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52화 (352/375)

〈 352화 〉 해일과 메라 그리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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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해일과 메라 그리고... #3

“있잖아 소년~!”

“...말씀하세요.”

“혹시 덥지 않아~? 우리 저기 그늘에서 잠깐 쉬었다가 안 갈래? 잠깐이면 되니깐~”

“안 돼요. 또 무슨 성희롱을 하시려고...”

“왜, 괜찮잖아! 라디랑 아리엘도 다 알면서 보낸 거란 말야!”

“...절대 안 돼요. 지금은 저희만 있는 게 아니라 실비도 있잖아요.”

푸욱 한숨을 내쉬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철두철미한 라디치고는 고의성이 다분해 보이는 실책으로 인해 세 명이서 장을 보러 나온 것이 조금 전.

물 흐르듯 기세에 편승해 실비와 이번 유적 건에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친목이나 다지다 올 셈이었는데.

‘뭐... 그래도 오히려 잘...됐나?’

당연하게도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니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이성이고, 언제나 행복한 기운을 뿜뿜 뿜어내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싫을 리가 없으니까.

또 아직 니아를 비롯해 라디 일행을 어려워하는 실비에게 친해질 자리를 마련해서 나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다 좋은데 문제는­

“.....”

니아가 장난기 다분한 표정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짓더니, 슬쩍 다가와 야릇하게 내 복근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으음... 소년, 그러며언~”

“....?”

“셋이서... 할래?”

“뭐, 뭣...?!”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자 니아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묘한 눈길로 올려다봐왔다.

나는 잠시 지갑을 가지러 간 실비가 주변에 없는 걸 확인하고는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호, 혹시 더위 먹었어요?! 아니면 노래기를 타느라 뇌에 바람이 들어갔다던가!! 어떻게 그런 말을 대놓고...! 지금 저 놀리는 거 맞죠?!”

“웅? 진심인데?”

“네에?! 아, 아니 무슨...! 그러니까 그... 니아 님은 같이 해도 괜찮으신 거예요...? 보통은 독차지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음... 그야 맛있는 걸 혼자 못 먹는 건 아쉽지만...”

니아가 쩝 입맛을 다시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소년도 저택에서 잘 때 라디랑 아리엘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잖아?”

“.....”

“그러니까 어차피 이르든 늦든 실비도 나중에는 같이 잘 거고. 안 그래?”

“뭐... 솔직히 그렇게 될 확률이 높...죠?”

“응, 그러니까 어차피 살을 섞게 될 건데 나 혼자 독차지하겠다고 지금 굴러들어온 기회를 통째로 뻥~ 날려버리는 것도 미련한 짓이잖아.”

“그런... 가요?”

“그래! 게다가 실비는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귀엽고, 똑같은 고양이 수인이라 동질감도 들고, 나한테도 동생 같은 애고...”

“.....”

“대신 넣는 건 내가 먼저. 그것만 지켜줘.”

“....”

...뭘 넣는데요.

방심할 때면 뒤통수를 훅 치고 들어오는 게 누가 표범 수인 아니랄까 봐.

난처하게 시선을 피하자 니아가 내 볼을 쭈욱 잡아당기며 얄궂게 속삭였다.

“그런데 소년도 실비한테 마음이 있긴 한가 봐? 평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바로 일축했을 텐데 잠잠한 걸 보니.”

“....”

이런 데선 또 눈치가 좋아가지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마음이야 당연히 있죠. 여러모로 의식할 수밖에 없는 관계인 데다가 실비는 니아 님처럼 얼굴도 엄청 예쁘고, 마음씨도 곱고, 충성스럽기까지 한데...”

“하긴... 그 덥수룩한 머리칼 아래 저렇게 예쁜 얼굴이 있었을지 누가 알았겠어! 처음엔 완전 야생 소녀 같은 느낌이었는데 점점 순종적으로 변하더니 날이 가면 갈수록 피부도 고와지고, 머리칼에서 반지르르한 윤기도 흐르고! 아, 물론 가슴은 내가 훨씬 크지만...!”

“....”

니아가 키득 장난스러운 웃음 조각을 흘리며 내게 안겨들자 팔뚝에 탄력적인 덩어리가 느껴졌다.

살짝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품에 넣자 니아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그르렁거렸다.

그렇게 잠시 소동이 일단락되는 듯싶었으나­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나랑 소년이랑 실비랑 셋이서. 먹거리를 사 가는 건 조금 늦어도 괜찮잖아.”

“...그거 끝난 이야기 아니었어요?”

“끝나긴 뭘 끝나. 빨리 어떻게 할 건지나 말해. 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소녀들을 마음대로 범할 수 있다니까? 상상해 봐. 실비가 소년 아래 깔려서 주인님... 주인니임... 하면서 얼마나 애절하게 울어댈지 궁금하지 않아?”

“무, 무슨...! 그러니까 그런 상스러운 소리 좀 하지 마세요!! 혹시 실비가 들으면 어쩌려고요!”

“뭐, 어때. 걔도 다 큰 성인인데. ...그리고 실비도 이미 소년한테 푹 빠진 것 같던데? 아마 지금도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엉덩이 툭툭 두드리면 알아서 벗을...”

“지, 진짜 미친 소리...!! 어어...! 시, 실비 왔어?! 지갑은 잘 찾은 거야?”

황급히 니아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찰나,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호박색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방금 대화를 들은 걸까?

노심초사하며 실비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자­

“...예, 주인님의 로브 안쪽 주머니에 지갑이 들어있었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그래? 감사하긴, 우리가 고맙지... 같이 갔다 왔어도 됐는데...”

“저는 주인님의 노예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심부름을 시킬 만한 일이 있으시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으응... 시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휴...

다행히도 못 들은 모양.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나란들 실비와 니아를 겹쳐놓고 이런저런 행위를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그건 너무 진도가 빠르니까.

안 그래도 머리색 탓에 사람들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실비인데 자칫하다간 지금까지 쌓은 신뢰를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동전 지갑을 건네는 실비를 쓰담쓰담해주고는 막 잡목림을 나와 모험가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하려는 찰나­

­툭.

‘....?’

허리춤에서 미미한 장력이 느껴졌다.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고 내려다보자 실비가 살짝 달그레한 뺨으로 입을 열었다.

“...니다.”

“뭐...?”

“....비가 되어있습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실비야. 좀만 더 크게 말해줄 수...”

“...전 언제든 주인님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뭐, 뭐?! 너 우리가 하는 말 들었어!? 아, 아니 그보다...”

나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봐 실실 웃는 니아 외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무릎을 굽혀 실비와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실비야, 너도 이번에 일기를 보고 알았겠지만... 우리는 상하 관계가 아니야. 오히려 대등한 관계를 넘어서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 눈치를 봐 가면서 복종할 필요는... 실비야?”

“....”

“...그냥 실비도 하고 싶은 거 아냐?”

“그, 그럴 리가요! 니아 님은 좀 잠자코 있어 보세요!! 우리 실비는 니아 님이랑 달리 아직 순수하단 말이에요! 그, 그렇지 실비야...?”

“.....”

“거 봐, 아무 말 없잖아. 내 말이 맞지?”

“니아 님이 있으니까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잖아요!!”

제기랄.

황급히 손을 내저어 대화를 불식시키고 걸어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니아의 페이스에 또 말려들 게 분명하니까.

싱그럽게 웃으며 뒷짐을 지고 살랑살랑 쫓아오는 니아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는 실비를 데리고 개활지로 나오자 전방에서 폭포의 어렴풋한 물 향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벌써 다들 일어났나 보네...’

찌그러진 냄비에 갖가지 재료를 집어넣어 스튜를 끓이고, 꿀벌처럼 텐트를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교환하고, 짐을 챙기며 분주하게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사람들.

절벽 위, 야영지에는 던전에서의 아침을 맞이하는 모험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후드 너머로 따스한 발광 이끼의 조광을 받으며 걷자 니아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외쳤다.

“소년! 저기 봐!! 신기한 먹거리가 잔뜩 있어!! 저거 파는 거겠지?! 저거 파는 거지!?”

“뭐... 그렇지 않을까요? 보니깐 드문드문 상단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경쟁이 적어서 암시장보다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아예 이쪽에서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나 봐요.”

“빨리 가자 소년!! 나 뱃가죽이 등에 붙을 거 같아!”

“알았으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그럼... 실비야, 우리도 갈까?”

“네, 알겠습니다.”

실비의 등을 다독이고 모험가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혹여나 바람에 젖혀지지 않도록 후드를 붙잡은 채 니아에게 이끌려 주변을 둘러보자 다양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대낮부터 누가누가 더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리나 판돈을 걸고 내기하는 사내들, 무장을 손질하는 척 은근슬쩍 유명 대장간의 인장이 찍힌 장비를 과시하는 남성, 자신이 잡은 몬스터의 소재를 수레에 싣고 무용담을 떠벌거리는 허풍쟁이 모험가 등...

나는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도록 로브 안쪽 깊숙이 넣어둔 지갑의 감촉을 의식하며 말했다.

“자, 돈은 충분하니까 둘러보다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실비 너도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하고. ...그리고 니아 님도 후드 잘 눌러 쓰세요.”

“웅? 나는 왜?”

“니아 님이 여기 계신 게 알려지면 또 모험가들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질 거 아니에요. 이 던전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니까... 니아 님은 좀 더 자신의 인기를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으음... 난 오히려 더 나서서 자랑하고 싶은데...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다! 어때?! 하고...”

“....조금만 지나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게 해드릴 테니 지금은 참으세요.”

조만간 내가 붉은 매 길드와 담판을 지을 테니까.

나는 살며시 니아와 손을 맞잡았다.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한가롭게 장터를 둘러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사이를 거닐며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꼬치구이와 소시지 따위에 현혹되어 군침을 삼키고 있자니 위장이 폭력적으로 요동친다.

한데...

“니아 님...? 괜찮으세요?”

방금까지 그렇게나 노래를 부를 땐 언제고 막상 음식 앞에 서니 빤히 고기를 쳐다보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다시 한번 바라보다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애꿎은 팔뚝만 문지르는 니아.

수목원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와 비슷한 상황, 아니 그 이후로 밥을 먹을 때마다 거의 매번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던가.

체중 감량이라도 하는 걸까?

“...혹시 다이어트 하세요? 니아 님은 지금도 엄청 날씬하고 활동량도 많으니 좀 더 드셔도 되는데...”

“아, 아니 다이어트 같은 게 아니라... 으으... 됐어. 난 냄새만 맡는 걸로 충분해. 실비랑 둘이서 많이 먹어.”

“그러지 말고 좀 드세요. 뭔지는 몰라도 그러다 속 상할라. 아저씨, 이거 파는 거죠? 잘 익은 놈으로 꼬치구이 세 개만 줘보시겠어요?”

“그래, 하나당 3페니야.”

“네, 여기요.”

상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꼬치를 건네받았다. 새 개중 하나는 실비에게 건네고 다른 하나를 니아에게 억지로 쥐여주자 그녀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꼬치를 받아들었다.

니아는 한참이고 꼬치를 응시하다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물더니...

“으음?!! 우, 우와...!! 이, 이거 엄청 맛있어!! 소금간하고 뭔가 매콤한 소스가 적절하게 배어있어서... 소년도 먹어봐!!”

“맛있죠? 그러니까 왜 어울리지도 않게 자제하셔서... 니아 님은 원래 복스럽게 먹는 게 매력이었잖아요.”

“으으... 다 소년 때문이거든...? 그럼 오늘 군것질은 여기서 끝! 다른 거 둘러보러 가자!! 저기서 뭔가 재밌는 걸 하려나 본데...!”

“자, 잠깐...! 아직 더 있는데! 같이 가요!!”

나는 당황한 눈길로 황급히 니아를 뒤쫓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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