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여왕의 안치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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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여왕의 안치실 #7
여왕의 묘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방 전체를 가득 메운 황금이었다.
“세상에...”
온통 황금으로 도배된 공간. 찬란하면서도 정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내부. 천장을 번쩍번쩍 수놓은 보석 촛대와 물감에 백금을 녹여 두른 듯 오색영롱한 벽화들.
고대의 유적이라 하면 응당 있어야 할 보물이 전부 어디 갔나 했더니 이곳에 모여있었던 모양.
황금과 귀금속의 절묘한 안배 덕에 화려하되 천박하지 않고,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시야를 현혹했다.
마치 햇빛이 비쳐드는 프리즘 내부에 들어와 있는 듯한 광경.
그리고 묘실의 중심, 아름다운 경관 사이에서도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 물체가 있었으니...
“저게 바로...”
“.....”
여왕의 관.
긴 여정의 끝이 이곳에 있었다.
싱싱한 생기가 맺힌 붉은 꽃잎에 둘러싸인 황금 관. 먼지 하나 없이 정결한 표면.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자칫 불가사의한 인상마저 느껴지는 외관.
수많은 보석 촛대의 오색찬란한 광휘가 모여 관을 무지갯빛으로 수놓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조광이 내리깔린 성당처럼 거룩한 존재감에 미온한 공기에서 은은한 방향이 풍기고 실내의 온도가 따스하게 올라가는 걸 느꼈다.
온갖 신비가 집약된 방.
한데...
“저건... 잡동사니...?”
묘실 한구석,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색바랜 미스릴 건틀릿, 효력을 잃은 수정구, 개과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금니와 둥그런 아다만티움제 탄환.
이외에도 향수가 담겨 있었을 걸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유리병과 마계 대륙에서만 자라 죽은 이의 명복을 기원한다는 희귀 꽃의 표본 등.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지만, 어렴풋한 손때가 묻어나오는 걸로 보아 새 물건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듯한...
“각자 소중한 물건을 하나씩 부장한 건가 봐요... 명복을 빌기 위해...”
“...그런가 보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묘실 곳곳에 잔재한 흔적. 귀중한 부장품이나 애환이 담긴 그림으로 보아 과거의 이들이 여왕을 얼마나 애중하게 생각했을지 전해져온다.
우리의 과거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엄습한다.
한데 그림과 부장품을 둘러보던 도중, 문뜩 아리엘이 턱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뭐가?”
“아니, 저 부장품 말이야. 다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왜 도란의 물건이 안 보이지?”
“응...? 듣고 보니...”
“건틀릿은 니아 님이고 수정구는 아리엘 언니, 저 병은 제 거라고 하더라도... 도란님의 부장품으로 추정되는 게 안 보이는데...”
“으음... 소년이 남길 만한 건 칼이나 단검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 그러게 왜 없지?”
“.....”
아마 저 안에 있지 않을까.
나는 묘실 정중앙에 놓인 관을 응시했다. 그간의 모든 의문을 해소해줄 열쇠가 담긴 황금 관을.
진실을 깨닫는다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는 바, 솔직히 여기서 더 나아간다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물러설 수는 없다.
“...잠깐 다들 나가 있어 줄 수 있겠어?”
“네...? 갑자기 왜...”
“이제 관을 열어볼 거야. 혹시라도 놀랄 수 있으니까 너희는 안 봤으면 해. ...실비는 여기 남고.”
“...알겠습니다.
“....”
라디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기색이었으나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리엘과 니아의 등을 떠밀며 묘실 밖으로 향했다.
“...이따가 제대로 말씀해주세요.”
“그래.”
“.....”
그녀들이 조용히 문을 나서자 나는 묘실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을 열기 전, 실비를 바라보며 고했다.
“...준비됐어?”
“예...”
“그래, 그럼 반대편 뚜껑 좀 잡아줘. 하나 둘 셋 하면 힘을 줘서 오른쪽으로 젖힐 거야. ...알았지?”
...끄덕.
“그래... 그럼 연다. 하나... 둘..”
셋.
우리는 천천히 관뚜껑을 열었고,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여왕의 옥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
도란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묘실 입구에서 서성이던 라디는 도란이 나온 걸 깨닫자마자 서둘러 달려와 그의 안색을 확인했다.
의외로 담담한 도란의 태도에 놀라며, 라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은 것이 함축된 말.
“...어떻게 됐어요?”
“.....”
“.....”
“....”
“....편안하게 잘 자고 있더라.”
마치 방금 잠든 사람처럼.
도란은 씁쓰름한 미소를 지으며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된 여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실비와 똑 닮은 소녀가 평온하게 미소지은 채 꽃잎 속에 누워있던 광경을.
연꽃처럼 살포시 덮인 눈꺼풀과 윤기가 맴도는 콧방울, 살짝 불그스름한 생기가 뛰노는 뺨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여왕의 옥체는 너무나 평안해 보여서, 그저 잠시 단잠에 빠져든 게 아닐까 싶었다.
도란이 뒤따라 달려온 아리엘과 니아를 응시하며 미소짓자 라디는 문뜩 그의 손에 묘실로 들어설 때는 없었던 물체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란님...? 손에 그건... 설마..”
“...그래. 내 부장품. 과거의 내가 여왕, 아니 실비한테 주었던 선물이야. 관 안에 놓여 있더라고.”
“아... 그래서 그때 여왕이...”
토끼.
도란의 손에는 토끼의 모습을 본뜬 봉제 인형이 들려있었다.
라디는 그제야 왜 여왕이 토끼의 모습으로 일행 앞에 나타났었는지 깨달았다.
아마 도란이 자신과의 지난날을 조금은 떠올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영겁의 시간이 흐를 동안 우리와 재회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왔을 여왕과는 달리, 자신들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라디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자 아리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도란을 끌어안았다.
“수고했어 도란... 실비도 고생 많았고... 근데 혹시 관 안에 다른 물건은 없었어...?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만한 것이라던가...”
“있었어.”
“아, 그래...? 아쉽네... 뭐? 있었다고...?”
“그래, 옛날 언어라 알아보기 힘들지만 실비의 일기장이 함께 있었거든.”
“그렇다면 정말로...”
“...그래.”
도란이 실비와 시선을 맞춰 동의를 구했다.
실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슬픔이 묻어나오는 눈길로 모두를 둘러보고는 실비의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전쟁이 있었어.”
“....”
“우리는 꽤 거하게 휘말렸던 것 같아. 우릴 따르던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었거든.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저항군이라 불렀고. 그러니까 그때의 상황이 적힌 일기 중 일부를 그대로 읽어주자면...”
년 6월 11일. 날씨 맑음. 오늘도 소규모 전투가 있었다. 기습을 당해 하마터면 고지를 빼앗길 뻔했다. 이겨서 다행이지만 만약 천사가 한 마리라도 섞여 있었더라면 그대로 우리 측 저항군 수백 명이 그대로 몰살당할 뻔했다. 하루 빨리 ▒▒에 대항할 힘을 갖춰야만 한다.
말을 마친 뒤, 도란이 실비의 일기장을 펼쳐서 보여주자 니아가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뭔가... 생소한 문자네... 현대의 언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저항군...? 게다가 저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그렇다는 건 분명 거대한 공적이 있었다는 뜻인데... 혹시 상대가 누구였는지도 적혀 있었나요?”
라디가 의문을 표하자 도란이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한 건지 글씨가 지워져 있었어.”
“...그럼 일단 계속해 주세요. 그 뒤로 저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죠?”
“....”
도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예상했다시피 우리의 끝이 좋지는 못했어. 저항은 실패로 돌아갔고, 도중에 희생자가 나왔어. 그리고... 실비는 그중 첫 번째였던 것 같아.”
“죽었... 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바로 사절한 건 아니고 일기의 내용으로 봐서는 저주에 걸린 모양이야.”
년 8월 17일. 당했다. 제기랄... 내 실책이다. 주둔지 뒤쪽 구릉을 정찰하다 바위 밑에서 잠복하고 있던 독사에게 발목을 물리고 말았다. 내가 적의 기척을 놓칠 리가 없는데... 절대 평범한 마물이 아니다. 즉시 해독제를 투약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라디 언니도 이런 독은 처음 본다고 했다. 분명 ▒▒가 술수를 쓴 거겠지... 년 8월 18일. 나는 죽는다. 도란과 함께 신전에 찾아갔더니 정확히 일 년 뒤에 죽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서서히 약해지다가 면역체계가 무너지고, 사지가 돌처럼 굳다가 끝내는 숨을 거두게 되는 흉악한 저주라고 한다. 대사제의 해주로도 풀 수 없는, 연옥에서나 서식하는 끔찍한 뱀이 남긴 저주란다. 왜 그런 게 나한테 찾아온 걸까. 도란은 사제장의 얘기를 듣자 절박한 표정으로 신전을 뛰쳐나갔다. 나는 정말로 죽는 걸까...? 당장은 실감이 안 난다. 년 8월 25일.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던 도란이 마침내 돌아왔다. 들어보니 여러 왕국을 돌면서 온갖 희귀 성수와 약을 수소문해서 구해온 모양이다. 옷차림도 꾀죄죄하고 눈가에 피로가 잔뜩 쌓인 걸 보니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다.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 없는데... 도란이 준 약은 모두 마셨다. 엄청 쓰지만... 전부 도란이 날 위해 구해다 준 거니까! 년 8월 28일. 약을 마시고 시간이 흘렀는데도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란이 괜찮을 거라 말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는 게 보였다. 도란은 내게 줄 게 있다며 잠깐 막사에 다녀왔다. 새로운 약일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약 대신 내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내가 없을 때면 이 토끼 인형을 자기처럼 생각해달라며... 년 9월 15일. 병상에서 쉬라는 도란의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까지나 동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잘 걸을 수는 없지만, 늑대 타로의 등에 타면 정찰쯤은 거뜬하다. 항상 해왔던 일이니까! 그런데 오늘은 바위산 지대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감지했다. 마치 새끼 마물이 끙끙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하자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새끼 히드라와 키메라가 바위굴에서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굶어 죽거나 산미치광이한테 잡아먹힐 텐데... 이 녀석들도 나처럼 죽는 걸까. 년 9월 18일. 대박이다! 히드라와 키메라를 몰래 막사로 데리고 와서 밥을 주다가 도란에게 들켰다. 대판 혼날 줄 알았는데 도란은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키워도 된다고 허락해줬다! 게다가 이대로 가다간 얼마 안 가 몸집이 집채보다도 커다래질 거라면서 내 천막 옆에 손수 나무집까지 지어줬다. 역시 도란은 너무 상냥해~! 이제 정식으로 키울 수 있게 됐으니 이름도 지어줘야지! 무시무시한 히드라와 키메라에게 어울리는 이름으로는... 하일! 미라! 어때? 년 10월 2일. 저주가 더 심해졌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는 게 쉽지 않다. 어제 하루를 통째로 잠들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조금 놀랐다. 이젠 온몸에서 저주가 느껴진다. 전쟁도 격해졌는지, 도란의 얼굴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오늘도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년 10월 16일. 개미가 또 사고를 친 것 같다! 보급 물자를 운송해오던 도중에 육포 한 덩이를 몰래 훔쳐먹은 모양이다. 지금까지 개미가 말썽을 부린 적은 자주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란은 “똑바로 서라 핫산!” “보급품 훔쳐먹지 않는다 핫산!” “가서 일해라 핫산!” 둥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개미를 다그쳤다. 오후가 되자 개미는 내 병상 옆에 육포 덩어리를 두고 사라졌다. 년 11월 7일. 통증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진통제가 없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리엘 언니가 고통이 줄어드는 마법을 걸어주었지만 효과가 없다. 당장에라도 울고 싶지만, 다들 전쟁 때문에 힘든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자 실비야. 년 11월 28일. 내 주신이자 죽음의 신인 안다르 님이 찾아왔다. 그분은 병상에 누워있는 날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더니 내가 먼 훗날 부활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부활이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다만 병실 입구에 기대고 서 있던 도란은 안다르 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년 12월 19일. 병상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그래도 도란이 없을 땐 토끼가 말동무를 해준다. 고마워 토끼야! 년 1월 14일. 아프다. 아파.. 아파... 토끼야... 나 너무 아파... 년 월 일. . . ... ... ... 년 3월 6일. 잠에서 깨어나 있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일기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깨어나 있었던 게 한 달 전이라는 걸 알았다. 오랜만에 내가 일어나자 언니 오빠들이 전부 달려왔다. 다들 많이 울었다. 년 4월 12일. 하늘이 무슨 색인지 까먹었다. 밥을 먹었는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니아 언니가 걱정스럽게 쳐다봐 애써 맛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인 걸 들킨 것 같다. 년 5월 16일. 오늘 도란이 하일이와 미라에게 뭔가 속삭이는 걸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날 지켜 줄 각오가 됐느라고 물었다. 하일이와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큰 계획을 준비 중인 것 같다. 근데... 하일이와 미라가 누구더라...? 년 6월 29일. 목에서 소름끼치는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죽음이 시퍼런 낫을 내 목에 드리운 게 실감된다. 얼른 핏자국을 숨겼는데 병실에 찾아온 카렌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다. 혹시 알아챈 걸까...? 몰랐으면 했는데... 년 7월 14일. 대애박!! 루베리아 언니가 구해다 준 약초를 달여 마셨더니 마법처럼 통증이 싹 가셨다! 마계 대륙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약초라는데...! 비장의 만병통치약인 걸까? 루베리아 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날 끌어안아 주었다. 왜 그래 언니...? 년 7월 19일. 도란이 많이 울었다. 날 끌어안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되뇌었다. 도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 너른 품에 껴안겨서.. 사랑한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데... 사랑해달라 말하 년 7월 25일. 저항군의 정찰 부대를 이끌던 부단장이 날 찾아왔다. 아니, 이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정찰 대장이구나... 우리의 뜻을 믿고 따라와 준 강직한 사람. 그가 내게 한쪽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자신들이 날 지켜줄 거라고. 죽어서까지도.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년 8월 7일. 도란이 날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설렜는데 도란이 돌연 품에서 홍옥을 꺼내들었다. 저거 엄청 귀한 건데...! 무려 드래곤 하트잖아! 근데 분명 ▒▒와의 전투에서 쓰려고 마력을 비축하는 중이라 했을 텐데...? 도란이 홍옥을 높게 들어올리고 주문을 읊자 대지가 사막처럼 변하고, 땅에서 미로가 솟아오르고, 삭막한 모래바람이 불어와 지상을 휩쓸었다. 저런 걸 만들어서 대체 뭐에 쓰려는 걸까? 년 8월 16일. 오늘은 도란하고 데이트하는 날이다!! 이게 얼마 만에 단둘이 데이트냐! 루베리아 언니가 구해다 준 약초 덕에 하나도 아프지 않다! 도란이 어딜 보고 싶냐고 해서 해상 도시 칼리파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곳이고, 비밀을 묻어둔 장소니까! 그렇게 푸르른 바다와 하늘을 만끽하고,
내가 좋아하는 생선도 마음껏 먹고,
손을 맞잡은 채 아름다운 가로수길 아래를 거닐고... 복숭아나무 아래서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고...너무너무 행복하고 꿈만 같은 시간이었어.
그런데 도란 너는 왜 우는 거야...
... ... ... 있잖아 도란. 나 사실 도란하고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었어. 좀 더 함께 이야기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마음껏 사랑을 속삭이고, 도란의 아이를 낳아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아들 딸, 손주 손녀에게 둘러싸여 잠드는... 그런 결말을 맞이하고 싶었어. 그러니 난 다시 태어나도 도란의 아내가 될게. 도란은 날 찾아와줘. 다음 생엔 이룰 수 있게. 고마워. 내게 행복이란 감정을 가르쳐줘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도란.
우리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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