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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73화 (273/375)

〈 273화 〉 5

* * *

[273] 잠든 도시 #5

니아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가 서 있던 장소에는 한랭한 공기만이 맴돌 뿐,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도, 따스한 온기도, 내 얼굴을 훔쳐볼 때면 쫑긋거렸던 표범 귀도 온데간데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길.”

주위를 둘러보자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낡고 허름한 건물. 비좁고 너저분한 골목. 도처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판자 구조물과 막힌 하수구로부터 흘러넘친 오물이 덩어리째 굳어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멀쩡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불쾌한 기류가 발목을 타고 끈적하게 늘어진다.

이 정경은 분명 기억에 있다.

“남쪽 빈민가...”

어째서 이런 곳으로...

단도를 뽑아들었다.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경계했다. 니아와 떨어지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 대체 어떤 경위로 그녀가 사라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성대를 쥐어짜 내뱉었다.

“...니아 님.”

­.....

“니아 님 거기 있어요...?”

­....

물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무사할 거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씨발...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순간, 날 배웅하며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던 라디의 눈망울이 떠올랐지만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명령했다.

“...전부 튀어나와.”

­......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스름진 골목 곳곳에서 검은 증기가 솟구쳤다.

한데ㅡ

­파스슥...

“...뭐?”

순간 누군가가 입김을 불기라도 한 것처럼 아지랑이가 사그라들었다.

당황하며 재차 호출했으나 그림자는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고, 내 부름에 답하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다.

개미들이 더듬이를 까딱거리거나 노래기가 수많은 다리를 이끌고 찾아오는 일도, 덩굴이 노면을 뚫고 자라나지도 않았다.

마치 평범했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염병.’

검을 중단으로 들어 응전 태세를 취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단 하나를 제외하고.

­....

골목 어귀에서 한 형체가 움직였다. 심연처럼 시꺼먼 몸체. 기이할 정도로 빨갛고 지성이 담긴 두 눈.

토끼가 오싹하리만치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조용히 골목길을 나아갔다.

여차하면 단도를 투척해 목숨을 꿰뚫을 심정으로 불러세워도 봤으나, 토끼는 짧게 내 쪽을 뒤돌아본 뒤 묵묵히 앞길을 재촉할 뿐이다.

나는 마지못해 녀석의 뒤를 쫓아 전전했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선택권은 없다.

이미 한 번 슬럼가에 발을 들인 이상 이 미로 같은 지형에서 빠져나가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 하물며 지금같이 암흑 속에 잠겨 마석등 불빛 하나에만 의존하는 상태로는 더더욱.

니아와 떨어진 현 상황에서 최대한 원만하게 당면한 사안을 해결하고 그녀와 합류하려면 일단은 이 토끼가 이끄는 데로 순순히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물론 지금 니아를 걱정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건 안다.

수북한 쓰레기 더미를 지나치자 가파른 비탈길이 나왔다. 자칫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듯 험준한 계단을 내려가니 이번엔 막다른 골목이 도사렸다. 주변에 널브러진 자재를 발판 삼아 담벼락을 넘어서자 이번엔 갈림길이 나왔고, 그마저 지나치니 수로가 튀어나왔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성한 널빤지 다리를 건너며 입을 열었다.

“야.”

­.....

“너 사실 말할 줄 알지?”

­....

토끼는 무심하게 앞길을 나아갔다.

입가로 스미는 찬 공기에 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빈민가를 한참 헤집고 다니다 보니 드디어 놈이 자리에 멈춰섰다.

지친 팔다리를 쉬어주며 주위를 둘러보던 중 불현듯 구름 사이로 달빛이 드리웠다.

시야가 확 트인다.

그리고 보인 건 어쩐지 낯이 익은 풍경.

“여긴...”

나는 어떤 광장 외각에 서 있었다.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됐을 걸로 추정되는 중앙 분수대는 깨지고 뭉개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바닥에 깔린 석제 타일은 잔뜩 파헤쳐져 지반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고목은 영양부족으로 노랗게 메말랐고, 나무들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했으며, 인근 건물은 대부분 무너지거나 곧 붕괴할 듯 아슬아슬하게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저 건물은...?’

달빛이 드리운 저 너머, 유독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독특한 외장재를 써 푸른 색조로 빛나는 외벽을 보자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남쪽 구획에서 저렇게 큰 건축물이라고는 돌킨의 노예 거래소밖에 없으니.

저게 이곳에 있다는 건...

“잠깐, 설마 이곳은...”

녹슨 고철처럼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렸다. 토끼의 붉은 안광이 위치한 곳에는 툭 불거진 한 물체가 있었다. 공사장에서나 굴러다닐 법한 널빤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구조물이.

저건 톨킨의 노예 상점을 방문했을 때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던 집이다.

영주성으로 끌려간 고양이 수인이 살고 있었던.

그리고 토끼가 날 이곳으로 끌고 왔다는 건­

“......”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

심장이 얼어붙었다.

망가진 태엽처럼호흡i이어긋났다.

시야가 일렁이며 창백한 입술이 덜덜 떨렸고,

서리가발a끝을뒤덮기라도 한 양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i음(Andíra).

네소스의 피가 묻은옷c을입은 헤라클레스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서서히 걸어오는 그의 존재를 자각하자 온몸에거스러t미t가돋았다.

날i파i리i가 창궐한 것처럼 온몸이 가렵.다.

눈을 긁고 싶고, 창자가글컹b거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한기를 지우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나는 차마 시선을맞.추지못하고 자리에무너져caer.

­저벅.

‘.......’

티바르 신.이 내게귀띰해주었던존재.

내게 권능을 내려준 존jo재.

저벅.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가 다가왔다.

저벅.

그가 발을 내디딘 장소에서는 시퍼런 죽음의 냉기가 피어올랐다.

저벅.

그의 존재가 베라스틴에 추위를 불러일으k켰음은 명백했다.

딸칵..

그의 부름이 이 도.시를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저벅.

이윽고 그가 내 앞에 서자 짙은 죽음의 향기가 풍겨왔다.

스으윽...

전염병이 맴돌고, 참혹.한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간 폐허에서나 마주.할 법한 그런 향.

...탁.

나는 검은 후드에 가려진 얼굴을 올려다보며 간신히 활자를 조합hize다.

“안.oj라... 님.”

“.....”

그가 묵묵히 날 내려다보았.다.

기이.할 정도로 새하얀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

“.....”

­철컥.

떨리는 손목을 들어 단도j를 헌상하자 그가 천천히 칼j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로서 세계가 일변한다.

­───────!!!!!!!!!!!­gurrrrrrrrrrrr──!!!!!!!­크르르...!!

­gaaaaaaaaaaaa!!!!

­가아아아아아악!!!!!!!!!­kac─────!!!!!

‘으윽...?!’

귀청을 틀어막?았다.

낙후된 골목 틈,새, 메말라 갈라진 고목, 폐허.가 된 건물 잔해.

도처에서 검은 형상이 창궐했다.

그림자 흐르는 소리가 범람했.다. 삐걱거리는 돛처럼 거대한 몸체가 흔들리며 솟?아올랐다. 이어서 비강을 파고드는 피비린내, 무언가를 씹는 소리에 맞춰 철i썩이는 시꺼먼 덩어리.

뼈가 시리도록 귓가에 절규가 울려퍼지고, 내장을 토해내도록 고,독이 만연했다.

온전하던 사고는 으.깨져 걸쭉한 죽이 되고,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퍼져나가는 두려움에 의식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좁아졌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그것들에선 어떠한 일관성도 찾을 수 없었으나, 모두가 원근감을 상실할 만큼 거대했다.

재앙(災.?.)이라 불러 마땅한 존!재.

저것들이 고대에 존재했던 마물, 그중에서도 역사서에 남기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끔i찍한 존재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그에 비하면 개미와 노래기는 얼마나 귀여운 생물이었던가.

높게 솟은 베라스틴의 성벽 너머로부터 날 주시하는 샛i노랗고. 거대한 눈동d자를 목도하자 뇌와 혈관이 질.척하게 녹아내리는 듯하다.

소리를 지르면 그가 내 혀를 잘라갈까 봐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치미는 토악질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자머리 위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약하구나.”

“.....”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손에서 칼자루를 놓자 단도가 지면에 꽂혔다.

그가 허공에 손짓하자 커다란 용의 형상.을 한 형체가 느릿느릿 내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놈의 주둥이에는 어쩐지 눈에 익은 막대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올려다봤지만, 곧 퍼뜩 정신을 차리곤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뒤이어 손안에 떨어진 검은 물.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흑도(??).

날휨 없이 곧게 뻗은 장검.

일체의 장식 없이 기능에만 충실한, 검신부터 손잡이까지 새까만 검. 내 단도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칼자루와 날이 훨씬 길고 끄트머리가 양날로 되어있다.

자칫 멀리서 보면 에스터크로 착각할 정도로 가늘고, 보기만 해도 안구가 베일 듯 날카롭다.

이 섬뜩한 중압감은 이전에 겪은 기억이 있다.

“론디니움 대장간에서 봤던 저주받은 검... 이게 어떻게...”

“.....”

“아, 안디라 님...?”

“.....”

“....”

“이번엔 실패하지 마라.”

그가 등을 돌렸다.

그가 천천히 발길을 옮기자 날 흥미롭게 쳐다보던 그림자들도 하나둘씩 뒤돌아 밤공.기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돌변한 상황에 굳어버린 다리를 필사적으로 일으켜 외쳤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날 돌아보지 않았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

­.....

날 이곳으로 인도해주었던 토끼. 녀석이 달빛을 거스르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동물의 형상이 아니었다.

“넌... 실비...?”

[.....]

소녀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아련하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당신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려보는 것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지금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고...!! 갑자기 왜 안디라 님이 날...”

[미안해요... 또 당분간 작별이네요..]

“잠깐...! 기다려!!”

[.....]

“실비!!!”

[....]

내 부르짖음이 허망하게도 그녀 또한 다른 그림자처럼 밤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어느 순간 공터엔 나 혼자만이 서 있을 뿐.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

털레털레 길을 돌아오던 중,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복층 가정집 안쪽에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따스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

시간이 지나자 베라스틴에는 다시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건물 외벽에 들러붙어 있던 얼음은 흘러내려 웅덩이를 만들었고, 굳게 닫혔던 나무창 너머로는 두런두런 인기척이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도시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으나, 한 손에 쥐여진 묵직한 감촉은 조금 전 일이 허깨비가 아님을 시사했다.

멍하니 검은 도신을 내려다보며 멈춰서자 가도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금빛 섬광이 내달려왔다.

“저건... 니아 님...?”

“도라아아안!!!!”

니아가 쏜살같이 달려와 내게 안겨들었다.

나는 덤프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담벼락에 파묻힌 채 욱신거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아야야... 아프잖아요.. 갑자기 달려들지 말라고 제가 몇 번이나...”

“도란... 도란.. 정말로 도란이야...”

“.....”

니아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뒤통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완만하게 어깨에 내려앉던 별빛이 조금 기울고,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을 무렵, 나는 부드럽게 니아를 떼어놓으며 말했다.

“...좀 진정됐어요 니아 님?”

“대체 어디 갔던 거야 소년...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건... 나중에 저택에 도착해서 말씀드릴게요. 설명하기 조금 어려워서...”

“.....”

니아가 눈동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양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아 고정하고 말했다.

“...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 눈빛이 달라졌어. 게다가... 묘한 냄새가 나. 왠지 섬뜩한 냄새가...”

“그러게요...”

“뭐야... 무슨 대답이 그래...”

“그것도 이따가 가서 전부 설명할게요. 이번 일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중부터 은근슬쩍 손을 뻗어오길래 부드럽게 맞잡아 주었다.

“어, 어...?!”

“...왜요?”

“아니... 정말로 잡아 줄 줄은 몰라서...”

“...자기가 먼저 해놓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태연한 모습을 가장하긴 했어도 속은 엉망진창이었으니까.

아직도 그의 존재를 떠올리면 끈적한 이명이 귓속으로 침투하는 듯하다. 표백제를 때려 부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고, 용광로에 집어넣은 쇠붙이처럼 힘줄이 녹아내려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맞잡은 손에 힘을 실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예요?”

“응? 뭐가?”

“제가 여기 있는 거요.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니아 님도 후각이 좋긴 하지만 라디 정도만큼은 아니잖아요.”

“아 그거? 사랑의 힘이야!!”

“...장난치지 말고요.”

“진짠데...”

니아가 아쉬운 듯 입을 모으더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마석등 불빛을 보고 찾아왔어. 도시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물체라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거든. 소년이 갑자기 사라지고 난 뒤로는 계속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신전 첨탑에 올라가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신전 첨탑이라... 거기 원래 올라가면 안 되잖아요. 벌금이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에이~ 지금이 그런 거 따질 때야?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냐!”

“그건 그렇지만... 뭐.. 그러네요.”

피식 실소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와 나란히 손을 맞잡고 가도를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오솔길이 나왔다.

나무 사이로 난 좁다란 숲길에선 풀여치의 구슬픈 가락이 들려왔고, 싸늘한 한기를 피워올리던 웅덩이나 고드름은 종적을 감춘 뒤였다.

오솔길을 걸으며 안디라 신의 발언과 마지막에 실비가 떠나면서 남긴 말을 곱씹고 있자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니아가 내 옷깃을 붙잡으며 노심초사 물어왔다.

“소년...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네, 아마도요. 베라스틴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문제도 해결했으니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잘 끝났잖아요.”

“하지만... 소년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따가 전부 말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곧 도착하니까요.”

나는 어느새 도착한 정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라디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니아는 쭈뼛거리며 날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내리깔고 미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

“....?”

“아니면 우리... 조금 쉬었다 갈까?”

“네...? 갑자기요...?”

“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다 차근차근 들어줄 테니까... 응? 얼굴에 다 쓰여 있단 말이야.. 무시무시한 걸 봤다고...”

니아가 다가와 날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그녀가 내 손을 자연스레 허리로 잡아끌었다.

따스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한밤중 숲속에 입김이 피어오르고, 서로에게 고동 소리를 들려준 뒤로는­

애타는 눈동자가 흑안을 응시하고, 나는 그녀의 찬란한 금안을 눈에 담고, 강한 인력에 이끌려 두 신형이 겹쳐지려던 순간ㅡ

“나, 나으리!! 거기 계십니까...?!!”

“넌... 돌킨? 네가 이런 시간에 왜...”

“이럴 때가 아닙니다 나으리!! 지금 큰일 났습니다!!!”

“.....”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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