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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341화 (341/375)

〈 341화 〉 애완견 두 마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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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애완견 두 마리 #6

“우와... 여기는 뭐야?! 내 키보다도 커다란 풀이 잔뜩...”

“음... 파피루스 군락지인가 보네요. 용케도 이게 아직까지 남아있네...”

“파피루스...? 뭐에 쓰는 식물인데?”

“저걸 가공하면 종이 대신으로 쓸 수 있어요. 단단한 줄기를 벗겨내면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는데 그걸 얇게 찢어서 아교를 바르고 무거운 물체로 누르면 그대로 평평하게 굳거든요.”

“우와... 소년은 진짜 박식하네... 그럼 고대 사람들은 종이를 만들려고 이곳에 저 식물을 심은 거야?”

“음... 꼭 그 때문은 아닐걸요? 제가 있던 곳에서 파피루스는 사실 식용으로 더 많이 쓰였거든요. 섬유질이 많긴 하지만 속살을 불에 구워 먹으면 은은한 단맛이 돌기도 하고..”

“그래?! 그럼 우리도 한번 먹어보자!!”

“뭐... 딱히 추천해 드릴 정도는 아닌데... 정 궁금하시다면...”

나는 피식 웃으며 니아의 머리를 쓸어주고는 파피루스를 몇 줄기 꺾어서 뒤따라오던 개미에게 건넸다.

고대 도시에 도달하고 술독을 찾아낸 뒤로부터 하루가 지난 시점.

해일이와 메라와 떨어지기 전에 추억도 쌓아두고 유적도 탐방할 겸 도시를 둘러보고 있자니 다양한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파피루스 군락지와 칙칙하게 색바랜 공터, 지도층 세력이 살던 건물로 추정하는 대저택과 이제는 틀만 남은 대중목욕탕 등...

느지막한 걸음을 옮기며 주거지를 살피던 중 라디가 기지개를 켜며 감탄했다.

“경이롭네요... 몇 세기 전 문명인데도 이렇게나 짜임새 있게 건물이 늘어서 있다니... 심지어 몇몇 마법은 현대에서도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고...”

“그러게... 식량만 충분했으면 꼭 며칠 더 머물다가 가고 싶을 정도야! 그러니까 이걸 전부 도란이 계획해서 만들었다는 거지?”

“.....”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아무래도 전부는 아니겠지. 그래도 몇몇 시설은 내가 설계한 게 맞긴 할 거야. 예를 들면 이 대중목욕탕 같은 경우는 그리스 시대의 양식을 따른 것 같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대개 하인이 주인에게 주전자로 물을 끼얹는 방식으로 목욕을 대체했다. 즉 목욕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

나일강도 있고 하니 따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겠지.

그리스 시대의 공중목욕탕이 몸을 씻는 목적뿐만 아니라 사교의 장으로도 이용되었다는 걸 떠올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드나들며 교류를 쌓았을지 궁금하다.

나는 그들이 주고받았을 수많은 설화를 상상하며 실비의 등을 다독였다.

“실비도 잘 봐둬. 혹시 뭔가 기억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읏... 그... 알겠습니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주인.. 님...”

“....?”

실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주저하자 라디와 아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해 흘러넘겼다.

조만간 둘한테도 어젯밤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할 예정이지만, 니아한테는 비밀로 할 생각이니까.

‘니아가 알았다간 길길이 날뛰면서 날 덮치려 들겠지...’

어쨌든 이걸로 내 비밀을 공유하는 네 번째 여인이 생긴 건가.

내심 복잡한 심경을 가라앉히며 발길을 돌리자 니아가 살갑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으흠... 그럼 이걸로 이 근방은 다 둘러본 것 같은데... 아, 그리고 보니 혹시 이곳에 주점은 없어?”

“주점... 말씀이세요?”

“응! 거기서 분위기 내면서 술이라도 한잔하는 건 어때? 어제 공수해 온 술이 아직 잔뜩 남아있잖아! 아, 그래도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조금 그렇고 흥을 돋울 정도로만 살짝...”

“뭐... 그야 상관없긴 한데...”

굳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눈빛에서 집요함이 느껴지는 니아를 의문스럽게 쳐다보자 라디가 살짝 내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도란님, 설마 어제 일 하나도 기억 못 하시는 거예요...?”

“어제 일이라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필름이 끊겨서 잘...”

“...도란은 어디까지 기억하는데?”

“으음... 그야 도시에 들어오고, 해일이랑 메라 만나고, 고기 구워 먹다가 동굴에서 술독 발견하고... 그 정도? ...미안해. 너무 들떠서 뒷일도 생각하지 않고 막 마시다 보니...”

“아니 그야... 저희는 딱히 상관없긴 한데...”

“....”

라디와 아리엘이 난처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이에 라디가 머뭇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니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막아세웠다.

“난 괜찮아!”

“네? 하지만...”

“괜찮아! 나도 다 계획이 있거든! 어차피 이곳만 벗어나면 곧 암시장이기도 하고... 거기에는 내 숙소가 있으니까! 혹시 그때 내가 소년 좀 잠깐 빌려도 될까?”

“네, 그 정도야... 언니도 마음고생 많이 하시네요...”

“괜찮아, 늦게 왔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고마워!”

니아가 해사하게 웃으며 내 팔뚝을 껴안았다.

...어젯밤 일이 알려지면 난 죽겠군.

아니... 근데 이젠 실비 앞이라고 눈치 볼 필요도 없으려나...?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허리를 끌어당기자 니아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데...

­됴란...?

“...왜, 란이야 무슨 일 있어?”

­됴란! 됴오란!!

“.....”

메라의 등에 업혀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유적을 둘러보던 란이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흥분했다.

이건 아무래도...

“...저쪽에 뭔가 있는 모양인데?”

“란이가 반응할 만한 거라면... 수원지일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일단 한번 가보자! 어쩌면 또 다른 오아시스가 있을 수도?!”

­푸릉!

­크르릉?

우리는 란이가 가리키는 대로 주거 구역에서 빠져나와 통짜 암석을 깎아 만든 돌계단을 올랐다.

좌우로 사람들의 손자국이 묻은 협소하고 구불구불한 바윗길을 지나서 조금 더 나아가 바위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자 마침내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우와... 다들 저기 좀 봐! 꽃이 잔뜩 피어있어...!”

“엄청 예쁘다...”

­됴란!

수목원.

색색들이 대지를 수놓은 야화(?花). 단단하고 정갈하게 솟은 거목. 이를 한데 묶어 일체감을 선사하듯 수목원 전체를 뒤덮은 초록색 덩굴.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샘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싱그러움을 잃지 않은 고대의 수목원이 바위 언덕 아래로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꽃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원형으로 자리매김한 광경은 삭막한 유적의 풍경과 대비되어 신이 대지에 물감을 콕 떨어뜨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 파릇파릇한 녹음이 비쳐오는 구역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어...?”

“...왜, 아리엘? 뭔가 있었어? ...니아 님도 왜 가만히..”

“....마법.”

“마법...? 여기에 마법이 펼쳐져 있어요?”

“응... 아마도...? 발을 들인 순간 살짝 위화감이 느껴졌어.”

“마법이라...”

하기야... 유독 이 수목원만 건조한 모래바람이 끊이질 않는 유적에서 모래에 뒤덮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온도 서늘하고, 습도도 높다.

더군다나 수목원의 경계면을 잘 살펴보니 모래 구름이 침투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장막을 이룬 걸로 보아...

‘결계인가...’

그래도 아무런 이상 없이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걸로 봐서는 침입자를 차단하는 종류는 아닌 모양. 아마 온도나 습도 같은 걸 유지하기 위한 거겠지.

아리엘이 빛나는 눈동자로 수목원 입구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렇게나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는 결계라니... 대단해... 지금까지 계속 봐오긴 했지만 고대의 기술력은 정말 엄청나구나...”

“그러게... 근데 네가 쓰는 마법하고는 다른 거야? 그 왜, 너도 빛으로 보호막을 만들 수 있잖아.”

그것 덕분에 위기를 넘긴 적도 숱하게 있고.

아리엘이 웃으며 대답했다.

“으음... 그것도 결계의 일종이긴 하지만 조금 달라. 내 건 물리 피해를 경감하는 게 고작인데다가 지속 시간도 짧고 내구성도 약하잖아. 반면에 이건 몇 세기나 유지되어온 데다 습기는 가두고 모래는 걸러내니까. 훨씬 고차원의 마법이야.”

“그래...? 내가 보기에는 다 대단해 보이는데... 안 그래요 니아 님?”

“그러게... 나도 마력을 쓸 수 있긴 한데 아리엘처럼 복잡한 마법은 어림도 없거든. 고작해야 신체 강화가 다야! 게다가 빛 속성 마법은 다루는 사람이 적은 걸로도 유명하고.”

“아 그래요? 어쩐지 모험가 길드 모집 게시판에서도 빛 속성 마법사는 보기 드물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지! 하지만 그거 알아? 굳이 마법사가 아니어도 결계는 쓸 수 있어!”

“네? 그건 또 무슨...”

마법사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복잡한 마법을...

난센스 퀴즈인가?

턱을 짚으며 아리송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라디가 입을 열었다.

“...마도구 말씀하시는 거죠? 어쩌면 그게 이 수목원에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맞아! 라디는 바로 알아듣는구나?”

“마도구? 마도구 중에 결계를 생성할 수 있는 것도 있어?”

“음... 그야 있기는 하지만... 도란님도 마도구가 대충 어떤 건지는 알고 계시죠?”

“뭐... 나도 그 정도는 알지. 마석을 가공해서 저장된 마법을 쉽게 발동할 수 있게 만든 거잖아. 우리가 골렘을 쓰러뜨리고 얻은 핵처럼.”

광산에서 채굴해 낸 마석에 담긴 마력을 다 쓰면 공(?)마석으로 변하는데 이를 모험가 사이에서는 깡통이나 짱돌 등의 은어로 부른다.

이에 내부 혹은 외부에 마법진을 새기고 마력을 불어넣어 특정 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마도구.

하지만 마나 용량이 큰 공마석은 몹시 비싸 가끔은 일반 마석일 때보다도 높은 가격대가 붙을 때도 있는 데다가, 마력을 주입해 마석 내부에 저장하는 절차도 쉽지 않기에 돈이 썩어나는 하이랭커나 대부호가 아니면 영 손을 데기가 어려운 물건이다.

물론 대중화된 마도구의 일종인 마석등의 경우 빛 마석을 사용해 중간 과정을 대폭 생략시켜 단가를 낮췄다던가, 즉석에서 마력을 불어넣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버전이 존재하는 등 마도구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라디가 검지를 세우며 첨언했다.

“말씀드렸듯이 마도구 중에 결계를 생성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대신 가격이 살인적으로 비싸요. 범위가 넓고, 효과가 뛰어날수록 금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요.”

“맞아, 그리고 효과도 제각각인데 내 마법처럼 잠시 물리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도 있고, 마법 차단부터 금속 감지까지 종류가 다양해! 심지어 타인의 인식을 방해하는 결계도 있고.”

“인식 방해...? 그건 뭐야? 투명인간이라도 만들어 준다는 거야?”

나머지 효과는 대충 알겠는데 인식 방해라고 하니 잘 와닿지가 않는다.

내 팔뚝을 잡아당기며 채근하는 란이를 다독이며 묻자 아리엘이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투명 인간까지는 아닌데... 주변 지형에 맞춰서 위장 효과가 있다나 봐. 결계를 펼쳐 놓으면 멀쩡하던 산림이 나무에 가려진 것처럼 보인다던가... 바위굴이 돌무더기에 막힌 것처럼 보이고...”

“아, 저도 그 얘기 들어봤어요! 그 마도구가 아마 몇 년 전에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물건일 텐데... 무려 왕실에서 직접 나서서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해간 까닭에 모험가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화제였든요!”

“뭐야, 그런 게 있어? 고대 유적에 와 있는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걸 발견한 사람은 엄청나게 횡재했겠네... 지금 그 마도구는 어디에 있는데?”

“음... 저도 이후 소식은 못 들었는데... 아마 왕궁의 고위 기사나 S랭크 모험가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래? S랭크라... S랭크...”

뭐,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네!

나는 조금 전 들은 설명을 머릿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목원에 입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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