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51화 (51/258)

제51화. 톨로이스의 눈 (1)

짝짝짝짝.

짝짝짝짝!

진행자가 쓰고 있는 물범 가죽을 들썩일 정도로 크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화운석의 경매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도련님, 3억입니다! 도대체 화운석이 뭐기에 저 사람은 3억씩이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쿠제였다. 아무렴 어떤가. 이제 3천만의 보증금은 우스울 정도로 돈을 벌었는데.

“경매장에 수수료를 떼어준다고 해도 엄청난 이득입니다!”

“아니.”

쿠제의 들뜬 마음을 싹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였다. 루빈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예?”

“당장의 수익은 없어.”

그 말뜻이 무엇인지 쿠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숫자 채우기 불과했던 티스 킹븐의 하수인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 루빈도 곧바로 움직였다.

그런데 루빈이 향하는 곳은 경매 의뢰자용 숙소가 아니었다. 대신, 입찰자 전용구역으로 가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똑똑똑.

노크를 하기 무섭게 객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나타난 사람은 중년의 사내. 사내는 두 사람을 보자 활짝 웃었다.

‘누구지?’

쿠제가 그 사내를 몰라보는 건 당연했다. 그는 방금까지 있었던 122번 입찰장의 이용객 중 하나였으나,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머뭇대는 쿠제와 달리, 루빈은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가 대뜸 쿠제의 팔뚝을 잡아당겼다.

“뭐 해, 얼른 들어와! 쿠제!”

“…제 이름을 아십니까?”

쿵.

쿠제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사내는 승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웃어댔다.

“나, 0529야.”

0529! 쿠제가 어찌 이 번호를 잊을 수 있을까. 방금 전 화운석을 낙찰받은 사람의 번호였다. 로이넨서가 처한 곤경을 한번에 해결해준 귀인!

그런데 이자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불길한 예감이 쿠제를 엄습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 후에는 눈앞의 사내에게서 암연까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길리필드 수목원에서 무사히 모종을 심고 온 까마귀랄까.”

“하, 역시나.”

낙찰자가 티나였다니.

이제야 왜 루빈이 ‘당장의 수익은 없다’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낙찰금 3억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얼마에 낙찰되든, 티나와의 거래라면 오가는 돈이 없을 터.

아니지.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경매장에 낙찰금의 10퍼센트의 수수료를 내야 하니, 도리어 빚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의문 하나. 왜 도련님은 ‘당장’의 수익이 없을 거라고 한 거지? 수익이 없으면 없는 거지, 왜 ‘당장’이라는 표현을?

“…….”

한편, 루빈은 가만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상으로 화운석이 낙찰된 지 30분이 지났다.

경매장은 규칙에 따라 이튿날 아침 낙찰자와 의뢰자를 각각 불러낼 것이다. 자신들의 중개 수수료를 제한 나머지 금액이 오가는 것을 관장할 터.

그러나 그 전에.

‘티스 킹븐이 먼저 찾아오겠지.’

일부러 티나에게 낙찰의 기회를 내어준 그 입장객. 번호는 7670. 틀림없이 그가 킹븐이었다.

“……!”

그때.

세 사람이 펼쳐둔 암연이 반응한다. 객실 밖에 방문자가 와 있다. 역시, 티스는 결정도, 행동도 빨랐다.

티스는 혼자 왔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 전에 루빈이 그랬던 것처럼 객실 문을 노크한다. 똑똑똑.

쿠제가 걸어 나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0529입니까?”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사내가 정중하게 물어왔다. 사내는 쿠제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생김새로 놀림을 받는다면 족제비가 딱일 것 같은 얼굴.

“전 아닙니다.”

“그럼 안에 계시는지요?”

“들여보내.”

루빈이 말했다. 그 지시에 따라 쿠제는 옆으로 비키며 사내를 안으로 들였다.

저벅저벅.

방문자는 여유로운 태도로 숙소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탁자 앞에 앉아 있는 루빈을 발견하고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아이가 있군요.”

루빈은 피식 웃었다.

“당신, 7670이시죠?”

“어라…….”

“아마도 0529를 찾아오신 거고요?”

“그렇습니다만, 이상하군요. 방금 입찰장에서 봤을 땐, 낙찰자 목소리는 분명 어른이었는데.”

티스 킹븐은 고개를 갸웃했다. 3억에 화운석을 낙찰해간 사내를 만나러 왔는데, 웬 어린아이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앉으시지요.”

킹븐은 시키는 대로 했다.

“…….”

“저는 화운석을 낙찰받은 0529가 아닙니다. 6321이죠.”

“6321……?”

처음엔 숙소를 잘못 찾아온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곧 자신이 틀렸음을 꺠달았다.

6321이라면……

“낙찰자가 아니라, 의뢰자 아닙니까?”

티스 킹븐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그에게 루빈이 손을 뻗어 뒤늦은 악수를 청했다. 킹븐이 소년의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루빈의 말은 딱 두 마디.

그저 두 마디였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다. 차분했던 그 마음을 와장창 깨트리는 말이었으니까.

의자를 뒤로 넘어뜨리면서까지 급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티스 킹븐.”

“……!”

킹븐의 놀란 얼굴은 볼만했다. ‘미래에서 온 사업가’라더니, 표정 관리가 의외로 서툴렀다. 아니, 그만큼 놀랍다는 뜻이겠지.

킹븐은 입술을 들썩거릴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 다닐 줄은 몰랐네요, 킹븐. 아, 그 유명한 톨로이스이니 그럴 만도 하군요.”

“…절 아십니까?”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른다고도 할 수 없죠.”

“그게 무슨…….”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아무튼 그쪽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운석 때문에 왔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일단 다시 앉으시고, 협상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때, 킹븐의 등 뒤에서 티나가 걸어 나왔다. 티나의 모습은 아직 0529였고, 그녀는 일부러 헛기침을 내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진짜 낙찰자까지 등장하자, 킹븐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자신이 의뢰자의 노림수에 당했다는 결론이 금방 나왔다.

‘날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마저 튀어나왔다.

“뭔가 제대로 함정에 걸린 것 같군요.”

“함정이라뇨. 제가 당신을 납치하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그럼……?”

“저는 ‘적당한 가격’에 화운석을 팔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요.”

필요한 사람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팔겠다니. 달리 말하면, 방금 전 입찰장에서 낙찰된 금액 3억 릴크는 적당하지 않은 가격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킹븐도 동의하는 바였다. 경쟁자가 더 붙었더라면 10억 이상까지도 따라붙었을 테니까.

루빈이 말했다.

“당신이 왜 3억 문턱에서 멈췄는지 압니다. 킹븐, 당신을 제외한 다른 낙찰자와 의뢰자가 ‘화운석’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알아보려는 거였겠죠.”

정확한 지적이었다. 킹븐 자신 말고 두 사람이나 더 화운석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화운석의 시장 가치를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화운석을 통해 세상의 돈을 주무르려는 계획에 경쟁자가 생기는 건 곤란했으니.

그런데 눈앞의 소년의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화운석의 가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킹븐. 화운석의 효능을 알고 있죠?”

“…….”

“그리고 화운석의 양산화를 노리고 있고요. 몇 년 뒤, 화운석이 건축자재로서 대륙에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올 것도요.”

도대체 이 소년은 누구지? 점점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파악한 걸까.

심지어 이자는 자신이 이 건축자재의 이름을 ‘화운석’이라 지으려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명칭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그마한 수첩에만 써두었는데.

“6321. 공자가 만약 화운석의 쓰임까지 알고 있다면 협상을 하는 의미가 있을까 싶군요.”

“적절한 지적입니다.”

“…….”

“그런데 저는 화운석을 주고받는 협상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는 양산화. 그 권리까지 두고 협상을 하자는 거니깐요.”

그 말에 킹븐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고, 루빈은 잠자코 기다렸다. 사업가라면 득실을 따져볼 줄 알겠지.

“…….”

킹븐의 눈길이 잠시 티나에게 머물렀다.

‘내가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로 입찰장을 채운 것처럼, 저 낙찰자는 이 소년의 꼭두각시에 불과해. 그렇다면…….’

만약 낙찰자가 제3의 세력이었다면 킹븐은 이 협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화운석의 가치를 알고 있는 이가 단 한 명이라면, 협상을 이어갈 만했다.

“잠깐만 시간을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킹븐.”

사실, 루빈으로선 조금의 손해도 없었다. 애초부터 화운석 양산화에 대해선 어떤 청사진도 없었던 그였다. 사업적인 관심도 없었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로이네크로우 폐사를 막는 것. 그리고 복수를 위한 비밀 자금을 만드는 일이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하나의 화운석 또한 남겨둔 상태였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은 이득을 보는 것뿐이었다. 10억? 20억? 아니, 루빈이 원하는 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고민하던 킹븐이 물어왔다.

“그럼 적절한 수단으로 당신의 그 말을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톨로이스의 공증 말인가요?”

킹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톨로이스 경매장이 두 사람이 계약을 공증한다면, 그건 두 사람의 신분과 무관하게 제국법에 의거하게 되어 있었다. 즉, 둘 중 누군가가 파기할 경우, 제국군의 추격을 감당해야 했다.

“그거라면 충분하죠. 그러면 저는 화운석의 대가로 30억 릴크까지 내어줄 수 있습니다.”

역시 사업가였다. 루빈이 20억에도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하고 처음부터 30억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킹븐의 최대치는 못해도 50억은 되겠지.’

루빈은 태연하게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두 사람은 그럴 수 없었다. 30억 릴크라는 말에 쿠제는 표정 관리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고, 티나는 아예 그런 노력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입안이 마를 때까지 입을 헤벌쭉 벌릴 뿐.

그러나.

“너무 적습니다, 킹븐.”

티나가 눈을 깜빡이며 제 귀를 의심했다. 로이넨가의 자제는 금욕적인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나? 너무 오래 금욕 생활을 해서 30억이 어떤 숫자인지 모르는 건가?

“30억이 적다고요?”

“당신의 최대치는 50억쯤 되겠죠. 하지만 그것조차 만족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킹븐은 50억을 최대치로 생각해두고 있었다. 루빈이 이를 정확히 짚어낸 건, 티스의 일대기에 적힌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덕이었다.

허를 찔린 그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50억 릴크 이상은 너무 위험해.’

그만한 돈은 지금 당장 킹븐이 융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화운석의 가치야 그 이상이라 확신하지만, 문제는 양산화의 성공 여부였다.

실패 가능성이 공존하는 사업에 도박을 거는 건 너무 무모했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이해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도 준비했습니다.”

“……?”

“킹븐. 당신이 제 조건을 수락한다면, 30억에 내어주겠습니다.”

“…어떤 조건인지 물어보기가 겁나는데요.”

루빈은 피식 웃곤 말을 이어나갔다.

“일시불이 아닌 지분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지분 거래요?”

“화운석 사업으로 발생하는 수익의 2할을 내어주십시오.”

“음…….”

다시 킹븐이 고민에 잠겼다.

루빈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30억 릴크에다가, 훗날 화운석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20%를 가져가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양산화에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저 소년의 머릿속 저울은 뭔가 이상했다. 한쪽엔 50억 릴크가 올라가 있었고, 다른 쪽엔 30억과 불확실한 미래 수익이 올라가 있었다.

어떤 확신이 있기에 20억이나 포기하고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건지.

미래란,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양산화에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년은 눈앞의 확실한 거액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의외네요, 킹븐”

“……?”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편이었군요. 제가 생각하는 당신의 그릇은 훨씬 컸는데요.”

“하아…….”

킹븐은 또다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면서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말을 열 살 정도의 소년한테 들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미래를 예견한다는 말은, 우습게도, 대륙의 그 누구보다 킹븐 본인이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말이었다.

‘혹시 나와 같은 부류인 걸까?’

문득 킹븐의 머릿속에 그런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세상엔 독특한 이능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킹븐도 그중 하나였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오러나 마나 같은 능력이 아니었으니까. 또, 환혈족의 변신이나 거혈족의 거대화 같은 부류도 아니었다.

사람과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는 눈.

톨로이스의 하급 감별사는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여 물건의 가치를 알아낸다. 반면, 상급 감별사들은 ‘감별 마법’으로 물건의 진가를 알아본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종의 마법사였다.

그렇다면 킹븐은?

그의 능력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마법을 벗어난 그만의 순수한 능력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품었던 이 능력으로, 마법에도 드러나지 않는 숨은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

이윽고, 킹븐은 루빈의 빨려들 것 같은 검은 눈동자를 직시했다. 능력의 발현에는 딱 3초가 필요했다. 3초간 직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오직 킹븐의 눈에만 보이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루빈을 휘감기 시작했다.

실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직시에 따라, 킹븐의 시야에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연기였으니까.

“……!”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쿠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빈을 들여다보던 킹븐이 갑자기 몸을 휘청인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을 만난 것처럼,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본 것처럼 그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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