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 탐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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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탐색 #5
“...정말로 여기서 뭔가를 구할 수 있다고?”
“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걸어오면서 봤잖아. 이 미궁엔 풀 한 포기조차 안 자라는 걸...”
“풀 한 포기 말이에요?”
부드럽게 실소하자 니아가 의아하게 쳐다봐왔다.
잠시 야영지를 떠나 니아와 단둘이 미궁을 거닐던 도중, 나는 그녀와 맞잡은 손을 들어올려 바닥을 가리켰다.
“어쩐지 아까보다 땅이 단단해진 느낌 안 들어요? 처음에는 사각거리는 고운 모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색이 거뭇거뭇하잖아요. 중간중간 자갈도 섞여 있고요.”
“으음... 그런가...?”
“네, 그리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릴 거예요. 정말 희미하지만...”
“...안 들리는데?”
“그래요...? 하지만 제 귀에는...”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안 들려! 이렇게 소년하고 나란히 걸으면 심장이 막 소리를 지르거든. ...이렇게 하면 소년한테도 들릴까?”
니아가 정면으로 다가오더니 곰살궂은 눈웃음을 지으며 내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가슴을 맞대었다.
그러자 체구에 어울리지 않은 볼륨감과 탄력이 물씬 느껴지고, 조금 건조한 살과 땀 냄새, 그 모든 걸 덮을 정도로 선명한...
두근... 두근...
“.....”
밤이 되어 암적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미궁의 색채가 드리운 미소를 보자 이성이 날아갔다.
충동적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미궁 벽에 몰아붙이자 니아가 까르르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렇게 갑자기 안아들면 간지럽잖아.. 깜짝 놀랐다구...”
“...시끄러워요. 남의 속은 모르고 맨날 살살 건드리기나 하고...”
“....조금 설렜어? 이상하게도 소년은 노골적으로 어필할 땐 태연하면서 이렇게 솔직하게 굴면 부끄러워하... 하으으...”
“.....”
표범 꼬리를 꽉 움켜쥐고는 살짝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쇄골에 입술을 맞춰 조용히 시키자 억눌린 교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내 목덜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싣더니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가장하며...
“흐응... 저.. 소년... 나 이거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으읏...”
“.....”
“이 자세가 분명 들박... 이라 했지..? 날 미궁에서 임신시킬 셈이야아...?”
“...해줘?”
“뭐, 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는지 니아의 하반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녀의 하복부를 은근슬쩍 토닥이며 속삭였다.
“...왜, 해달라고 조르는 거 아니었어?”
“그, 그건 맞지... 만...”
“갑자기 왜 또.”
“그야...! 지금은 땀 엄청 흘려서 냄새난단 말이야...! 난 소년한테 항상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 은데...”
“.....”
“....”
“...다리 벌려.”
“.....”
스윽...
니아가 내게 기댄 채 조신하게 허벅지를 벌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술을 맞춘 뒤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뻗고는...
아래로 뻗어...
아래로...
.....
똘망똘망.
“...란이 네가 왜 여깄어.”
문뜩 느껴지는 시선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란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와 니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야영지에 두고 왔는데... 수통에 몰래 기어들어서 따라왔나...?
니아가 눈을 뜨더니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라, 란이 네가 왜 여깄어?!!”
됴란?
“빨리 텐트로 돌아가!!”
됴란됴란...! 니야!!
“...저거 뭐라는 거야?”
“음... 싫다는데요?”
“이, 이게...!”
니아가 엉거주춤하게 내 품에서 빠져나와 란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란이는 물 만난 미꾸라지처럼 슉슉 탈압박하더니 내 수통 속으로 쏘옥 들어왔다.
니아가 손을 내밀고 요구했다.
“...줘.”
“뭐 말이에요...?”
“네 수통. 가서 야영지에 두고 오게.”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너 정말 모르겠어? 쟤 일부러 쫓아온 거야. 나랑 너 방해하려고.”
“설마요. 란이가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행동할 리가... 란이가 얼마나 순수하고 여린데요.”
“.....”
니아가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온화하게 웃고는 그녀의 꼬리 근처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많이 아쉽다, 그쵸?”
“.....”
“나중에 또 단둘이 있을 시간을 내 볼 테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어차피 유적을 벗어나 암시장까지 도달하면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
“...알았어. 하지만 나도 슬슬 한계야. 그 이상은 못 기다려.”
“알았어요.”
다정하게 입술을 포개고 꼭 안아주자 니아는 그제야 기분을 풀고 살며시 내게 기댔다.
한동안 포옹을 마치자, 그녀가 내 앞머리를 걷어주며 물었다.
“그래서... 결국 뭐 때문에 나온 건데? 요리하기 전에 할 게 있다며. 이대로 가면 곧 어두워질 거야.”
“아, 그게 말이죠... 원래는 우리끼리 찾을 예정이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란이야, 이 근처에서 땅이 가장 습한 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어?”
됴란!!
수통을 톡톡 두드려 고개를 빼꼼 내민 란이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이 미로 한구석을 가리켰다.
니아와 맞잡은 손을 흔들며 란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오 분쯤 나아갔을 무렵, 모퉁이를 돌자 파릇파릇한 식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니아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어...! 저기 뭔가 있어 소년!! 저걸 찾아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네, 맞아요. 저건 이 유적에서 자라는 선인장인데 식용으로 쓸 수 있거든요. 조금 시큼하긴 하지만 맛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란이의 도움 없이도 수분을 보충할 귀중한 수자원이니까요.”
“신기하네... 이전에 소년이 라디랑 이 유적에 들렀을 땐 어떻게 갈증을 해소했는지 궁금했는데 다 방법이 있었구나?”
“네, 그렇죠. 전 이런 장소에서 생존하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까요. ...어디 한번 제가 잘라드릴 테니 직접 맛보실래요?”
“응!!”
선인장으로 다가가자 니아가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뒤따라왔다.
손아귀에 단도를 소환해 가시를 벗겨내고 단단한 외피를 벗기자 다육식물 특유의 통통하고 신선한 초록빛이 감도는 과육이 드러났다.
음미하기 편하게끔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썰어주자 니아는 냠 아기 새처럼 내 손에 든 과육을 집어먹더니...
“음?! 이거 진짜 맛있다!! 꼭 고급 과일을 먹는 것 같아!”
“그래요?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네요. 솔직히 제 입맛에는 조금 셔서 많이 먹기는 곤란하거든요.”
“그래? 난 새콤해서 엄청 맛있는데... 또 먹고 싶다...”
“많이 있으니 마음껏 드세요. 아, 그래도 혹시 한 번에 너무 다량으로 섭취하면 복통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응! 알았어!!”
니아가 내게 기대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과육을 집어먹었다.
한데...
“아차...!”
주르륵...
그녀가 선인장을 베어 물던 중 실수로 손을 놓자 나머지 반쪽이 가슴골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옷 속으로 퐁당 빠져들었다.
니아가 재빨리 상의를 탈의하자 로션을 쪼륵 흘린 것처럼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다 흘려버렸네... 옷은 어차피 땀 때문에 빨 거였으니까 상관없지만... 이거 가면 갈수록 끈적거려서 불편할 텐데 혹시 남는 손수건 있어?”
“손수건...? 손수건은 로브에 두고 왔는데... 하는 수 없네요. 이리 와보세요.”
“으, 으응...? 뭐, 뭘 하려고...”
“뭐 하긴요. 닦아주려고 그러죠. 근데 이러면 속옷이 좀 걸리적거리는데... 좀 더 가까이 와 봐.”
“윽...!”
성가시다는 듯이 손짓하자 니아가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꼭 거사를 앞둔 새신부처럼 꼬리를 쭈뼛거리며.
능숙하게 그녀의 등에 손을 둘러 속옷을 벗겨내려는 찰나ㅡ
촤악!!
누군가가 니아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순간 당황하며 옆을 돌아보자 그곳엔 해맑게 웃는...
됴란!
“라, 란이야?! 왜 갑자기...”
됴란 됴란...!
“아... 니아가 곤란해하는 것 같아서 대신 닦아줬다고... 그래도 끼얹기 전에 말이라도 한번 해 주지... 니아 님 괜찮아요?”
타이밍이 좀 나빴긴 해도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수둔을 맺는 걸 보니 내 딸이 맞긴 맞나 보다.
머리칼에서 물기를 뚝뚝 흘리며 말없이 고개를 숙인 니아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고 있자니...
“으아!! 이제 못 참아!!! 요 정령 꼬맹이 녀석!! 일로 오거라!! 아주 혼꾸멍을 내 줄 테다!!”
니야!!!
“일로 와!!!”
니야! 니야!!
니아가 눈에 불을 켜고 추격하자 란이가 송사리처럼 날쌔게 도망쳤지만, 바람 정령도 아닌 겨우 하급 운디네가 A랭크를 따돌릴 수 있을 리가.
니아가 란이의 허리를 덥석 붙잡더니 주먹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너...! 어른의 데이트를 방해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니야!
“뭐라는 거야! 어디 내 필살 지옥 꿀밤을... 어...?”
“응...?”
이대로 란이가 한 대 얻어맞고 끝나나 싶었지만, 녀석은 순식간에 물안개처럼 변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니아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내 등 뒤에서 나타난 란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방금 뭐였어?”
“그러게요... 란이야, 너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됴란?
“아니, 좀전에 그거...”
됴란!
“.....”
새로운 마법인가...
요새 중급 정령으로 진화할 날이 다가와서 그런지 묘하게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도 늘어난 느낌이다.
나와 니아를 쫓아온 것도 방금 능력으로 수통에 숨어들어서 몰래 보고 있었던 모양.
‘앞으로는 란이가 안 보이더라도 행실에 조심할 필요가 있겠네...’
만약 라디나 아리엘과 밤에 일을 치르다 란이가 적나라하게 구경하기라도 하면...
“끔찍하네... 니아 님, 조금 진정하셨어요? 란이는 아직 애니까 너무 일일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어요.”
“으... 소년은 란이한테 너무 물러! 가끔은 따끔하게 혼도 내고 그래야지!”
“알았어요. 정 그러면 나중에 제가 잘 타일러 볼게요. 니아 님 반응이 재밌어서 장난을 치고 싶나 봐요.”
“알았어... 꼭이야? 쟤 나랑 소년이 다정하게 있는 거만 보면 방해하려고 한단 말야.”
“네, 그럼 이제 더 늦기 전에 돌아갈까 하는데... 선인장 드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응! 알았어!”
니아가 해사하게 대답하더니 행복한 웃음을 흘리며 내 팔뚝에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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