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34화 (334/375)

〈 334화 〉 과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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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과거 #2

본 회차는 글자 크기 ‘가’ 기준 최소 사이즈, 줄간격 130%, 고급 설정의 뷰어 방식 ‘스크롤 방식’에 최적화된 회차입니다.

다소 번거로우시더라도 최적의 감상을 위해 위와 같이 설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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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라디 일행에게 내 아버지가 신 따위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켰다. 그 근거로는...

첫째.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시던 아버지가 명계의 신인 오시리스로 묘사될 리 없다.

둘째. 만약 정말로 내 아버지가 신이라면 여러모로 전능했을 테지만, 지금껏 그는 단 한 번도 그런 면모를 보인 적이 없다.

셋째.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그 팔푼이가 이렇게 근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가능할 리가.

필사의 항변이 먹혔는지 라디와 아리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었다.

다만 니아에겐 씨알도 안 먹힌 것 같지만...

“저기 소년...”

“네, 말씀하세요.”

“이렇게 이쁜 미소녀들 속에 파묻혀 있으니 혹시 성욕이 불끈불끈 끓어오르거나 하지는 않아? 누군가 한 명을 막 임신시키고 싶다거나.”

“...갑자기 왜요.”

“그야... 신 중에는 문란한 분도 꽤 있다고 하잖아!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이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거나 하이랭크를 달성하는 경우도 꽤 있고!”

“아니,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게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제 부모님은 평범한 사람이라니까요? 그보다 어서 이 주변이나 마저 살펴봐요. 혹시라도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묘한 장난기로 반짝이는 니아를 토닥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전 초입 오시리스 석상들과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이곳에는 난해한 부조만이 가득할 뿐 딱히 건져낸 건 없었다.

끝없는 절벽 위에 지어진 뾰족뾰족한 성채, 미녀와 야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짐승형 마물과 엘프, 얼굴에 판때기를 쓴 괴인 무리에게 추앙받는 오시리스 등.

모두가 팔을 걷고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차마 해석에 실패하고 건너편의 네모난 들목 너머로 발을 옮기려는 찰나­

“잠깐만요 도란님.”

“...왜?”

“아니 그야... 함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개미라도 보내서 미리 확인하는 편이...”

“...아마 없지 않을까? 이미 아까 골렘을 지나왔잖아.”

“으음... 그래도...”

“...괜찮아 라디야. 도란이 안전하다잖아. 제작자가 보증하는데 괜찮겠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아니, 그렇게 단언하면 나도 좀 곤란한데...”

내가 과거에 이 유적을 만들었다고 한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애초에 그걸 ‘나’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모르고.

한숨을 내쉬며 개미를 소환했다. 혹시 모르는 함정의 유무를 면밀히 살핀 뒤 신전 안쪽 별개의 장소로 발을 들이자 사박거리던 모래가 종적을 감추고 천장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서늘한 기류가 목덜미를 스치는 걸 자각하며 조심스럽게 랜턴을 들어올리자 곧게 뻗은 통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한데...

“이건...”

“부조...?”

“으... 왠지 스산해...”

벽화. 벽화. 벽화.

개미를 따라 들어선 공간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벽화와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날카롭게 파여 저마다 짙은 음영을 자아내는 부조에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으며, 중간중간 들쭉날쭉하게 도사린 방의 존재로 하여금 팽팽한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아리엘이 슬그머니 내 왼팔에 안겨들었다.

나는 그녀를 다독이며 속삭였다.

“...왜, 무서워?”

“으응... 갑자기 안쪽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하긴... 분위기가 조금 거시기하긴 하네...”

벽화와 부조의 화풍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좋은 인상은 아니다. 군데군데 피를 덧칠한 것처럼 새빨간 그림도 보이고.

굳이 비유하자면 연쇄살인마의 저택 지하 비밀 공간에서 발견한 낙서를 목도하고 있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입구 쪽에서부터 천천히 벽화를 훑어나가던 도중, 앞서나가 방 안쪽을 둘러보던 니아가 소리쳤다.

“소년! 이쪽으로 와봐!! 여기 뭔가 있어!”

“네, 잠시만...”

“빨리 와!”

“재촉하지 마세요. 대체 뭐길... 아니, 이게 다 뭐예요? 무슨 내장이나 뼈를 묘사한 그림이 이렇게나 잔뜩...”

“응? 그건 소년이 알아내야지. 소년이 그린 거 아냐? 부하들한테 그리게 시키거나.”

“아니... 그러니까 저는 기억 안 난대도요...”

난감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니아의 부름을 듣고 방 안에 들어서자 그곳에도 부조와 벽화가 가득했다. 다만 메시지에 따라서 구분해둔 모양인지 통로에 만연했던 그림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마석등을 비추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뼈다귀, 마물의 단면, 인체의 장기 따위를 묘사한 부조를 둘러보고 있자니 문뜩 방 입구를 살피던 라디와 아리엘이 손짓했다.

“도란님, 이쪽으로 와 보세요. 여기 뭔가 있어요.”

“이리 와 봐 도란.”

“어디, 잠깐만...”

“아하...”

이 방에 가득한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희미하게 미소짓자 라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으음... 이건 뭘 묘사한 걸까요? 두 사람이 뭔가 하는 것 같은데... 요리?”

“글쎄... 어떻게 보면 수술 장면 같기도 한데... 중간에 튀어나와 있는 이거 사람 머리 아니야? 그 아래에 있는 건 수술대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도란님은 알겠어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아마 미라 제작 과정을 묘사한 게 아닐까 하는데.”

“미라? 아...! 설마!!”

“그래, 라디 넌 저번에 봤었지? 왼쪽 사람이 들고 있는 건 흑요석 칼날, 오른쪽 사람은 시체에 방부 처리를 하는 중일 거야.”

주위를 둘러보니 섬뜩하게만 느껴지던 벽화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 방은 미라의 제작 과정을 묘사한 부조를 따로 구분해 놓은 것일 터. 시체에서 적출한 내장을 모아두는 카노푸스 단지 그림이 보이는 걸로 봐서 틀림없다.

아리엘이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말했다.

“골렘을 두어서까지 지킬 만했네.. 무려 언데드의 제조법이 담긴 벽화라니... 만약 이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갔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도래했을지...”

“응? 아마 그것 때문은 아닐걸? 이곳에서라면 몰라도 내 세계의 몇몇 문명에서는 이게 일반적인 장례 방식이었거든.”

“뭐? 고인을 언데드로 만드는 게 일반적인 장례 방식이라고...?”

“음... 그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데... 이 당시 사람들은 생명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거든. 만약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 되살아나 육체를 찾는데 육신이 이미 썩어 없어진 상태면 영혼이 갈 곳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어. 무엇보다 내가 있던 곳은 언데드가 없었고.”

아마 고대 이집트의 유적을 비슷하게 재현하는 과정에서 새겨놓은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곳의 시민들은 이 벽화의 내용을 보고 미라의 제작 방법을 터득해서 스스로를 언데드화 한 건가?

‘어쩌면 과거의 나는 괜한 짓을 한 걸지도...’

덕분에 플루토 교단을 비롯한 외부 침략자들로부터 유적을 도굴당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완전히 헛된 행동이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나는 천천히 일행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길쭉하게 뻗은 통로를 거닐며 방 안쪽에 새겨진 부조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봤지만, 대게는 농사를 짓는 법이나 식물에서 추출한 섬유로 옷을 만드는 방법, 파피루스 양식장을 운영하는 노하우 등 평범한 내용이었다.

‘...의외로 별 내용 없는데?’

골렘이 지키고 선 장소라 기대했는데 어쩌면 그저 상징적 의미가 짙은 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방에는 값어치 있는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일행과 함께 통로 끝 마지막 방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윽... 이, 이건...?”

“...끔찍해요.”

“.....”

기괴하게 뒤틀린 한 마물의 형상.

살짝 위축된 채 우리가 딛고 선 장소의 정방향, 한쪽 벽을 통째로 차지한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니아가 방 안쪽으로 다가가 기웃거리며 말했다.

“으음... 괴기하네... 이건 뭘 나타낸 걸까? 고대의 마물? 악마? ...뭐야, 뭘 다들 그렇게 얼어있어. 고작 그림 가지고.”

“.....”

나는 그제야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가가 니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진짜 그로테스크하네요. 무슨 날개가 겹겹이... 요 동그란 것들은 눈알...? 단순한 마물 같지는 않고 마지막 방인데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해뒀을 정도면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텐데...”

“...그러네요. 어쩌면 눈앞의 벽화가 이 신전의 핵심일 수도... 그럼 대체 이 그림의 정체는 뭘까요? 언니, 뭐 짚이는 거 없어요? 이런 종교화는 언니 전담 분야잖아요.”

“.....”

아리엘은 조용히 다가와 신중하게 벽화를 훑어보더니...

“...천사.”

“천사... 말이에요?”

“이게 천사라고...? 하지만 이건... 이런 천사가 세상에 어딨어? 비주얼만 봐서는 우락부락한 역전의 장수도 냅다 오줌 지리고 튈 기세인데...”

“으음... 나도 확신하고 말한 건 아닌데...”

아리엘이 벽화를 짚으며 조곤조곤 설명했다.

“여기 새 날개처럼 둥그스름한 깃털이 삐져나와 있는 거 보여? 이건 하피나 세이렌 등 특수한 마물을 제외하고는 주로 천사를 나타내는 특징이야. 여러 쌍의 날개는 권위와 신의 대리인임을 상징하고. 그 외에도 자잘한 특징점이 있긴 한데...”

“아니 암만 그래도... 이건 날개부터가 시꺼먼 게 완전히 글러먹었잖아. 중간중간 흉측한 눈알 같은 것도 돋아있고... 게다가 가운데에 아리따운 누나는 어디 간 건데?”

이게 진짜로 천사라면 문제가 많을 것 같은데...

벽화 이곳저곳을 뜯어보며 눈살을 찌푸리자 어째선지 아리엘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의아하게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말하기 곤란한 거라도 있어?”

“그게 실은... 응.”

“...난 괜찮으니까 아는 데로 다 말해줘. 어쩌면 중요한 내용일 수도 있으니까.”

“....”

부드럽게 등허리를 토닥여주자 아리엘이 안절부절못하며 라디와 눈빛을 교환하다 이내 나지막이 신음하더니...

“악마...”

“응...?”

“간혹 악마나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가 천사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알고 있어.. 눈알이 몸에 가득하다던가... 짐승의 머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던가.. 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란이 악마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도 몇몇 성당 벽화나 성경에는 이렇게 괴악스러운 모습을 한 천사가 묘사되곤 했었지. 눈이 무수하게 돋아난 황옥 같은 고리가 몸체 주위를 끝없이 회전한다던가... 도무지 형용하기 어려운 형체를 하고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런 구절을 밤낮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던가...

이전에 책에서 천사의 실제 모습을 묘사한 삽화를 보고 일주일 동안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천사들이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일 정도니.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자니 라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저희가 이 유적에 들렀을 때도 비슷한 느낌의 부조를 발견했었죠... 끔찍한 인면구를 뒤집어쓰고 하늘을 배회하는 천사와 참혹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산 제물이 올라간 제단 같은 거요.”

“...그러네. 그런 벽화도 있었지.”

분명 라디, 말톤과 함께 창고 건물을 뒤지던 중 찾아낸 비밀 지하 통로 끝에서 그런 그림을 발견했었다.

그 너머에는 미라 제작 공방이 있었고.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눈앞의 이 천사가 유적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잠깐만 소년, 이쪽 구석에도 뭔가가 있는데?”

“...어디 봐요. 이건... 기마병...?”

“말을 타고 싸우는 사람들... 뒤쪽에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그러게... 아마 전쟁을 묘사한 것 같은데.”

“잠깐, 이쪽에도 뭔가 있어!”

“칼과 방패, 도끼를 든 전사. 누가 봐도 전쟁 장면을 묘사한 거네.”

“그러게요...”

주변을 둘러보니 정면의 거대한 천사를 제외하고는 방 안이 다른 면이 온통 전쟁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성체와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고대 마물과 전투를 벌이는 인간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공성 병기, 대지를 휩쓰는 초대형 토네이도와 불꽃, 저 멀리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메테오 등.

이것도 혹시 유적과 연관성이 있으...려나?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선 채 벽화를 눈에 담으며 사고했다. 그토록 갈구하던 유적의 진실 중 일부에 목전까지 다다라 있다는 직감이 따끔따끔하게 목덜미를 찔렀지만, 당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난해하기 그지없다.

이 그림들이 유적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명백하지만...

‘뭔가 하나 중요한 걸 빠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뭐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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