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97화 (97/258)

제97화. 룸메이트 (1)

루빈은 열쇠벌레를 따라 거리로 트나섰다. 거리 위에는 누가 봐도 신입 마법생도들로 보이는 아이들로 붐볐다.

“큭, 너는 자벌레냐?”

“무당벌레가 아주 깜찍하네?”

루빈의 열쇠벌레는 날개가 달린 잠자리의 형태였지만, 모든 열쇠벌레가 그런 건 아니었다.

루빈 옆으로 지나가는 마법생도의 열쇠벌레는 거미였다. 거미는 학생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그 거미줄 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열쇠벌레는 그 모습이 어떻든 간에 전부 몸체가 금빛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으로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이것도 연례행사인가 보네.’

카포티니 주민들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요란하게 떠들며 기숙사로 향하는 신입생도들의 행렬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피피피핑.

루빈이 곤돌라에 올라타자, 열쇠벌레가 다시 소리를 냈다. 열쇠벌레와 곤돌라의 마나석이 조응했고, 이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스윽스윽 나아간 곤돌라가 도착한 곳.

바로 랩소디관이었다. 호수 북쪽 기슭에 곤돌라를 정박시킨 다음, 첫 번째로 나오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건물.

랩소디관은 마법학교의 열다섯 개 마탑 중 왼쪽에서 세 번째 건물이었다.

지금까지 열쇠벌레한테서 똑같은 방향을 안내받던 학생들의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한 건 랩소디관 안에서부터였다. 중앙현관을 지나치자마자 누군가는 왼쪽으로,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누군가는 2층 계단으로 향했다.

‘여기가 중앙현관… 왼쪽의 복도는 너비가 이 정도… 오른쪽 복도는 이런 식이군…….’

루빈은 일부러 느릿하게 걸으며 주변을 관찰했다. 건물의 자세한 구성은 차차 알아가더라도,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랩소디관은 삼각뿔 형태였다. 마탑 대부분 원통 구조였지만, 드물게 다른 형태인 것도 있었는데 랩소디관이 그중 하나였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는 ‘랩소디’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그리고 형광으로 빛나도록 쓰여 있었다.

“뭐지? 신기한 건물이라고 들었는데.”

“나도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근처에서 그런 말소리가 들렸다.

루빈이 보기에도 그랬다. 딱히 마법건축술의 절묘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피리리링.

루빈은 열쇠벌레를 따라 3층까지 올라갔다. 계단에서 올라선 다음에는 왼쪽으로 나아갔다.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복도 양쪽 벽으로, 일정한 간격마다 문이 있었다. 그 문 너머가 바로 생도들의 방이었다.

루빈은 방문 앞에 섰다.

1인 1실. 통지문에는 그렇게 안내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기숙사 내 생도들의 공간은 ‘개념적으로는’ 1인 1실이다.

개념적으로는? 1인 1실이지만, 1인 1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 건가.

그 순간, 루빈의 열쇠벌레가 방문 손잡이 쪽으로 날아들었다. 날개를 접는 순간, 금빛의 몸체가 더욱 진해졌다.

그러더니 열쇠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철컥.

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루빈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보았다.

‘평범한데.’

그나마 평범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널찍하다는 것 정도.

복도에 있는 문과 문의 간격대로라면 이 정도의 넓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공간 확장 마법이 적용됐다는 뜻이지.’

공간 확장 마법. 마법건축술 중 하나였다. 공간 확장은 한정된 공간을 더 넓히는 것으로, 이걸 이용하면 서너 배는 더 넓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방의 기본 구성은 단순했다. 책상과 소파와 책장과 옷장이 있었다. 옷장 안과 책상 위에는 마법 상점에서 구했던 입학 준비물들이 모두 제대로 비치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널찍한 방 안으로 루빈의 발소리가 울렸다. 이게 끝인가? 고작 공간 확장만으로 마법건축술이 가미된 거라 할 수 있나?

그때.

귓가에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그마한 종달새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티나.”

“어때, 방은 마음에 들어? 이야! 엄청 넓잖아!”

“넓긴 한데… 로젠탈러는 이런 걸 예상하고 있지 않을 텐데.”

창문을 열어 티나를 들여보낸 루빈은 뭔가를 적었다. 칙명부에게 전달할 랩소디관에 관한 정보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사이, 티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넓은 내부를 돌아다녔다.

“지금 쿠제는 열심히 짐을 옮기고 있…….”

“티나.”

한순간 티나의 말을 끊는 루빈. 침착하던 그 눈빛에 날카로움이 배어났다.

뭔가가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기 위해 넓게 펼친 암연에 무언가가 감지되고 있었다.

“어이, 룸메이트!”

난데없이 목소리가 하나가 끼어들었다. 깜짝 놀란 티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재빨리 옷장 속으로 숨어버리고.

“안 들려? 여기야, 여기!”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암연은 여전히 같은 공간 속에서 누군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루빈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천장이다.’

루빈은 머리를 젖히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사방의 넓이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천장. 높이로만 수백 미터는 족히 될 정도였다.

“너 놀란 거야?”

“…….”

천장이면서 천장이 아니다.

거울? 똑같은 구조에다 똑같은 구성이 있는 방이 보였다. 그래서 저 높은 천장에 커다란 거울이라도 붙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거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다른 방이었다. 다른 방의 누군가가 소파에 앉아 루빈처럼 머리를 뒤로 젖힌 상태로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루빈 시점에서는 저쪽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형태였지만.

“이봐, 룸메이트! 언제 들어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

“너무 멀어서 네 얼굴이 잘 안 보이네. 계속 이러고 있으니까 목도 아프고.”

초록색 머리에, 초록 눈동자의 남학생도. 활기 넘치는 맞은편의 소년은 소파 위에 몸을 눕혔다. 그제야 마주하기 편한지, 표정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네가 안 오는 동안, 내가 여기서 설명서 좀 읽어봤거든? 두 개의 방의 거리를 좁힐 수도 있던데… 지금 해볼까?”

초록 머리 소년은 동의를 구하는 말을 하면서도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한 손으로 뭔가를 조작하는 것 같더니, 두 개의 방의 거리감을 빠르게 줄여 나갔다.

휘이이잉.

맞은편 소년의 공간이 추락하는 것처럼, 루빈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다가 우뚝 멈추었다.

이제 서로의 얼굴이 분간될 정도로 가까워지자, 초록 머리 소년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룸메이트! 난 오스카 투니오라고 해.”

악수의 의미로 손을 뻗어 왔지만, 그렇다고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간접속’은 그저 방과 방을 비춰줄 뿐이니까.

“나는 루든 포이넨.”

“너, 목걸이 보니까 귀족 출신이구나? 하지만 말야…. 여기 학교에서는 모든 마법사가 동등한 거… 잘 알고 있지?”

“그래,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뭐야, 개방적인 도련님이었잖아! 휴, 다행이다. 표정이 어쩐지 엘프처럼 차가워서, 나는 또 방을 바꿔 달라고 할 줄 알았지!”

뒤이어 오스카가 들려준 말에 따르면, 카포티니 기숙사 배정에는 계급 안배가 정해져 있었다.

학생들이 평민이 7, 귀족이 3의 비율로 있다 보니, 평민끼리 룸메이트가 되는 건 허용돼도 귀족끼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귀족이랑 평민이 룸메이트가 된 방은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살걸?”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루빈에게 오스카가 다시 말했다.

“봐봐, 이렇게!”

오스카는 ‘투명천장’을 새롭게 조작했다.

촤라라락!

루빈 눈앞으로 검은 베일이 씌워지면서 오스카의 방을 가렸다.

“루든! 펼쳐도 되겠지?”

“그래, 필요할 때만 가리는 걸로 하자.”

이윽고 투명천장의 베일이 다시 거둬지면서 오스카의 해맑은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오스카 손에 두꺼운 털실뭉치 같은 게 들려 있었다. 그는 그걸 루빈 쪽으로 내보이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알아?”

“털뭉치?”

“아냐, 마나구(球)라고 하는 거야.”

“마나구?”

한 손으로는 마나구를 만지작대며, 오스카는 옆에 있는 안내서를 읊기 시작했다.

“공간접속은 방과 방 사이에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없지만, 이번에 개축하면서 키건 교장은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안내서에 쓰여 있어.”

“새로운 시도라면…….”

“이 마나구의 용도는 자기 공간 너머로 공을 던지며 마나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친우 사이의 조화를… 어쩌고저쩌고하는데, 나는 대충 알 것 같아!”

던진다고? 루빈이 그 개념을 생각하는 사이, 오스카 얼굴 위로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곧바로 마나구의 쓰임새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일단 오스카는 다시 투명천장을 조작했다. 두 개의 방의 거리감을 넓혀 백 미터 정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공 안으로 마나를 집중시켰다.

“던진다?”

공의 색깔이 처음보다 짙어졌다. 오스카는 누워 있는 상태로, 그걸 루빈을 향해 던졌다.

슈우우웅.

빠르게 오스카에게서 멀어지는 공은 방의 경계로 나아갔다. 경계를 넘을 땐, 투명천장이 마치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파문을 뚫고 경계를 넘어온 마나구가 루빈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

팟!

공을 잡아챈 손이 얼얼했다.

‘저절로 마나가 방출되고 있어.’

마나로 꽉 찬 마나구를 쥐고 있으니, 몸속 마나에도 변화가 생겼다. 마나의 알갱이들이 증발하듯 빠르게 방출되는 게 느껴졌다. 덩달아 세 번째 환도 한없이 가벼워졌다.

이번엔 루빈의 차례, 오스카를 향해 마나구를 던졌다.

마나구는 이상 없이 나아갔지만, 오스카가 보여준 속도에 비하면 한없이 느렸다. 가까스로 투명천장의 경계를 통과하는 정도.

오스카는 느릿하게 떨어지는 마나구를 간단하게 받아냈다.

‘한 번 던졌을 뿐인데, 마나가 절반 이상 소진됐네.’

다만 이건 루빈한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공을 받아 든 오스카는 무리 없이 또 마나구를 던졌으니까.

두 번째 던지는 마나구의 색깔은 이전보다 훨씬 짙어져 있었다.

슈우웅.

이번에도 오스카의 마나구는 경계를 간단히 통과하여 루빈에게 쇄도했다.

파앗!

또다시 손이 얼얼했다. 속도나 위력 면에서 루빈이 비교해 볼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물리적인 힘과는 무관했다. 마나의 현저한 차이였다.

보아하니 마나구는 오고 가는 횟수에 따라 필요 마나가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루빈이 다시 던지려 했지만, 오스카가 한층 끌어올린 기준에 맞추기엔 마나가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까지야.”

“어때, 계속 하다 보면 마나가 단련되겠지?”

천진하게 웃는 오스카.

루빈은 투명천장 너머의 소년을 바라봤다. 그저 쾌활하기만 한 룸메이트가 아니다. 마법사로서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오스카 투니오… 이번 신입생들 수준이 역대 최고라더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

로젠탈러는 그렇게 말했었다. 정보에 따르면 이번 카포티니 신입생도의 수준이 오랜 역사 통틀어 최고라고.

심지어 재능만 보자면 지금 교장으로 있는 키건이나 유명 마법사인 베니테즈가 입학했던 그 시기보다도 월등한 수준이라고 했었다.

‘저 아이가 얼마나 재능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페르 로렌치니를 찾아볼 겸 방을 나서려던 루빈을 오스카가 따라나서겠다고 한 것이다.

“이제 나는 기숙사를 좀 둘러보려고.”

“진짜? 혼자 다니면 심심할걸? 위험하기도 하고. 오늘 같은 학기 첫날엔 무조건 강한 기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기다려,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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