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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368화 (368/375)

〈 368화 〉 휴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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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휴식 #11

결국 해가 질 때까지도 라디와 니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용건으로 자리를 비우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아니, 진짜 영문을 모르겠네...”

뭐... 대충 오늘 밤에 있을 일 때문이라는 건 짐작이 가지만.

문제는 라디가 같이 갔다는 점.

녀석이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라디라면 내 저녁 식사에 몰래 발정제를 넣어둔다거나, 수면제를 섞어 잠든 사이 다 함께 덮친다거나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통나무집에 도착해 소파에 주저앉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자니 아리엘이 장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신난 기색으로 내 옆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좋아?”

“응! 당연하지! 앞으로 당분간 도란하고 느긋하게 지낼 수 있잖아! 꼭 휴가라도 나온 기분이야!”

“지금까지도 계속 같이 있었잖아. 그리고 소환수들이 경비를 서준 덕에 제법 쾌적하게 지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기분이 다르잖아 기분이! 운치 넘치는 숲속 오두막에서 모두와 함께라니 엄청 설레지 않아? 꼭 오붓하게 신혼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긴 하네. 그럼 혹시 뭐 그동안 하고 싶은 거라도 있었어?”

“앗...! 하, 하고 싶은 거...? 그, 그게...”

“.....”

아리엘이 뺨을 붉히고 힐끗힐끗 내 얼굴을 곁눈질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할 생각 만반이구먼.

한데 슬쩍 잡아당겨 허리를 끌어안자 그녀가 손바닥으로 내 가슴팍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안 돼. 오늘은 참아야 해. 이번엔 양보하기로 했으니까.”

“...뭘 양보해?”

“너도 다 알잖아. 그보다... 실비도 짐 정리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와서 같이 쉬는 게 어때?”

“...전 사양하겠습니다. 이런 건 미루지 않고 제때제때 해야 하는지라...”

“으음... 나중에 라디가 왔을 때 같이 해도 되는데... 실비는 너무 성실해서 탈이야.”

아리엘이 살짝 가여운 눈길로 실비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혼자서 놔두면 무리하는 감이 있으니까.

나는 천천히 손짓했다.

“그러지 말고 와서 이리 와서 앉아. 나갔다 온 직후라 피곤하잖아. 안 그래도 사람들 시선도 신경 쓰느라 힘들었을 텐데.”

“...전 괜찮습니다. 언제나 주인님과 안주인님을 보좌하는 것이 제 의무...”

“명령이야. 주인의 지시를 거부할 셈이야?”

“윽...!”

명령이란 말에 실비가 그대로 얼어붙더니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쭈뼛쭈뼛 다가왔다.

이젠 녀석을 다루는 방법에도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그대로 끌어당겨 내 옆에 앉히자 아리엘이 귀엽다는 듯이 실비의 볼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말했다.

“역시 실비는 도란 말이라면 껌뻑 죽는구나? 그렇게 도란이 좋아?”

“흐, 흐에 아이옵고... 노예로서 주인님의 명을 받드는 건 당연...”

“하지만 실비는 표면상으로만 노예일 뿐 우리와 동등한 관계잖아. 원죄의 낙인에 담긴 구속력도 전혀 안 썼고, 전생에는 부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의 저는 주인님과 안주인님들께 지대한 은덕을 입었습니다. 또 주인님의 목숨을 해치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주인님들과 맞먹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평생 노예로서 은혜를 갚아나가야 합니다.”

“으음... 실비가 당장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아리엘이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이내 그녀는 상체를 숙이더니 부드럽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도란은 이미 실비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도란이 맨날 실비의 매력에 빠져서 해롱해롱 거리잖아. 틈만 나면 나와 라디, 니아 언니를 볼 때랑 같은 시선으로 우리 실비를 쫓고 있는데.”

“잠깐, 아리엘. 그 정도는 아닌...”

“왜, 발뺌할 거야? 너 사실 실비랑 뽀뽀도 했지?”

“.....”

아리엘이 총명한 하늘색 눈동자로 쳐다봐왔다.

여름 하늘이 쏟아지는 듯한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자 차마 거짓말할 수 없었기에, 나는 눈가를 짚으며 쓰디쓴 말을 토해냈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긴, 애인인데 그 정도는 당연히 알지. 다들 눈치채면서 적당히 눈 감아 준 거야. 아무리 과거를 알게 됐다고는 하지만 유적에 들어갔다 나온 이유로 실비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설마 의심조차 안 했겠어?”

“....”

“그리고 수목원 이후로 란이가 이상해서 추궁했더니 다 털어놨어. 앞에선 태연한 척하더니 결계석을 찾으러 연못에 잠수하자마자 고사이를 못 참고 실비의 입술을 덮쳤다며?”

“.....”

도무지 낯을 볼 면목이 없다.

고개를 푹 내리깔고 침묵하자 실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리엘 님. 전부 제 불찰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제 잘못으로서...”

“응...? 아... 탓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걱정 마. 오히려 귀여운 수인 동생이 생긴 것 같아 기쁜걸? 나는 오랫동안 집안에서 막내였으니까. 얘기는 안 했지만 다들 같은 마음일 거야.”

“...감사..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리엘 님... 정말...”

“응, 그래서 말인데... 날 언니라고 한 번만 불러줄 수 있겠어? 안주인님이란 칭호는 너무 딱딱하잖아. 처음부터 친언니 대하듯 살갑게 굴라고는 안 할 테니까.”

“으...”

실비가 흘금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 아리엘 언니...?”

“으아아아...! 엄청 귀여워!! 귀여워서 녹아버릴 것 같아!!”

“으븝...?!”

찰나ㅡ

아리엘이 실비의 뒤통수를 붙잡아 가슴 사이에 파묻었다.

새삼 아리엘의 몸매가 장난 아님을 실감하며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자니 실비가 발을 앞뒤로 동동 굴렀다.

아, 숨 막히나 보네.

“...아리엘, 그쯤 해둬. 얘 질식하겠다.”

“아차... 미안해, 괜찮아?”

“푸흡─!”

실비는 부드러움의 폭력에서 해방되자마자 가쁜 호흡을 몰아쉬더니, 압도적인 슴부 격차를 절감하고 고개를 떨군 채 제 가슴을 쪼물딱거렸다.

녀석이 살짝 울먹거리며 날 올려다봤다.

“주, 주인님은 저런 걸 매일 만끽하시는 겁니까...?”

“....”

뭐.

난감하게 뒤통수를 긁적거리자 아리엘이 부드럽게 종용했다.

“아, 그럼 마침 시간이 났으니 이참에 상처 점검하자. 요 며칠간 계속 이동하느라 바빠서 못했지? 뒤돌아서 상의만 살짝 젖혀볼래?”

“아... 감사합니다. 아리엘 님.”

실비가 얌전히 등을 돌리고 상의를 반쯤 젖혔다.

녀석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살짝 호기심이 동해 신기하게 쳐다보자­

“어머, 이제 배꼽 정도는 도란 앞에서 보여도 아무렇지 않나 봐? 둘이서 뽀뽀 말고도 뭐 했어?”

“앗, 그.. 그게...”

“자, 잠깐 아리엘! 그게 그러니까...!”

“농담이야.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아니면 정말로 뭐 야시꾸리한 일이라도 했어?”

““.....””

실비가 ‘드, 들킨 것 같은데 어떡하죠...?’라는 눈빛으로 돌아보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전부 눈치챘는지 아리엘은 날 부드럽게 쏘아보고는 온화한 웃음을 자아내며 말했다.

“괜찮아. 그 얘기는 나중에 언니랑 차근차근 하기로 하고 지금은 치료에 집중하자. 조금 따끔거릴 수 있으니까 주의하고, 아프면 얘기해줘. 그럼...”

“읏...”

아리엘이 나직하게 주문을 읊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따스한 광채가 뿜어나와 실비의 등허리를 덮었다.

다소 간지러운 감각에 몸을 베베 꼬면서도 야릇한 한숨을 내쉬며 간신히 신음을 억누르는 실비를 눈앞에서 직관하고 있자니...

“...도란, 너 커졌어.”

“크흠... 흠... 그, 그냥 이건 생리 현상이라...”

“.....”

“그, 그보다 흉터는 어때?! 나을 수 있을 것 같아?”

재빨리 화제를 돌리자 아리엘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알다시피 촉수에 닿은 상처는 내 치유 능력으로도 쉽지 않아. 너무 강력한 저주거든... 솔직히 확답은 못 하겠어. 아마 옅은 흉터는 남을지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주인님께서 절 버리지만 않아 주신다면...”

“내가 실비를 버릴 리가 없잖아. 넌 평생 내 거야. 이리 와.”

“...주인님.”

실비가 감명을 받은 듯한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더니 한발 한발 조용히 다가왔다.

그대로 녀석을 끌어안아 보듬어 주려던 차...

­끼익...

문이 열리고 익숙한 형체가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어두워진 하늘을 등지고 막 현관으로 들어온 인물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 라디 왔어? 늦었네... 볼일은 다 보고 온 거야?”

“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늦어졌네요... 다들 식사는 하셨어요?”

“우리는 암시장에서 대충 때웠지. 방금은 막 아리엘이랑 같이 실비 상처 봐주던 참이고. 너는?”

“저는 공복이에요. 근데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빵으로 때우고 일찍 잘까봐요...”

라디가 피로에 젖은 한숨을 내쉬더니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한데 녀석이 현관을 지나서 집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게 손에 든 물체를 건넸다.

“이건... 이게 뭐야?”

일단 겉모습은 와인병과 비슷한 모양인데...

“술이요. 시장에서 유리병을 하나 구해다가 거기에 미궁 산 와인을 옮겨담은 거예요. 이따가 니아 님이랑 같이 드세요.”

“그러고 보니 니아는...”

“오늘은 따로 자기로 했어요. 붉은 매 길드 주둔지 구석 니아 님 전용 텐트에 있을 테니 가보세요. 이왕이면 선물이라도 하나 들고요.”

“그 말은...”

와인병을 손에 쥔 채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자 라디가 은근하게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등을 떠밀어주었다.

“저랑 언니는 알아서 잘 지내고 실비랑 란이도 저희가 잘 케어할 테니 도란님은 사흘 동안 이곳에 돌아올 생각 마세요.”

“.....”

“무슨 말인지 아시죠?”

잠시 녀석의 온화한 웃음을 마주하자 아리엘이 내 곁으로 다가와 등을 토닥였다.

“...그래, 도란. 잘 다녀와.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주인님.”

“.....”

나는 멍하니 일행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옹을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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