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화 〉 애완견 두 마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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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애완견 두 마리 #1
“...이제 잠시 후면 유적의 중심부에 다다를 거예요.”
“벌써? 하루 정도는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골렘과의 격돌 이후 미로의 구조가 바뀌어서 거리가 훨씬 단축됐거든요. 대신 이전에 만들어두었던 약도는 무용지물이 된 데다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식료품 창고도 결국 못 찾아냈지만...”
“그래? 창고에 들리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끝이 멀지 않았다니 다행이네...”
신전에서의 사건이 지나고 하루가 흐른 시점.
고대 도시 안으로 들어가고도 거처 확보나 미라 등 고려할 게 많지만 적어도 이 더위에서 한풀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자니 머잖아 유독 눈에 익은 장벽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통로 구석에 유독 색이 짙고 질척거리는 모래가 깔린 걸로 봐서는...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기지개를 켜고는 천천히 옷가지를 벗으며 말했다.
“좋아, 여기선 내가 먼저 나설게. 보기보단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밧줄이라도 묶고 들어가세요. 여차하면 바로 끌어올리게요.”
“그래, 잠깐만. 그보다...”
아무래도 전부 벗는 건 조금 그렇겠지.
상하의 탈의를 마치고 속옷만을 남긴 채 실비를 힐끔 의식하고 있자니 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왜 갑자기 옷을 벗어? 설마... 여기서 다 같이 하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도시에 입장하려면 모래 수렁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옷을 입고 들어갔다간 시종일관 찝찝... 아니, 조금은 고민하고 벗는 게 어때요?”
“응? 뭐 어때, 어차피 우리뿐인걸. 그리고 소년은 조금 더 날 보고 열심히 욕정할 필요가...”
홱!
니아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스르륵 속옷 매듭을 잡아당겼기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필요한 일이다 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제가 먼저 들어가 볼 테니 안전하다고 신호를 보내면 뒤따라오세요. 도중에 숨 참는 거 잊지 말고요. 아, 그리고... 이리 와.”
크샥!
개미의 들쭉날쭉한 톱니에서 배낭을 빼내들었다.
벗은 옷가지를 대충 배낭 안에 구겨넣고는 모래 수렁에 던져넣자 잠시 후 털썩 둔중한 낙하음이 들려왔다.
이걸로 이 유사(??) 밑에 바닥이 존재하는 게 확실해졌다.
나는 밧줄로 허리를 묶고는 덩굴로 모래를 휘저어 파고들 구멍을 만들었다. 이후 걱정스럽게 쳐다봐오는 일행들에게 씨익 웃어 보인 뒤, 코와 귀를 틀어막고 단번에 몸을 던지자ㅡ
‘크흡...!’
사방에서 모래알이 밀려들며 무시무시한 압력이 몰아닥쳤다.
마치 불시에 잠수정에서 튕겨나와 심해의 수압에 노출된 듯한 기분. 몸을 가누는 게 불가능하고, 가슴이 압박되어 폐 속의 공기조차 사그라드는 것만 같다.
처음 뛰어들 때의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 중력에 의존해 필사적으로 바닥을 헤집다 보니 머잖아 손끝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스륵...
“....!!”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비틀자ㅡ
슈르르르르... 푸확!!
“쿨럭!! 쿨럭!! 제, 젠장...! 콜록..! 뒤, 뒤지는 줄... 크흡... 알았네...!”
수렁에 뛰어드는 건 두 번째라 익숙할 거라 생각했던 게 오판. 차라리 마물을 상대하는 거였다면 속이라도 편했겠지만, 구체적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훼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다음번에 왔을 땐 뭔가 대책을 찾아보든가 해 봐야지 원...’
이 행위는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가 않다.
폐부로 들이차는 신선한 공기, 살갗에 자국을 남기는 까끌까끌한 입자, 귓바퀴를 회전하는 먹먹한 귀울림에 휘청거리며 온몸에 묻은 모래알을 털어내고 있자니 허리춤에 묶은 밧줄에서 팽팽한 장력이 느껴졌다.
로프를 잡아당겨 신호를 보내고 문뜩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자아졌다.
“...다시 봐도 환상적이네.”
금사(?).
중력을 거스르며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모래 수면. 마치 요정들이 금가루를 잘게 부수어 수놓은 샘을 보는 듯한 광경.
둥그런 파문을 자아내며 빠른 속도로 내가 빠져나왔던 구멍을 수복해나가는 유사 너머로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님! 괜찮으세요?!”
“그래!! 난 무사하니까 다들 넘어와!!! 모두 조심하고!!”
“네, 잠시만요!!”
“....”
천천히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자 모래와 진흙에 잔뜩 뒤덮인 배낭이 보였다.
일단 급한 대로 바지를 꺼내 입은 뒤 온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있자니 머리 위로부터 어렴풋한 소란이 들려온다.
황급히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익숙한 형체가 무더기로 쏟아져내렸다.
푸화아아악!!
“콜록! 콜록!! 으윽...!”
“콜... 록! 아야야...”
“누, 눈에 모래가아! 눈에 모래 들어갔어어!!”
“으읏...”
“.....”
나는 도와주러 다가가다 말고 난처하게 고개를 돌리며 멈춰섰다. 지면에 주저앉은 그녀들의 살색 비중이 너무 높았던 탓.
라디나 아리엘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니아나 실비까지는...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서 있자니 니아가 비틀비틀 다가와 내게 안겼다.
“소년...! 나 눈에 호~ 해줘! 눈에 모래 들어갔어어!”
“윽...! 그 상태로 달라붙지 마세요! 저도 지금 탈의한 상태라서 다 느껴진다고요!!”
그... 융기라던가...!
“됐으니까 호 해줘 소년!! 나 아프단 말야!!”
“아, 알았으니 일단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바, 바지 끌어내리지 마시고요!”
“으... 도란님... 저도 귀에 모래가 들어가서...”
“소년! 빨리이...!!”
“제, 제길...! 란이야!!”
됴란?
“이거 물 써도 되니까 애들 좀 씻겨줘...!”
됴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 란이에게 식수용 수통을 내밀자 녀석이 능숙하게 허공에 물을 모았다.
란이는 식수를 매개체로 공기 중의 수분을 응집시켜 수구를 불려나가더니 이를 이용해 몸에 묻은 모래 알갱이를 씻겨주었다.
일단 급한 불을 끈 뒤, 배낭 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고 있자니 아리엘이 가슴 언저리를 매만지며 울상지었다.
“으... 쓰라려...”
“뭐야, 괜찮아? 어디 다쳤어...?”
“으응... 수렁을 통과하다가 살짝 장벽에 쓸려서...”
“어디 보자. 이런... 조금 부었네... 치유할 수 있겠어?”
“...응. 근데 지금은 그냥 연고만 발라두려고.. 신성력을 쓰면 바로 낫긴 할 테지만 이 앞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됐으니까 바로 치료해.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괜찮다니까.”
나는 다정하게 웃으며 반라 상태인 아리엘을 끌어안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미라들이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는 밤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데다가, 이젠 무슨 일이 닥쳐도 내가 지켜줄 수 있으니까.
그런 뜻을 담아 눈웃음을 지어주자 아리엘은 살짝 뺨을 붉히며 내 등에 팔을 둘렀다.
한데...
“으... 소년... 나도 따가워.”
“이런... 괜찮으세요? 어디가 따가우신데요? 눈은 방금 란이가...”
“여기 아래. 그... 구멍..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데... 소년이 안쪽까지 만져서 빼내 줄 수 있어?”
“.....”
“아, 고맙... 꺄으읏?!”
찰나, 아래쪽으로 손을 뻗다가도 있는 힘껏 엉덩이를 꼬집자 니아가 화들짝 놀라 공중으로 뛰쳐올랐다.
나는 탁탁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진짜 못 하는 말이 없어. 애들 앞에서.”
“소, 소년...! 소년이 아무리 과격한 게 취향이라고 해도 갑자기 그러며언... 그리고 진짜로 들어갔단 말야...!”
“됐고, 빨랑 옷이나 입어요. 그러니까 누가 속옷까지 벗으래요. 조금만 가면 폭포랑 오아시스가 있으니 불편해도 그때까지 참아요.”
“폭포? 이런 곳에? 그러고 보니 여기는 대체 어디...”
“자, 잠깐...! 모두 저길 봐!!”
내게 반쯤 안겨 있던 아리엘이 불현듯 소리쳤다.
건조한 바람이 자욱한 황사를 휩쓸고 나자 신기루처럼 일렁거리던 형상이 뚜렷한 윤곽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윽고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세워진 적색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대 도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신비한 건물들. 예외 없이 붉은 암석으로 지어진 문명. 멀리서도 보이는 운하의 흔적과 높은 바위산 꼭대기에 걸린 거대한 범선.
모두가 말문을 잃고 눈앞의 전경을 응시했다.
그만큼 고대의 문명은 범접할 수 없는 저만의 분위기를 흘렀기에.
“.....”
천천히 옆을 돌아보자 입을 벌리고 멍하니 과거의 잔재를 올려다보는 일행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과거에 이 문명을 건설했건 어쨌건 지금은 그저 기뻐하고 반짝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살며시 배낭을 주워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차
“어...?”
“...왜, 실비야. 무슨 일 있어?”
“그, 그게...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소리...? 난 못 들었는데... 라디야, 뭐 들은 거 있어?”
“아뇨. 저도 잘... 혹시 니아 님은... 니아 님?”
라디가 문뜩 니아를 돌아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니아는 뺨을 붉히고 한 손을 들어올리더니 조용히 이실직고했다.
“저... 그게 사실 내가 배고파서... 아까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좀...”
“뭐야, 그런 거였어요? 그럼 진작 말하지. 이제 곧 쉴 테니까 그때까지만...”
“아..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
의아하게 돌아보자 실비가 스스로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뭔가 큰... 그러니까 거대한 것이 달리는 듯한...!”
“거대한 것...? 설마...”
순간 번뜩이는 섬광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문뜩 라디를 돌아보자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입꼬리를 올리려는 순간, 니아의 둥그스름한 표범 귀가 크게 쫑긋했다.
그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날카롭게 읊조렸다.
“...소년, 땅울림이 일고 있어. 어마어마한 마력도 느껴지고. 뭔가가 나서서 우리를 격렬하게 환영해주려는 모양인데... 내가 해치울 테니 다들 물러서 있어.”
“.....”
씨익...
“이 정도의 마력이라니 대체 어떤 마물... 우냐악?! 소, 소년 방금 어디로 손이 쑤욱...! 주, 중요한 상황인데!!”
“잠자코 보기나 해요.”
그러고 보니 니아에게는 이 위에 있을 존재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서서는 두 팔을 벌렸다.
오랜 재회의 시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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