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38화 (338/375)

〈 338화 〉 애완견 두 마리 #3

* * *

[338] 애완견 두 마리 #3

“으음...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프릉!

“꽤 걸어온 것 같은데...”

­크르릉...! 쉿쉿!!

등산 도중 발견한 막대기를 지팡이 대용으로 짚어가며 바위산을 올랐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다 보니 키메라의 토실토실한 엉덩이에서 돋아난 뱀이 날 보고 비웃는다.

오늘도 새벽부터 미궁을 전전하다가 모래 수렁을 통과하고 도시에 도착해 이제야 조금 쉬나 했더니 시작된 느닷없는 산행.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이 두 마물에게 이끌려 다니다가 끝내 포기하고 개미를 소환하려는 차, 해일이와 메라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이 내 앞에서 게임 시작 창의 캐릭터처럼 포즈를 잡았다.

‘...둘 중 고르라는 건가.’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태워주려는 모양.

그렇다면 나는...

­케르릉!!

­핑... 프르르르릉...

“아니, 그렇게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쳐다봐도... 해일이 너는 등에 타기가 버겁잖아.”

하체가 뚱뚱해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데다 척추를 따라 뾰족뾰족한 가시가 잔뜩 돋쳐있어 자칫 바지를 뚫고 파고들기라도 하면...

나는 얼굴을 시퍼렇게 물들이며 진저리치고는 냅다 키메라의 등에 올라탔다.

기수처럼 옆구리를 발로 박차 신호를 보내자 녀석은 슬슬 시동을 걸며 가속하는가 싶더니­

“어어...? 야, 야! 너무 빨라아아아아악!!!”

­크릉.

질속(??).

황급히 메라의 등을 붙잡았다. 선명하던 시야가 흐릿하게 뭉개지고, 날카로운 모래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생채기를 남겼다.

녀석이 바위를 뛰어오를 때마다 생생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며 지면에 널린 돌조각이 부서져 흩어진다.

어찌나 빠르면 조금 과장을 더해 안면 가죽이 죄다 벗겨지는 기분.

그래도 속도감이라면 노래기 덕에 꽤 익숙...

“자, 잠깐!! 너희 지금 어디로 가는...?!”

­케르릉... 케릉!

“아니 잠깐!! 막혀있잖아!!! 멈춰!! 멈추라고!!!”

나는 질겁하며 키메라의 등털을 한 움큼 쥐어뜯었다. 우리가 질주하는 방향에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던 탓.

이대로 가다간 곧 충돌한다.

나는 한 달 동안 방구석에 구금되어 있다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사모예드처럼 혓바닥까지 휘날려가며 질주하는 키메라를 걷어차며 외쳤다.

“야, 야 멈춰!! 저거 안 보여?!”

­케르릉..!

“멈추라고!!!”

­크르릉...!

‘제, 젠장...!’

씨알도 안 먹힌다.

본능이 외치는 대로 메라의 등에서 뛰어내리려 했으나 꼬리뱀이 내 허리를 칭칭 둘러맨 까닭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고, 나는 그대로ㅡ

“으아아아아아악... 어...?”

아프지 않아?

조심스레 실눈을 뜨자 기이한 광경이 망막에 맺혀들었다.

반전되는 시야. 명멸하는 불빛. 무작위로 필름을 이어붙인 듯 빠르게 뒤바뀌는 풍경.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터널에 들어갔을 때처럼 시계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한다.

이건...

‘그림자 안팎을 이동하고 있는 건가...?’

생각지도 못했던 능력.

키메라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장면이 휙휙 바뀌고, 탁한 급류가 귓바퀴를 흐르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한 번은 가정집의 옥상에서 나타났다가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잠수하고, 메마른 수로의 밑바닥에서 나타나고, 또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한 건물의 지하실에서 출몰하더니 목제 상자를 부수며 반대편 벽으로 돌진, 이번엔 절벽 중턱에서 낙하.

‘으윽...!’

확실한 건 이 이동 방법이 빠르긴 해도 몸에 무리가 온다는 것.

누군가 노이즈 이는 비디오 수천 개를 머릿속에서 재생한 것만 같은 감각이 전신을 희롱했다. 끝없이 회전과 역회전을 거듭하는 반고리관과 무너진 생체 감각에 위액이 역류하고 구역질이 치밀어오른다.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가 메라의 등에서 스르륵 무너지는 차ㅡ

­크르릉...!

“큭... 뭐, 뭐야...! 이제 도착한 거야...?”

­킁!

“으윽...”

목적지에 도달한 모양.

나는 한동안 바닥에 엎어져 헛구역질하다 힘겹게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진땀을 흘리며 멀미에 괴로워하고 있자니 뒤늦게 도착한 히드라가 고개를 내밀어 날 지탱해주었다.

“아, 고마워...”

천천히 심호흡하며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자 코앞으로 드넓은 미궁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뭐?

“허미... 싯팔! 이, 이게 뭐야!!”

­후드득...

화들짝 놀라 자빠진 채 주춤주춤 물러나자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어느새 바위산의 정상 부근까지 도달한 모양.

아찔한 높이에 식겁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하 공간을 내려다보자 히드라가 콧김을 내뿜으며 톡톡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어, 따라오라고 했지? 안내해줄래?”

­푸릉!

­케르릉!

해일이와 메라가 가뿐하게 뒤돌더니 앞서나갔다. 녀석들이 날 데리고 온 곳은 바위산 꼭대기, 절벽 사이의 작은 바윗굴.

주변 지형에 절묘하게 녹아든 입구에 내심 감탄하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발소리가 넓게 메아리쳤다.

꽤 깊이가 있는 모양.

‘이런... 조명을 안 가져왔는데...’

아, 그게 있었지?

품속에서 구슬을 꺼내들자 동굴에 불그스름한 광채가 드리웠다.

한데...

­프르릉?

­크릉!

곧바로 해일과 메라가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홍옥의 힘을 감지한 걸까?

“...뭐야, 너희도 이게 뭔지 알아?”

­푸릉!

­케르릉...!

“....”

역시 단순한 보석은 절대 아닌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발길을 옮겼다. 동굴에 불빛을 드리우며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렴풋이 생활감이 드러나는 공간이 나왔다.

깨진 도자기 조각과 목재 파편.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침대보와 누가 봐도 히드라가 깔고 앉은 듯 엉덩이 자국이 선명한 볏짚 더미 등...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었던 건가...’

S급 마수치고는 다소 초라한 것과 동시에 묘하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광경. 어쩌면 사람들에게 사육당하던 애들이라 그런...

잠깐.

그러면 해일이와 메라는 내 과거 모습을 알고 있는 건가.

순간 섬뜩한 가능성에 자리에 멈춰섰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눈앞의 두 어린 마물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녀석들은 의아하게 날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살갑게 뺨을 문댔다.

애정과 신뢰가 뚝뚝 떨어지는, 맑고 똘망똘망한 눈빛.

‘하긴... 당장 말도 안 통하는 애들한테 물어봤자...’

개미나 노래기, 울시 등과 꾸준히 교감해온 덕에 마물과 대화를 나누는 데도 꽤 능숙해졌다지만, 유독 내 말을 잘 알아듣는 개미를 제외하고는 아직 고차원의 소통은 어려운 감이 있다.

아니면 란이의 경우 몇몇 마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녀석의 힘을 빌리는 것도...

­푸르릉!

“아, 도착한 거야?”

묵묵히 사고하며 어둠 속을 걷던 중, 해일이와 메라가 발길을 거두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꼬리로 가리킨 장소에는...

‘이건... 뭐지?’

조명탄처럼 붉은 홍옥의 불빛을 반사해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형체들. 침체되어 탁한 공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노후의 흔적.

가까이 다가가 손끝으로 매만지자 야자목 특유의 거칠거칠한 촉감이 느껴진다. 조금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목제 함이 바스러지더니 볏짚에 둘러싸인 물체가 우르르 쏟아져 발치를 뒤덮었다.

순간 쥐 떼인 줄 알고 기겁하며 물러났다가 덩어리들이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주워들자 딱딱한 겉면이 만져졌다.

‘...돌덩이?’

아니, 돌치고는 무게도 지나치게 가볍고 모양도 길쭉길쭉한 게...

­푸르르륵!! 푸룩!!

응?

정체불명의 물체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뒤를 돌아보자 해일과 메라가 표정을 한껏 구기며 질색했다.

녀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만한 건...

“잠깐, 혹시 이게 너희 식량이야?”

들어본 적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묻을 때 사후 세계에서도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생전에 사용했던 옷과 소지품, 음식 따위를 함께 매장했다는 걸.

그렇다면 이 수많은 ‘고기 미라’는 언젠가 해일과 메라가 봉인에서 깨어날 때를 대비해 비축해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녀석들이 쓰던 볏짚 침대는 이 음식물을 포장하고 나온 쓰레기고.

‘아니, 이건 너무 불쌍한데...’

말이 식량이지 오랜 기간 보존을 위해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다 보니 단단함이 돌덩이에 비견될 정도다. 맛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원재료가 무엇인지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저 열량을 보충한다는 목적 하나에만 충실한 물건.

이러니 내가 고기를 구워줬을 때 환장했지...

이래서야 거의 재난민 신세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니,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존재들은 일찍이 사라지고 의지할 대상이 서로밖에 안 남았다는 점에선 더욱 외로울지도 모른다.

적어도 전설 속 S급 마수의 처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더군다나 곧 이 애들을 있는 거라곤 언데드와 모래밖에 없는 유적에 다시 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우리가 데려갈까.”

­핑?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궁금했던 것도 확인했으니 이제 슬슬 돌아가자. 여기 머무는 동안은 내가 고기 잔뜩 구워 줄 테니까. ...아직 배고프지?”

­크르릉!!!

“그래, 그럼...”

나는 고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씁쓸한 현실에서 등을 돌리고 애써 애석한 마음을 진정시키던 차­

­반짝!

“....?”

나무 상자가 쌓여있는 동굴 구석, 둥그스름한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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