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366화 (366/375)

〈 366화 〉 휴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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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휴식 #9

“아니, 잠깐 잠깐...!! 그러니까 일단 정리하자면...”

1. 계층별 주요 마물 및 요주의 몬스터와 지형.

2. 현 암시장의 유용한 점포.

3. 붉은 매 길드의 새로운 멤버.

4. 모험가들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새까만 거미 마물.

5. 하이랭커가 목격한 거대한 거수의 그림자.

6. 이 던전에서 비밀리에 암약하는 S랭크.

이 중에서 1번과 2번은 단순히 들어서 편리한 정보일 테고, 3번은 나에 대한 내용.

하지만 4번 대목은 뭔가 꺼림칙할뿐더러 5번은 타로에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다분하고, 6번은...

이마를 짚은 채 생각에 잠겨있자니 음유시인과 앵무새가 허리를 굽히며 종용했다.

“어느 곡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어느 노래부터 들을래~?♪

“.....”

시선이 내게 몰리자 나는 천천히 이마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다섯 번째. 하이랭커가 목격했다던 거수의 그림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는 아마 아니스가 담화 당시 언급했던 모험가의 목격담과도 일맥상통할 터.

귀를 열고 유심히 지켜보자 사내가 디리링~♪ 리라를 연주하며 앵무새와 함께 노래를 합창했다.

“아아~ 거친 은빛 털, 오만한 자태~ 그대는 용맹한 달의 전사~” ­무시무시한 이빨~♩ 그대는 달의 전사~♪ “수면에 비친 그대의 모습.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네~!” ­정어리 짠 내음! 정어리 짠 내음! “삐걱삐걱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갑판 위에서 본 그대는~” ­반짝반짝 달빛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찰랑거리는 파문을 싣고 다섯 번째 나라로 떠나갔다네~” ­아아~♪ 떠나갔다네~♬

음유시인이 멋들어지게 현을 튕기고 인사하자 일행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솔직히 내 음악 감각으로는 조금 미묘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리라의 선율이 아름다웠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찰랑거리는 파문...? 수면에 비친?’

이외에도 짠 내음이라던가, 갑판 위라던가 하는 구절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바다와 관련된 장소 같은데...

“...혹시 노래 말고 그냥 말로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는 없나요? 너무 추상적이라서 알아듣기가 힘든데...”

“그 요구는 제 신념에 반해서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음유시인이란 음악의 신 아파니안 님의 거룩하신 축복인 선율과 화음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법. 손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

아니, 지금은 잘도 말하면서.

꿍한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하고 있자니 라디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달의 전사... 몇몇 원시 부족이 늑대를 그렇게 부른다는 소문은 들어봤는데... 설마 지금 음유시인이 말한 거대한 그림자가 타로 말하는 거였어요?”

“...그래, 아마 그럴 확률이 높아. 나도 아니스 님께 전해들었는데 한 모험가가 4계층에서 5계층으로 향하는 거대한 형체를 봤다고 했거든. 하지만... 니아 님, 이 던전에서 해수로 뒤덮인 장소가 어디였죠?”

던전에 바다가 있다는 건 이전부터 극명했다.

암시장 독살 사건에 쓰인 독도 복어에게서 추출한 테트로도톡신이었고, 이전에 이곳에서 니아와 데이트를 하며 신선한 생선 초밥을 먹기도 했으며, 타로의 은신처에서 바다거북 등껍질을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정규 루트로 이 던전의 7계층까지 도달해본 니아는 아마 바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터.

천천히 돌아보자 니아가 꿈에 젖은 듯한 눈동자로 대답했다.

“음... 5계층의 절반 정도가 바닷물로 뒤덮여 있어! 눈부신 백사장에는 푸른 파도가 남실거리고, 물고기와 산호초도 알록달록한데다가 걸을 때마다 사박사박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어서... 정말 예쁜 곳이야. 물도 한번 맛봤더니 짜서 신기했어.”

“우와...! 엄청 환상적이다...! 상상만 해도 설레요..”

“우음... 근데 마냥 좋은 건 또 아니야. 바다는 무지막지한 마물이 득시글거리는 장소니까.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치명적인 해파리와 성게가 연안으로 몰려들고, 해안에서 살짝만 멀어져도 거수급의 생물이 바글바글하게 출몰해.”

“거, 거수급이 바글바글...?”

“그래, 마물의 강함만 보면 지금까지 밝혀진 계층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 바로 5계층이야. 다행히 6계층까지의 거리가 짧아서 물 속에만 안 들어가면 대체로 안전한 편이지만.”

“으음... 그럴 수가... 그럼 휴양은 포기해야 하나...?”

“.....”

나도 그건 좀 아쉬운데...

하기야, 원래 수중에서 포유류가 서식하려면 체온 유지 때문에라도 덩치를 키우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니까. 이러한 까닭에 지구에서 제일 큰 동물도 바다에서 살아가는 흰수염고래일뿐더러, 다른 생물종 중에서도 가장 큰 개체를 꼽으면 바다나 강, 하천 등에 관련된 동물이 많다.

예컨대 파충류 중에서 제일 몸집이 큰 생물은 바다악어와 아나콘다고, 양서류에선 장수도롱뇽, 어류는 고래상어고, 곤충이나 거미류, 달팽이 등을 모두 포함하는 무척추동물에서 제일 몸집이 큰 생물은 대왕오징어다.

‘그러고 보니 타로가 사냥했던 마물 뼈 목록 중에 해왕류도 있었지...’

타로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가늠하고 있자니 문뜩 위화감이 들었다.

“...잠깐, 근데 아니스 님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타로는 4계층에서 5계층으로 향했다고 했어. 음유시인이 노래한 대목도 그 장면을 묘사한 걸 테고. 하지만 4계층이 아닌, 5계층이 바다로 뒤덮여 있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데...”

노래 말미에 등장하는 ‘다섯 번째 나라로 떠나갔다네~’ 라는 구절은 아마 5계층으로 이동했다는 의미일 터. 즉, 음유시인이 노래한 시점에서 타로는 4계층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4계층은 바다가 아니다.

모순된 명제에 고뇌하고 있자니 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으음... 그러면 두 번째 출구나 일곱 번째 출구 아냐?”

“네? 두 번째... 일곱 번째...?”

“타로가 목격된 장소 말이야. 5계층은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해수가 바다를 이루는 구조거든. 근데 침식이 시작되는 부분은 4계층 끝부터라 4계층의 두 번째 출구와 네 번째 출구는 물에 잠겨있어.”

“으음... 당연히 2계층의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 중 일부가 5계층으로 흘러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응! 바다는 바다고, 강은 강이니까!”

“.....”

하기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멀쩡하던 계곡물이 갑자기 짜질 리도 없으니 5계층의 해수는 따로 유입되는 경로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니아가 방금 말한 4계층의 출구 두 곳일 테고.

생각보다 더 복잡한 던전에 구조에 눈가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4계층에 들렀을 때 그 두 곳을 한번 탐색해봐야겠네... 혹시 어딘지 아세요?”

“응! 우리 길드에 지도가 있을 거야! 이제 소년도 같은 길드원이니까 아니스한테 말하면 얼마든지 협조해 줄 테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일단 타로에 대한 단서는 하나 확보했고...”

이제 관건은 새까만 거미 마물에 관한 건데...

설마...?

“...음유시인님, 그럼 다음으로는 거미 마물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바로 대령하도록 하죠. 크흠...”

“아아~ 붉은 눈, 검고 길쭉한 다리, 그대는 어쩔 수 없는 거미라네~” ­그대는 거미라네~♪ “마물에 고립된 인간들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네~” ­마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사라졌다네~ “공물을 바쳐라. 공물을 바쳐라. 어리석은 모험가들이여!” ­단 음식! 단 음식! “배가 고프면 그녀가 널 집어삼킬지도 모르니~” ­단 음식 주면 안 잡아먹으리~♬

“...도란님, 이거...”

“그래... 우리가 없을 때 독단으로 활동한 모양인데.”

내 소환수가 벌인 짓이 분명하다.

이상하게도 놈은 내 명령 없이도 멀쩡히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소환해도 뭔가를 입가에 묻힌 채 쩝쩝거리며 나타나곤 했으니까.

일을 시켜도 설렁설렁 대충대충 처리하다 내 미간을 콕! 찌르곤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간 마냥 음침하기만 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미담을 이런 의외의 장소에서 듣게 될 줄이야.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칫 녀석이 사고를 치기라도 하면 온전히 내게 불똥이 튈 수도 있는 일 아니던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들었다. 언젠가 한 번 거미와 진득하게 취중진담이라도 나눠봐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막 지갑을 열고 비용을 지불하려던 차...

“어 벌써 끝내시게요?”

“응, 들을 만한 내용은 다 들었잖아.”

“네...? 이제 겨우 두 곡 들었는데...”

“계층별 마물과 지형은 아니스 님한테 물어보면 되고, 유용한 점포는 니아 님이나 아델 누나한테 알려달라고 하면 되고, 신규 붉은 매 길드원에 관한 건 우리한테는 필요 없는 내용이니까.”

“하지만... 하나가 더 있잖아요.”

“맞아, 이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S랭크! 그건 뭐야? 우리 길드도 모르던 내용인데...?”

“도란님이 S랭크에 관련된 내용을 건너뛰다니 의외네요... 예전에 S랭크 모험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는지 묻고 그러지 않았어요? 나름 관심 있던 분야였을 텐데.”

“그, 그건...!”

괜히 들었다간 부정 탈 것 같아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 건데...

그 왜 호랑이, 아니 양 수인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얼른 자리를 피하고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속 편하게 지껄였다.

“그렇다면 부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마지막 노래는 비용을 받지 않고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던전에서 암약 중인 S랭크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십니까?”

“네! 고마워요 시인님!”

“크흠... 그럼...”

남자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이번엔 다소 진지한 분위기로 시를 읊었다.

“해가 기운다.” ­해가 저문다. “숲에 땅거미가 지고, 어느덧 저문 노을이 소녀를 품에 안으면” ­소녀도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모래사장을 눈동자에 담으리. “잔잔한 주황 물결이 일렁이는 푸른 그림자를 바다로 나르면” ­소녀가 수천수만의 별빛을 부숴 그 빛을 눈에 담으리. “새의 애틋한 날갯짓에 내리깔린 속눈썹은” ­보트 후미에서나 속삭이는 덧없는 연인들의 “애는 듯한 숨결에 섞인 희미한 향기가 풍기고.” ­새벽 물안개가 내려앉은 머릿결이 “환상 속 섬 하늘의 물보라 가득한 향기를 간직하면­” ­삭막한 황야 한가운데에 자라난 뿔은 “묵직하게 가라앉은 닻처럼 어금니를 뿌리내려.” ­타오르는 노래로 발밑의 흙을 갈기갈기 찢었다네. “아아~ 그대는 유적의 마지막 생존자, 잊혀진 문명의 공주일지니.” ­불쌍한 우리 카야는 오늘 밤도 망념에 휩싸여 지상을 배회하리.

“.....”

화원이 도래한 듯 아름다운 선율. 천사의 고동처럼 울림 있는 목소리. 뇌리를 꿰뚫고 심장으로 파고드는 듯한 가락.

이전과 사뭇 달랐던 연주가 끝나고 남자가 허리를 숙이자 일행들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시와 노래의 중간에 위치한, 마치 혼을 빼놓는 듯한 연주.

어느덧 공터에 드리웠던 구름의 음영이 걷히고, 부산스러운 광장의 소음이 차차 되돌아오자 나는 허리 숙인 음유시인의 날카로운 남색 눈동자가 내게 향해 있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소름 끼치는 시선에 나는 황급히 지갑을 꺼내 물었다.

“자, 잘 들었습니다...! 비용은 얼마죠...?”

“비용은 고객이 원하시는 만큼 치르시면 됩니다. 제 노래가 귀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보통은 한 곡당 동화 다섯 닢에서 일곱 닢 사이로 지불하시곤 합니다.”

“그렇다면...”

­짤랑!

음유시인이 벗은 고깔모자에 은화 세 닢을 넣어주자 권태로운 남자의 눈동자가 살짝 벌어졌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가 살며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은화 세 닢... 어째서 이렇게나 많이...?”

“그야 음유시인님은 저희의 대화를 들었잖아요. 이쯤이면 저희가 누군지도 알 테고... 저희가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전부 함구해주시면 고맙겠네요. 아, 그리고 멋진 연주 잘 들었어요.”

“...입막음 비용이군요. 감사합니다.”

“네, 그리고...”

나는 노점에서 사 온 군것질거리 중에서 실비가 골랐던 파 비슷한 음식을 앵무새에게 건넸다.

앵무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올려다봤다.

­응? 이건 왜?

“옛날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잖아. 너도 우리 대화를 들었지? 그러니까 지금 엿들은 내용은 다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줘.”

­...뇌물이야?

“그래, 약속 지켜줄 수 있겠어?”

­흐음...

앵무새는 파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인간! 마음에 든다!’ 같은 표정을 지으며 파를 낚아채 날개 사이에 끼웠다.

그렇게 음유시인 일행이 얌전히 떠나가는가 싶었으나 앵무새가 문뜩 날 돌아보더니ㅡ

­인간, 우리 카야를 잘 부탁해~

“뭐...? 그게 무슨 의미...”

­~♪

순간 느껴진 묘한 감각에 황급히 돌아보니 공터엔 음유시인도, 앵무새도 온데간데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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