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 탐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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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탐색 #2
“...이게 몇 번째지?”
“아마 다섯 번째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나...”
신중하게 갱도를 전전하던 중,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뼈 무더기와 맞닥뜨렸다.
이걸로 이곳에서 언데드 무리와 조우하는 건 다섯 번째.
나는 광부처럼 머리에 마물의 뼈로 된 안전모를 착용하고 곡괭이를 흐느적거리는 스켈레톤을 응시하며 툭 내뱉었다.
“...내가 할까?”
“아니 소년, 내가 나설게.”
“니아 님은 아까도 계속 혼자서 상대했잖아요. 여기선 그냥 제 능력으로 간단하게...”
“그럼 내기하자! 누가 제일 많이 쓰러뜨리는지로! 이긴 사람은 진 사람한테 뭐든 시킬 수 있는 걸로 어때?”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나는 전방을 힐끗 바라보고는 부츠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땅을 한 번 찼다.
타자의 눈에는 별 의미가 없는 행동으로 비쳤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시꺼먼 줄기가 용솟음치며 뻗어나가 통로를 가로막았던 스켈레톤을 모조리 부숴버렸다.
니아가 불만스럽게 뺨을 부풀리고 날 올려다봤다.
손가락으로 쿡 찌르자 푸쉬식 귀여운 소리를 내며 안겨들었지만.
“...그 능력은 너무 사기야.”
“미안해요. 그래도 굳이 번거롭게 니아 님이 나설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근접전을 벌이다가 언데드의 뼛가루를 뒤집어썼다간 찝찝하기도 하고.”
“알았어.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무 요청이나 들어줄게! 뭐든 말해볼래?”
“그러면서 은근히 사심 채우려고요? 속 다 보이거든요?”
나는 피식 웃으며 니아의 궁둥이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뺨을 붉히며 움찔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유해를 살피고 있자니 아리엘이 손짓하며 날 불렀다.
“도란, 여기 봐봐! 이 시체도 가면을 쓰고 있어! 지금까지 봐왔던 거랑 같은 디자인이야.”
“어디 보자... 정말이네.. 이쯤 되면 우연은 아닌 것 같고...”
“원래부터 이 가면을 소지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겠네요. 게다가 이들은 광부 복장이었으니 전투원조차 아니잖아요. 그러니 적에게서 노획했을 가능성도 희박할 테고...”
“이놈들이 플루토 교단이었을 가능성이 한층 더 올라가다는 건가... 진짜 지긋지긋한 놈들이네.”
아직 확정 난 건 아니지만 여러 정황이 그리 말하고 있다.
밋밋한 판때기에 붉은 도료가 칠해진 가면 외에도 의식용 단검이나 암기를 숨길 수 있도록 개량된 사제복, 악마의 상징이 묘사된 무구 등...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런 놈들이라곤 하나밖에 없다.
물론 단지 가면을 쓰고 땅 파기를 좋아하는 힙스터 집단이었을 수도 있지만...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렸다.
“다들 조심하자. 일단 계속해서 시체가 나온다는 건 확실히 이 앞에 뭔가 있을...”
“소년!!!”
찰나ㅡ
뒷덜미에서 강한 장력이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지면이 등을 강타했다. 일순간 치민 현기증이 시야를 덮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마석등의 불빛 탓에 조금 눈부신 시야에는 날카롭게 전방을 노려보는 니아의 얼굴이 들여다보였다.
카앙. 이어서 뒤늦게 들려오는 희미한 쇳소리.
“무, 무슨...”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니아가 날 돌아보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더듬었다.
“괘, 괜찮아? 안 다쳤어 소년?!”
“전 괜찮아요... 방금 뭐였어요?”
“...도란님이 발을 내디딘 순간 측면에서 은빛 물체가 날아들었어요. 아무래도 함정이 작동한 모양인데... 아리엘 언니, 앞길 좀 밝혀주실 수 있으세요?”
“응, 잠깐만...”
아리엘이 날 부드럽게 일으켜주더니 마법을 조작했다.
새하얀 광채가 민들레 홀씨처럼 갈라져 전진하자 반들거리는 석벽이 비쳐보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반짝이는 물체들이 있었으니...
“금속 재질... 아무래도 저게 다 함정인 모양이네요.”
“뭐? 저게 다...?”
“네, 도란님이 당한 건 트리거를 건드리면 발동하는 간단한 구조에요. 저기 철실 보이시죠? 하지만 나머지 트랩은... 저도 한눈에 봐서는 작동 원리를 잘 모르겠어요.”
라디가 눈매를 좁히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녀석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언뜻 봐도 부자연스럽게 벽에 박힌 칼날과 깡통 등이 엿보였고, 함정의 방아쇠로 추정되는 철실과 금속 핀 따위가 산재해 있었다.
물론 저들 중 몇몇은 노후되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다면 미리 다 터트리고 가는 편이 낫겠어. 하나하나 살피며 전진했다간 너무 오래 걸릴 거야.”
“그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방법이 있어요? 언데드를 처치할 때처럼 덩굴로 휩쓸었다간 분명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트랩이 나올 텐데...”
“걱정 마. 다 생각이 있거든. ...야.”
툭.
크샤아앗...?
발끝으로 개미를 툭 밀치자 녀석이 설마 설마.. 싶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치에서 다른 개미를 여럿 소환하며 말했다.
“얘네들 이끌고 네가 함정 좀 해체해. 너 어차피 칼날에 꿰뚫려도 멀쩡하잖아.”
키, 키이익...!
“뭐, 아프진 않아도 기분은 나쁘다고?”
끄덕끄덕!
“알 바냐. 만약에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함정이 있으면 일주일 동안 간식 압수할 테니까 알아서 해. 만약 우리 중 누가 다치기라도 했다간 두 달 동안 그림자 속에 처박혀서 나올 생각 하지 말고. ...빨리 안 가고 뭐 해.”
캭─!
녀석이 진저리를 치더니 마지못해 앞으로 향했다.
큼지막한 개미들이 빨빨거리며 전진하자 갱도에 다분한 발소리가 울려퍼진다.
한동안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나 싶었지만...
“...정말로 이게 먹힐까요?”
“당연하지. 안 될 이유도 없잖아.”
“하지만... 너무 무식한 방법인 게...”
“괜찮아. 저기 봐봐!”
펑!!
순간, 앞쪽에서 커다란 소음이 일더니 사슴뿔 개미가 공중으로 튕겨나갔다.
이어서 연달아 트랩이 발동하자 갱도가 소란스러워졌다.
구멍 뚫린 깡통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던가, 벽에서 독 묻은 대못이 튀어나온다던가, 천장에서 쇳덩어리가 떨어진다던가.
구석에 파묻혀 있던 칼날이 사출되고, 찐득한 액체가 엎질러지고, 무언가 마법이 발동하는가 싶더니 폭죽처럼 푸른 불꽃이 파바박 터지고...
“.....”
어째 좀 많은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함정에 당황하며 이리저리 나부끼는 개미 군단을 관망하자 아리엘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도란도 점점 능력을 쓰는 방식이 익숙해지고 있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더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해줘. 그보다... 라디야, 함정이 너무 많은데 이거 맞는 거야?”
“....”
라디가 매서운 눈초리로 전방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짧은 구간에 연속적으로 트랩을 설치한 걸 보니 침입자를 격퇴하려는 목적은 아닐 거예요. 보통 함정이라 하면 최대한 들키지 않게 은닉해서 상대의 전력을 깎아놓는 데 목적이 있는 데 반해 이건 너무 눈에 띄잖아요. ...마치 해체를 유도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거지?”
“네... 유력한 가능성으로는 추적을 늦추거나 따돌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데... 굴을 판 흔적이 안쪽까지 이어져 있는 걸로 봐서 원래 있던 함정은 아니고 추후에 플루토 교단이 설치한 걸 거예요. 이 안쪽에 있는 존재를 저지하기 위해.”
그러고 보니...
유적엔 미라들이 있었지.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물량 공세엔 나와 말톤, 라디 모두 진땀을 흘렸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이 갱도를 팠을 당시에는 미라의 보존 상태도 훨씬 양호한 만큼 스피드나 완력도 월등히 강했을 테니.
그렇다면 이들이 언데드가 된 것도 미라의 저주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면 아귀가 들어맞는다.
단검 자루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자니 잠시 뒤 엉망이 된 개미가 돌아왔다.
“뭐야, 벌써 다 처리했냐?”
.....
“책임지고 정말 다 처리한 거 맞아? 만약 하나라도 남아있다가 내 애인이 다치기라도 하면...”
크샤아앗
“그래, 알았어. 자 포상이다. 이거 먹고 돌아가.”
배낭 앞주머니에서 당밀 사탕을 꺼내 던져주자 개미들이 신이 나서 달려들고는 하나둘씩 그림자 속으로 되돌아갔다.
정작 사슴뿔 개미만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날 빤히 올려다볼 뿐이었지만.
“왜, 넌 안 먹게? 이게 혼자서만 요즘 맛있는 걸 먹다 보니까 배가 불렀다니까...”
...크샥.
“알았어 인마. 나중에 몰래 뭐 또 하나 챙겨 줄 테니 기분 풀어.”
나는 녀석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배낭을 고쳐매고 발을 내디뎠다. 함정이 작동해 곳곳에 구멍이 생겨나고, 찐득한 액체가 흩뿌려진 길을 나아가다 보니 점차 통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갱도의 끝이 이제 머지않았는지 곡괭이나 바구니 등 각종 채굴 용품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던가, 몇 세기 전으로 추정되는 보급 물자가 담긴 수레가 방치되어 있거나, 구석에 다용도 밧줄이 널려 있다던가...
실비가 귀를 움찔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주인님. 이 앞에서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 이런 곳에서?”
“네, 어쩌면 곧 넓은 공간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공간이라... 이제 슬슬 도착하려나 보네. 다들 대비하자.”
나는 언제든 반응할 수 있게 흑도를 소환해 움켜쥐고 발길을 옮겼다.
실비의 말대로 점점 뚜렷해지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전하다 보니 순간 마석등의 불길이 뚝 끊기는 지점이 나왔다.
칠흑처럼 검게 물든 시계에 나는 배낭을 내려놓으며...
“...아리엘.”
“응, 알았어.”
화악!!!
머리 위에서 아른거리던 불빛이 상공으로 떠올라 빛을 발하자 그제야 거대한 공간의 전모가 드러났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무너진 다리, 상공에서 불어닥치는 거센 돌개바람, 모종의 장치가 있었다가 파괴된 건지 낭떠러지 밑에 아슬아슬 걸려있는 거대한 원형 톱니와 나무 발판.
반대편 절벽에는 붉은 사암으로 된 유적의 입구가 도사리고 있었으나, 그곳까지는 다리가 끊어져 쉬이 접근할 수 없었다.
라디가 까마득한 높이에 겁을 집어먹고 주춤하면서도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더니 우리의 아래쪽에 난 또 다른 구멍을 발견하고 말했다.
“으으... 아무래도 저쪽이 유적으로 통하는 정규 루트였던 모양이네요... 플루토 교단이 땅굴을 판 이유는 이곳까지 유적의 함정을 거치지 않고 도달하기 위해서고...”
“그런가 보네... 이걸로 놈들의 원래 목적이 유적이었다는 것도 확실해졌고.”
“도끼날 자국... 끊어진 다리에 고의로 파괴한 흔적이 남아있어. 임시 다리를 건설해서 유적에 입장했다가 감당이 안 되니 중간에 끊어버리고 도주한 걸까?”
“...내 생각도 그래.”
어쩌면 당시 플루토 교단이랑 유적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고리가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왜, 플루토 교단은 악마를 신봉하는 놈들이니 검은 머리칼을 지닌 실비를 악마와 동일하게 봤을 수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정말로 실비가 그 여왕과 동일 인물이란 가정하에서지만...
“으음... 어렵네... 그럼 소년은 어떻게 반대편까지 넘어갈 거야? 다리는 끊어졌잖아. 뭣하면 내가 한 명씩 끌어안고 점프한다던가...”
“뭐... 이쯤 되면 니아 님도 어떻게 할지 아시잖아요.”
나는 선선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그대로 허공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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