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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327화 (327/375)

〈 327화 〉 탐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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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탐색 #3

허공에 뛰어드는 즉시 시커먼 덩굴이 돋아나 내 발밑을 단단하게 지탱해주었다.

제일 먼저 유적 입구에 도달해 석제에 새겨진 부조를 확인하고 있자니 차례차례 여성진이 줄기를 딛고 다가왔다.

라디가 배낭을 고쳐매며 중얼거렸다.

“도란님의 그 능력은 정말... 터무니없네요. 어마무시한 위력에 파괴력, 말도 안 되는 시전 속도에 다재다능함까지...”

“그러게... 근데 이걸 보니 꼭 떠오르는 옛날이야기가 있지 않아? 한 소년이 정령에게 받은 씨앗을 땅에 심었는데 거기서 거대한 덩굴이 자라나 그걸 타고 하늘섬에 도달했다는...”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어봤어! 푸르른 창공을 떠다니는 하늘 도시! 엄청 발전된 문명에 항상 청청한 물이 흐르는 운하, 황금 정원과 왕궁까지 갖췄다는 전설의 도시! 이거 맞지?”

“으음... 비슷하지만 제국 쪽은 조금 다른가 보네요. 저희는 도시가 아니라 하늘섬이라고 불렀는데...”

“....”

부조에서 시선을 떼고 물었다.

“...이곳에 하늘 도시가 있어?”

“응? 아, 별거 아니야 도란. 그냥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곳이거든. 옛날에 한 음유시인이 실제로 방문했다는 말이 돌긴 했는데 막상 증거물은 하나도 없고... 존재 자체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도 많아.”

“맞아요. 근데 신기하게도 예전부터 목격담은 꾸준히 있었어요. 문뜩 머리 위에서 아이용 봉제 인형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던가, 기이할 정도로 두꺼운 적란운 위에 지어진 성채를 봤다던가... 그래서 전 지금도 큰 구름을 보면 종종 유심히 살펴보곤 해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부끄럽다니! 세상 모든 모험가의 로망인데! 무구한 보물과 유물이 가득하다는 전설 속 고대 유적이라니 너무 환상적이지 않아?! 게다가...! 사실 하늘 도시의 마지막 생존자인 공주가 아직까지 연명해서 몰래 우리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도 있데...!”

“에이... 그게 말이 돼요? 너무 간 것 같은데...”

“아냐, 정말이라니까 소년! 진짜야!! 지금도 어딘가에서 문명 재건을 노리고 있...!”

“알았어요. 그리고 배낭 때문에 무거우니 팔 잡아당기지 마세요.”

멸망한 고대 유적이라면 적어도 수천 년, 혹은 대전쟁이 발발했던 다섯 세기 전에 몰락했을 텐데 그때의 생존자가 남아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마력은 마법과 신체 강화 외에도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끊임없이 분열을 촉진해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니아가 나보다 연상임에도 앳된 외모를 지닌 것도 이 때문이니.

즉, 그녀가 말한 ‘유적의 마지막 생존자’가 상당한 마나 용적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마력랑이 진짜 무진장 많아야겠지만...’

그 정도 강자라면 최소 A랭크는 되어야 할 터, 어쩌면 S랭크까지도 넘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지금까지 무명일 리가 없다.

나는 피식 웃고는 배낭을 고쳐매며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막 붉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유적 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ㅡ

“여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죽음이 빠르게 날개를 타고서 찾아갈 것이다...”

“...뭐?”

불현듯 섬뜩한 어감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뒤돌아선 채 얼어붙은 일행들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의 중심에는 멍하니 유적 입구를 올려다보는 실비가...

­덥석!!

“실비야...! 너 지금 뭐라고...!!”

“주, 주인님...? 조금... 아픕니다.”

“미안... 그, 그보다 방금 너 뭐라 했어...? 죽음이 빠르게 날개를...”

“...날개를 타고서 찾아갈 것이다.”

“너... 그걸 어디서...”

“....”

실비가 말없이 머리 위를 응시했다.

유적의 입구, 붉은색 암석 위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나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의 나열을 아득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기에 적힌 게 그런 뜻이었어...?”

“예, 그렇습니다.”

“...실비는 어떻게 저걸 읽었는데?”

“그건...”

실비는 우물쭈물 망설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그게... 저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

“사실 제 악몽과 관련이 있습니다...”

“악몽...?”

“네...”

“....”

눈빛으로 채근하자 녀석이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전 예전부터 종종 이상한 꿈을 꾸곤 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운다거나.. 복잡한 미로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서 있다거나... 지금까지는 단순히 기가 허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이 상형문자도 꿈에서 본 적이 있다는 거야?”

“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그런 의미라는 게 떠올라서...”

“.....”

젠장.

이래서는 실비가 이 유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게 명백하지 않은가.

옆을 돌아보자 망연한 표정으로 날 응시하는 세 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라디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도란님, 이건 아무래도...”

“....그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계획을 수정하는 게 좋을까요...? 이번 유적 탐사가 끝나고 여왕의 묘실까지 도달하면 실비도 모든 전말을 알게 될 텐데... 어쩌면 진실을 깨닫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잖아요..”

“.....”

나는 천천히 유적 입구를 돌아보고는 칼자루를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를 언데드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여왕의 무덤을 수호하려 했던 고대 시민들, 유적 곳곳에 남겨진 잔인하고 암울한 벽화, 마물처럼 변해버린 그림자 여왕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유적과 그녀에 얽힌 과거가 마냥 밝지는 않았을 거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실비가 충격에 빠지는 건 당연할 터, 최악의 경우엔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함구해온 나를 경멸하거나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 이대로 계속 가자.”

이제 알 때도 됐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관망하는 건 지긋지긋하다.

설령 실비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유적에 발을 들였다.

*

“이걸로 플루토 교단이 누구한테 쫓기던 건지 명백해졌네...”

붉은 암석으로 된 직사각형 통로를 거닐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흔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수많은 함정에 명을 달리한 플루토 교단의 시체와, 창에 꽂히고, 화염에 불타고, 날카로운 날붙이에 사지가 찢겨나간 미라들...

나는 그중에서도 붕대에 휘감긴 들개의 미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라디야, 우리가 저번에 왔을 때도 이런 게 있었던가?”

“아니요... 그땐 인간형만 있었고 이런 짐승 형태의 언데드는 없었어요.”

“역시 그렇지...? 들어온 경로가 달라서 장애물이나 수호병에도 차이가 있나 보네...”

침음하며 미라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 정도 수준의 적이라면 아무리 몰려와도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지만, 유적에 변화가 있다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한데...

일행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상형문자가 새겨진 벽돌, 정교한 함정의 흔적과 아마포에 둘러싸인 시체 따위를 응시하며 의견을 나누는 사이, 라디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저 근데... 만약 저번처럼 밤에 미라들이 나타나 저희를 습격하면 도란님은 어쩌실 거예요?”

“응? 고민할 게 있어? 그냥 처리해야지 뭐. 지금은 아리엘도 있으니 신성력으로 한 번에 쓸어버려도 되잖아.”

“하지만... 그때는 자세한 내막을 몰랐는데 지금은 상황이 좀 복잡해졌잖아요.. 만일 여왕과 실비가 정말로 동일 인물이라면 이들이 실비의 옛 백성이라는 뜻이니... ”

“그러네... 젠장...”

슬쩍 복잡한 눈길로 등 뒤의 실비를 쳐다보았다.

그야 스스로 언데드가 되는 길을 택해서라도 실비를 수호하고자 했던 이들을 그녀의 동료인 내 손으로 헤치는 건 너무 잔인한 처사니까.

미궁 답파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지만...

“...나도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하자. 여차하면 덩굴이나 노래기로 길목을 틀어막기만 해도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땐... 하는 수 없고.”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이쯤 걸어왔으면 곧 슬슬 본격적으로 유적이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까부터 점차 함정이 등장하는 빈도수가 줄어드는 걸 보니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신호일 터.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미궁이 시작되고 찌는 듯한 더위와 집요한 함정, 끝없는 탈수 등과 싸워야 할 거다.

확실한 건 이제 란이가 있으니 탈수 문제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지만...

부지런히 걷고 있자니 아리엘이 의아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 도란? 어쩐지 점점 통로가 밝아져 오는 것 같은데...”

“응, 기분 탓이 아닐걸. 이쯤 되면 이제 진짜 유적이 나올 때도 됐거든.”

“진짜 유적...? 진짜 유적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보면 알아. 직접 보기 전까진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못 믿을 거야.”

“....?”

아리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나아가다 보니 그녀의 말대로 통로 저편에서 비쳐오던 광채가 극명해졌다.

눈부신 통로의 끝에는 폭약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그을음과 무너진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고, 전방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반파된 문짝 너머 미지의 공간으로 발을 들이자 마침내ㅡ

“됐다. 다 도착했어. 여기가 바로 내가 말하던 유적이야.”

“세, 세상에...!”

“자, 잠깐 소년!! 이건...?!”

“.....”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초대형 공동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월드컵 경기장에 실수로 발을 디딘 개미가 된 심정. 원근감을 어그러뜨리고, 원초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광활한 공간이다.

우리가 딛고 선 경사면 아래로는 적도의 태양열을 흠뻑 머금기라도 한 것처럼 붉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미궁이 펼쳐져 있었고, 분화구 깊은 곳에 자리한 대장간의 주춧돌처럼 뜨거운 적열을 지근지근 뿜어댄다.

불가사의한 마경.

나와 라디를 제외한 모두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중, 니아가 흠칫하더니 내 팔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소, 소.. 소년...! 이,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규모의 유적이 2계층에 있을 수 있어!?”

“하하... 좀 크긴 크죠? 하지만 완전히 보이는 그대로는 아니고 중앙 부근은 공간이 왜곡되어 있어요. 도시 안으로 입성하지 못하고 뱅뱅 돌게끔 함정을 파놓았더라고요. 그래도 거대한 건 매한가지지만...”

“뭐, 뭐...? 공간 왜곡?! 어떻게 그런 고차원의 마법이...”

“고대 유적이니까요. 그리고 원래 몇몇 던전은 시공간이 뒤틀려 있다고 하던데 아니었어요?”

언제였는지 분명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전에 내가 거대한 던전의 규모에 의문을 품자 말톤이 그런 설명을 해주었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니아가 끝없는 미로를 둘러보더니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잖아. 나도 붉은 매 길드 차원에서 한두 번 고대 유적을 탐사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미 답파가 끝난 곳이었거든. ...이렇게 큰 곳도 아니었고.”

“...그래요?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리엘 넌?”

“나도... 정말로 내가 모험가가 되어서 미지의 유적을 탐사하다니... 너무 설레서 심장이 두근거려!! 다른 모험가도 이런 경험은 흔히 겪어보지 못했을 거 아냐! ...그럼 이제 도란은 어떻게 할 거야?”

“음... 일단은 간단하게나마 이 광경을 종이에 묘사해두려고. 지형지물이나 대략적인 방향을 알고 있으면 미궁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들어올리자...

­콰아아아아앙!!

머리 위에서 커다란 암석이 굴러오다 덩굴에 얻어맞고 튕겨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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