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56화 (356/375)

〈 356화 〉 해일과 메라 그리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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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해일과 메라 그리고... #7

“아, 소년! 저기 아냐?! 저어기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어디 보자... 맞는 것 같은데요? 어렴풋하게 동굴 같은 것도 보이고...”

“빨리 가보자! 엄청 궁금해!!”

“알았으니까 보채지 마세요. 라디야, 저기까지만 가면 되는데 할 수 있겠어? 힘들면 내가 업어줄...”

“으으... 도란님이나 보채지 마세요.”

라디가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사슴처럼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줄다리를 건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새어나온다.

우리의 고양잇과 수인 한 명은 태평하다 못해 흥분한 기색이고, 아리엘과 실비마저 여유롭게 경치를 감상하며 다리를 걷는 것에 비하면 몹시도 대조되는 광경.

슬쩍 다가가 넌지시 속삭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업힐래? 눈 감고 있으면 후딱이잖아.”

“...안 돼요. 그랬다간 하중이 집중돼서 더 위험하잖아요.”

“괜찮다니까. 혹여나 도중에 떨어져도 덩굴을 소환해서 다시 올라오면 되니까.”

“으으... 이걸 다시 올라온다고요...? 그런 건 절대 사양하아으읏ㅡ?!”

“...거 봐.”

찰나, 라디가 발을 헛디디고 널빤지 사이로 쑥 사라졌다.

다행히 늦지 않게 붙잡아 끌어올려 주자 녀석이 코알라처럼 황급히 내게 안겨들었다.

나는 녀석의 귀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내가 그냥 업히랬지. 그렇게 벌벌 떨면서 걸으면 얼마나 위험한데. 제대로 밑도 못 보면서 사고가 안 나고 배기겠어?”

“으으...”

“그럼 이대로 다리를 건널 테니까 꽉 붙잡고 있어.”

라디를 품에 끌어안은 채 천천히 다리를 건너자 이번엔 녀석도 할 말이 없는 듯 조용히 내게 체중을 실었다.

더 끔찍한 맹독도 아무렇지 않게 다루면서 왜 높은 장소에만 오면 잔뜩 겁을 집어먹는지 모르겠다.

한데...

“...지금 어디로 손을 뻗는 거예요.”

“응? 이 자세로 안으려면 당연히 허벅지를 받칠 수밖에 없잖아. 상식인데?”

“...거긴 허벅지가 아니라... 흐익?!”

“.....”

순간, 라디가 날 힐끗 째려보더니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며 체념한 듯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그러자 니아가 귀를 움찔하고 이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앗!! 소년하고 라디 또 이상한 거 한다!! 나도 할래! 나도!!”

“이상한 거라니... 이건 그냥 라디가 무서워하니까 도와주는 것뿐...”

“으음... 이런 곳에서까지 애정 행각이라니... 도란도 대단하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난처하게 라디의 하반신을 어루만지던 손을 허공에 저으며 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바위섬 중에서도 유독 모험가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장소에 도달하자 나무 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푸드덕거리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큼지막한 석굴을 비추었다.

“...장관이네.”

거수의 거처.

수 세기 전, 마물이 주둥이를 벌린 채 그대로 석화한 듯한 바위굴. 삐죽삐죽 날카로운 암반이 위아래로 돋아있어 동물의 입을 연상케 하는 입구는 상당한 위압감을 선사했고, 동굴의 윗부분은 해묵은 이끼로 잔뜩 뒤덮여 세월의 흐름을 짐작게 했다.

이에 울창하게 돋아난 나무가 더해지자 꼭 열대 정글 속 원시 유적지에 와 있는 기분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완만하게 뻗은 경사를 오르자 관광이라도 온 듯 소란을 피우며 바위굴을 구경하는 모험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오오오!! 여기가 바로 거수가 살던 곳이란 말이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데!?”

“이야... 집도 꼭 무슨 마물처럼 생겼네. 아까부터 까마귀가 머리 위를 맴도는 게 조금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어떤 놈이 살았는지도 알아?”

“아니, 거수는 두세 달쯤 전에 이곳을 떠나서 정확히 모른대. 듣기로는 예상 후보가 여럿 있다던데?”

“뭐? 그럼 이곳이 거수의 거처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큰 동굴일 수도 있잖아?”

“이 근처에서 발자국하고 털을 발견했다나 봐. 그리고 주변에 거수가 지낼 만한 곳이라고는 이 동굴밖에 없으니까 맞겠지.”

“그래? 신통하네... 그건 그렇고 거수의 보물은 어디 있으려나.. 크흐흐...”

모험가들이 횃불을 치켜들고 동굴 안쪽을 샅샅이 수색했다. 입구를 제외한 부분은 막혀 있어 살펴볼 구석이 많지는 않지만, 다들 한 번씩 의례적으로 둘러보는 모양.

한데...

‘이게 거수의 은신처라고?’

뭔가 좀 이상한데...

순간, 뇌리 안쪽으로 파고든 영문 모를 위화감에 미간을 찡그리자 아리엘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로 거수가 살던 곳이구나... 뭐랄까... 엄청 크네...”

“그러게...! 생긴 것도 꼭 이리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크와앙...!! 하고.”

“자연은 정말 신비롭군요... 이런 장소가 존재하다니... 하지만 그 말은 즉, 주인님이 이곳에 살 정도로 거대한 마물과 격전을 벌였다는.... 주인님?”

“.....”

턱을 짚은 채 바위굴을 응시했다.

쿡 쿡 성가시게 구는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해내고자 애쓰던 도중, 불현듯 라디를 돌아보니 녀석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동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라디야, 이거 뭔가...”

“...이상하네요. 네,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해요.”

“그치...?”

턱을 짚으며 사고에 잠겼다.

이 위화감의 정체를 헤아리려면 일단 이곳에 살았던 마물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내야 할 터, 이 동굴의 주인이 저번에 목격했던 세 거수 중 하나라고 가정한다면...

“...일단 두더지는 아니겠네. 걔네는 땅을 파고 사니까. 더군다나 이곳 아래에는 급류가 흐르기도 하고...”

두더지는 예상외로 수영을 몹시 잘하는 동물이지만, 보통 이런 동굴보단 흙 속에 굴을 만들어 사는데다가 이 근방에는 놈이 팠을 법한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후보는 멧돼지나 늑대란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멧돼지는 아니겠지...’

내 기억에 놈은 저돌적이고 묵직하지만, 날렵하지는 않았다.

즉 이 바위섬 지형을 자유롭게 뛰어넘어 다니기엔 무리라는 말.

그렇다면 역시 남은 가능성은...

“늑대... 늑대가 이곳에 살았겠네. 그런 괴물이 흔하게 널린 것도 아니니까 만에 하나 다른 거수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늑대.

내가 본 늑대는 이 동굴보다 더 거대했다.

굳이 낑겨넣는다면 못 들어갈 덩치는 아니지만... 뭐랄까, 오연하고 거만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비좁은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멧돼지랑 두더지가 도적들을 휩쓸 때도 느긋하게 내려다보기만 했으니.

‘뭔가... 고독하고 사연이 많은 듯한 느낌이었지...’

아무래도 근처에 발자국이 발견돼서 이곳이 거수가 거처하던 곳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은 모양인데...

모험가들은 놈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이 중에서 오직 나와 라디만이, 놈을 실제로 목격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자 라디가 의구심 섞인 푸른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도란님... 정말로 이 바위굴이 그 늑대가 살던 곳이 맞을까요...?”

“....잘 모르겠어.”

“뭐...? 이곳이 거수가 살던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아니, 그렇게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리엘이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자 나는 턱에서 손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어딘가 있을 거다.

이곳에 놈이 살지 않았다는 단서가.

“아마... 이곳은 거수의 진짜 거처가 아닐 거야. ...우선 주변에 이 나무들 보여?”

“나무...? 이게 왜?”

“울창하지? 정말로 거수가 최근까지 드나들었으면 이 중 몇 그루는 부러지거나 듬성듬성 비어 있거나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잖아. 반면에 우리가 오면서 봐왔던 나무 중에는 부러지거나 휜 녀석이 있었고.”

“아...! 맞아! 분명 그랬어! 말마따나 나도 뭔가 살짝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래, 만약 고양잇과 마물이었다면 살금살금 나무를 피해 가든가 했을 텐데 늑대는 다르니까. 게다가 최근에 찍힌 발자국도 안 보이고...”

“우음... 그렇네... 하지만 그 정도로 이 동굴이 거수가 살던 곳이 아니라고 확정하기엔 살짝 모자라지 않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저거 보이세요?”

“응? 어디?”

“저기 바위굴 입구에 난 뾰족뾰족한 돌기 말이에요.”

굴 어귀, 위아래로 돌출된 석암을 가리키자 니아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음... 왠지 1계층하고 2계층을 이어주던 통로 입구랑 비슷한 느낌이네... 이건 그때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맞아요. 그리고 일반 늑대가 성장을 거듭해서 거수가 되려면 최소 수백 살은 먹어야 할 텐데 그렇게 오랫동안 들락날락한 것치고는 마모된 흔적이 없다시피 하잖아요. 물론 이곳을 거처로 삼은 지 얼마 안 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우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봤던 늑대는 이 동굴보다 훨씬 커다랬거든요. 멧돼지와 두더지보다도 한 체급 정도 차이 났을 정도니...”

어쩌면 이곳에서 살았으나, 덩치가 커지고 난 이후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최근까지 살던 진짜 거처는 따로 있다는 말.

하지만 이 근방에서 발자국이나 꺾인 나무 따위가 발견될뿐더러, 저번에 나가의 심장을 썼을 때도 바로 반응해서 온 걸 보면 진짜 은신처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은데...

어디지...?

“...주인님, 무얼 고민하시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거수의 진짜 거처 말이야. 아마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상항을 잘 되짚어 보는 건 어때? 혹시 뭔가를 깜빡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되짚어 본다라... 알았어. 그러니까 그때 분명...”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잘 떠올려 보자면, 나와 라디는 도적의 급습으로부터 큰 화상을 입은 말톤을 바위 뒤에 숨기고 시간을 끌 방법을 모색했었다.

그러다가 떠올린 것이 유인제 효과가 있는 나가의 심장 분말을 이용해 마물을 끌어들여 도적을 소탕하고 도망칠 시간을 번다는 작전이었고.

그래서 숲 앞까지 도달해 냄새가 잘 퍼지도록 내 혈흔 웅덩이를 매개체로 분말을 사용했는데...

‘그러고 보니...’

놈은 후각으로 내가 자신을 불러냈다는 걸 알아챘었다.

그 혼란한 전장 속에선 나와 눈이 딱 마주쳤을 정도니.

하지만 놈은 나를 헤치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내 행동을 주시했고.

드높은 암반 위에서 은은한 달빛을 등에 업은 채로.

잠깐.

그러고 보니 멧돼지와 두더지가 숲속에서 나타날 때 늑대 혼자만 절벽 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가...?

혹시 그 사소한 행동에도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면...

“설마...?”

문뜩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까마귀가 배회하는 상공 너머, 높게 불거진 바위산이 눈에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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