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탐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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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탐색 #1
“씨발!!!!”
콰지직!!
즉각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단도의 힘을 이용해 순식간에 가속했다.
더러운 언데드가 실비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으려는 순간
“이 개 새끼가!!!!”
콰드드드드득!!!!
혼신의 힘을 다해 강타하자 해골의 아래턱이 산산조각났다.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놈의 몸통을 걷어차 벽에 처박은 뒤 실비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실비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어!?”
“아... 주, 주인님...?”
“목 좀 보자!! 뒤돌아봐!! 언데드한테 물리면 별것 아닌 상처라도 저주를 뒤집어쓸 수 있단 말야!!”
“아, 알겠습니다...!”
실비가 내 품에 안긴 상태로 얼떨떨하게 뒤돌더니 생머리를 젖혔다.
나는 녀석의 새하얀 목덜미에 새겨진 달 모양 낙인에 잇자국이 나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천만다행이네... 다행히도 물리지는 않은 것 같아. 혹시나 했는데...”
“...죄송합니다. 전부 제가 부주의한 탓에...”
“아냐, 괜찮아. 나도 저놈들이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리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뒤를 돌아보니 서서히 다가오는 해골들이 보인다. 관객 없는 공연장처럼 공허한 눈두덩이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향한 끝없는 갈망이 느껴졌고, 녀석들의 등 뒤에서는 지금도 뼈다귀가 한둘씩 꿈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이 모종의 트리거가 된 모양.
나는 실비를 내 뒤로 잡아당기며
“이 새끼들이...!”
슈화아악!
손아귀에 흑도를 소환했다. 거칠게 지면을 디디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살의를 갈무리하며 눈앞의 적들을 노려본다.
깨어난 스켈레톤은 여덟 마리. 막 언데드화 하는 유골까지 합치면 총 열둘 남짓.
화풀이하기엔 충분한 수.
나는 발치로 흐르는 아지랑이를 더욱 짙게 물들였다. 거칠게 검을 중단으로 들어올리며 전신을 칠흑의 기운으로 뒤덮고는ㅡ
돌진.
투콰과과과광!!!!!
바윗덩어리가 터져나갔다. 폭렬음이 발발한다. 격렬한 뇌성이 비좁은 갱도에 작렬하고, 볼링핀처럼 하얀 뼛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느려터진 스켈레톤의 흉곽에 흑도를 찔러넣고 걷어차자 미세한 크랙이 삽시간에 가슴뼈 전체로 퍼져나가며 신형을 무너뜨렸다.
나는 급격하게 허물어지는 언데드를 지나쳐 뒤엣 놈들에게 질주했다.
슈화아아아악!!!
콰지지지직!!!!
우악스럽게 견갑골을 절개하자 날카로운 뼛조각이 터져나왔다. 하얀 파편이 살벌한 파공성을 자아내며 공기를 가르고 뺨을 스친다. 무자비한 파괴의 소음은 단단한 석벽에 부딪히고 돌아와 잔향을 이루고,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마석등의 불빛을 반사해 더욱 섬뜩한 풍경을 자아냈다.
벽에 튕겨나갔던 한 스켈레톤이 삐걱삐걱 뿌연 뼛가루를 피어올리며 녹슨 검을 휘둘러왔지만
“좆까!!!”
그따위 느려터진 공격으로 날 상대하려 한단 말인가.
나는 놈의 발가락뼈를 짓밟아 중심을 무너뜨렸다. 민첩하게 발목을 절삭하고 턱을 꿰뚫는다. 이어서 재빠르게 회전해 후방에서 다가오던 스켈레톤 두셋의 척추를 양분하고 돌진. 기민하게 돌부리를 박차 거리를 좁히며. 두개골을 거세게 움켜쥐고 벽에 처박아 안면을 깨부쉈다.
원래라면 거동하지 못하게 관절만 부숴놔도 충분했겠지만
“이 새끼들이 감히 내 노예를 덮쳐!!!”
실비에게 이빨을 들이댄 죄, 백번 천번 죽어 마땅하다.
나는 난폭하게 흑도에 손을 짚고 정신을 집중했다.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망자들을 시야에 담으며 격노를 한껏 부풀리고는ㅡ
“파(?)!!!!”
쿠과과과과과광!!!!!!!!
비좁은 갱도에 덩굴을 소환해 죄다 터트려버렸다.
폭발적으로 솟구쳐 휘둘러지는 그림자 줄기에 직격당한 스켈레톤은 화물 트럭에 치인 쿠키처럼 맥없이 바스러질 뿐.
나는 어느새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뼈 무더기를 응시하며 움직임이 멎은 걸 확인하고 장검을 어둠으로 되돌렸다.
잠시 숨을 돌리며 머리의 열기를 식힌 뒤로는 조금 심했음을 자각하고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뒤돌아보자 입을 벌리고 굳어버린 실비가 보였다.
녀석은 그제서야 표정을 다잡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왜?”
“그, 그야...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으면 애초부터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까도 괜찮다고 했잖아. 걱정 마. ...왜, 조금 무서웠어?”
“그런 건.. 아니지만... 눈앞에서 이런 걸 봐 버리면...”
실비가 무참한 파괴의 현장을 돌아보고는 침음하며 물었다.
“마지막 건... 혹시 촉수입니까...?”
“촉수...? 아 그거? 그건 촉수가 아니라 식물의 줄기야. 처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식물이라... 식물... 노래기와 개미에 이어 거미와 덩굴까지... 혹시 주인님은 그림자 속에서 화원이라도 기르시는 게...”
“화원이라... 그거 말 되는데?”
킥킥 실소를 머금으며 쳐다보자 실비가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피했다.
나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어디 건질 게 없나 톡톡 뼈 무더기를 들추는 개미에게 외쳤다.
“야 야, 그건 먹지 마. 지지야 지지.”
크샥?
“먹지 말라면 먹지 마. 배탈 날지도 모르잖아.”
크샤아앗...
“이따가 간식 챙겨 줄 테니까 그걸로 참아.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
난처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실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이 시체들은 뭐였을까요?”
“글쎄...”
일단 확실한 건...
“애들을 불러와야겠어.”
*
한차례 소동이 일단락된 후, 비협조적으로 나서는 거미에게 꿀단지 하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지상에서 대기하던 라디 일행을 불러들였다.
단도를 이용해 옷과 배낭에 들러붙은 거미줄을 떼어주자 니아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외쳤다.
“우와... 신기하다. 이런 곳에 비밀 공간이 있었다니...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오가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그러게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를 만하네요. 대체 누가 이런 곳에 갱도가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흔적을 보아하니 사람이 손수 판 모양인데...”
“그러네... 저거 곡괭이에 찍힌 자국 맞지? 그럼 도란은 우리한테 이걸 보여주려고 부른 거야?”
“....”
나는 배낭을 주워들고는 통로 너머를 턱짓하며 대답했다.
“아니, 사실은 저 안쪽에서 시체를 발견했거든. 수백 년은 지난 유골이었는데 갑자기 언데드가 되어서 우리를 공격했어.”
“그래...? 이런 곳에서 언데드라... 기묘하네...”
“응, 그리고 또 하나 찾은 게 있는데 그건 조금 이따가 얘기하자.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잘 생각했어 도란. 그럼 유골을 발견했다던 곳으로 한번 가볼까?”
아리엘이 허공에 빛무리를 띄우고 내 옆에 섰다.
나는 그녀들을 이끌고 갱도 안쪽으로 향했다. 혹시 모를 언데드의 습격에 유의하며 검게 변색된 바위, 흘러내리는 석벽과 망가진 수레 등을 지나치자 머잖아 유골 무더기와 조우했던 지점이 나왔다.
라디가 쇠뇌를 낮추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도란님이 말했던... 유골들이 전부 산산조각 나 있어요... 대체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했으면...”
“골렘 계열일까...?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바스러진 걸 보니 엄청난 질량에 짓눌린 것 같은데...”
“하지만 골렘은 보통 덩치가 크잖아! 이렇게 좁은 길로 다니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요...”
“.....”
이건 내가 한 건데...
나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크흠흠... 일단 요건 나 때문이거든?”
“...도란이 했다고?”
“그래, 유골이 언데드로 변했다고 했잖아. 얘네가 바로 내가 말했던 애들이야. 다만 전부 내가 한 건 아니고, 원래부터 칼자국이나 도끼에 찍힌 흔적이 있는 뼈가 많았어.”
“으음... 그래?”
“...그러네요. 조금 찌그러들긴 했지만 이 방패에 난 흠집은 화살촉 모양과 일치해요. 게다가 저기 은은한 보라색 유골 보여요? 저건 타미리스란 타란튤라의 독에 중독되었을 때 주로 나타나는 특징인데 아마 사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거예요.”
“으음... 라디는 엄청 눈썰미가 좋구나? 난 아무리 봐도 전혀 모르겠는데...”
“제가 독이나 함정을 자주 다루잖아요. 이쪽 분야는 자신 있거든요. 그보다... 도란님이 아까 찾은 게 있다고 하셨죠?”
“그래, 지금 보여줄게. ...야, 이리온.”
...크샥.
가볍게 손짓하자 노래기와 함께 구석에서 조용히 뼈 무더기를 감시하던 개미가 타달타달 걸어왔다.
녀석이 입에 문 물체를 내 손아귀에 툭 내뱉자 나는 그 사물을 마석등에 비추었다.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가면을.
라디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썹을 움찔했다.
“이건...”
“그래... 나만 어디서 본 적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지?”
“이거 그거잖아. 우리가 베라스틴 지하에서 만났던 이교도가 썼던 가면. 플루토란 악신을 모시는 교단이었나... 그때랑은 문양이 좀 다르지만.”
“...이교도? 플루토? 혹시 소년이 베라스틴에서 사교를 무찔렀다고 했던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네, 맞아요. 그때 놈들도 이거랑 비슷한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세력이 한둘도 아니고 입수 경로도 전혀 모르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베라스틴 지하 공간에 있던 벽화에도 오래전부터 플루토 교단이 가면을 쓰고 암약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고, 이 던전은 베라스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 해당 교단의 세력권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이끌었을지가 의문이네.. 이 앞에 값진 보물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번거롭게 갱도까지 건설해 가면서 굴착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이 계층에서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는 딱 하나밖에 안 떠오르는데...”
“역시 그러면 고대 유적... 일까요? 그 왜, 굴을 파서 함정을 우회하려고 했다던가... 원래 고대 유적에서 나온 출토품은 자그만 것도 금화 이상의 가치가 붙잖아요. 어쩌면 이 사람들이 살아있던 당시에는 그리 오래된 문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게...”
어쩌면 우리가 유적에 방문했을 때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해당 유적은 던전의 한 계층에 맞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일 뿐만 아니라, 입구에 갈림길이 나 있거나 미로의 반대편 구역이 존재하는 둥 여러 경로로 진입할 수 있는 정황이 있었으니까.
혹시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보물이 가득한 곳에 도달할 수도...
‘아니, 역시 그건 너무 낙관인가?’
나는 배낭을 고쳐매고는 일행과 함께 갱도 안쪽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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