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5화 (15/258)

제15화. 우승자의 특권 (3)

‘하네케, 누가 당신의 죽음을 사주했는지 아십니까?’

루빈의 질문에 하네케는 수염을 쓸어내렸다. 씁쓸함이 묻어나는 손길이었다.

-비밀스럽고 위험한 암살검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몇 없는 자겠지.

그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게다가 모든 암살자들의 정점에 서 있는 자네 어머니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명뿐 아니겠는가?

루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황제 텔마흐.’

-그래. 나도 알고 있네. 날 왜 죽였는지도.

하네케는 담담했다. 황제에 의해 숙청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보단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죠?’

-황제의 마지막 명령이었네. 골칫거리던 북쪽 이민족을 쓸어버리라는. 늘 그랬듯 난 군말 없이 행했지. 다만… 아이들이 너무 많았어.

‘물론 황제는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라 했을 거고요.’

그게 황제 텔마흐의 방식이다.

황제는 후환이 남겨지는 걸 원치 않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세상에서 ‘희망’이라는 단어와 개념조차 없애버릴 자였다.

-그래도 후회는 없네. 내 자네처럼 회귀한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한데… 자네는?

하네케가 루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 마음이 급한가? 누가 쫓기라도 하듯 늘 안달이 나 있잖나.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묻질 못했는데… 자넨 어쩌다 죽게 됐지?

아무 대답이 없자, 하네케는 헛기침을 했다.

-그래. 어찌 됐든 과거로 돌아왔으니까. 이번엔 자네가 원하는 대로 미래를 바꿔볼 수 있을 테지.

‘…….’

하네케 말이 맞았다.

회귀 이후, 이미 루빈의 인생은 이전과는 다른 궤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엔 황제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살아남는 건 루빈의 목표가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을 그는 바랐다.

‘전 황제를 죽일 겁니다.’

루빈의 선언에, 하네케의 눈빛이 흔들렸다. 황제를 죽이겠다니. 일평생 단 한 번도 육성으로 듣지 못한 말이었다.

하네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하네. 자네도 알잖나. 그의 말 한마디면 지도가… 아니, 대륙의 역사가 바뀌어. 그런 존재를 자네 혼자 무슨 수로 죽이겠나?

역시 ‘왜’냐는 질문보다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앞서는구나. 그만큼 황제는 까마득한 곳에 있다는 거겠지.

루빈은 하네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일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검법이 필요한 거고요. 그리고…….’

한마디 더.

‘당신에게도 제가 필요할 겁니다.’

하네케는 터무니없는 소릴 듣는 듯 지긋지긋한 얼굴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군. 브리온 가문의 검법이 소실될 거라느니, 내게 자네가 필요할 거라느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자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으니, 괜한 걱정 말게.

‘만약 당신이 믿고 있는 사실이, 전부 거짓말이었다면요?’

-뭣이 거짓말이라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내겐 황제에게 ‘충성 서약’을 한 손자가 있네. 지금도 제국 수도에 살고 있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브리온가 검법서와 함께.

그러니까, 하네케는 허울뿐인 충성 서약을 믿고 있었다. 서약했으니 손자만큼은 죽이지 않았으리란 믿음.

하지만 루빈은 황제의 실체를 안다. 황제가 복수의 씨앗을 남겨둔다?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민족의 여인과 아이들까지 짓밟는 자가 텔마흐라는 걸 아시잖아요. 손자가 살아 있을 거 같습니까?’

루빈의 의혹 제기에도, 하네케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루빈. 난 이미 내 죽음을 받아들였네. 날 숙청한 황제의 결정도 조금은 이해가 되어 원망스럽지도 않아. 지난 삶에 미련 없고, 현재 상황에 불만도 없네. 난 그저, 내 영혼만 덩그러니 남은 이 현상. 그리고 자네라는 존재에게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있을 뿐. 그뿐이네.

‘…….’

-자네의 사정은 잘 알겠다만, 그건 자네가 직접 풀어가야 할 자네의 이야기. 내 이야기는 이미 끝났네. 그리고 난, 이미 끝난 이야길 다시 펼쳐 보는 사람이 아니야.

‘제 말을 믿지 않는군요.’

-허무맹랑한 소릴세.

노장의 완고함은 난공불락 요새와 같았다. 루빈은 자신의 목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휘링휘링, 반동에 흔들리는 목검.

좋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믿지 않는다면,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 * *

흙을 밟는 가벼운 발소리가 울린다.

한치 눈앞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두꺼운 안개. 이 속을 산책하는 일은 세이렌의 오랜 취미였다.

이방인에게는 정신을 무너뜨리는 맹독성 안개지만, 암연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세이렌에게는 그 반대였다. 안개 속을 헤매듯이 돌아다니다 보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으니.

“데이몬. 나와도 좋아.”

안개가 일그러지면서 그녀의 직속 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속 가신 데이몬. 세이렌이 믿음을 주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데이몬은 사실상 로이넨 가문의 집사였다. 세이렌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 모든 일을 처리해 내는 가신. 그의 능력은 어지간한 방계 가주들로서도 범접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데이몬은 칙명부의 임무를 받지 않는 유일한 가신이었다.

“가주님, 칙명부에서 대답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빠르네. 역시 수락하던가?”

“예. 칙명부에서는 루빈 도련님의 요청대로 ‘빛과 반역의 탑’을 견학하는 것을 수락했습니다.”

‘1차 선택’이 있은 지 일주일.

이 시험의 우승자는 주최 가문의 창고를 가장 먼저 들어가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암살검가가 아닌 칙명부에서 내리는 또 다른 보상이 있었다.

보상의 내용은 미묘하다.

‘황제가 허락하는 안에서,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것.

보물을 받을 수도, 하인을 받을 수도, 영지를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이상의 것도.

그러나 이 달콤한 보상 뒤엔 위험한 미끼가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자는 많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충성도 시험이었다.

“빛과 반역의 탑을 견학하겠다 했으니, 칙명부로서는 흡족할 만한 대답이지.”

온전히 루빈의 결정이었다.

그게 결국 가주의 생각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루빈 도련님이 칙명부의 의도를 꿰뚫었을 수도 있겠군요.”

데이몬이 보기에도 루빈은 독특한 도련님이었다. 생각이 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능의 한계가 도저히 어느 깊이에 도달해 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1차 선택’을 순전히 머리싸움으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보상으로 선택한 것이 고작 죽은 제국 대장군의 부러진 검날 조각이라니.

거기에 이번엔 직접 칙명부의 보상으로 ‘견학’을 요청한 것이다.

“칙명부에서는 빛과 반역의 탑으로 가는 여정을 돕기 위해, 이례적으로 직접 그랑버드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됐든 내 저택 위에 그랑버드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믿을 만한 가신을 붙인 뒤 마차에 태워 보내도록.”

“아직 출가 이전입니다. 도련님의 외출을 허용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 아.”

데이몬이 지칭한 ‘위험’이란 건, 최근 암살검가 안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를 의미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건가?”

“척살조가 뒤따르고 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루빈 도련님의 여정과 겹칠 수도 있기에…….”

“나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무슨 뜻일까? 데이몬은 잠시 그 말의 의도를 파악했다.

지금 척살조가 추적하는 대상은 결코 만만한 표적이 아니었다.

척살조라는 집단은 암살검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때만 활동하는 독립적인 조직. 그들이 출격했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가볍지 않다는 의미였다.

척살조에 대한 신뢰? 아니면, 루빈이 그 표적과 마주치더라도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 때문인가?

데이몬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스.

직속 가신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가주의 뜻을 칙명부에 전하기 위해,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허허, 마차 여행이라. 반가운 소식이군. 슬슬 이 감옥 같은 저택이 지긋지긋해지려던 참이었는데.

‘음, 그랑버드를 탈 거라 생각했는데.’

루빈은 출발 하루 전에야 마차를 타고 ‘빛과 반역의 탑’에 다녀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칙명부에 했던 요청은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마차로 이동하는 여정은 의외였다. 그랑버드라면 하루 만에 도착할 거리인 반면, 마차는 닷새나 걸렸기 때문이다.

1차 선택의 우승자라면, 충분히 그랑버드를 요청할 자격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예정보다 일정이 길어지겠네요. 최소 닷새 동안은 마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겁니다.’

-그것 참 슬픈 소식이군. 심심하겠는데.

‘심심함을 달래줄 방법이 하나 있긴 하죠.’

-응? 그게 뭔가?

‘브리온 검법 수련이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쾌적한 환경이잖습니까.’

하네케는 브리온 검법에 열과 성을 다하는 루빈의 모습에 ‘역시 그럼 그렇지.’ 하며 혀를 찼다.

하네케와 재회한 지 2주째.

그동안 루빈은 로이넨가 저택 서고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한쪽에 책을 쌓아놓고 내내 독서만 했던 나날들.

독서라고 해봐야 검법서나 마법서가 아닌, 그저 영양가 없는 역사서.

하지만 그 모습에 본가의 가신들과 시녀들은, 루빈이 ‘머리만’ 가지고 1차 선택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가문의 그 누구도, 책상 앞을 지키는 루빈이 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로이넨가의 서고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 서고의 고요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내면세계에서 하네케와 수련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루빈은 지난 2주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브리온 검법에 매진했다. 덕분에 그동안 브리온 검법 2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2주일 만에 2식에 도달하는 제자가 있다면, 그건 원석을 발견한 것과 같다.

그러나 하네케는 이 탐나는 재능을 두고 원하는 만큼 가르치기보다, 그런 자신의 욕심을 조절하기로 했다.

오히려 검법 2식에 돌입한 뒤부터는 이전보다 더 진도를 늦추었다.

-이만 끝내도록 하지.

-오늘은 여기까지.

-너무 서두르지 말게.

-이 정도면 오늘은 충분하겠어.

이런 식으로, 매번 흐름을 끊어버렸다.

‘알겠습니다.’

처음엔 하네케를 붙들고 좀 더 수련을 이어가려던 루빈이었지만, 이제는 순순히 물러났다.

대신 하네케가 보는 앞에서 단독으로 브리온 검법을 반복했다. 한가하게 앉아 있는 하네케를 앞에 두고, 루빈은 가상의 적을 상정해 자신만의 수련을 이어나간 것이다.

그런 집요한 루빈을 지켜볼 때마다 하네케는, 자기 눈에서 솟아 나오려는 이채를 숨기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나저나 자네, 로이넨가 계승 후보라고 하지 않았나? 이거, 호위가 좀 허술한 거 아닌가?

목검을 쥔 상태로 브리온 검법 2식을 60번째 반복하던 루빈은, 움직임을 멈추고 하네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하네케의 말을 이해했다.

마차 안에는 오직 루빈뿐, 거기에 마부 하나와 마차 앞뒤로 말을 탄 가신 두 명이 다였다.

하네케의 말처럼, 로이넨가의 적자가 받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호위였다.

독자적으로 군대를 운용하는 다른 유력 명문가에선, 오러를 다루는 수십 명의 기사에 믿을 만한 마법사까지 동원하여 자제들을 호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네케의 걱정에도 루빈은 태연했다.

‘전 지금 로이넨가의 적자가 아니거든요.’

-가짜 신분이라는 말인가?

‘가짜 신분은 암살검가의 대외 활동에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출발하기 전, 직속 가신이 제 역할을 말해주더군요. 평민 출생, 부유한 가죽 상인의 실성한 아들이라고요. 거기다 실어증까지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설정이 좀 과하지만, 합당한 처사였다. 혹시라도 있을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루빈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고 할지라도, 루빈은 아직 첫 임무는커녕 출가조차 하지 않은 상태. 인제 고작 아홉 살짜리 꼬마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암살검가의 원칙이었다.

그 대신, 마차 앞뒤에 있는 두 명의 가신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두 가신은 각자 부여받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할 뿐만 아니라, 루빈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존재들이었다.

‘저 둘은 어머니가 직접 배정한 호위가신들입니다. 로이넨가의 가신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겠죠. 아마 저 두 사람을 뚫고 저를 죽이는 건,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과 같을 겁니다.’

굳이 덧붙이진 않았지만, 밤에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지나치는 각 도시마다 배치된 ‘위장별채’에서 루빈의 숙박을 책임지기로 했으니.

-위장별채?

‘그런 게 있습니다. 대장군도 맘에 드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니까 좀 의뭉스럽구먼.

일반적으로 암살자들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동료들이 어느 도시에서 어떤 역할로 임무를 수행 중인지 모른다.

즉, 임무 중 물품이나 숙박 등 지원이 필요할 때,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게 바로 위장별채였다.

위장별채는 대륙 곳곳에 분포되어 있으며, 오직 암살검가 혈통만이 그 위치를 안다.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은, 임무 중인 출가한 암살자들, 혹은 가문 내 특별한 임무를 받은 자들뿐.

당연히 루빈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루빈이 위장별채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특혜였다. 암살검가 로이넨의 적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

‘하네케, 암살검가는 존재 자체가 비밀입니다. 황실 안에서도 우리의 존재를 아는 것은 오직 황제와 칙명부뿐이죠.’

-과연 그뿐일까? 아마 더 있을 텐데.

‘또 누가 있죠?’

-죽은 자들 말일세. 나처럼 그대들과 싸우다 죽은. 그들 또한 암살검가를 알고 있을 수 있지. 나처럼 영혼이 남아 있다면 말이야.

하네케의 농담 섞인 말에 루빈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내심, 정말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루빈은 목검을 다시 쥐고 브리온 검법 2식을 다시 펼쳤다. 이제 오늘만 해도 61번째.

그 모습을 하네케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겉보기엔 하네케의 것을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듯하지만, 하네케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모든 동작에서의 정교함과 선명함 수준이 극한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하네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이 브리온가에서 태어났다면…….’

참으로 실없는 생각이라며, 금세 지워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루빈이 마차 안에 틀어박혀 브리온 검법 2식을 5백 번째 반복했을 때, 그들 일행은 첫 번째 중간 지점인 샌드니악 성에 도착하여 첫 번째 밤을 무사히 보냈다.

다음 날.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고, 이틀째 밤은 두 번째 중간 지점 도네르보프 성의 위장별채에서 밤을 보냈다.

이때 루빈은 검술 2식을 1천 번째 반복한 뒤였다.

그리고 세 번째 밤.

이번에 도착한 도시는 볼고튼 성.

이번에도 루빈의 마차는 위장 신분으로 무리 없이 성문을 통과했다.

“오늘 밤을 보낼 위장별채는 지도제작자의 집입니다.”

가신 하나가 마차 안에 있는 루빈에게 말했다.

“…….”

맡은 역할이 실어증을 앓고 있는 아이였으니, 루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차 내부를 살짝 긁는 소리를 내었다.

‘왜 오늘은 미리 말해주는 거지? 어제와 그제랑은 다르잖아.’

가신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루빈은 깨달았다.

잠시 후, 마차에서 내릴 때.

루빈은 두 호위가신에게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을 감지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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