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고양이 소녀 #5
* * *
[287] 고양이 소녀 #5
“젠장!! 쉬지 말고 계속 달리도록!!”
“미친...! 왜 갑자기 저런 놈이 튀어나오는 건데?!!”
“그런 말 할 시간에 빨리 뛰기나 해요!! 따라잡히겠어요!!”
“염병할!!!”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니아의 희생으로 연무장에서 벗어난 뒤, 우리는 하킴을 따라 영주성 지하에 돌입했다.
다만 문제는...
크오아아아아아!!!!
카흙!! 커허허억!!!
꾸르르르륵!!!
“씨발!!!”
등 뒤를 돌아보자 이전과는 비교를 불가할 정도로 불어난 감염체가 보였다.
바퀴벌레처럼 벽으로, 천장을 타고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는 촉수 떼는 가히 공포 그 자체.
하지만 그중 압권인 건 따로 있었으니ㅡ.
나는 변이체가 잔뜩 융합되어 고기 완자처럼 동그랗게 변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굴러오는 거대한 살덩어리를 보며 외쳤다.
“미친!! 대체 저건 또 뭔데?! 쟤네 서로 합쳐질 수도 있는 거였어?!!”
“나도 실험체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없다!! 지금까지 계속 구금되어 있었으니!!”
“자랑이다 시발!! ...죄다 틀어막아!!”
캬캭!!! 크샤아아앗!!!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꺼먼 개미 떼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녀석들이 날카로운 톱니를 내세워 감염체 무리에게 달려들었지만...
서걱!!!
슈하아아악!!!
“씨발 또 저 새끼들이야!!!”
갑주를 장비한 기사의 변이체가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자 개미들은 변변찮은 성과 없이 소멸했다.
평범한 시민이나 노예 따위와는 격이 다른, 기사의 감염체.
완성형에 가까운 것인지 도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생전의 검술과 마력도 그대로 구현하는 탓에 몹시 까다롭다.
덩굴을 불러들여 통로를 틀어막아도 봤으나, 소환하는 족족 손쉽게 찢길뿐더러 전후좌우 사방에서 적이 몰려드는 탓에 도무지 여유가 없다.
문이 박살 나고 지하의 빈방 중 하나에서 촉수 무더기가 쏟아져나오자 라디가 불붙은 기름이 든 병을 던지며 외쳤다.
“도란님! 노래기!!”
“뭐?!!”
“노래기를 타고 가는 건 안 돼요?!!”
“...안 돼!! 여긴 너무 좁아서 막히고 말 거야!!!”
노래기가 앞서나가 활로를 뚫어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이 비좁은 통로에서 소환했다간 되레 동맥경화에 걸린 핏줄처럼 꽉 틀어막히고 말 거다.
만약 이런 곳에서 발이 묶이기라도 한다면...
나는 짧게 몸서리치고는 하킴을 돌아보며 외쳤다.
“젠장할!! 하킴!! 뾰족한 수가 있는 거야?!!”
“크윽...!! 이대로 가다 보면 곧 실험 대상을 가둬놓는 대형 수감동이 나올 거다...! 그곳에서 승부를 본다!!”
“수감동?! 얼마나 걸리는데?!!”
“이제 곧...! 바로 저기다!!”
하킴이 머리 위로부터 마수를 뻗어오는 촉수를 절단하며 전방을 가리켰다.
전력으로 질주해 새하얀 불빛이 비쳐오는 통로 너머로 뛰어들자
“여긴...”
건물을 위아래로 뚫어놓은 듯 높고 기다란 공간, 벌집처럼 빼곡히 들이찬 철창과 미적 요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이 기능에만 충실한 콘크리트 구조물.
쇼생크 교도소를 그대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장소.
하킴이 소리쳤다.
“도란 경!! 아까 그 마물들을 다시 소환해줄 수 있겠나?!!”
“알았어! 잠깐만!! ...어?!”
“왜 그런가?! 혹시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그, 그런 건 아닌데...! 잠깐만...!! ”
정신을 집중해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다급하게 명령하자 곳곳에서 검은 형체가 창궐했다. 순식간에 형상을 갖추어 수감동 내부를 채워나가는 소환수들.
다만 이전처럼 검은 물결이 지면을 덮는 일은 없었다.
‘...하루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 건가?’
다소 의문스럽지만, 검증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당장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
나는 금이 간 댐처럼 맹렬한 기세로 변이체를 쏟아내는 수감동 입구를 향해 덩굴을 조종했다.
상공을 향해 뻗어나가던 줄기가 일제히 궤도를 꺾어 착탄하자 어마무시한 굉음과 함께 살점 덩어리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개미로 하여금 변이체를 틀어막고 노래기로 방어선을 구축하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 듯싶었으나
콰아아아아앙!!!!!
“뭐, 뭐야?!!!”
비좁은 입구를 부수고 융합체가 등장하자 상황이 역전되었다.
놈은 기괴하고 비대한 살덩어리 안쪽에서 촉수를 뻗어내더니 동족이 말려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경로의 모든 물체를 짓뭉개며 우리에게 쇄도해왔다.
거대한 몸체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에 다들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지만, 한 기사가 감염체에 발이 묶여 손을 쓸 새도 없이 휘말리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젠장!! 이미 늦었어 하킴!!!”
나는 황급히 뛰쳐나가려 하는 하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어금니를 깨무는 그를 진정시키며 융합체를 쳐다보자, 놈은 데굴데굴 굴러 기사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더니 짓물이 질질 흐르는 주검을 촉수로 붙잡아 자신의 몸체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후, 놈이 우리를 돌아봤을 때는 늪 위로 부상하는 시체처럼 전사했던 기사의 얼굴이 서서히 살덩어리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킴이 악을 쓰며 외쳤다.
“저, 저 악마의 피조물이 감히 내 부하를...!!”
“진정해!!! 지금 달려들었다간 같이 휘말린다고!! 저건 내가 덩굴로 어떻게든 처지해볼 테니까...!”
“도란!! 조심해!! 뭔가 또 오고 있어!!!”
“염병!!! 또 무슨...”
콰아아아아아앙!!!!
크오아아!!!!
꾸르르르륵!!!
“씨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벽이 무너지고 융합체가 추가로 등장했다.
세탁기에 빨려들어간 테니스 공처럼 난폭한 기세로 수감동을 헤집는 융합체.
열심히 그림자 병사를 소환하며 대항해 봤지만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개미와 노래기로 구축했던 방어선은 서서히 와해되고, 상황은 난전으로 치달았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물량에 패색이 짙어지던 순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그래?”
등 뒤에서 기시감 드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필사적으로 흑도를 휘둘러 코앞까지 들이닥쳐온 감염체를 처리하고 돌아보자 그곳엔
“다, 당신은...?”
새하얗게 센 백발. 말랐지만 근육질인 체구. 하얀 흉터가 몸 곳곳에 아로새겨진 노년의 남성.
돌킨의 노예 상점 격리실에서 봤던 현상수배범 노인이 철창 안에 갇혀있었다.
그런데...
“자, 잠깐...! 당신 어떻게 촉수에 감염되고도 멀쩡한 거야?!!”
지금까지 숱하게 보아왔던 변이체처럼 그의 반신에도 검보랏빛 촉수가 돋아있었으나, 자아를 상실한 여타 감염체와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섬뜩한 패기와 지성이 번뜩거렸다.
노인이 씨익 웃으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무얼.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냉철한 정신력만 있다면 말이야.”
“.....”
가호인가.
바닷가의 갈매기처럼 새하얀 백발 주변을 아른거리는 무형의 기운과, 그의 뒤편으로 촉수가 돋아나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멀쩡해 보이는 수감 동료들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자 노인이 손목의 사슬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봐, 반푼이 악마 꼬맹이. 제안 하나 하지. 우릴 이곳에서 해방해주면 저 괴물들을 처리하는 걸 도와주마.”
“....내가 속을 것 같아? 네놈 같은 흉악범을 풀어줬다간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그렇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이곳에 앉아서 네놈이 죽는 걸 지켜보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로군.”
“.....”
나는 느긋하게 미소짓는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그전에 물을 게 있다. 혹시 이곳에 묘인족 소녀가 잡혀오지 않았나? 돌킨의 노예 상점에서 네놈과 함께 격리실에 갇혀 있었던 소녀 말이다.”
이 철창 안에 투옥된 인원은 전부 노예 상점에서 보았던 인물. 그렇다면 그 수인 소녀도 가까운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한데 내 물음을 들은 노인은 턱을 짚고 씨익 웃더니...
“...너처럼 안디라의 총애를 받는 그 꼬맹이를 말하는 것이냐?”
“뭐...? 그걸 당신이 어떻게...!!”
“무얼, 네 능력에서 죽음의 향기가 짙게 나는군. 더군다나 이 도시에서도 그분의 발자취가 느껴진다. 한데 그분의 기척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네가 이곳까지 들어와 허겁지겁 그 소녀를 쫓고 있으니 답은 하나지 않겠나? 이거 원 발등에 불이 떨어졌군.”
“.....”
미친 통찰력이다.
차마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변이체에 맞서 싸우는 라디와 하킴 일행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노인이 선심 쓰듯 말했다.
“뭐, 기분이다! 지금 날 이곳에서 해방해주면 덤으로 그 아이의 행방도 알려주도록 하지. ...어떤가?”
“....”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고뇌했다.
순순히 승낙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큰 도박. 이자들을 풀어주어도 우리를 도울 거라는 보장은 없을뿐더러, 어찌어찌 변이체들을 처리해준다고 한들 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갈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니까.
최악의 경우, 이들이 풀려나자마자 변이체에 가담해 되려 우리를 해치려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찌지지지직!!!
“도란님!! 덩굴이 찢기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마지막 방어선까지 돌파당하고 말 거예요!!”
“도란 경!! 전선이 위험하다!!”
“으윽...! 도란! 조금 버거워...!”
“....”
나는 노인을 노려보며 고했다.
“....약속 지켜.”
“잘 생각했군. 현명한 선택이야.”
“.....”
철컹!
흑도로 쇠창살을 잘라내고 족쇄를 풀어주자 노인이 손목을 어루만지며 감옥 밖으로 걸어나왔다.
흑도를 겨눈 채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있자니 그는 마찬가지로 자유를 되찾은 동료들을 돌아보고는
“가도록 하지.”
““옛!! 알겠습니다!!!””
“이 순간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고!! 어디 한 번 제대로 날뛰어 보자!!!”
“출항이다 출항!!”
죄수들이 일제히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가세하자 전투 양상에 변화가 일었다. 부러진 창살과 기사의 변이체가 흘린 칼을 움켜쥐고 감염체를 사냥하는 죄수 집단.
그들은 마치 그동안 수감되었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고함을 지르며 난폭하게 손에 쥔 무기를 휘둘렀다. 자신의 안위를 가리지 않고 적진 한복판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불나방을 연상케 할 정도.
이에 감염체가 촉수를 뻗어 한 죄수의 목을 옥죄었지만, 그는 되레 입꼬리를 비틀며 가뿐하게 찢어발기고는 자신의 촉수로 변이체의 복부를 꿰뚫어 응수했다.
몸에 돋아난 촉수를 수족처럼 부리며 적을 쓸어담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하킴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외쳤다.
“도란 경! 저들은 대체 다 뭔가?!! 대관절 왜 변이체가 동족을 해친단 말인가?! 게다가 저 죄수복은...!”
“...그런 게 있어!! 지금은 그보다... 이봐!!!”
나는 정체불명의 힘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융합체 셋을 쓰러뜨리고 전장을 관망하는 노인의 어깨를 붙들며 말했다.
“감옥에서 내보내 줬으니 약속대로 그 여자애가 어디 있는지 말해...!! 설마 모른다는 식으로 발뺌하면...!”
“그 여아라면 세 시간 전에 실험실로 끌려갔다. 감염체로 변화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뭐...? 씨발!! 너 그걸 왜 이제야...!!!”
“나는 그저 자네의 물음에 성실히 답했을 뿐이다만?”
“....젠장!!!!”
나는 그의 어깨를 난폭하게 내치고는 라디와 아리엘에게 달려갔다.
“라디!! 아리엘!!! 지금 당장 실험실로...!”
“저희도 들었어요!! 빨리 가요!!”
“그래!! 하킴!!!”
다급하게 소리치자 하킴이 상급 기사와 힘을 합쳐 위태롭게 융합체를 대적하며 외쳤다.
“우리는 이곳에서 변이체에 대항하며 퇴로를 확보해두겠다!! 이 앞으로는 이제 통로가 하나밖에 없으니 쭉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도란 경 일행은 이대로 전진해 반드시 원하던 바를 이뤄내도록!!”
“...그래!! 고마워!!! ..가자!!!”
“응!!”
나는 하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디와 아리엘을 이끌고 수감동 반대편에 도사린 출구로 향했다.
로브를 휘날리며 신속하게 통로로 접어들자 서늘한 공기가 안면에 훅 끼쳐왔다.
나는 열 길 물속처럼 캄캄한 전방을 내다보며 멈춰섰다.
“윽... 여긴 왜 이렇게 또 어두워...! 아리엘, 불 좀 켜줄 수 있어?”
“응, 잠시만...”
츠팟...!
아리엘이 푸른 광채를 피어올리자 일자로 쭉 뻗은 회랑이 드러났다.
불빛을 반사해 푸른 색조를 띈 통로는 수레 하나 통과하는 게 고작일 정도로 협소했고, 소등하고 난 뒤의 시체 안치소처럼 묘한 적막이 맴돌았다.
라디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눈썹을 움찔하더니 바닥에 난 핏자국과 긁힌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생긴 지 며칠 안 됐어요. 실험실로 끌려가던 도중 저항하다가 생겨난 것 같은데... 심지어 빠진 손톱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어요.”
“여기는 변이체가 없나 봐... 너무 조용해.. 스산하고...”
“...서두르자. 일단 겉보기로는 안전하지만 도중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긴장 풀지 말고.”
“네, 알겠어요 도란님.”
나는 비좁은 통로에서도 언제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단도로 바꿔쥐고 통로를 나아갔다. 날카로운 도신을 앞세워 빠른 걸음으로 회랑을 전진하자 발소리가 석벽에 메아리친다.
실험실로 가는 길목은 무미건조한 돌벽이 반복되어 같은 구간을 맴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음산한 바람이 자아내는 귀곡성 탓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의 환청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을 애써 진정시키며 통로를 나아가던 중...
“...저것 봐 도란! 불빛이 비쳐오고 있어. 이제 다 도착했나 봐!!”
“...그러네, 그래도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주의...”
“잠깐만요...! 누군가 있어요!!”
“어...?”
그때였다ㅡ.
불빛을 등지고 한 형체가 허겁지겁 달려나오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시 라디와 아리엘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을 목격했던 장소까지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곳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 같이 밋밋한 석벽만이 있을 뿐, 샛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디가 날 돌아보며 읊조렸다.
“방금 그건... 누구였을까요...? 환각은 아닐 테고... 촉수도 안 달려 있던 것 같았는데...”
“뭔가... 고급스러운 로브를 입고 있었어. 키가 작고 뚱뚱한 체형이었는데... 여자는 아니었을 거야.”
“...그럼 영주 아냐?”
“영주...? 잠깐, 그러고 보니...!”
“...백부장이 이곳 기사에게 물었을 때 그랬었죠. 영주도 이곳 지하로 향했다고. 그렇다면 역시 방금 건...”
라디가 유심히 벽을 더듬더니 도중에 멈칫했다.
“도란님, 여기 마석이 숨겨져 있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숨겨진 비밀통로가 드러나는 구조 같은데...”
“베라스틴 지하 납골당에서 봤던 거랑 같은 형식이야. 아리엘, 혹시 마석에 마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겠어?”
“응, 잠깐만... 됐다!”
철컥! 드드드드드...!
아리엘이 회반죽을 덧칠해 교묘히 은닉해놓은 마석에 마력을 주입하자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며 벽이 움직였다.
어느새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비밀통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리엘이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도란, 난 영주를 뒤쫓을게. 도란은 이대로 실험실에 들어가서 그 아이를 구해.”
“뭐...? 하지만 너무 위험하잖아!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괜찮아, 이건 긴급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비밀리에 전해져온 시설이니 함정이 있을 가능성은 낮을 거야. 게다가 이 기회를 놓쳤다간 영영 영주를 사로잡지 못할 수도 있어. 이런 시설은 보통 성벽 밖까지 이어져 있거든.”
“그래도...”
“...괜찮아요 도란님. 저도 언니랑 같이 갈게요. 제 후각이 있으면 미연에 위험 요소를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영주를 붙잡아야 이번 소동, 아니 이교도 때부터 이어졌던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 테고요.”
“그래 도란, 그리고 이곳에서 억울하게 괴물로 변해버린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전 기사단장도 포함해서.”
“.....”
나는 확고한 두 녀석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했다.
“...그래, 그러면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난 실험실을 뒤져보고 바로 나올 테니까. ...만약 내가 나왔는데도 없으면 문을 부수고 바로 뒤쫓아갈게.”
“네, 그럼 조금 이따가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도란님.”
“사랑해 도란.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도란이야말로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그래.”
나는 짧게 입맞춤한 뒤 그녀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통로 너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이자 최종 구획, 실험실을 향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