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100일의 요람 (1)
“루빈, 미안하구나.”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나는 눈을 깜빡이며 어머니를 쳐다봤다.
“며칠 떨어져 있어야 해. 황제 폐하가 내게 직접 명령을 내렸거든.”
암살검가의 일원은 황제의 칙명을 거절할 수 없다. 설령 그게 7성 경지에 오른 암살검가의 가주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이번 일은 조금 이상했다. 100일 동안 아기와 함께 보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황명이 내려오다니.
그것도 가주에게 직접 내리는 명령이라면, 그만큼 황제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뜻인데.
드문 일이다.
어머니가 죽여야 하는 표적은 아마, 최소한 대륙에서 널리 이름을 떨치는 사람일 거다. 어머니와 비슷한 경지, 그러니까 7성 이상의 무인이나 마법사겠지.
“어쩔 수 없단다. 이게 우리 로이넨가의 운명이니까.”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채비를 한다.
어느새 문 앞에 어머니의 무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설적인 무구들. 하나같이 불세출의 무구들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단검을 쥐고 가볍게 휘저었다.
휘이이잉. 휘이이잉.
허공을 찢는 소리가 날카롭다.
닿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인도할 것만 같은 저 단검의 이름은 ‘무명검’. 회귀 전, 어머니가 애용하던 두 개의 명검 중 하나였다. 이 시기의 무명검은, 훨씬 가볍고 매끈했구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
어느새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달라져 있다.
어머니가 아닌, 세이렌 로이넨의 눈빛이다. 저 차디찬 표정은 내겐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
쿵.
모든 암살검가의 주인이자, 본가 로이넨의 가주는, 작별의 말도 없이 문을 나섰다.
* * *
다시 아기가 되니 몸 다루는 게 쉽지 않다. 늘어지게 잠만 자고 있다. 마냥 빈둥대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100일의 요람’.
로이넨 가문의 아기는 태어나 100일 동안 가주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엔,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에게조차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가주와의 애틋함을 위해?
유구한 전통이어서?
아니다.
암살검가 고유의 힘을 전수받기 위함이다.
우리만의 유일무이한 힘이자 원천. 바로 ‘암연(暗煙)’이다. 암살검가의 혈통은 누구나 암연을 운용한다.
암살검가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독공(毒功)이나 검술에 찬탄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두 암연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암연이 있어야만 암살검가의 비전(祕傳)을 펼칠 수 있고, 암연을 능숙히 다뤄야만 그늘과 풍경 속에 은신할 수 있는 것이다.
100일의 요람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직 이 시기에만, 암연이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둡고 아늑한 밀실에서 가주와 단둘이 보내는 100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가주는 그동안 아기의 암연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시기에 암연이 제대로 뿌리를 내려야, 암연의 개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일종의 파종(播種), 쉽게 말해 씨뿌리기인 셈이다.
하지만.
‘운이 안 좋군.’
어머니가 황제의 명에 따라 요람을 비운 지금, 내 암연은 온전히 뿌리내리기 힘든 상황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이 기간.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고스란히 내 손해가 되니까.
그런데.
회귀하면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죽기 전 ‘환(環)’이 그대로 있다니.’
환. 다른 말로, 재능을 담는 고리.
사람은 누구나 단 한 개의 환만을 가진다. 처음엔 텅 비어 있지만, 살아가면서 무엇이 채워지느냐에 따라 재능이 결정된다.
오러를 담으면 무인.
마나를 담으면 마법사.
암연을 담으면 암살자.
아무것도 담기지 않으면 범인(凡人).
경우에 따라 환에 담기는 재능들은 서로 섞이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하면서 성장해 간다.
하지만 그럴지언정, 한 사람의 몸에 두 개의 환이 있을 순 없다.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착각인가 싶어 다시 온몸을 관조해 봐도, 결과는 같았다. 심장 근처에 자리한 두 개의 고리가 분명히 느껴졌다.
하나는, 5성 경지의 암연이 담긴 ‘전생의 환’.
다른 하나는, 텅 빈 ‘현생의 환’.
‘두 개의 환이라.’
수백 년이 넘는 암살검가의 유구한 역사에도 이런 사례는 없었다.
하나의 몸, 하나의 환.
이건 자연의 섭리이자 세계의 법칙이니까.
역대 최강의 가주로 평가받는 어머니 역시 여섯 살이라는 굉장히 이른 시기에 암연을 개화하긴 했지만, 환은 단 하나뿐이었다.
‘섭리에서 벗어났다.’
회귀도 모자라 두 개의 환까지.
이대로 순조롭게 성장해 가기만 한다면, 나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
아니,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해질 것이다. 물론, 두 개의 환을 온전하게 다룰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나는 몸속에 자리한 ‘두 개의 환’을 천천히, 꼼꼼히 관조했다.
‘첫 번째 환은 거의 폭주 상태나 다름없군. 지난 생 30년간 축적한 5성 경지의 암연이니, 아기의 몸이 견디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
직감적으로도 느껴졌다.
아직은 이 거대한 암연을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 이 연약한 몸으론, 저 암연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망가져 버릴 게 분명했다.
어쩌면, 새롭게 얻은 두 번째 환까지 망가뜨릴 수도 있을 터.
‘언젠간 자유롭게 다룰 날이 오겠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두 번째 환이었다. 최대한 빨리 어머니로부터 암연을 주입받아 개화시켜야 한다.
‘언젠간 두 개의 환에서 솟아나는 암연을 한데 합칠 수도 있겠어.’
그렇게만 된다면, 회귀 전 사용하던 암살검가 비전들의 위력이 두 배는 강력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상상 이상의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묘한 흥분감에 심장이 간질거렸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두 번째 환 속 암연을 하루빨리 개화시킨다.
그리고 첫 번째 환을 완벽히 숨긴다.
이를 들키면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킬 테니까. 암살검가 다른 방계 가주들의 견제도 심해질 터다.
그리고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암살검가를 경계하고 있는 황제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숨겨야 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꼭꼭. 아버지들과 형제, 하인들은 물론 어머니에게까지도.
그게 복수를 위한 확실한 길이다.
어머니는 이틀째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 그런 건 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어머닌 내가 죽는 순간까지 살아 계셨으니까.
게다가 이 시기의 제국에는, 일대일로 싸워 어머니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따위 없다. 있더라도, 어머니의 표적이 될 리 없는 자들뿐.
이 시간을 이용해, 나는 몸속의 환을 단련했다.
두 번째 환에서의 암연 개화를 앞당기기 위해.
또 첫 번째 환 자체를 숨기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칫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암연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이 필요했다.
그때.
끼이이이익.
문이 열린다.
어머니가 돌아온 건가?
100일의 요람이 있는 이 방에 드나들 수 있는 건 가주와 유모뿐이니 합당한 추론이다.
하지만 내 얼굴 위로 그늘을 드리운 얼굴은, 어머니나 유모가 아니었다.
“흐음. 이렇게 생겼군.”
“제 아비처럼 머리칼이 검군요. 불길하고 천박하긴.”
두 남자.
치졸한 멍청이들.
이들은 내 이부형제(異父兄弟)의 아버지들이다. 말 그대로, 이들은 내 친부가 아니다.
내 아버지는 써드. 그리고 이 둘은 각각 내 어머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남편, 퍼스트와 세컨드였다.
퍼스트가 손가락을 뻗어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맘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군.”
하, 태어난 지 29일 만에 처음 받은 평가가 ‘죽여 버리고 싶군.’이라니.
세컨드도 뒤따라 내 머리를 건드렸다.
“죽일 가치라도 있겠습니까?”
“그건 그래. 어차피 평생 우리들 뒤치다꺼리나 할 놈인데, 뭐. 어쨌든, 로이넨 성을 가진 이들 중 누군가는 허드렛일을 해야 하니까.”
“천한 아비를 두었으니 그게 당연하지요.”
사냥꾼이었던 친부의 출신을 두고서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 나를 멸시했었다.
나를 향한 혐오는 그들의 아들들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나는 성장하는 내내 형제들과 부딪쳐야 했다.
그때,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역시 익숙한 목소리의 꼬마 두 놈이다.
“아, 아버지, 여기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무섭습니다. 가주님이 노하실 거예요, 아버지.”
나의 이부형제들이다. 큰형은 열세 살, 작은형은 열한 살이겠군.
“금방 돌아갈 거다. 너희들, 이리 와보거라.”
퍼스트가 부르자, 주뼛거리며 다가오는 두 꼬마. 그중 세컨드의 아들인 큰형 도리언이 신기한 듯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눈에 힘을 주며 도리언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곧장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재수 없어.”
도리언이 지껄이자, 옆에 서 있는 작은형 매피스가 키득거린다.
“엄청 약해 보이는데.”
재수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약해 보인다니?
사실 무능력하기로는 매피스가 가장 심각하다. 전생에서, 열여섯 살의 내가 추월했을 정도니까.
“어? 얘, 나 보고 웃고 있습니다. 아버지.”
“정 주지 마라. 어차피 때가 되면 가차 없이 떼어내야 할 종자야.”
퍼스트는 기분 나쁜 눈빛으로 나를 한차례 흘기곤, 주변을 다독였다.
“도리언, 매피스. 잘 들어라. 너희 둘은 로이넨 가문의 핏줄이지만, 이 천박한 아이는 그렇지 않다. 실질적으론 사생아나 다를 바 없어. 언젠가 너희의 발목을 잡아챌 놈이지.”
제기랄.
이들과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거구나. 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평생 괴롭히던 사람들. 고작 이따위 이유로 말이다.
도리언이 제 아비에게 물었다.
“그러면, 언젠가 죽여야 하나요?”
“왜, 두려우냐?”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니까…….”
“도리언. 너희가 죽일 수 없는 사람은 황제 폐하와 가주님, 그리고 여기에 있는 로이넨 가문의 일원들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명심해라. 로이넨의 성을 이어받았을지라도 진짜 로이넨이 아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두 이부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이들과 결탁할 마음 따윈 없다. 전생에서, 로이넨 가문을 숙청하기 위해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이들은 겁에 질려 항복을 종용했다.
로이넨을 좀먹는 벌레 같은 작자들. 함께 복수를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물에 불과한 이들이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아랫것들이 보면 골치 아파지니.”
퍼스트와 세컨드가 먼저 방을 나섰지만, 도리언과 매피스는 잠시 내 옆에 머물렀다.
퍼스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두 형제는, 나가기 전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빨리 커라. 내 심부름해야지.”
“천한 것아, 얼른 커라.”
다시 태어나서도 이런 멸시를 겪어야 하다니. 참기 힘들군. 전생의 나였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방싯 웃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귀까지 했는데, 이대로 보내주긴 아쉽잖아?
“어, 어?”
홱 팔을 뻗었다. 내 돌발 행동에 매피스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다.
두 형의 아버지들은 이미 복도 저편에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벽 너머의 움직임이 훤히 느껴졌다. 첫 번째 환에서 넘쳐흐른 극소량의 암연 덕분이다.
물론 내가 의도해서 흘려보낸 건 아니다. 가득 찬 물잔에서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 것.
이런 자투리 암연은 섬세하게 다룰 순 없어도, 어느 정도 활용할 순 있다.
나는 농도 짙은 암연을 안개처럼 넓게 퍼뜨렸다. 그 덕에 벽 너머를 볼 순 없어도 ‘느낄’ 순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악!”
이 극소량의 암연은, 갓난아이의 연약한 몸으로도 매피스의 손가락을 꽉 붙잡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왜 그래? 매피스!”
도리언이 다가온다.
“아이씨, 내 손가락을 잡았어.”
“그럼 그냥 빼면 되잖아.”
이제 막 암연을 개화한 열세 살짜리 큰형이나, 암연을 아직 개화하지 못한 열한 살짜리 작은형이나.
손가락을 붙잡은 내 손에 얼마나 농도 짙은 암연이 담겼는지 꿈에도 모르겠지.
“으으. 형, 너무 아픈데.”
나는 매피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매피스가 자연스럽게 내 눈을 피한다.
“그냥 갓난아기잖아. 장난하지 마, 매피스!”
“진짜야.”
“그러다 아버지한테 혼난다니까?”
“진짜라니까! 너무 아파!”
아이들이 나오지 않자 복도 저편에서 퍼스트와 세컨드가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잡고 있던 매피스의 손가락을 놓았다. 대신, 그 짧은 찰나를 이용해 매피스의 소매 단추를 뜯어버렸다.
“뭣들 하느냐. 빨리 나오지 않고. 괴롭힐 날은 앞으로도 많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컨드의 다그침에, 매피스는 제 손가락을 매만지며 나를 돌아봤다. 경멸로 꽉 차 있던 눈빛에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들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그 두려움이 네놈을 집어삼키게 해줄 테니.
쿵.
문이 닫혔군.
이번에야 저 멍청이들이니까 가능했지, 다음부터는 암연을 더 조심스럽게 숨겨야겠다.
* * *
저택을 나선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왔다.
시커먼 장대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주의 귀가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돌아온 어머니는, 곧장 100일의 요람으로 들어왔다.
천둥이 치는 매서운 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어머니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이 보였다.
죽여야 했던 그자, 강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머니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거울 저편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암살검가 로이넨의 주인의 냉혹한 얼굴이, 나를 직시한다.
“운명이란다.”
아이답게 울음을 터뜨려 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건 암살검가의 적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
“…백일도 안 된 아기의 요람에 파리가 꼬이는 것 또한 운명이지.”
역시 눈치채셨군.
어머니는 팔의 상처를 부여잡은 채 내 곁으로 다가와 이곳에 출입한 외부인의 흔적을 가늠했다.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해 보이지만, 어머니의 눈엔 난장판으로 보이겠지.
유모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 알았을 것이다. 침입자가 두 아버지와 아들들이라는 것도.
아마 그들이 어떤 보폭으로 움직였는지도 다 확인했을 것이다. 암연의 흔적을 샅샅이 추적했을 테니.
하지만,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고 계실까?
나는 몸을 뒤척이는 척하면서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펼쳤다.
매피스의 단추를 발견한 어머니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가족들을 소집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