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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검가 로이넨-52화 (52/258)

제52화. 톨로이스의 눈 (2)

티스 킹븐은 어렸을 때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그는 모든 면에서 전략적이고 계획적이었다.

경매장의 간부인 카포네는, 킹븐의 성공을 경매장 근무 경험 덕으로 알겠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얘기였다.

킹븐은 톨로이스 경매장에서의 경험으로 성공한 게 아니다. 그는 애초부터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톨로이스 경매장은 그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물품과 사람, 이를 둘러싸고 피어오르는 연기. 이건 곧 여러 빛의 조각들로 나뉘며, 고유한 파장을 일으킨다.’

이 파장을 감지하는 것. 그게 킹븐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 파장이 ‘물품과 사람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킹븐이 톨로이스 경매장에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온 세상의 모든 진귀한 물품과 성공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그는 경매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고, 체계화했다. 특히 성공하거나 성공할 운명의 인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대륙의 온갖 왕족들과 거상, 제국귀족과 희대의 범죄자 등등.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인물들을 분류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경매장에서 나간 뒤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부를 쌓았다.

그런데…….

‘이 소년은 뭐지?’

킹븐은 지금까지 축적한 수많은 고귀한 자들과 비범한 자들에 대한 기억을 헤집어봤다. 그러나 아무리 헤집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왜 이 소년은…….’

파장이 있으니 비범한 자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제국귀족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다. 무인이긴 한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특히 너무도 괴이한 것은, ‘빛의 파장’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백색. 두 가지 빛이 소년의 몸에 일렁이고 있었다. 심지어 빛의 파장 형태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

“침묵이 길군요, 킹븐.”

루빈의 말에 킹븐은 가만히 눈을 끔벅였다.

“6321. 공자가 보시기엔 제가 양산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확신하십니까?”

루빈은 가볍게 웃곤 덤덤히 말했다.

“예. 제 안목을 믿어도 좋을 겁니다.”

그 말에 킹븐은 또다시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 세상 최고의 안목을 지닌 킹븐에게, ‘안목을 믿어도 좋을 거다’라고?

하지만 여기엔 킹븐에게만 해당되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인물과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그였지만, 정작 그 본인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부를 쌓은 지금조차도 뭔가 새로 시도할 때마다, 그의 내부에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이 같은 두려움이 맺혔다.

어느 방면에서나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신중한 투자를 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스스로도 내게 확신하지 못하는데, 나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눈앞의 아이는, 킹븐이 살면서 처음 마주한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성공을 확신한다니.

킹븐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는 지금껏 스스로를 사업가이자 예언가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 순간만큼은 도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아이에게서 보이는 불가해한 빛의 파장. 그건 위험의 신호가 아닌,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성공을 의미하는 거라고.

“…좋습니다, 6321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끄럼 ‘톨로이스의 공증’을 받으러 가시죠.”

이후, 두 사람은 곧바로 움직였다. 톨로이스의 공증은 마법적인 맹약의 일종으로, 계약 관계의 가운데에 제국을 놓겠다는 의미였다.

“…두 분, 공증 내용에 동의하겠습니까?”

‘공증의 방’. 공증인의 엄중한 물음에, 루빈과 킹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하나의 석판 위에 올린 두 사람의 손. 둘의 동의에 따라 석판이 잠시 빛을 머금었다.

피이이이잉.

석판의 빛이 꺼질 때, 루빈은 자신의 의식이 잠시 탈각(脫殼)되는 걸 느꼈다. 그건 킹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신분이나 본명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석판이 기억하는 건 두 사람의 존재 그 자체다. 신분이나 본명을 숨겨도 존재 자치를 지울 순 없는 것이다.

“킹븐, 너 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냐?”

그때, ‘공증의 방’ 뒤편에서 들려오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킹븐이 6321과 ‘공증의 방’으로 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카포네였다.

“카포네 님, 오랜만이군요. 보시다시피 계약을 했습니다.”

킹븐은 헤헤 웃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카포네의 상식을 뛰어넘는 계약이라는 것이다. 무려 30억 릴크를 즉시 지급하고 추가적인 이득을 지속적으로 내주겠다고?

도대체 어찌 이런 계약이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카포네가 알고 있는 킹븐의 행동 방식이 아니었다.

“화운석을 3억에 낙찰받은 사람이 너인 줄 알았더니.”

‘공증의 방’을 나서려는 킹븐을 막아서며 카포네가 다시 으르렁댔다.

그에 응하는 킹븐은 태연하기만 했다. 자신의 밑에서 넙죽대던 놈이 이렇게 거대한 상인이 되어 돌아왔다니.

“보시다시피 저는 입찰장에서 화운석을 놓쳤고, 그래서 자금을 최대한 끌어와서 뒤늦게 달려든 겁니다.”

“도대체 화운석이 뭐기에?”

“그건 지켜보시면 알겠죠. 그럼 비켜주시죠, 간부님?”

킹븐은 카포네를 옆으로 밀어내며 루빈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카포네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공증의 방’에서 이뤄진 계약엔 제국군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카포네가 따로 조사할 수도 없다. 조사하는 것 자체가 반역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다.

“저 족제비 같은 놈…….”

다음날.

루빈과 티나의 거래가 이행되었다. 경매장의 하수인이 보는 앞에서, 루빈은 티나에게 3억 릴크를 지급받았다. 그중 1할을 경매장의 수수료로 내주었다.

둘 사이에 오간 3억은 결국 킹븐에게 받은 30억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후, 경매장의 출구 앞.

티나는 건네받은 화운석을 그대로 킹븐에게 넘겼다.

“저한테 받은 30억이면, 경매장에 머무르면서 ‘특매 주간’을 노려봐도 좋을 텐데요. 좋은 물건이 많을 겁니다. 몇 주 안 남기도 했고요.”

킹븐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 소년을 좀 더 붙잡아두고, 그에 관해 알아내고 싶었다.

특매 주간이라. 솔깃한 말이었지만, 루빈은 어서 카포티니로 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더 뜸을 들일 수는 없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잿빛항구로 갑니다. 카포티니로 가기 위해서요.”

“흐음… 그렇군요. 잿빛항구라면 카포티니 직행하는 여객선도 있을 테죠.”

그러면서 킹븐은 루빈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쿠제와 티나조차 듣지 못하게 은밀한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이다.

“우리의 계약과 별도로, 제 선의로 알려드릴 수 있는 낭보와 비보가 있습니다. 좋은 거래를 해주신 대가로요. 들어보시겠습니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라. 뭐에 관해서일까?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마령에 관한 겁니다. 제가 경매장에 심어놓은 첩보에 따르면, 마령이 깃든 물건이 경매장에 돌아다닌다 하더군요.”

마령. 현실 층위가 아닌, 마령세계의 족속들. 마령술사를 매개로 하여 이 세상에 틈입하는 놈들인데, 개중에는 물건에 깃드는 놈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긴 낭보라 해야 할 터. 어떤 경매 물품에 마령이 깃들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걸 사버리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테니깐.

“비보는 뭐죠?”

“공자께서 지금 경매장을 나가기엔 아쉬울 만한 이유이지요. 사실… 엊그제부터 이 경매장에 제국귀족이 하나 와 있다는 첩보입니다.”

“제국귀족이라…….”

릴리크가 제국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다섯 귀족. 그들의 위세는 대륙의 일곱 왕족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아마 이런 첩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도 재력가인 킹븐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위더스푼’가의 영애라 하더군요. 보아하니 공자와 비슷한 또래일 거 같은데.”

위더스푼가. 다섯 제국귀족 중 유일한 마법사 가문. 킹븐은 아무래도 루빈과 위더스푼가 영애의 교류를 추진하고 싶은 것 같았다.

대륙 내 웬만큼 지위와 권세,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국귀족과 인연을 맺길 꿈꾸니까.

위더스푼가의 이야기를 해주면 루빈의 마음을 돌리고, 경매장에 더 머무르게 할 거라 예상했겠지.

“흠, 그것도 비보는 아니네요.”

“예?”

제국귀족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건가? 황족 다음으로 고귀한 핏줄을 지닌 자들인데. 아주 약간의 친분만으로도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권세로만 보면 위더스푼은 제국귀족 중에서도 제일가는 가문이었고, 특히 그 영애는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마법천재로 유명한데도?

“관심 없습니다. 그럼 화운석의 성공저인 양산화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뿐이었다. 킹븐은 예상과 달리 아무 관심도 비치지 않는 루빈의 모습에 허무하게 웃기만 했다.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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