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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361화 (361/375)

〈 361화 〉 휴식 #4

* * *

[361] 휴식 #4

“일단은 보류.”

“네...? 하지만 이미 말씀드릴 만큼 말씀드렸...”

“알아, 네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알겠어. 한데 우리한테도 생각하고 결단을 내릴 시간이 필요하거든? 조만간 8계층을 탐사하고 난 후에 우리도 슬슬 이 던전을 뜰 거니까 그때까지 네가 하는 걸 보고 맘에 들면 요구를 받아들이는 걸로 할게.”

“네, 뭐 그 정도라면...”

“...야, 도란. 근데 너는 왜 니아 대신 입단하겠다고 한 거야? 니아나 너나 둘 중 하나가 길드에 속해 있으면 자유롭지 못한 건 매한가지잖아.”

“.....”

“...너 뭔가 더 꾸미고 있지.”

“으흠... 글쎄요...?”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아니스는 당장에라도 입술이 맞닿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까이서 날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놈. 진짜 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전엔 순딩순딩하고 귀여워서 놀리는 맛이 있었는데...”

“뭐... 많은 일이 있었죠. 도시 지하로 잠입해서 지겹도록 이교도와 언데드를 퇴치하고, 기사들도 잔뜩 상대하고, 기사단장하고도 한 판 붙고...”

“.....”

“간신히 살아 돌아와서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나 싶었더니 놀러 간 호숫가에서 정령을 줍고, 고블린 킹하고 싸우고, 도시에선 촉수 달린 변이체가 출몰하지를 않나... 안디라 님하고 만났다가 영주성에 쳐들어가서 대판 뒤집어엎고... 아니, 제 인생은 왤케 기구해요? 다른 사람이 평생 겪을 일을 두 달 만에 겪은 느낌인데...”

“...고생했네.”

“고마워요... 아, 그리고 그 톱날 문신을 한 남자에 관한 건 미리 만들어둔 보고서가 있으니까 내일 날이 밝으면 가져다드리든가 할게요. 하킴이라고 그쪽 백부장한테 직접 캐물어서 작성했으니 제법 신뢰도가 높을 거예요.”

씁쓸하게 웃으며 고했다.

아니스는 당장에라도 내게서 보고서를 강탈하고픈 눈치였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우리가 들어와 있는 임시 막사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저도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 뭔데.”

“말톤은 어디 있어요?”

“말톤 공? 그 사람은 지금 탐색 때문에 이 아래 계층에 내려가 있는데 근시일 내로 돌아올 거야. ...또 궁금한 거 있어?”

“네, 혹시 이 던전에서 커다란 늑대 보신 적 있어요?”

“늑대? 늑대야 흔하잖아. 잠깐...! 설마 네가 말하는 게...”

아니스가 눈매를 좁히고 미심쩍은 눈치로 쳐다봤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전에 2계층에 나왔다던 늑대 거수 기억하죠? 걔도 히드라와 키메라처럼 저랑 인연이 좀 있는 마물인데... 이번에 은신처에 찾아가 보니까 없더라고요. 아래 계층으로 향한 것 같은데 혹시 아니스 님이 소재를 파악하고 계실까 해서요.”

“넌 대체... 그보다 늑대 거수라...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래요...? 그건 좀 아쉽...”

“근데, 4계층을 탐사하던 중 5계층으로 향하는 거대한 형체를 목격했다는 모험가가 있긴 있었어. 마물이 스스로 계층을 이동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무니까 잘못 본 게 아닐까 했는데...”

“....제가 찾는 녀석일 가능성이 높아요. 혹시라도 추가로 정보가 들려오면...”

“알았어, 바로 알려줄게. 그나저나...”

아니스가 문뜩 한 방향을 응시했다.

그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열어둔 천막 입구로 아델을 비롯해 북적북적한 인파에 둘러싸여 있는 니아가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곤란하면서도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니아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니스가 기막히다는 듯이 탄식하고는 어여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야 도란, 너 대체 어떻게 저 고집불통대마왕을 길들인 거야? 잊을 만하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데다가 사람도 잘 안 믿어서 우리 길드에서도 나와 아델 말고는 아무도 못 다루는데. 어떻게 꼬셨는지 좀 털어놔 봐.”

“그냥 별거 안 했어요. 같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손잡고 동물원도 구경하고... 그냥 그게 다예요.”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내가 몇 년간 꾸준히 봐왔는데 저렇게 즐겁고 솔직해 보이는 니아는 처음이야.”

“그런가요...”

테이블 위에 놓인 홍차를 홀짝거리며 부드럽게 니아를 응시하고 있자니 문뜩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니아는 즉시 우다다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아까부터 계속 동료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린 탓에 꽤 지친 기색.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정하게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길드원들하고 대화는 다 나눴어요?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았잖아요.”

“응... 우음... 난 근데 길드에서 빠지고 싶다고 말한 적 없는데...”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직 완전히 확정된 사항도 아니고... 니아 님은 저랑 함께 있는 게 중요한 거 아니었어요?”

“그야 당연하지! 난 소년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고마워요.”

마음씨가 기특해 쓰담쓰담해주자 니아가 헤헤 뺨을 붉히며 내 가슴팍에 폭 안겨들었다.

아니스는 그런 니아를 보며 ‘너 그런 짓도 할 수 있었어?’라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로 경악했고.

아니스가 난감하게 뺨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진짜 살다 보니 별일도 다 보네... 아, 그러고 보니까 묻는 걸 깜빡했는데 도란 너 선물은 잘 받았어?”

“선물? 무슨 선물이요?”

“백금화 말이야. 니아가 너 만나러 간다길래 손에 들려서 보냈는데. 이전에 네가 암시장 독살 사건을 해결해줬으니 포상을 내린다고 했잖아.”

“네, 네...?! 설마 니아 님 지갑에 들어 있던 백금화 말이에요?!!”

“으, 으응...? 그, 그거 내 돈이 아니라 소년 거였어...?”

“...보아하니 전혀 모르고 있던 모양이네. 제대로 듣지도 않고 성급하게 뛰쳐나가더니... 어째 불안불안 하더라.”

“그, 그랬나아...?”

니아가 눈알을 굴리며 주인이 외출한 사이에 카펫을 죄다 물어뜯어 놓은 강아지처럼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고.

그렇다면 그동안 흥청망청 썼던 돈이 전부...

하루 숙박에 금화 한 닢씩이나 했던 호텔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구매했던 고급 주류와 수입 과일 등 그간 향유했던 사치스러운 나날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스가 난감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다시 지급해줄 수는 없다? 백금화 다섯 닢이야 못 줄 금액도 아니지만 어쨌든 한번 내린 포상을 되풀이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저도 압니다.”

피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니아라도 이건 좀 혼나야겠는데...

구체적으로는 몸으로 갚게 한다거나.

남편의 재산을 함부로 소비한 아내에 대한 처벌은 침대 위에서 하기로 다짐하고 아니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 건은 일단 제쳐두고, 이제 슬슬 숙소 선정과 관련해서도 조언을 좀 구하고 싶은데요.. 아니스 님?”

“아 그래, 밤새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했지? 숙소라면 니아가 쓰던 막사가 남아있으니 그대로 쓰면 될 거야.”

“음... 그것도 괜찮지만... 제가 사실 일행이 더 있거든요.”

“라디 말이야? 니아의 막사라면 한 명쯤 늘어나도 충분할 텐데...”

“아뇨... 라디 말고도 여자가 두 명 더 있어요.”

“...뭐?”

“그게... 뭐 그렇게 됐네요...”

멋쩍게 웃으며 관자놀이를 긁어내리자 아니스가 멍하니 날 쳐다봐왔다.

이내 그녀는 푹 고개를 숙이고 가까이 상체를 숙이는가 싶더니...

“이놈 이거 순정파인 척은 다 하더니 완전히 한량이었잖아?! 지 여자친구 구하겠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놓고 뭐? 여자가 두 명이 더 어쩌고 어째?! 너 던전에서 나간 지 두 달밖에 안 지났어 새끼야!!”

“아야야야앗!! 아파욧!!! 여긴 일부다처제도 흔하다면서요!! 그리고 그중에 아니스 님이 아시는 사람도 섞여 있어요!!”

“뭐...? 누군데?”

“저... 그게 아리엘이라고...”

“...뭐? 아리엘? 너 설마...! 아리엘 데 에르티넬라 후작 말하는 거야...?”

“아, 바로 아시네요. 걔랑도 얼마 전부터 교제하기 시작... 아야야야야얏!!! 왜 꼬집어요?!!”

“너 그걸 말이라고 해?! 너 그렇게 어린 애를 건드렸어?! 게다가 에르티넬라 후작을 건들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아아아아악!! 걔 어린애 아니에요!! 어리고 자시고 저랑 동갑이라고요!! 가, 가슴도 엄청 크고, 조만간 그쪽 부모님께도 정식으로 인사드릴 예정이고요!!!”

“....그래?”

“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본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오락가락하시는 모양인데... 걔도 다 컸다고요. 하기야... 아니스 님에 비하면 많이 어린 편이기는 하지만...”

“나 그렇게 나이 안 많거든?”

“따흐흐흐흐흑...!!”

아니스가 재차 귀를 잡아당기자 통렬한 아픔이 전해져왔다.

이러다가 정말로 유비처럼 귀가 쭈욱 늘어나 버리는 건 아닌지...

간신히 아니스의 손아귀로부터 해방되어 씨근거리는 귀를 부여잡고 있자니 아니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으음... 그래도 이렇게 되면 좀 곤란하네...”

“...뭐가요?”

“아리엘 말이야. 네가 만약 정식으로 아리엘과 교제하는 사이라면 솔직히 나도 널 마음대로 대할 수가 없거든.”

“네? 아니스 님은 공작이시고 아리엘은 후작이니까 아니스 님이 한 계급 더 높은 거 아니에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의아하게 쳐다보자 아니스가 난처하게 홍차를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에르티넬라 후작가는 우리 아니스 가문처럼 건국 초기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문인데다가,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가장 큰 영지를 소유하고 있거든. 그래서 후작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공작에 맞먹을 힘을 가지고 있어.”

“아... 영지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하기야... 실제로 지구의 중세에서도 계급보단 영지 크기에 따라 권력이 갈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지.

물론 단순히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고 영지민의 숫자나 주변 지형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게다가 그쪽은 제국과 맞닿아 있는 최중요 영지를 수호하는 가문이잖아? 영주가 죽으면 언제든 차기 영주가 수호 임무를 지속해야 하니까 그쪽은 직계 가족 전원이 예외적으로 공동 작위를 부여받아.”

“공동 작위...? 이전에 아리엘한테서 대충 들어본 개념 같은데...”

“계승권이 있는 장남만 유일하게 백작이나 자작 등의 작위를 이어받는 타 귀족과는 달리 에르티넬라 가문은 직계 출생이라면 전부 다 후작으로 쳐준다는 얘기야. 반면에 나는 공작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공작 지위를 두고 다른 후계자들이랑 경쟁하는 처지고.”

“아하...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아리엘은 ‘아리엘 후작’이지만 아니스는 ‘아니스 공작의 딸’이라는 건가.

에르티넬라 가문이 비스마르크 왕국 8대 대귀족 중 유일하게 후작이면서도 나머지 7공작 가문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기분이다.

한데...

‘그렇다면... 방금 아니스가 공작 지위를 두고 다른 후계자들이랑 경쟁하고 있다고 한 게... 그 도적단 리더와도 관련이 있는 건가...?’

귀족 간의 복잡한 권력 투쟁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적단 리더도 아니스와 같은 가문이라고 했으니...

아니스가 내 눈빛을 보고 생각을 짐작했는지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네게도 악연으로 엮인 사내지? 2계층 절벽 위에서 도적의 습격을 받고, 거수와 싸우고, 라디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남자니까.”

“네... 혹시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알았어. 너도 이제 반쯤은 우리 길드 사람이니까.”

아니스가 탄식하더니 쓰디쓴 홍차를 한입에 털어놓고는 힘겹게 말문을 뗐다.

“...그 남자는 젠조라는 남성인데 우리 가문의 서얼 출신이야. 아니, 서얼 출신이었다고 해야지. 지금은 가문에서 영구히 퇴출당했거든. 그리고 그놈의 수급을 가져오는 것이 차기 당주가 되는 조건이야.”

“...그랬군요. 그래서 아니스 님이 그렇게 혈안이 되어서... 혹시 무슨 일로 파문당했는지도 알 수 있나요...?”

“그건... 그놈이 원래 작위를 계승 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내 친오빠와 언니오빠... 심지어 어머니까지 일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도망쳤어. ...반사회적 사이코패스에다가 국가 전복을 노리는 엄청 위험한 인물이니까 만약 그놈을 발견하거든 말을 섞거나 대적할 생각 말고 바로 나한테 알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말씀해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가문의 치부 같은 게 아니었는지...”

“뭐야 너 우리 길드에 들어올 거라며. 그럼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겠어? 우리 길드가 그놈을 잡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건 니아한테 들었을 거 아냐. 그러니까 나한테 당당히 놈들의 표식이 그려진 양피지를 들이밀었던 거고.”

“그건 그렇지만요...”

내가 곧 붉은 매 길드에 입단할 예정이라...

그렇게 말하면 좀 찔리는 뎁쇼...?

멋쩍게 웃으며 꿍꿍이를 숨기고 있자니 아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테이블 위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면... 집은 다섯 명이서 지낼 크기면 되겠어? 아, 정령까지 여섯인가?”

“네, 그리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띄도록 한적한 숲속이면 좋겠어요. 방음 설비도 뛰어나야 하고, 근처에 개울도 있었으면...”

“아하 도란 군께선 사랑의 보금자리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으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위 계층으로 탐사를 떠날 때까지 히드라와 키메라가 눈치 보지 않고 지낼 공간이 있었으면 하거든요. 혹시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요?”

“음... 그런 이유라... 뭐, 짚이는 곳이 있긴 한데... 디론!”

아니스가 손가락을 울리자 막사 입구에서 대기하던 디론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아실리아.”

“저기 내 집무실에서 지도 뭉치 좀 가져다줘.”

“직접 갔다 오면 될 거를 왜 나한테...”

“빨리 하기나 해. 다음번 보급품 목록에서 탈모약 빼 버리기 전에.”

“흐헉...! 그, 그거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니까...!!”

디론이 나와 니아를 곁눈질하며 생쥐가 교미하는 듯 기묘한 신음을 내더니 허둥지둥 달려가 천장이 뜯겨나간 막사에서 종이 뭉치를 들고 왔다.

아니스가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탁 펼치더니 암시장 구석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갈색 마크 보이지? 숲속의 공터.”

“...네.”

“여기에 오필리아 상단에서 건설해준 통나무집이 두 채 있어. 원래 우리 길드원 중 비번인 사람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구매한 곳인데 너희가 몇 주 정도 보내기엔 충분할 거야. 주변에 울타리도 쳐져 있고, 이 주변은 전부 우리 길드 사유지라 들어오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고마워요... 저희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어머? 이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걸? 하지만 나도 아무 대가 없이 내주는 건 아니야. 이걸 봐주겠어?”

“....?”

아니스가 책상 위에 있던 양피지를 내게 들이밀었다.

대가라는 말에 순간 긴장하며 주춤했지만...

“이건... 제가 처음 막사에 들어왔을 때 아니스 님이 작성하고 계시던 서류 아니에요...? 이걸 왜 저한테...”

뭔가 했더니 그때 한창 작성하던 문서가 아니던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니스는 양피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듯이 눈짓하더니­

“징계. 니아는 약속을 어기고 복귀 기한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다음 번 신규 계층 탐사가 있을 때까지 근신이야. 당직 의무나 일과에서도 제외되고, 업무를 수행하는 건 꿈도 못 꾸니까 얌전히 숙소에나 틀어박혀서 머리 좀 식히며 지내.”

“아, 아니스 님 그건...!”

“왜, 이것만은 따져도 절대 안 물려줄 거야. 불만 있어?”

“아, 아닙니다!”

말이 근신이지 사실상 휴가가 아니던가.

나는 아니스의 배려에 감동하며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녀 또한 적이 아니라 니아의 행복을 바라는 아군이라는 게 떠올랐다.

머리 위로 아니스의 속삭이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와닿았다.

“...우리 니아 앞으로도 잘 챙겨줘. 보기보다 여린 부분도 많고 상처받기 쉬운 애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너한테 푹 빠진 걸 보아하니 알아서 어련히 잘 하겠지만... 그리고...”

아니스가 니아를 돌아보더니 사랑스러운 동생을 보는 언니처럼 다정한 미소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축하해 니아.”

많은 것이 함축된 말, 그 말에 니아는─

“응...!”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미소짓고는 아니스에게 안겨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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