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0화 〉 휴식 #3
* * *
[360] 휴식 #3
“안 돼.”
“네?”
“당연히 안 되지. 그렇게 대뜸 달라고 하면 넙죽 내줄 줄 알았어?”
“아니 그래도 조금 고민하는 척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고민하는 척 정도는...!”
“저얼대 안 돼.”
“.....”
쳇...
속으로 혀를 차자 아니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깃펜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다.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서는 전략으로 협상하는 사람은 종종 봤어도 너처럼 냅다 지르고 보는 놈은 처음 보네... 애초에 네 요구 사항이 정확하게 뭔데. 니아를 우리 길드에서 빼내고 싶다는 거야 뭐야.”
“....”
나는 완만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니아 님이 길드를 탈퇴하지 않고 저와 함께 단독으로 활동할 권리를 갖는 거예요. 붉은 매처럼 대형 길드면 굳이 일선에 나서서 전투를 벌이는 것 외에도 길드의 위상을 높일 방법이 많으니까요. 아니스 님도 전해 들은 모양이지만, 이번에 저희가 활약했던 영주성 건처럼요.”
“예상했겠지만, 안 돼. 니아는 우리 길드에서 공동 전위 역할을 맡은 소중한 전력이야. 백번 양보해서 디론 같은 후방 화력 보조 역할이면 참작할 여지가 있지만 니아는 절대 안 돼. 파티에서 전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도란 너도 알잖아?”
“영구적인 권한이 아니라 몇 년, 아니면 반년이라도 경과를 보고 판단하는 거는 어때요? 아니면 휴가를 내고 잠시 활동을 중단하는 것도요.”
아니스처럼 긴 수명을 전제로 살아가는 하이랭커에게 그 정도 기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
“모두 기각이야. 나는 이미 니아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줬고, 너희는 보란 듯이 약속된 기한을 어겼어. 이미 신뢰를 저버린 상황에서 내가 뭘 믿고 그렇게 긴 유예 기간을 주겠어?”
“.....”
“그리고 하이랭커의 몸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하물며 지금은 한창 임무에 집중해야 할 시기고, 곧 신규 계층 탐색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고작 치정 때문에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건 너도 바라지 않을 텐데. 만약 니아의 빈자리 때문에 사상자가 나오면 녀석의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아니스가 두 손을 모아 턱을 괸 채 날카로운 눈매로 쳐다봐왔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공방. 절대로 니아를 내주지 않겠다는 완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붉은 입술에 맴도는 묘한 웃음기로 보아 분명 노림수가 있는데...
“...그럼 아니스 님이 원하는 건 뭐죠? 아까부터 이쪽의 요구 사항을 전부 거절하기만 할 뿐 아무 의견도 안 내놓고 있잖아요. 아니스 님도 무작정 절 니아 님과 떨어뜨려 놓으려는 의도는 아니실 텐데요.”
“당연하지. 난 니아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니아의 행복에는 네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말인데.”
아니스가 보는 사람을 절로 매료시킬 듯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되잖아. 유명 길드에 속해서 활동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지는 내가 선물해준 길드 패를 쓰면서 지겹도록 느꼈을 텐데. 대우도 잘해줄 테고, 몇 주 정도는 니아랑 오붓하게 지낼 수 있게 휴가도 줄 테니까 어때?”
“제가 붉은 매 길드에 말입니까?”
“그래, 이미 전 길드원한테 이야기해놨고,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도록 모든 수속과 절차도 전부 마쳐놨어. 네가 해야 할 건 그저 알겠다고 말만 하면 돼. 우리 길드 전투원은 최소 12명. 니아가 빠지는 게 곤란하다면 네가 추가로 들어오면 되니까.”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군요. 니아 님의 휴가를 승낙하셨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제게 보내신 거였어요.”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스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깃펜으로 입가를 가렸다.
이는 그녀가 날 포섭하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해둔 덫일 터.
니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콤한 미끼가 된 거고.
하지만...
‘그야 그렇겠지...’
나는 속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스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건 예상했다.
과거에도 길드 패를 양도해주며 입단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고, 내가 한차례 거절한 이후에도 계속 권유할 거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했으니까.
그간 나도 허투루 허송세월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살며시 입가를 가린 손등에 속내를 숨기고, 고뇌하는 듯한 표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니스 님은... 어떻게든 정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길드 전투윈의 최소 인원인 12명을.”
“맞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12명 미만으로 내려가면 안 되나요?”
“그래, 열둘이 우리 파티를 안정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최적의 숫자거든. 그 미만으로 내려가면 왕실 의뢰로 강대한 마물을 토벌하거나 미답사 지역을 답파할 때 지장이 생겨. 물론 너 하나쯤 추가로 오는 건 상관없고.”
“...알았어요. 제가 진 것 같네요. 정 그렇다면 저도 붉은 매 길드의 일원이 되는 걸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도란. 넌 분명 최고의 선택을 한...”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뭔데, 말해봐! 들어보고 가능한 거면 내 역량 내에서 뭐든 들어줄게!”
아니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벌렸다.
승리의 미소가 아른거리는, 방심이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
화창한 여름날의 호수처럼 단 한 점의 의심조차 없는 웃음에 나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돌을 던졌다.
“니아를 길드에서 끌어내고 제가 붉은 매 길드원이 되겠습니다.”
*
“...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알아?”
“물론이죠. 12명만 채우면 된다면서요. 저는 니아 님을 대신해서 전위 역할을 맡을 수 있고요.”
“야, 너... 그게 내 앞에서 할 소리야? 뒈지고 싶어 환장했어?”
콰드득...!
다섯 손가락이 파고든 원목 테이블에서 불길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핏빛 눈동자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이 실리고, 누군가 화로를 엎지르기라도 한 듯 붉은 노기가 남실거렸다.
나름대로 호의의 표현이었을 그녀의 제안에 응하는 척하면서 주제넘게 금기 중의 금기인 니아의 길드 탈퇴를 거론했으니 그럴 만도 할 터.
공작가 혈통의 진노를 한 몸에 뒤집어쓰고 있자니 피부를 둘러싼 공기가 뜨겁게 타오르고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졌다.
근데 말이죠.
저는 그 안디라 님과도 독대했던 사람이거든요?
이외에도 수백에 육박하는 기사와 이교도, 정령의 마력 폭풍과 변이체, 상대가 손속을 두긴 했지만 최소 A랭크 이상인 베라스틴의 기사단장 키론 경과도 맞서봤고.
녹록하고 하잘것없던 이전의 내가 아니다.
신념 어린 눈빛으로 당당하게 아니스를 마주 보며 미소짓자 그녀는 우아한 눈썹을 꿈틀하는가 싶더니...
“푸하하하하─!! 푸흐...! 그래, 이거 내가 한 방 먹었네...”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잠시 배를 잡고 웃어젖히더니 귀여운 애완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그래... 사나이가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네가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저번에는 어린 티 풀풀 풍기던 풋내기가 고작 한두 달 사이에 완전히 수컷이 되어서 돌아왔잖아!”
“그래서 제 제안에 대한 대답은 어떻습니까?”
“제안.. 제안이라... 니아를 대신해서 네가 우리 길드원이 되겠다고 한 거 말이지?”
그녀가 미소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안 돼. 네가 탐나기는 하지만 니아와 맞바꿀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어째서죠.”
“단순해. 네가 니아만큼 강하지 않아서야.”
“그래요?”
하지만 그 말은 돌려 말하면 즉.
“....제가 니아 님보다 더 뛰어나게 활약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 된다는 소리네요?”
“...이봐 애송이, 네가 가능할 것 같아? 조금 추켜세워줬다고 기세등등한 모양인데 주제 파악을 좀 해. 니아 걔가 좀 푼수 같아 보이기는 해도 A랭크야. 신출내기 F랭크인 네가 비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그래요? 흐음...”
하지만 이걸 보시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실 텐데.
나는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교섭에 성공하려면 상대가 혹할 만한 미끼를 내보여야 할 터.
여기서 미끼는 나고.
나는 숙성된 샤토 라투르 와인처럼 진국일 거다.
철컥!! 휘리리릭!!
나는 허공에서 흑도를 소환해 손아귀에서 회전시켰다.
이어서 역수로 붙잡은 채 대지를 향해 그대로 찔러넣으며 고했다.
“전개(??).”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우옹───────!!!!
키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세계가 일변했다.
소름끼치는 울음소리. 휘몰아치는 풍압. 해일처럼 지상을 모조리 뒤덮을 기세로 범람하는 칠흑빛 아지랑이.
막사를 고정하던 지주핀들이 탁! 타탁 탁!! 남김없이 뜯겨나간다. 그로서 드러난 밤하늘의 천공에는 굵직하게 일렁이는 식물의 줄기가, 대지에선 노래기가 갑각을 번뜩거리며 솟아오르면, 흉조를 속삭이는 그림자가 발치를 타고 흐르고, 하수도로부터 피어나는 역병처럼 새까만 개미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재앙(災?)이라 불러 마지않을 광경.
당황한 디론이 대궁을 거머쥐고 달려오자 술에 벌겋게 취한 비아투스 어르신과 육감적인 체형의 치유사 누님 등 낯익은 얼굴들이 잠에서 덜 깬 얼굴로 허겁지겁 몰려들었다.
아, 아델 누나도 있네.
어른스러운 인상과는 대조되게도 귀여운 동물 무늬 파자마를 입은 아델에게 눈웃음을 지어주자 그녀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창으로 몸을 가렸다.
“도, 도란...?! 네, 네가 왜 여기에...! 아니스 이건...”
“그때 그 인간 꼬맹이 아니던가?! 유적에서 출토된 술을 가져다주었던...!! 근데 지금 이건...”
“...다들 조용.”
아니스가 서늘하게 손짓해 소란을 진정시켰다.
다가오지 말라 눈빛으로 전하고 나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칼집에서 빠져나온 칼날처럼 차갑고 냉철한...
“이건... 네가 널 7계층 입구에서 구조했을 때 목격했던 능력인가?”
“네, 맞아요.”
“...어떻게 한 거지?”
“권능이에요. 저는 안디라 님에게 축복을 받았거든요.”
“안디라... 안디라라... 도란 너는 대체... 이 능력은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데.”
“그건 밝히기 곤란하네요. 제가 가진 손패를 모두 까발릴 순 없으니까요.”
“...네가 융통할 수 있는 능력은 여기까진가?”
“아뇨. ...란이야.”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수통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막사 근처를 흐르던 개울이 뱀처럼 구부러지며 치솟았다.
란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게 안기는 것과 동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수십 줄기의 수창을 형성해 아니스를 겨냥했다.
물가에선 그 어떤 존재보다도 월등한 전투력을 뽐내는 존재.
좌중 한복판으로부터 아연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건... 하급 운디네...? 하지만 저 마력은...”
“하급이... 아니야...?”
“.....”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잖은 충격에 빠진 사람들. 소란을 듣고 깨어난 길드원이 하나둘씩 늘어남에 따라 술렁이는 목소리 역시 덩달아 커져갔다.
생소한 힘의 편린에 저마다 상황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이대로 끝내도 교섭에서 제법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테지만...
‘...이걸로 끝내면 조금 섭섭하지.’
크샥?
“그래, 불러와.”
“캬캭!!”
사슴뿔 개미가 노래기의 등 위에 올라타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집게를 교차하자 그림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쿵! 묵직하게 내려앉은 마력에 팽팽한 긴장감이 야영지를 휩쓸었고─
프롸라라라라라라라라───!!!!! 크르르르르르르르──!!!
곧 바다에서 솟구치는 유령선처럼 거대한 마물 두 마리가 그림자 속을 질주해 대지에서 솟아올랐다.
히드라와 키메라.
토벌난이도 S등급 마물.
보기보다 순진하고 겁도 많은 두 마물이지만, 녀석들은 까마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포효하고는 힐끔 흰자를 굴려 눈치를 살피고 얌전히 내 발치에 고개를 조아렸다.
해일이와 메라는 사실 내 부하라기보단 실비의 쫄따구지만 원래 부부끼리는 재산을 공유하는 법이니 지금은 조금 써먹어도 되겠지.
한 남자의 입에서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아홉 머리 마물과 거대한 사자는... 히, 히드라와 키메라...? 저런 무지막지한 놈들이 대체 어디서...!”
“그것뿐만이 아니라 저 지네와 개미들도 어, 엄청 세 보이는데... 완전 시꺼매... 무, 무슨 마물이 저래...?”
“.....”
아니스가 기가 차다 못해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두 달 사이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글쎄요... 많은 일이 있긴 했었죠. 근데 붉은 매 길드에서 편의를 봐주니까 확실히 편하기는 편하더라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보란 듯이 품에서 붉은 매 길드 패를 꺼내 새끼손가락으로 빙빙 돌리자 아니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아델이 조용히 다가와 아니스에게 속사였다.
“저기... 아실리,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소년이 왜 히드라와 키메라를 부리고 있어...? 니아는 대체 언제 온 거고.”
“몰라.”
“응...?”
“전번에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호랑이 새끼를 찾았다고. 근데 알고 보니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웬 미친놈이었던 모양인데.”
아니스가 히죽히죽 웃는 날 바라보며 이마를 부여잡더니 푹 한숨을 내쉬고는 피곤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인상적인 능력이긴 하지만... 정령사라면 우리한테도 있어. 생성할 수 있는 소환수나 영역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그리고 겉으로는 화려해도 약한 대상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데나 유용하지 강자를 상대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야.”
“....”
“또 히드라와 키메라가 성장했을 때의 전력이 탐내기는 하지만 둘 다 무지막지하게 발육하는 마물인 만큼 단점도 명확해. 예를 들면 식비가 말도 못 하게 들어간다던가, 도시에서 데리고 다니기 어렵다던가... 즉, 어느 쪽도 니아를 대체할 순 없어.”
“.....”
예리하네...
나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표정을 숨겼다. 짧은 시간 동안 내 능력을 완벽하게 간파해낸 아니스에 혜안에 감탄하며.
녀석들만으로는 니아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런데 저한테는 마지막 손패가 하나 더 남아있는데 말이죠.
촤르륵, 3계층에 오기 전 작성해두었던 양피지를 꺼내 펼치자
돌풍이 엄습했다.
찰나, 수라처럼 아니스의 눈동자가 삼백안으로 좁혀들더니 악귀에게 씌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나 멱살을 붙잡고 발도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개미와 노래기, 해일이와 메라가 날 지키고자 달려들었으나
─────────────!!!!
아니스의 일갈 한 번에 터져나온 마력 폭풍으로 인해 모조리 장외로 날아가 버렸다.
아니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그건 제가 말씀드렸던 조건을 승낙하면 말해드릴...”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여!!!”
시퍼렇게 날 선 곡도가 당장에라도 눈알을 파고들 것처럼 떨렸다.
내가 펼친 양피지에 묘사되어 있던 건 생동감 넘치는 심장과 톱날 그림.
아니스와 같은 가문 사람으로 추정되는 도적단 리더와 그의 부하들이 몸에 새긴 문신이자 붉은 매 길드의 창립 이유.
놈들과 끔찍한 악연이라도 있는 건지 완전히 평정심을 잃은 아니스를 보자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나라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이건 좀 무서운데...
아니, 장난이 아니라 지, 진짜 겁나 무서운데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자니 불현듯 옆에서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가 찾아냈어.”
“뭐...?”
“우리가 찾아냈다고.”
니아가 내게 드리워진 칼날을 손끝으로 천천히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베라스틴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아실리도 들었지? 그곳의 부 기사단장, 위베르라고 불리는 남성이 놈들의 일원이었어. 내가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도망쳤고.
“그게... 사실이야...?”
“응, 건틀릿이 있었으면 한주먹에 때려눕혔을 텐데.. 그러니까 내 건틀릿 뺏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
아니스가 니아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터덜터덜 물러나 머리를 싸매고 바위에 주저앉았다.
머리에 쏠렸던 피가 식으면서 탈력감이 몰려든 모양.
“.....”
많이 지쳐 보이는데 뭐라고 위로라도 한마디 해주는 게 좋을까...?
나는 슬금슬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제 길드 입단은 어떻게 되는 거죠?”
“....”
아니스가 날 죽일 듯한 눈동자로 노려봐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