 저택 탐험이 하고 싶은데...”

“안 가요. 제가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겁쟁이.”

“....됐고, 손 내밀어 보세요. 제가 말할 때까지 눈 뜨지 마시고요.”

“응! 알았어!!”

니아가 활기차게 대답하고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가 눈을 감은 걸 확인한 후 주머니를 더듬어 목함을 꺼내들었다. 고급스러운 흑단 소재로 만들어진 보석함 안에는 일전의 장신구 판매대에서 보았던 무지갯빛 열쇠고리가 얌전히 놓여있다.

조심스럽게 장신구를 꺼내들어 수많은 마물을 도륙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손바닥 위에 내려놓자 니아가 어깨를 움찔했다.

“뭐, 뭐야 이건...? 가볍고... 쪼그마한데...”

“이제 눈 떠도 돼요. 주먹 쥐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

그녀가 서서히 한쪽 눈꺼풀을 들어 손바닥 위에 놓인 물체를 확인했다.

이어서 나머지 눈도 뜨고는 아리송하게 열쇠고리를 들여다보더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입술이 떨어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이게 뭐야?”

“니아 님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저번에 시장에서 봤을 때부터 가지고 싶었죠? 니아 님이 베라스틴에 온 걸 기념할만한 게 하나쯤은 있으면 좋을... 니, 니아 님...?”

“.....”

니아가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

예상외의 반응에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자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야... 갑자기 말이 없으셔서 놀랐잖아요. 선물은 마음에 드세요? 나름 신경 써서 비싼 걸로... 자, 잠깐...?”

“.....”

니아는 그대로 말없이 다가와 지그시 내 어깨를 누르며 눕히더니ㅡ

“...도란.”

“도, 도란...? 왜 간만에 이름으로...”

“....”

“니, 니아 님...?”

의아하게 쳐다보자 니아가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는 연회장의 촛대가 자아내는 황금빛 광휘처럼 아찔한 이채가 일렁거리는 눈동자로 고했다.

“나 결심했어.”

“네, 네...? 마, 말씀하세요...!”

“우리 아기 만들자.”

“....”

어...

“뭐, 뭔 소리 하시는 거예요 니아 님?!! 취했어요?! 취했죠!!!”

“난 멀쩡하느니라. 보아라. 뺨도 붉지 않고, 혈색도 평소와 같지 않더냐.”

“멀쩡하긴 개뿔!! 원래 말투 나왔거든요?! 아니 애초에 아기...는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서 말한 거예요?!!”

“물론이다. 그대의 양물을 빳빳하게 세워서 내 비처에 넣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남녀 간의 정을 나눈다고 배웠다. 내 경험은 없지만서도 몸을 놀리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 소박하게나마 자네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겠군.”

“.....”

아니, 그토록 순진한 척은 다 하더니...!!

“...안 돼요!!”

“된다.”

“안 돼요!!”

“된다.”

“절대 안 돼요!!! 저한텐 라디랑 아리엘이 있는 거 아시잖아요!! 연인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어째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

니아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슬픈 눈망울로 올려다봤다.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니아 님은 제게 과분할 정도로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원래 그런 건 정말 소중한 사람끼리 하는 거니까요. 또 니아 님의 일생에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수도 있는 일인데 술기운으로 성급하게 저지르고 싶지 않고요.”

“....”

니아가 살짝 시선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 응시하는 그녀의 입가에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황금빛 밀알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가 맺혀있었다.

“...도란은 정말 따스하구나.. 도란과 같이 있으면 꼭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이야.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정말로 기뻐. 이 마음을 어떻게 보답해야 해...?”

“뭘요. 그냥 지금처럼 가끔씩 곁에서 밝게 웃어주는 거로 충분해요. 그럼 열쇠고리를 직접 달아드릴까 하는데... 지갑 한번 꺼내 보실래요?”

“...여기.”

“네, 잠시만요.”

나는 니아가 내민 손을 맞잡고 지갑에 손수 열쇠고리를 달아주었다.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는 장신구, 영롱한 광채를 내뿜는 자개는 은은한 마석등 불빛을 반사해 몹시도 아름다웠다.

니아는 한참이고 한참이고, 그 광경을 쳐다보더니 멍하니 날 올려다봤다.

나는 웃으며 고했다.

“니아 님이 이걸 꺼내 볼 때마다 베라스틴에서 저희와 보냈던 추억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또 남은 시간 동안 즐겁게 놀다가 갔으면 좋겠고요.”

“.....”

“어때요?”

“...도란.”

“네, 니아 님.”

“.....”

말없이 날 응시하는 니아의 눈동자에 투명한 눈물이 맺혀들었다.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자니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한 발자국 다가왔다.

“...도란.”

“네, 니아 님...! 괜찮아요...? 혹시 뭔가 심기를 건드린 건...”

“도란... 도란....”

“....”

니아가 날 눈동자에 담았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가녀린 손으로 괴로운 듯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란... 난 어떻게 해야 해...?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무서운데... 동시에 너무 기뻐.. 너한테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죽을 만큼 행복하면서도.. 조금... 괴로워.”

주체하기가 힘들어...

니아가 내 위에 몸을 겹쳤다.

그녀는 마치 본능에 이끌기라도 한 듯 몸을 밀착시키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내 앞섶을 풀어나갔다.

하는 수 없이 그녀를 꼭 껴안아주며 속삭였다.

“...니아 님.”

“.....”

“제 말 잘 들어요.”

“도란...?”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애절했기에 뼈를 끊는 심정으로 말을 토했다.

“...니아 님도 언젠가 지금 느끼고 계시는 감정을 정확히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일러요. 그때 제가 곁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도란이 아니면 싫어. 나 도란이 좋아.”

“그건... 지금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하지만 약속할게요. 이번 여정이 끝나고, 제가 정말 강해져서 니아 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을 때. 니아 님을 만나러 붉은 매 길드를 찾아갈게요. 만일 그때도 마음이 변치 않으셨다면...

...함께 깊은 얘기를 나눠봐요.”

“....”

그녀가 날 떠나보내기 싫은 듯 두 팔에 힘을 실었다.

다정하게 등을 쓸어주자 한참 뒤 니아는 마지못해 손을 놓더니, 내가 준 열쇠고리를 소중하게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소중히 할게. 반드시 깨트리지 않고... 도란이 날 다시 찾아오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을게.”

“.....”

나는 맑게 웃음지어 화답했다.

*

끔찍한 두통 속에서 눈을 떴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나 주변을 살폈지만 너무 어두운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더듬어 간신히 마석등을 켜자 눈부신 광채가 점등했다.

얼룩덜룩한 잔상 속 눈을 찡그린 채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그곳엔 상당히 적나라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이러고 잔 거야?”

벨벳 이불로 덮인 침대 위에는 살색으로 가득한 풍경이 펼쳐져 차마 눈을 두기가 곤란했다. 다들 잠결에 풀러 해쳤는지 새로 산 잠옷은 보이지도 않았고,니아는 내 팔뚝을 끌어안은 채 달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 역시 속옷 차림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식겁하며 하반신을 더듬었다. 전날 술기운에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자 한시름 덜었으나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노력해봐도 침대로 오기까지의 경위가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아이고 머리야... 적당히 마셨어야 했는데..”

지근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니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라디와 아리엘의 이마에 키스한 뒤 침대에서 내려오자 굴러떨어져 잠든 란이가 보였다.

녀석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아리엘에게 안겨주고는 막 침실을 나서려던 차, 나는 불현듯 발길을 거두었다.

“잠깐... 지금 얼마나 잔 거지...?”

이렇게나 진탕 퍼마시고 깨어났는데 아직도 날이 밝지 않았다고?

황급히 창가로 달려가자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 치밀었다. 열심히 창밖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빛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흔한 별이나 달은 고사하고 가정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이나 저 멀리 번화가에서 흔들리는 방풍 랜턴의 어렴풋한 광채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암흑 그 자체.

창가 아래쪽에 맺힌 서리를 보자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불길함이 치밀었다.

서둘러 침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차, 근처에서 비몽사몽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움... 도란님..? 오빠 어디 가...?”

“.....”

나는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불안해하는 라디의 머리를 쓸어주어 안심시켰다.

“...잠깐 요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좀 더 자고 있어. ...왠만해선 니아랑 같이 다들 이 방에 모여있고. 란이도 좀 돌봐줘.”

“우음...? 네 알겠어요...”

“그래, 금방 돌아올게.”

그녀와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서둘러 침실을 나섰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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