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39화 (339/375)

〈 339화 〉 애완견 두 마리 #4

* * *

[339] 애완견 두 마리 #4

‘잠깐만... 저건...?’

동굴 구석, 나무 상자치고는 위화감이 드는 물체가 시야에 내비쳤다.

반들반들하고, 곡률이 있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뚱뚱한 물체.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항아리...? 항아리 맞지 저거?!”

이곳에서 항아리라 함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 유제품이나 기타 부패한 음식물을 담은 꽝.

둘째 : 달콤하고 언제든 식량으로 활용이 가능하나, 상업적 가치는 높지 않은 꿀 항아리.

셋째 : 술.

‘제, 제발...!’

이 중 세 번째일 경우 어마어마한 횡재다. 상업적 가치는 물론이고, 희귀도나 우리가 음용할 수 있다는 점 등 모든 면에서.

저렇게나 많은데 하나쯤은 술단지가 섞여 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나는 입맛을 다시며 손바닥을 비볐다. 기대에 한껏 부푼 가슴을 이끌고 나무 함을 제치며 다가갔다.

항아리 앞에 도달해 쓰윽 겉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자, 잠깐...! 이건...!!”

부적.

상형문자로 가득한 대형 항아리 입구에 색이 바랜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전에 술독을 발견했을 때 붙어있던 것과 같은 부적이.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흐히히히... 그 많은 술이 전부 어디 갔나 했더니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구나~? 우리 아가 소리 좀 들어보자 히히...”

­찰랑찰랑!

“크으... 이 청량한 소리 좀 보소. 빨리 이대로 들고 돌아가서 애들한테도 알려...”

아니.

아니지.

만약 부랴부랴 싸 들고 돌아가 자랑했는데 막상 개봉했더니 별 볼 일 없는 맹물이었다고 하면 그만큼 무안한 상황이 없다.

봉인 부적이 낡아서 효력이 떨어지거나 항아리에 실금이 나 있으면 도중에 변질하거나 부패했을 가능성도 있고.

즉, 한 번쯤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는 소리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하며 품에서 고블린 석검을 꺼내들었다. 홍옥을 근처 상자에 거치하고 엄중하게 무릎을 꿇어 주도를 갖추었다.

혼자서만 이 좋은 술을 먼저 맛보는 죄책감도 있지만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신중하게 부적을 뜯고 뚜껑을 들춰내자­

­화악!!

“대, 대박...!!”

농후한 과일 향이 훅 끼쳐왔다.

항아리 입구를 타고 흘러나오는 서릿한 한기. 퀴퀴하던 공기를 단박에 바꾸어놓은 풍성하고 농밀한 향기. 진한 알코올 냄새에 반응해 코를 움찔하며 물러나면서도 호기심을 보이는 해일과 메라 등...

아무리 모자라도 이전에 발견했던 술과 동등한 품질의 물건.

나는 번지점프대에 섰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고는 눈앞의 술독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건 무화과로 담근 게 아닌가?’

코끝을 맴도는 위화감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핏빛 수면을 살짝 찍어 맛보자­

“....!!!”

포도.

정통파라 할 수 있는, 포도로 제조된 숙성 와인. 묵직한 맛과 향. 입 안에서 꽉 차는 존재감을 때려박는 풀­바디 타입.

오랜 과거, 고대 사람들이 은밀하게 숨겨놓은 보화를 몰래 맛보고 있다는 배덕감이 마치 엘프의 산림에 무단으로 침입해 포도를 서리해오는 기분이다.

‘이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고 와인을 떠서 음미했다.

적당한 산도가 가져다주는 상쾌함. 투명한 이슬 맺힌 포도알 하나하나가 연상될 정도의 싱그러움. 향과 풍미, 질감이 모두 살아있는 레드 와인.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높은 당도 덕분에 떫은맛이 중화되어 목 넘김도 몹시 부드럽다.

근데 잠깐...

‘이거... 설마 아이스 와인인가?’

와인용 포도는 대개 여름에 수확을 마치지만 겨울까지 수확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추운 날씨에 포도 겉면이 얼어서 당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된다.

이를 이용해 단맛을 극대화한 게 바로 아이스 와인.

하지만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보통 3~4병 분량을 수확할 수 있는 일반 와인에 반해 1~1.5병밖에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단가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덥고 건조한 이곳에서는 포도를 재배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을 테니 이는 전부 타지에서 공수해 온 귀한 몸일 테고.

그리고...

“이거... 무턱대고 마셨다간 바로 골로 가겠네...”

달콤한 끝맛 때문에 깜빡 속을 뻔했지만, 벌써부터 알딸딸한 취기가 맴도는 게 주정을 첨가해 알코올 농도를 높인 모양. 덕분에 보존성은 올라갔지만 레이디 킬러 칵테일, 소위 작업주라고 불리는 주류처럼 꿀떡꿀떡 마시다 정신줄을 확 놓아버리기에 십상이다.

만약 내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더라면 몰래 니아에게 먹여 어떻게든 해보려 했겠지.

그녀라면 다 알고도 모른 척할 것 같지만...

“아무튼, 좋은 걸 얻었네... 늦으면 늦을수록 신선도가 줄어들 테니까 빨리 돌아가서 애들한테도...”

아니.

아니지.

최소 수백 년을 묵혔던 와인이다. 중간에 독충이 들어갔을 수도 있고, 맛으로는 분간하지 못할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

즉, 내가 실험용 쥐를 자청해서라도 희생해야 한다는 말.

암 물론이고말고.

­푸르릉?

“...시끄러. 그보다 너희도 한 모금씩 해. 지금 아니면 못 마실 테니까.”

이건 내가 다 가져갈 거다.

해일이랑 메라도 내가 연이어 감탄하자 호기심이 동했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이대로 놈들을 공범으로 만들 예정.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 항아리들을 어떻게 아래까지 운반하는지인데...’

나 혼자선 무리고, 떨어지지 않게끔 거미줄로 칭칭 개미에 묶어서 짊어지게 하면 되려나...?

기왕 정상까지 올라온 김에 미라가 잠들어 있을 통로도 장애물과 덩굴로 막아두고.

어차피 항아리는 잔뜩 있으니까 이 술은 내가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맛보고...

“.....”

씨익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났다.

*

“아, 오셨어요 도란님? 도란님도 아까 고기 굽느라 얼마 못 드셨을 텐데 어서 와서... 잠깐, 혹시 취했어요...?”

“.....”

­딸꾹!

내가 다가가자 라디와 아리엘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엎어지려는 찰나, 라디가 달려와 부축해주었다.

“괘, 괜찮으세요 도란님?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취해서 돌아오시고...”

“...어.”

“네...?”

“나 안 취했어...”

“...좀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쉬시는 게...”

“안 취했어어...!”

“으... 네, 안 취했어요. 그래도 오늘 하루 피곤하셨을 테니 이만 쉬시는 게... 하윽?!”

“.....”

순간, 무방비하게 꿈틀거리던 꼬리를 움켜쥐자 라디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신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대로 모닥불 근처에 주저앉고는 라디를 내 무릎 위로 잡아당기며 손짓했다.

그러자 메라가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우리 앞에 단지 하나를 툭 내려놓았다.

“읏... 이건... 항아리...? 설마...!”

“...이게 뭔데 라디야?”

“이거 그거잖아요! 저희가 입이 닳도록 말했던 미궁산 와인...! 설마 여기서 찾을 줄이야... 도란님이 발견하신 거예요?”

“그래...! 내가 찾아냈지... 너희들도 한번 맛 좀 봐.”

“정말요?! 고마워요!!”

라디가 화색하더니 내 뺨에 입을 맞췄다.

녀석은 잔뜩 기대하며 항아리 뚜껑을 들춰보더니­

“응...?”

“...왜 라디야, 무슨 일 있어어?”

“아니... 비어있는데요? 술은커녕 포도 향기만 나고...”

“어라라... 그럴 리가 없는데에...”

라디에게서 술독을 받아들었다.

냄새도 맡아보고, 끙끙거리며 뒤집어서 엎어도 보고, 머리를 파묻을 기세로 안쪽까지 살펴보기도 하고 나서야 심사숙고하며 내린 결론은...

“...미안, 내가 다 마셔버렸나 보네에.”

“네...? 그게 무슨... 이 많은 양을 혼자서요?!”

“걱정 마.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아. 저기 보이지이?”

손을 들어 바위산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개미 수십 마리가 빨빨거리며 내려오고 있는 지점을.

라디와 아리엘이 게슴츠레 바위산을 올려다보더니 아연실색했다.

“서, 설마... 저거 다 개미들이에요? 그리고 뭔가 흰색 덩어리를 주둥이에 달고 있는데...”

“그래에... 술독을 거미줄로 감싼 거야아...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스윽...

“읏...!”

“우리 라디는 왜 이렇게 귀여워?”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향했다. 움찔하는 라디의 속바지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꼬리 밑동 부근을 어루만졌다. 포근한 체취가 풍겨오는 가슴께에 얼굴을 묻으며.

라디가 야자수의 푸른 녹음이 일랑일랑 아른거리는 얼굴로 피식 웃으며 내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정말... 너무 취하셨잖아요...”

“안 취했다니까아~.”

“그래요? 이래도요?”

라디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녀석이 야릇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허전한 내 왼손에 탐스러운 과실을 쥐여주었다. 이어서 부드러운 입술로 내 귓불을 물고 가녀린 손가락을 이용해 천천히 바지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녀석은 소명한 눈웃음을 흘리며 노골적으로 하체를 밀착하더니 허리를 이용해 하반신을 살짝달짝 마찰하며 애간장이 타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봤다.

사랑스러운 사낭 쥐 수인의 애정 총공세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자니...

“...아리엘, 너도 일로 와아..”

아리엘이 얼굴을 붉히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반대편 무릎에 앉히고 머리칼을 젖히며 속삭였다.

“아리엘... 넌 뭘 먹어서 이렇게 예뻐?”

“으음... 뭘 먹어서 예쁘냐니... 도란의 사랑?”

“말도 엄청 예쁘네... 이리와!”

“자, 잠깐...! 콧김 때문에 간지러워!”

가슴골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리자 아리엘이 파하하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애정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내 뒤통수를 쓸어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지? 짐도 훨씬 많이 들고, 소환수도 조종하고, 우리의 체력까지 배려하면서 걷고...”

“...응.”

“그래... 이제 미궁도 빠져나왔으니 푹 쉬어. 아니면 우리 도란 기운 나라고 내가 좋은 거 해줄까?”

“좋은 거...?”

“응, 마력 공급! 그... 도란이 좋아하는 우유는 아직 안 나오지만...”

“해줘...!! 당장 해줘!!”

“후훗... 알았으니까 그렇게 보채지 마.”

아리엘이 꼭 아기 같아... 라고 중얼거리며 내가 만지기 편하도록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녀와 입술을 맞추며 얇은 옷가지를 벗겨내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장인어른이 손수 만든 수제 디저트를 맛보려는 차­

“뭐야, 소년 언제 왔... 자, 잠깐!!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니아가 물기를 휘날리며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우리 셋을 떨어뜨려 놓았다.

그녀가 도끼눈을 뜨며 읊조렸다.

“...뭐야, 왜 또 나 빼고 재미 보고 있었어. 말 한마디도 없이.”

“으음... 그게... 도란님이 취해서 돌아왔거든요. 반응이 귀여워서 조금 놀고 있었죠.”

“뭐? 소년 취했어?!”

니아가 불현듯 밀웜을 발견한 미어캣처럼 확 고개를 틀더니 똥그란 눈동자로 날 쳐다보았다.

이내 그녀는 꾐이 아른거리는 입꼬리를 살살 올리며 내 다리 사이로 기어들고는­

“으흠... 우리 소년이 많이 취했구나~? 혹시 덥지 않아? 아니면 막 하반신이 답답하다던가... 우리 잠깐 저기서 쉬었다 갈까?”

“...니아 님.”

“응응, 왜~?”

“벗어.”

“어...? 지금 뭐라고... 읏?!”

­털썩!

슬금슬금 내 셔츠를 벗겨나가던 니아의 두 손목을 붙잡고 바닥에 밀어붙이자 야트막한 모래 먼지가 일었다.

나는 당혹으로 붉게 물든 니아의 뺨을 바라보며 고했다.

“누가 그렇게 자꾸 자극하래.”

“소, 소년...?”

“내가 참기 힘들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맨날 도발하고... 야한 농담이나 건네고...”

“.....”

“안 되겠어. 혼쭐을 내 줘야지이... 빨리 엎드려어!!”

“....”

니아가 헛숨을 들이켜며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닥을 짚고 뒤돌았다.

그대로 위에서 덮쳐 예민한 귀를 깨물고, 야한 허리 굴곡을 조금 집요하게 쓸어내려도 보고, 말랑말랑한 살결과 부드러운 복부를 쿡쿡 누르며 스킨쉽을 즐기다가...

­스르륵...

“.....”

물에 젖은 속옷을 벗겨내고 눈앞의 여체를 탐하기 직전ㅡ

­.....

“쿠울...”

“소, 소년.. 너무 애태우지... 뭐, 뭐야...?! 너 자!? 어떻게 이 상황에서...! 빨리 세워!! 라디! 아리엘!! 얘 좀 깨워봐!!”

““.....””

나는 아이스 와인만큼이나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야심한 밤.

­...부스럭.

“뭐야... 하지마...”

­...부스럭 부스럭.

“하지 말라니까... 음냐...”

­....

­콕!

“끄아아앗!!”

날카로운 고통이 엄습해 이마를 붙잡고 깨어났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자 칠흑빛으로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 둔탁한 숙취의 두통 사이로 뾰족하게 파고드는 통증은...

“거미...? 뭐, 뭐야! 네가 어떻게 나와 있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딸칵.

머리 위를 쳐다보자 초근거리에서 소름끼치도록 새빨간 여덟 눈동자로 날 바라보던 거미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내가 깨어난 걸 확인하자마자 휙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씨 대체 뭐야...!”

꿈까지 꿔가며 달콤하게 자고 있었는데...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숙취에 욱신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수통에 담긴 냉수를 들이켰다. 해일이와 메라를 따라 들어간 동굴에서 술을 발견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필름이 끊겼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왠지 빨가벗은 니아를 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란이나 실비 앞에서 니아를 덮칠 리가 없으니 그냥 개꿈이겠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발광 이끼가 지고 난 뒤의 유적은 신비로운 검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자만이 볼 수 있는, 오직 우리에게만 허용된 풍경.

더군다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 사이로 들려오는 해일과 메라의 우렁찬 코골이, 타닥타닥 불똥을 피어올리는 모닥불, 잔잔한 폭포수의 낙하음과 불규칙적인 물소리가 더해지니...

‘잠깐... 물소리...?’

누군가 씻고 있나?

숙취에 지근지근 아파오는 이마를 짚으며 오아시스로 향하자...

“실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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