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 애완견 두 마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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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애완견 두 마리 #2
어렴풋하던 땅울림이 현저하게 뚜렷해졌다.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돌멩이가 들썩이고, 머리 위 모래 수렁이 출렁였다.
보다 못한 니아가 나서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소년...! 이러다 진짜 위험해! 이번엔 장난 아니란 말야!! 뭔가 엄청난 게 오고 있다고!!”
“괜찮으니까 제 뒤에 서 계세요. 혹시라도 갑자기 뛰쳐나갔다간 진짜로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자중하시고요.”
“대체 뭐가...!”
“...도란님, 저기 좀 보세요.”
니아와 옥신거리던 도중, 라디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바위산 중턱 지점. 시꺼먼 그림자가 드리운 곳.
건물 사이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두 커다란 형체.
순간 놈들이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었다’라고 생각한 순간ㅡ
푸화아아아아악!!!!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
크르르르르르──!!!
“으윽...!”
코앞에서 거대한 마물이 솟구쳤다.
히드라와 키메라가 검은 기운을 흩뿌리며 나타나 불도저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자 니아가 피해를 감수하고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ㅡ
핑!!!
끵!!!
녀석들은 니아를 사뿐히 무시해 지나치고는 한달음에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아핫...! 간지러!”
푸르릉!!
크르릉!!
질척한 침의 세례를 받고 있자니 니아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떨리는 손끝을 향했다.
“이, 이건... 히드라와 키메라...? S급 마수가 어떻게... 아, 아니 그보다... 떨어져!! 놈들의 침에는 독이...!”
“괜찮아요. 히드라와 키메라가 맹독을 지닌 마물이기는 하지만 독 분비샘이 따로 있어서 평소에도 침에 독이 묻어나오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만일 그랬다면 쉬지 않고 독을 생산하느라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테니까요.”
“라, 라디 너마저...?”
라디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손등을 들어올리자 히드라가 냄새를 맡으며 살갑게 머리를 문댔다. 다행히도 한눈에 우리를 알아보는 모양.
나는 정겹게 녀석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해일, 메라, 그동안 잘 지냈어? 걱정 많이 했는데 제법 잘 지냈나 보네. 이번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마지막으로 봤던 게 한 네 달쯤 전인가?”
푸르릉!!
“그래, 그래... 어떻게 알고 마중까지 나와주고... 고마워.”
크르릉... 크릉!
“아, 그리고... 우리가 누굴 데려왔는지 볼래?”
핑?
끵?
해일과 메라가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히나 해일이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다 보니 정말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옆으로 비켜서자 두 마물은 내 뒤에 가려져 있던 실비를 발견하고는
......
......
“어... 도란님, 생각보다 별 반응 없는데요...?”
“설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아무리 그래도... 아, 가까이 간다.”
“.....”
해일이와 메라의 눈동자가 홀린 듯이 실비에게 고정되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천천히, 천천히 다가간다.
눈높이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실비의 체취를 맡으며, 발치의 그림자를 확인하고, 멍하니 얼굴을 올려다본 뒤로는...
푸르르르르르르릉!!!!
끼잉... 낑... 끼이잉...
“뭐, 뭐야...! 쟤네 울어?”
돌연 해일이와 메라의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펑펑 흘려내렸다.
마치 파병 후에 복귀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정말로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존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구슬프게 우는 히드라와 키메라. 와중에 막 달려들면 실비가 다칠까 봐 제대로 안기지도 못하고 애꿎은 머리를 발치에 문대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조금 뿌듯하기도, 조금은 복잡하기도 한 심정으로 애타게 기쁨을 표현하는 두 마물과 어색하게 서 있는 실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리엘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당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저거 왠지 바닥이 축축한데... 설마 오, 오줌 지린 거 아니지...? 게다가 히드라랑 키메라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해일이랑 메라란 애들이 얘들이었어?!”
“그래, 나중에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자세히 말 안 했지. S급 마물은 처음 보지? 그것도 이렇게 코앞에서.”
“그, 그야 당연하지!”
“흐흐... 지금 맘껏 구경해둬. 그래야 나중에 남들에게 자랑할 때 한마디라도 더 하지.”
이전에 봤을 때는 봉인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상당히 수척했지만, 지금은 재활에 성공했는지 제법 기력도 되찾고 건강한 모습이다.
태생 S랭크 마물이라고는 하나 둘 다 아직 성체는 아니다 보니 약간 앳된 면도 남아있는 게 살짝 아쉬우면서도 귀엽지만...
니아가 아플 만치 내 팔뚝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뭐, 뭐야...!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소년이 다루는 마물은 개미랑 노래기랑 거미가 끝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얘네들이랑 친해지게 된 건데?!”
“으음...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데 지금은 일단...”
나는 슬쩍 반라 상태의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배고프지?”
*
일단 짐을 추스르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전에 라디와 물놀이를 즐겼던 오아시스 근처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살랑였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온 고기를 꺼내 밑간을 치고 지글지글 굽고 있자니 그새 물에 들어갔다 온 니아가 달려와 와락 내 등에 안겼다.
“소년!! 여기 물 엄청 맑다?! 막 알록달록한 송사리랑 가재도 돌아다녀!!”
“으악! 다 젖잖아요!! 게다가 불 앞인데 위험하게... 마음에 드세요?”
“응!! 요 이틀 동안 쉬지 않고 푹푹 찌는 미로를 헤쳐왔던 고생이 모두 보답받는 기분이야!! 소년도 같이 놀다 오자!”
“전 고기 구워야 해서 안 돼요.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익었으니까 니아 님도 슬슬 와서 앉으세요. 란이한테도 오라고 전해주고요.”
“응! 알았어! 지금 바로 불러올게!”
니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가로 향했다. 기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그간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 수영복이 없어 대충 속옷만 걸친 까닭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저거 젖어서 속살이 다 비치는 것 같은데...’
이래서야 옷을 입은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솔직히 나야 눈이 호강하니 좋기야 하지만...
한숨을 내쉬며 고기를 뒤집자 곁에서 보조해주던 아리엘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좀 놀랐네... 우리가 걷던 장벽 바로 옆에 이런 거대한 도시가 있을 줄이야... 정말 환상적이야... 건물도 아기자기해서 예쁘고, 바위산도 엄청 신비롭고... 저기 저 꼭대기에 걸려 있는 배는 뭐야?”
“아, 저거? 가서 보면 알 거야. 나중에 우리가 직접 탈 거니까 기대해도 좋아.”
“타다니? 저 배를... 이런 지하에서...?”
“응.”
“....?”
아리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치뜬 눈동자로 날 올려다봤다.
아이처럼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주자 그녀가 살며시 안겨들었다.
아리엘과 따스하게 애정을 나누던 도중, 문뜩 고개를 들자 히드라와 키메라에게 등을 기대고 앉은 실비가 보였다.
‘꼭... 숲속에서 동물에게 둘러싸여 있는 엘프를 보는 것 같네...’
아니면 마왕성의 사천왕 중 한 명이라던가.
악마를 상징하는 검은 머리칼, 화장 없이도 진한 이목구비, 최근 들어 살짝 풍부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시크한 표정과, 등 뒤로 쿠션 역할을 자청하는 S급 마수 두 마리가 더해지자 정말로 악의 여간부가 된 것만 같다.
정작 파르르 떨리는 고양이 꼬리는 녀석의 어색한 심정을 열심히 대변하고 있었지만.
나는 실비와 고기를 바쁘게 오가며 침을 줄줄 흘리는 히드라의 머리통을 향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이제 다 구워졌어. 그간 배고팠지? 그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했을 텐데... 옜다!”
푸흥!!
맛있게 익은 고기를 던져주자 네 번째 머리가 덥석 받아먹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머리가 냅다 녀석을 후려갈겼고, 두 머리통끼리 옥신각신 싸움이 붙은 사이에 다른 한 마리가 구렁이 담 넘듯 스리슬쩍 떨어진 고기를 집어삼켰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머리통마다 자아가 판이한 모양.
라디가 웃으며 싸움을 말리고는 머리마다 고기를 나눠주며 말했다.
“많이들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먹어. 메라도 이거 먹고. 메라는 혼자 독차지할 수 있어서 좋겠네?”
케르릉!
메라가 돼지고기 통구이를 뼈째로 오도독오도독 씹어먹으며 뱀 머리가 달린 꼬리를 흔들었다. 어찌나 맛있으면 등 뒤의 쪼매난 박쥐 날개를 열심히 파닥거리며 궁둥이를 들썩일 지경.
‘그야 맛있겠지.’
두 녀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니까.
값비싼 북쪽 거리의 정육점에서 제일 좋은 부위로 주문한 데다가, 보관을 위해 소금을 듬뿍 친 겉부분은 짜지 않도록 조리 과정에서 통째로 덜어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안쪽까지 적절하게 간이 배어들도록 벌집처럼 꼼꼼히 칼집을 냈을 뿐만 아니라, 비싼 향신료도 아낌없이 사용하고, 굽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오일을 끼얹는 둥 조리에도 공을 들였다.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겠지.
아기 새에게 밥을 먹이는 어미의 심정으로 미소지으며 배낭에서 새 고기를 꺼내 모닥불에 얹자 아리엘이 라디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라디야, 혹시 나도 한번 줘봐도 돼?”
“물론이죠! 이거 받으세요. 차례로 주고 있으니까 이제 일곱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 주면 돼요.”
“으음... 그래? 근데 갑자기 확 물고 그러지는 않을까...? 그 왜, 라디랑은 이전에도 봤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언니. 얘네 보기보다 순둥하거든요. 게다가 요 셋은 비교적 늦게 생겨난 머리라서 그런지 얌전하고요.”
“그래...? 얘네도 다 성격이 다른가 보네?”
“네, 첫째는 맏이다 보니 성숙하고, 머리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 역할이에요. 둘째는 조금 무뚝뚝한 반면 셋째는 엄청 수다스러워서 쉬지 않고 떠들고요. 그리고 넷째랑 다섯째는 장난기가 많아서 자주 티격태격 싸우고, 여섯째는...”
라디가 조목조목 짚으며 설명하자 아리엘이 신기한 얼굴로 해일이를 바라보았다.
멋들어진 희귀 마물 앞에 두 미소녀가 나란히 서 있으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을 지경.
나는 쫄지에 잠시 찬밥 신세가 된 실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끄덕.
“더운데 쉬지 않고 이동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실비도 마음껏 먹어. 식기 전에.”
“네... 하지만...”
“왜, 무슨 일 있어?”
고기를 권하다 말고 의아하게 쳐다보자 실비가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말없이 바위산의 정상 부근을 올려다보더니 살짝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저기 꼭대기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혹시 주인님은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
이전에 쓰러뜨리다가 만 미라들인가.
나는 난처하게 목덜미를 긁으며 대답했다.
“으음... 잘 모르겠네에... 어차피 나중에 정상까지 갈 거니까 그때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 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푹 쉬어둬. 이따가 미역도 감고. 실비도 몸에 모래가 묻어서 불편하지?”
“...주인님의 사려 깊은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려랄 것까지야. 당연한 건데 뭘.”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어주자 실비가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겸연쩍게 시선을 돌리고는 고기를 뒤집고 있자니 아리엘이 기묘한 신음을 흘리며 외쳤다.
“도란! 얘 좀 봐!! 내가 주는 대로 꿀떡꿀떡 받아먹는다?! 엄청 귀여워... 봐봐!!”
“그래,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막상 친해지고 보니까 별것 없지?”
“응... 물론 도란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을 테지만... 근데 얘네는 그동안 음식도 없이 어떻게 버틴 걸까? 누군가 챙겨 준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문뜩 의아하게 돌아보자 해일과 메라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녀석들은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기를 덥석 물어들더니 내게 턱짓했다.
푸릉!
“뭐... 따라오라고?”
크르릉...!!
“.....”
나는 아리송하게 녀석들을 쳐다보면서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