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63화 (363/375)

〈 363화 〉 휴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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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휴식 #6

“그럼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해? 누군가가 와서 이곳에 발을 들이려고 하거든 머리통을 콱 물어뜯... 아니, 붉은 매 길드원일 수도 있으니까 해치지는 말고 겁만 줘서 쫓아내.”

­푸릉!

­킁!

“그래, 그리고 개미 넌 여기 돌아다니면서 잡초 보이는 거 다 뽑고 잔디도 좀 깎아놔. 네 동료 중에서 날카로운 집게 가진 애들 있지? 걔네들 불러다가 시키면 금방이니까.”

­크샥...?

“뭐. 까라면 까.”

­크슈슉...

개미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계모에게 시달리는 콩쥐 같은 표정의 개미를 제외하면, 오랜만에 자유로이 밖을 활보할 수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배웅해주는 소환수들을 뒤로 하고 앳된 고양잇과 수인 두 명을 옆구리에 대동한 채 공터를 나섰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들뜨기 시작하는 기분을 진정시키며 어제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이정표를 따라 오솔길을 걷고 있자니 실비가 조심조심 내 얼굴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저... 주인님...”

“응, 왜 실비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암시장에서 뭘 할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은 살짝 긴장돼서...”

“...그래? 불편하면 그냥 집에 있어도 됐는데.”

“아닙니다. 주인님을 보좌하는 건 저의 의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쉴래?”

“그, 그... 그런 게 아니고... 사실 주인님이랑 함께 있는 게 좋아서...”

실비가 니아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나 니아 님이나 다 같이 있는 편이 즐거우니까. 그리고 오늘 일정이라...”

나는 느긋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음... 우선 라디랑 아리엘을 찾아서 합류하고... 그다음엔 아침을 먹어야겠지? 늦잠을 자서 사실상 점심에 가깝지만... 혹시 실비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는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주인님을 만나기 이전 삶을 생각하면 배를 채울 수 있음에 감사하니... 그보다 니아 님께서 원하시는 메뉴로 고르는 게...”

“아, 맞다. 니아 님도 여기 한 달 만이잖아요. 혹시 그동안 드시고 싶었던 거 없어요? 이를테면 예전에 저랑 같이 암시장 독살 사건을 조사하면서 먹었던 초밥이라던가...”

“우음... 난 괜찮아. 배가 안 고파서...”

“...안 고프긴. 아까부터 꼬륵거리는 소리 다 들리는데. 설마 아직도 금식하시는 거예요?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텐데...”

“...그냥 그런 게 있어! 그래도 걱정 마! 이제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니아를 바라보던 차, 실비가 두 귀를 움찔하며 말했다.

“...주인님, 앞쪽에서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립니다. 상인과 모험가들이 물건을 흥정하는 소리 같은데...”

“그래? 이제 슬슬 도착했나 보네... 다들 후드 쓰자. 이곳은 각지에서 몰려든 모험가 때문에 자칫하다간 시비가 붙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응! 알았어!”

실비가 흑색 후드를 푹 눌러쓰고 꼬리를 숨기자 니아도 덩달아 후드로 머리를 덮었다.

그렇게 막 숲을 나서자 눈가에 따스한 햇살과 함께 왁자한 광경이 비쳐왔다.

목청을 높여 호객하는 상인과 흥미롭게 물건을 살펴보는 모험가. 비좁은 거리에는 대낮부터 취해 흥성거리는 사내들이 비틀거리며 오갔고, 규칙 없이 늘어선 차양막이 느긋한 산들바람에 유유히 출렁거렸다.

대로에는 각 상단을 상징하는 다양한 깃발을 내걸고 장사하는 상인들 덕에 귀가 조용할 틈이 없었으며, 시장 구석에서는 온순해서 짐을 운반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옐로우 리자드나 정체 모를 반려 마물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신선처럼 거대한 육지 거북의 등에 탄 채 물건을 판매하는 보부상도 보였다.

우리가 자리를 비웠던 두 달 사이 사람들이 더 몰려든 까닭에 암시장의 규모도 더욱 불어난 상황.

더군다나 던전의 크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을 듣고 비스마르크 왕국뿐만 아니라 인접한 타 국가에서도 모험가들이 몰려왔는지 무장이나 분위기 등에서도 이전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뭔가 신기하네...’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마나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된 지금은 은근슬쩍 마력을 방출해 힘을 과시하는 모험가들의 소리 없는 신경전이 눈에 들어왔다.

제각각 마나를 뿜어대는 모양새부터 색깔과 질감, 농도와 예리함에도 차이가 있어 질릴 틈 없는 광경.

그래봤자 내 옆에 선 표범 수인과 비교하면 우스울 지경이지만.

꽥꽥거리는 원숭이 무리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사자처럼 가소로이 흘겨보며 걷던 차, 나는 문뜩 실비의 발걸음이 더뎌진 걸 깨달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저게 먹고 싶어?”

“네? 아, 아니...! 아닙니다!!”

실비의 시선이 노점 한구석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녀석은 재빨리 고개를 내리깔았으나 그 찰나 꼴깍 군침을 삼킨 걸 내가 모를 리가.

나는 짐짓 연기톤으로 읊조렸다.

“으음... 배가 출출하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힘이 안 나! 안 그래요 니아 님?”

“응? 그야 헛헛하긴 한데...”

“그쵸? 뭐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나...? 나는 오늘까지 굶을... 아, 그래! 나는 몰라도 실비는 아침부터 청소했으니까 배고프겠네!”

“그러니까요! 우리 저기서 간단하게 뭐라도 사 먹을...”

­...텁.

“....?”

니아와 눈빛을 교환하며 과장된 톤으로 연기하던 차, 허리춤에 희미한 장력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내리니 그곳엔 실비가 수치심에 바들바들거리며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왜, 실비는 배 안 고파?! 우리는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

“아, 알았어요! 솔직히 먹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부끄럽단.. 말이에요...”

“그래,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나는 실비와 니아의 등을 떠밀며 노점으로 다가갔다.

강철 프레임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가판대 앞에 서자 다양한 먹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고기에 계란물을 묻혀 부친 육전이나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칼집 사이로 육즙을 뚝뚝 떨어뜨리는 후랑크 소시지, 달달한 앙금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도넛 등...

이 세계에서는 처음 보는 음식도 더러 있는 걸로 보아 타지에서 온 식문화가 혼합된 모양.

나는 실비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이 중에서 어떤 게 먹고 싶은데? 어차피 살 거 눈치 보지 말고 골라. 괜히 미련 남아서 후회하지 말고.”

“네, 그렇다면 이걸로...”

“어디... 잠깐 이거?”

나는 녀석이 가리킨 먹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파 비슷한 식물 뿌리를 불에 구워서 소금으로 간을 한 음식. 다른 메뉴에 비하면 몹시 초라해 보이는 모습.

심지어 매대 구석에 가격표도 없이 덩그라니 놓여있는 걸 보니 단무지처럼 다른 음식을 사면 곁가지로 주는 모양인데...

확인차 다시 물었다.

“...정말 이거 맞아?”

“네... 제가 베라스틴에서 노숙하던 때... 제가 살던 광장 근처에 이 음식을 파는 노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걸 입가에 묻혀가며 먹는 또래들이 그렇게나 부러워서...”

“...알았어. 그럼 먹고 싶은 만큼 사자. 이왕이면 다른 먹거리도 잔뜩 먹어보고. 난 요 육전이 맛있어 보이는데... 아니, 니아 님 지금 뭐 하세요?”

“흐음...”

어째 니아가 조용해 옆을 돌아보자 그녀는 커다란 후랑크 소시지를 손에 든 채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데 각도가 좀 미묘해서 그런지 마치 내 물건과 소시지를 대조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걸 한입에 삼킬 수 있을까 가늠하는 듯한 그런...

“...뭐 하세요?”

“응? 뭐하긴. 예행 연습...?”

“무슨 연습인데요.”

“그야 당연히... 한입에 삼킬 수 있도록 연습해놔야지. 낭군님의 자...”

“스톱 거기까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일축하지는 못하고 니아의 머리를 푸욱 눌러준 뒤 은화로 비용을 결제하자 실비가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아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애초에 우린 어려운 사이도 아니잖아. 전생에는 그... 부부였고.”

“하지만... 저는 과거와 현재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는 주인님께 지대한 은덕을 입었고, 이에 평생 동안 갚아나가는 것이 도리이자 제 사명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과거에 안주하여 주인님을 섬기는 행위를 게을리할 수는 없습니다.”

“음... 정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려나?

저렇게 강건하게 주장하는데 내가 뭐라고 애인처럼 편하게 대하라 명령하는 꼴도 우습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실비를 쓰다듬어주었다. 노점 주인이 건네준 음식 봉투를 건네받으며 솔솔 풍기는 기름 냄새를 맡고 있자니 허기진 위장이 꼬르륵거리며 요란하게 군침을 흘렸다.

이제 라디 일행과 합류한 뒤 적당한 곳에 앉아서 나눠 먹으면 될 텐데...

“...왜,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 실비야?”

“네, 저기 그게...”

실비가 로브 아래로 꼬리를 움찔거리며 망설이더니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 입을 열었다.

“저... 그.. 그래서 말인데요... 저, 저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주인님의 봉사에 언제든지 응할 마음이 있으니... 만약 필요하시다면...”

“....”

“아니... 그... 안될.. 까요?”

“....”

이상하다...

어째 저번에 실비와 입술을 맞댄 이후부터 ‘봉사’란 단어가 다른 의미로 들리는데...

“알았어. 청소나 설거지 같은 심부름 말이지? 앞으로 종종 생각해 볼게.”

“.....”

“그럼 이제 슬슬 라디랑 아리엘을 찾아야 할 텐데... 지금 어디쯤 있을까? 생필품을 사러 갔다고 했었지?”

어디선가 들리는 주인님 짓궂어어... 라는 환청을 무시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살짝 막막한 심정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나간 지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하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붐비는 모험가들을 지나쳐 막 발을 떼려던 차­

“야, 야 너 저기 봤어? 아까 지나치면서 봤던 여자 말이야. 진짜 존나 예쁘던데.”

“아, 그 빨간색이랑 하얀색 로브 쓴 모험가들 말이지? 크흐흐... 진짜 장난 아니긴 하더라. 슬쩍 후드 아래를 엿봤는데 진짜 어마어마하더라고. 무슨 하이랭커 그런 걸까?”

“그치? 나는 언제 저런 여자 한 번 사귀어보나...”

“꿈 깨. 저런 미인들은 백작쯤 되는 귀족 아니면 아예 만나주지도 않을걸? 상대를 골라잡을 수 있는데 뭐하러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주겠어. 아까도 보니까 한 귀족이 대시하려던 것 같은데.”

수군수군. 속닥속닥.

설마...

“으음... 아무래도 찾은 거 같은데 소년?”

“...그러네요.”

나는 난감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소란이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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