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탐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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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탐색 #7
“제길...!!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거야...! 실비야!!”
“윽...! 골렘이 너무 움직여서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제길, 그렇다면...!! 니아 님!!”
“알았어!!!”
팔을 내두르며 다급하게 외치자 니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나갔다. 내가 덩굴로 골렘의 하반신을 옭아매어 움직임을 늦춘 사이 그녀가 묵직한 오른팔을 잡아끌며 버텼고, 아리엘은 결계를 펼쳐 거동을 방해했다.
골렘이 육중한 주먹을 휘둘러 덩굴을 찢어발기고 빛의 보호막을 파괴하는 틈을 타 실비가 모래 위를 질주해 접근하더니 놈의 거체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호박색 눈동자에 담았다.
실비가 꼬리를 바짝 세우며 외쳤다.
“이동... 이동하고 영원? 아...! ‘미궁은 움직이고 영속한다!!’ 방금 게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래, 좋았어!!”
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소리쳤다. 거대한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함마저 겸비한 고대 골렘과 분투하며 밝혀낸 히에로글리프는 총 여섯 구절.
신은 우리를 저버렸다 왼쪽 어깨.
골렘은 우리의 친구 오른쪽 어깨
폭주 이마
여왕을 수호한다 가슴팍
동짓날, 미궁이 변화한다 왼 다리
,
미궁은 움직이고 영속한다 오른 다리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덩굴을 조작하자 니아가 목청을 높였다.
“소년!! 무슨 뾰족한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여차하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괜찮아!! 내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아! 다들 물러나!!”
“뭐?! 하지만 어떻게 할 건데!!”
“나만 믿어!!”
움직이는 자동 골렘. 물리 및 마법 공격의 완벽 차단. 몸 곳곳에 새겨진 기묘한 문장.
어릴 적 소설이나 만화에서 봤던 기믹과 판박이지 않는가?
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장난꾸러기 악동처럼 삐딱하게 미소지으며 질주했다. 내 외침을 듣고 전장에서 이탈하는 니아를 흘겨본 뒤, 크라켄의 촉수처럼 사면에서 솟구치는 줄기를 이끌고 골렘에게 쇄도한다.
“하아아아압!!!”
강타!!
줄기 끝을 한 점으로 모아 골렘의 복부를 타격하자 놈의 거구가 들썩였다.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놈의 하단으로 들러붙었고, 칼날로 놈의 발목을 그으며 불쾌한 소음을 유발했다.
이어서 참격. 회전하며 일검을 내리그은 후에는 덩굴을 솟구쳐 지면으로 끌어당기기. 개미를 소환해 시야를 가리고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 배후에서 일격.
비록 유효타는 주지 못하지만, 날파리처럼 집요하게 들러붙어 아슬아슬하게 공격과 회피를 반복하자 골렘은 성가시다는 듯이 양 주먹을 높게 치켜올려 세차게 내리찍었고ㅡ
“좋았어!!”
나는 지면에 깔아두었던 덩굴에 올라타고 반동을 이용해 맹렬히 치솟았다. 세상 만물을 발밑에 둘 것처럼 높이.
이윽고 골렘이 내 신형을 놓친 틈을 타 두 자루 칠흑의 검으로 균형을 잡고는 놈의 오른 손목 위로 착지했다.
사납게 웃으며 순식간에 팔뚝을 타고 올라 골렘의 어깨에 새겨진 세 마디 문자열을 타다닥 연달아 터치하자
골렘은우리의친구.
“어...?! 상형문자에서...!!”
“빛이...! 빛이 뿜어나오고 있어!!”
“설마...!”
“.....”
그야 친구를 해칠 수는 없겠지.
나는 검날을 늘어뜨리며 미소지었다. 이러한 기믹은 특정 단어를 이어 문장을 완성시키면 효력을 발휘하는 유형인 바, 이제 골렘은 우리를 친구로 인식...
끼기기기기긱!!!
쿠우우우우우우웅!!!!!!!
“뭐, 뭐야?!”
골렘이 드높게 발을 들어올려 내려찍자 황급히 물러났다. 혹시 효과가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나 싶었지만, 놈은 재차 우리를 노리고 상체를 회전해 지면을 휩쓸었다.
골렘에게서 특별한 반응이 없고, 아직 문자열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걸로 봐서는...
“젠장!! 뭔가 더 발동시켜야 하나...!!”
“내가 할게 소년!! 어느 걸 누르면 돼?!”
“자, 잠시만요! 생각을 좀...!!”
자칫 엉뚱한 문자열을 활성화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친구’란 단어 뒤에 당장 고려할 수 있는 동사로는...
폭주.
수호한다.
변화한다.
영속한다.
“소년!! 빨리 말해줘!!! 이러다가 신전이고 뭐고 다 부서지겠어!!”
“제기랄!!! 잠깐만 기다려 봐!!!”
일단 폭주는 절대 아니다. 그걸 누르는 일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면ㅡ
“수호...! 골렘은 우리의 친구를 수호한다!! 골렘의 가슴팍에 있는 두 번째 문자열을 눌러요!!”
“두 번째? 알았어!!”
니아가 순식간에 골렘의 품속으로 파고들더니 얍! 하는 귀여운 기합성과 함께 회전하며 널찍한 가슴팍을 걷어찼다.
전투하느라 부츠에서 빠져나왔던 니아의 고운 맨발이 빨려 들어가듯 문자열에 적중하자 활성화된 네 단어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광채가 뿜어나온다.
순간 골렘이 정지하자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기기기기기긱!!!!
콰앙!!!!!
“뭐, 뭐야 왜 여전히 공격...”
“그대로잖아 소년!! 저 문자만 누르면 멈추는 거 아니었어?!”
“시, 시발...! 저희는 친구가 아닌가 봐요!! 하필이면 단어 하나를 더 추가하는 바람에 의미가 바뀌어서...!”
“그럼 어떡해?!”
“큭... 다른 조합을 생각해볼게요!! 조금만 시간을 벌어주세요!!!”
거칠게 덩굴을 소환해 골렘을 틀어막으며 사고했다.
단어 4개를 활성화하자 점등했던 불이 꺼졌으니 문장을 구성하는 총 낱말 수는 네 개. 눈앞의 골렘을 무력화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중 하나에는 골렘이란 문자가 필수로 들어가야 할 테고.
‘아무리 봐도 친구가 키워드인데... 우군이라는 뜻이니...’
그렇다면 ‘우리’와 ‘수호’라는 단어를 다른 문자열로 대치해야 하는 걸까? 골렘은 친구, 즉 아군이라는 내용이 핵심이니 나머지는 그저 어떻게든 문장의 기본 요건만 갖추면...
“소년!!!”
“잠시만요!!!”
일단 골렘을 제외하고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명사는 다섯 가지.
신(). 우리(). 여왕(). 동짓날(). 미궁().
여기서 객체가 아닌, 시간의 성격을 띠는 ‘동짓날’을 제외하고 보면...
신(). 우리(). 여왕(). 미궁().
‘그리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신, 이미 한 번 사용한 우리는 제외하고...’
또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여왕마저 배제하고 나면ㅡ
“미궁!! 골렘, 친구, 미궁까지 눌러주세요 니아 님!!”
“뭐...?! 그럼 나머지 하나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았어!!!”
니아가 대답하고는 삽시간에 가속해 골렘에게 육박했다. 그녀는 전광석화처럼 사면을 가로지르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황금빛 마력이 섞인 모래폭풍과 함께 창공에서 나타나 맹렬한 기세로 강하했다.
───────!!!!!!
우레와 같은 폭음. 금빛 섬화가 터져나온다. 그녀가 골렘의 등을 짓누르고 균형이 무너진 틈을 타 맹공했다. 연이은 강타. 세찬 빗발처럼 쉴 새 없이 관절에 타격을 퍼부어 팔다리를 꺾고, 놈의 좌반신으로.
니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좌완, 좌완, 좌족으로 이어지는 – 골렘(), 친구(), 미궁()을 터치하더니 육중한 주먹이 육박하는 타이밍에 맞춰 기민하게 후퇴했다.
그리고 나는 노래기를 이끌고 난폭하게 진입하고 있었다.
콰르르르르르르르!!!!!
수백에 육박하는 다리가 모랫바닥을 휩쓸자 미궁에 해일이 일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 자세를 낮추었다. 일순간에 골렘의 목전까지 치달았으나 되레 가속하며 사납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육탄 돌격. 거수의 충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노래기가 비대한 몸뚱이로 골렘을 자빠뜨리고 사로잡았다. 원래라면 성문도 반파시킬 정도의 일격이었으나 고대의 마법이 유지되는 한 골렘의 내구도는 무한일 터.
내가 노린 건 놈의 오른쪽 반신. 다리에 새겨진 상형문자. ‘영속한다.’
한데...
‘어, 어랍쇼...? 어느 게 어느 거...’
호쾌하게 접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단어를 식별할 수가 없다.
놈의 오른발에 적힌 히에로글리프는 총 세 마디.
‘시, 시발...?!’
이중에서 미궁()까지는 어찌어찌 알아보겠지만, 나머지 두 단어는 뭐가 뭔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다.
마지막 문자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자 멀리서 라디가 다급하게 외쳤다.
“도란님!! 노래기가...! 노래기가...!! 서둘러야 해요!!!”
“크윽...!”
골렘의 다리를 부여잡은 팔에 힘을 주고 버텼다. 구태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부욱!! 부우욱!! 살점과 외골격이 뜯겨나가는 섬뜩한 소음으로 하여금 지금 노래기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눈앞의 를 짚자ㅡ
끼기기기기기긱...
“.....”
해치웠나...?
골렘이 거동을 멈추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제대로 들어먹힌 모양. 칼날로 팔뚝을 두드리고, 상처 입은 노래기를 도로 그림자 속으로 물리며 다리짝을 걷어차 봐도 꿈쩍할 생각을 않는다.
나는 놈의 거체에서 털썩 내려오며 땀에 흥건히 젖은 셔츠를 쥐고 들썩였다.
“휴우... 진짜 진땀 뺐네... 무슨 이런 무지막지한 병기가 다 있어...?”
“저... 주인님...?”
“응? 왜 실비야? 이제 안전하니까 가까이 와도...”
“..주인님이 방금 누르신 문자는 움직인다 라는 뜻이었습니다만...”
“...음?”
움직인다... 움직인다...?
그렇다면 방금 완성시킨 문장은...
골렘은 친구. 미궁이 움직인다.
“미궁이 움직인다고요...?”
그건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을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쿠구궁! 지축이 뒤흔들리더니 사방에서 맷돌 수천 개가 돌아가는 듯한 소음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수직으로 솟구치고, 접히고, 비틀리며 회전하고는 직각으로 꺾이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기 시작하는 석벽.
“으어어어!!!”
20미터는 족히 넘는 장벽이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파도치듯 흐르는 모습에 경악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자니 아리엘이 긴박하게 외쳤다.
“도란!! 이쪽으로 와!!!”
“다들 통로 중앙으로 모이세요!! 자칫 휩쓸려서 별개의 구역으로 떠밀려갔다간 평생 못 만날 수도 있어요!!!”
“소년!! 우리 이제 어떡할 거야?!! 이러다가 신전은커녕 우리 다 깔려 죽겠어!!”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미로 중앙. 거센 발길질과 함께 태동하는 미궁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급박하게 머리를 굴리다 보니 거대한 장벽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빈도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골렘은 친구’라는 문구 덕분에 놈이 움직임을 멈추고 에너지 절약 모드에 돌입했다는 것이지만...
‘잠깐... 골렘...?’
반짝!
찰나, 고개 숙인 골렘의 뒤통수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실비도 나와 동시에 이를 발견하고 유심히 올려다보더니
“정지...? 정지한다()!! 일곱 번째 문자열이에요 주인님!!”
“그거다!! 일단 저거만 누르면 돼!!!”
지금껏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문구가 바로 뒤통수에 있었을 줄이야.
나는 곧바로 도약했다. 망자처럼 발목을 잡아채는 모랫바닥 위를 날렵하게 질주하며 머리 위로 스치는 정체 모를 구조물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이어서 허공에서 회전. 측면에서 날아드는 바위를 회피하고, 덩굴을 소환해 앞길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한 마리의 사막여우처럼 기민하게 사면 위를 질주해 차례로 골렘, 우리, 미궁을 터치하고, 골렘의 무릎을 받침대 삼아 높게 도약해 마지막 정지한다()만을 앞둔 순간ㅡ
끼기기기긱!!
“헛...?!”
골렘의 머리가 올빼미처럼 180도 돌아가 날 응시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맹금류 앞의 설치류처럼 그대로 얼어붙었고
덜컥!
놈의 이마에 있던 상형문자를 눌러버리고 말았다.
폭주()라고 적힌 문자열을.
그로서 골렘이 일변하기 시작한다.
끼기기긱!! 까가가가각!!!
놈에게서 녹슨 기계를 강제로 뽑아낼 때처럼 소름끼치는 소음이 흘러나왔다. 투명한 수정이 박힌 눈동자에서 불가사의한 안광이 뿜어나온다. 모래색을 띠던 몸체가 불에 달군 쇠구슬처럼 붉게 변화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미로의 격벽이 더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내 골렘이 무차별로 지면을 강타하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스피드로 지상을 휩쓸더니, 급기야 주둥이에서 마력포를 쏟아내는 둥 그야말로 폭주란 단어의 올바른 표본을 몸소 선보이기 시작했다.
차마 손을 댈 엄두도 대지 못하고 황급히 놈에게서 도망치던 도중
“저, 저 새끼 뭐, 뭐 하는 거야...!”
골렘이 저 스스로 문자를 막 누르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기긱!!
골렘은 수호한다. 미궁이 변화한다.
미궁이 폭주. 골렘은 친구.
우리의 친구. 골렘은 폭주.
폭주. 폭주. 폭주. 폭주.
“으아아앗!!!”
급급하게 골렘의 공격을 회피하다 보니 품에서 홍옥이 떨어졌다.
재빨리 보석을 주워들고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운석 주먹을 가까스로 빗겨낼 때마다 서벅거리는 고온의 모래가 입안으로 한 움큼씩 파고든다.
한데...
.........
“제, 제길!! 실비야!! 쟤 뭐라고 씨부렁대는데?!”
“왕...? 파라... 오?”
“뭐...?!”
“그... 어째선지 파라오...? 왕..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반복해서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왕이시여.. 죄송합니다 왕이시여.. 이렇게...”
“뭐?! 이 상황에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그, 그게 저도 잘...”
실비가 난처하게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통역 능력도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
하지만 라디는 왕...? 하고 자그맣게 되뇌이더니...
“서, 설마!! 실비야!!! 아까 정지한다는 단어가 뭐였어?!!”
“예, 예...? 정지한다... 말이십니까?”
“맞아!! 그거랑 지금 골렘이 내뱉는 말 중에 왕이란 단어는?! 그리고 또 명령한다는 단어도!!”
“예... 왕이란 단어는 입니다. 그리고 명령하다는... 일 텐데...”
“도란님 방금 들었어요?!!”
“뭐, 뭐?! 듣긴 했는데 그걸로 뭐 어쩌라고!!”
“속는 셈 치고 골렘한테 말해 보세요!!!”
“아니, 그래서 그걸로 뭐...!”
“그냥 하세요!!!”
“.....”
‘에라 모르겠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ㅡ
“왕이 명령한다!!! 모두 멈춰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