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45화 (345/375)

〈 345화 〉 여왕의 안치실 #3

* * *

[345] 여왕의 안치실 #3

“큰일났네...”

문제가 발생했다.

배가 움직이질 않는다.

“...라디야, 이전에 우리가 여왕의 묘실까지 도달했을 땐 어떻게 했지?”

“그야 그때는... 저희가 올라타고 나서 저절로 배가 움직였죠.”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리네.”

난감하게 라디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일행들이 전부 갑판에 올라탄 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배가 이동을 개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탓.

갑판을 둘러보며 고심하자 일행들도 하나둘씩 위화감을 감지하고 몰려들었다.

“으음... 도란,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 왜 그런 표정으로...”

“...곤란한 일이 있으십니까?”

­됴란...?

“....”

나는 그녀들을 돌아보며 솔직히 대답했다.

“...그래, 원래라면 우리가 올라타고 조금 지났을 때 배가 저절로 움직여야 하는데 요지부동이야. 선체가 멀쩡한 걸 보니 그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은데...”

“움직이다니...? 그럼 정말로 이 배가 하늘을 날기라도 한다는 거야...?”

“네, 맞아요.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 잘 모르지만, 도란님하고 말톤님은 정말 장엄하고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이라고 여러 번 회자하셨을 정도니 다른 분들도 꼭 보셨으면 했는데...”

“으음... 그런 게 있었구나...”

­됴란...

모두가 난망한 기색으로 배를 둘러보던 차, 조용히 대화를 경청하던 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혹시 동력원이 바닥난 건 아닐까?”

“...동력원이요?”

“응! 사람도 밥을 먹어야 힘을 낼 수 있잖아! 혹시 저번에 도란이랑 라디가 타고 난 뒤로 연료가 떨어진 건 아닐까 해서.”

“....”

그야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연료의 유무를... 어떻게 확인하지?”

“음... 한번 선체 아래로 가보는 건 어때? 하늘을 나는 배라면 마법이 걸려있을 텐데 혹시 마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한번 선체 아래를 수색해봐야겠네.. 여기선 내가 후딱 갔다 올 테니...”

“같이 가 소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며 심심하잖아! 혼자 갔다간 아래에서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알았어요.”

나는 천천히 마석등을 꺼내들고 함교로 향했다. 전원부를 조작해 조명을 점등하고 나무 문을 젖히자 제법 널찍한 실내 공간과 안쪽으로 쭉 뻗은 통로가 드러났다.

라디가 쇠뇌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내부도 생각보다 훨씬 잘 되어있네요. 마치 실사용을 염두에 두고 건조한 것처럼... 당장 바다에 띄워도 되겠어요.”

“그러게... 이런 지하에 썩히기는 조금 아까울 정도야. ...어쨌든 이 어딘가에 구동의 핵심이 되는 시설이 있다는 거지? 혹시 이상한 기척은 안 느껴져?”

“으음... 일단 냄새는... 안 나요.”

“저도... 잠잠합니다. 아래쪽에서 살짝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웅웅거리는 소리?”

“예... 다만 생명체의 기척은 아니고 무기질적인 느낌입니다.”

“...일단 주의하는 게 좋겠네. 그렇다면...”

­크샥!

나는 그림자 속에서 개미를 재소환한 뒤 앞서나가 선체 내부를 정찰하도록 지시했다.

삐걱거리는 판자 위를 거닐며 함교를 살피자 다양한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소화기 대용 모래주머니가 완비된 조리실과 해도실, 중후한 원목 원탁이 들이찬 작전실, 선상 전투를 염두에 둔 듯 칼과 방패를 모아둔 무기고까지.

‘...진짜 본격적인데?’

바다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지하 한복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디테일한 내부 시설에 감탄하고는 좌우로 늘어선 방 내부를 기웃거리며 복도를 지나던 중...

­크샤샥!

“오, 뭔가 발견했어? 어디 보자... 계단?”

“...여길 통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나 봐요.”

“으... 어두운 게 꼭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에이... 그래봤자 미라밖에 더 나오겠어? 내가 먼저 내려갈게!”

“앗...!”

채 붙잡기도 전에 니아가 훌쩍 계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나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며 외쳤다.

“정말...! 갑자기 말도 없이 뛰어내리면 위험하잖아요! 만약 함정이 있으면... 아니 왜 그런 눈으로...”

“....”

니아가 미적지근한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귀엽다는 듯이 내 볼살을 붙잡으며 말했다.

“정말...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나 이래 봬도 A랭크야! 까마득한 대선배라구! 이렇게 무시무시한 아무르 표범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다고 그래!”

“그건 그렇지만... 제 앞에선 그냥 덩치 큰 고양이잖아요. 꼬리 만지면 꼼짝도 못 하면서.”

“우우... 그건 그렇지마안... 그게 다 소년의 손놀림이 너무 야해서 그래! 절묘하게 손압을 가하면서 민감한 곳만 건드리니까... 그리고 아무리 수인의 꼬리라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까지 반응하지는 않는다고!”

“뭐... 그렇다고 했었죠.”

“으응...♡”

살짝 속옷 위로 꼬리 근처를 톡톡 두드려주자 니아가 얼굴을 붉혔다.

와락! 내 품에 안겨드는 니아를 쓰다듬어주며 슬금슬금 손을 아래로 뻗자 라디가 계단을 내려오더니 황망한 어조로 말했다.

“...그새를 못 참고.”

“커흠... 그냥 가벼운 스킨쉽이야.”

“정말... 도란은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대낮부터 부끄럽지도 않게... 게다가 실비랑도 뭔가 있었던 것 같고...”

“뭐...? 소, 소년..! 너 혹시 실비도 건드렸어?!”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리엘 너도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 그럼 어서 이곳을 둘러보고 올까나...”

“소년! 내 눈 보고 똑바로 해명해!!”

“으아악!! 내 허리!!!”

나는 황급히 보법을 써서 니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곤 통로 반대편으로 도주했다.

저 멀리서 실비를 추궁하는 니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황급히 숨을 곳을 찾다 보니 이번에도 아래로 난 계단을 하나 발견했다.

재빨리 발소리를 죽이고 내려오자...

“...여긴?”

앞선 두 층과는 달리 몹시 넓은 장소. 복도와 객실로 구성되어 있던 이전 층과는 달리 기둥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탁 트여 있고, 마석등의 창백한 불빛 너머로 드문드문 무쇠 특유의 묵직한 반사광이 내비친다.

처음에는 이 물체들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었으나­

“화포... 전투 물자네요.”

“까, 깜짝이야...! 라디 너 언제 왔어...?”

“방금이요. 그보다 실비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니아 님이 캐물어도 입을 꾹 다문 채 땅만 보고 있던데.”

“아, 아무것도 안 했어...!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서둘러 앞서나가 마석등을 높게 들어올렸다. 라디의 발언대로 눈앞의 무쇠 덩어리가 화포라는 것을 깨닫고 나자 예사롭지 않은 물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검정색 구식 솔리드 포탄을 묶어놓은 그물망과 산탄용 금속 파편. 습기에 젖지 않도록 숯과 소금이 담긴 오크통에 기름을 먹인 천으로 소분해서 넣어둔 화약 등...

‘이건 고대 이집트의 태양의 배 원본에는 없던 시설인데...’

이래서야 이 배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정말로 해상 전투에서 활약할 용도로 만든 배 같지 않은가.

나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화약을 덜어내 깡통에 옮겨담는 라디 곁에 나란히 쪼그렸다.

“...라디야.”

“네?”

“잠깐 상의할 게 있는데 괜찮겠어?”

“잠깐만요. 이것만 좀 마저 담고요. 안 그래도 폭발물 제조는 불법이라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지난번 언데드한테 쓴 뒤로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이 화약이면 양질의 폭탄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거 담는 거 오래 걸려?”

“아뇨, 잠깐이면 돼요.”

“....”

허리를 펴고 일어나 막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대로 더 건질 만한 건 없나 주변을 살펴보고 오려는 차...

‘음...?’

­......

삐져나온 꼬리 탓에 라디의 치마가 살짝 들춰져 있었다.

슬쩍 장난기가 치밀어 조용히 다가가 아래로 손을 뻗자­

“꺄악ㅡ?!”

“....뽀송뽀송한데?”

“그, 그야 아까 남들 안 볼 때 빨리 갈아입었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속바지는 어디 갔는데? 너 치마 입을 땐 항상 안에 속바지 입잖아. ...바지까지 흥건하게 지려버린 거야?”

“그, 그럴 리가...! 아무리 안 젖어도 그대로 입고 있으면 찝찝하잖아요!! 이곳엔 저희밖에 없으니 속바지 없이도 안심이고... 자, 잠깐! 벗기지 마세요!! 코 들이대지도 마시고요!!! 곧 니아 님이 내려올 텐데...!”

“아쉽네 쩝...”

“...요즘 또 부쩍 성욕이 느신 것 같은데..”

“많이 참았잖아. 그리고 난 원래 팔팔했어.”

허리를 끌어안아 라디를 일으켜주었다.

녀석은 탁탁 치마와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읊조렸다.

“그래서... 하시려던 말씀이 뭐였어요?”

“아 맞아, 다름이 아니라 이 배 좀 이상하지 않아? 처음에는 그냥 여왕의 묘실까지만 왕복하는 단순한 이동 수단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내부까지 세세하게 구현돼 있고... 그렇다고 실제로 해상에서 쓰였던 배치고는 물 먹은 곳 하나 없이 너무 깔끔하고...”

“아, 그거 말이죠... 혹시 이 배도 나중에 전쟁에 동원할 생각으로 건조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아까 봤던 마물 석상처럼?”

“네... 아무래도 과거의 도란님은 전란의 시대를 겪었으니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지금의 저희와는 사뭇 달랐을 거예요. 이 배는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상공에서 포탄이나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리는 것만 해도 적에게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을 테고요.”

“...일리 있네.”

그 말은 즉, 분명 지금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해두었을 텐데...

마석등의 밝기를 더욱 올리고 계단으로 향했다. 복합 층으로 구성된 갤리선의 노실을 지나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자 발밑으로 전해지던 진동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도란님.”

“그래...”

이 아래에 뭔가 있다.

차가운 백색광이 옆얼굴에 드리워 사뭇 진지해 보이는 라디와 나란히 선체를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계단이 끊기고 도르래 달린 굳건한 철문이 나왔다.

아마도 이곳이 이 범선의 핵심, 비행의 비밀이 담겨 있는 중추 시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도르래를 당기고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문을 젖히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