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01화 (101/258)

제101화. 입학식 (2)

‘세레나데관’은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중요 행사가 치러지는 장소 중 하나였다. 특징이라면, 굉장히 넓은 홀이라는 것과 마탑 꼭대기에 교장실이 있다는 정도.

일반적으로, 마법생도들이 이곳에 올 일은 드물었다. 해봐야 입학식과 졸업식뿐이니까.

그 외의 자잘한 행사는 다른 마탑에서 치러지니, 이곳에 들어온다면 그건 대개 꼭대기에 있는 교장실에 불려 간다는 걸 의미했다.

“루든, 우리가 앞으로 여기 또 올 일이 있을까?”

올해 입학생도들로 북적이는 홀 한복판. 제 좌석을 찾던 오스카가 불쑥 물어왔다.

“아마 졸업식 때?”

“정말 그뿐이겠지? 교장이랑 면담하게 된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나, 진짜 싫을 거 같거든.”

“그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휴. 그건 그렇고, 여기 진짜 넓다. 그치?”

입학식이 열릴 세레나데관은 반원 형태의 극장 구조였다.

교장이 설 단상이 가장 아래쪽에, 거길 중심으로 계단식 좌석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미 대부분의 좌석은 입학생도와 그 관련자들로 빼곡했다.

“루빈, 저거 보여?”

오스카가 가리킨 곳은 단상 뒤쪽 벽이었다. 자세히 보니, 일반적인 벽이 아니었다.

“벽 투명한 거 보여? 결강석 벽이잖아.”

마탑 외부에서 보면 그저 돌벽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광산도시 스플렌도크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결강석 재질의 벽이었다. 그래서 유리처럼 바깥이 훤히 비치는 것이다.

“크. 전경 좋고. 그치?”

루빈은 고갤 끄덕였다.

‘티나를 떼어놓고 오길 잘했네.’

오스카가 호들갑을 떨 만했다.

수장된 마나석에 의해 은은하게 빛나는 카포틴 호수의 수면. 그리고 내리쬐는 햇빛의 조합. 눈부신 빛무리가 그대로 결강석을 통과하여, 홀 전체를 비추고 있었으니.

“우리 자리는 어디에 있지…….”

바깥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오스카는, 이내 고개를 흔들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루빈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스카, 직접 찾을 필요 없겠는데.”

“응, 무슨 소리야?”

“열쇠벌레를 따라가면 돼.”

기숙사 방에서 나온 뒤로,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던 열쇠벌레가 생도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각 입학생도의 지정석이었다.

피피피핑.

루빈과 오스카의 열쇠벌레가 의자 하나에 내려앉더니, 의자에 난 열쇠 구멍과 결합했다. 그러자 등받이에 붙어 있던 의자 밑면이 철컥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정말 이런 기술들을 왜 학교 안에만 놔두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오스카가 이렇게 구시렁대며 루빈 옆자리의 의자를 막 작동시킬 때였다.

“앗!”

통로 바로 옆자리였던 오스카가 무언가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하마터면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누구야!”

“이런, 괜찮니?”

위쪽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커다란 그늘이 두 사람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고갤 드니, 웬 거구의 노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스카는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룰루……?”

“응? 뭐라고 했지?”

“아, 아니에요. 하하. 스레힘 사감님이 키우는 울르딘 곰…….”

적절치 못한 오스카의 변명에, 루빈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아, 제 친구가 오늘 좀 신나는 일이 있었거든요. 아마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흐음.”

거구의 노인이 의심쩍은 얼굴으로 둘을 내려다봤다. 둘은 그제야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진짜 룰루 같네.’

덩치는 커다랬고, 덥수룩한 수염은 사납게 뻗쳐 있다. 운동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 두툼한 근육이 옷을 찢고 튀어나올 기세였다.

“그래. 입학식 앞두고 다들 들뜨곤 하지.”

“마, 맞아요. 지금 너무 설레요!”

너스레를 떠는 오스카에게 노인이 씩 웃어 보였다. 그러곤 홀을 쓰윽 둘러본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다들 일찍 나왔구나.”

“저희가 좀 부지런한 편이긴 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그래야지. 유급당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그나저나 너희 둘은 좀 특이한 조합이구나.”

“네? 뭐가요?”

이젠 약간 귀찮아진 오스카가 건성으로 묻자, 노인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한쪽은 귀족 출신인데, 다른 쪽은 평민 출신이군. 입학식 전부터 이런 사이는 보기 드물지.”

“아, 그런가요?”

그때.

‘음?’

루빈은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동을 느꼈다. 하네케였다. 그는 루빈의 시야에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왜 그래요, 하네케?’

-호오…….

그사이, 노인이 다시 말을 붙였다.

“너희 이름이 무엇이더냐?”

“이름이요? 그건 왜요?”

“졸업할 때에도 그 사이가 유지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구나.”

오스카는 시큰둥했다. 딱 봐도 건물관리인, 혹은 스레힘 사감의 조교 정도로 보이는 이 노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흠…. 건물관리인한테 함부로 이름을 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으응?”

오스카의 말에, 거구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수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 그래도 거대했던 몸집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오스카는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때, 루빈의 내면세계에서도 하네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허허.

‘왜 웃는 거죠, 하네케?’

아무런 대답도 안 했지만, 루빈은 하네케와 이 노인이 서로 아는 사이일 거라고 짐작했다.

한참을 웃어젖히던 노인이 이윽고 몸을 돌렸다.

“아니다, 내 괜한 걸 물어봤구나. 이 관리인 할아버지는 인제 그만 가보마. 여기저기 살펴볼 곳이 많거든.”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노인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 아래쪽 단상으로 향했다.

“휴. 저 할아범,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난 또 진짜 룰루가 온 줄 알았잖아.”

“설마.”

“넌 모르겠지. 진짜 저 할아버지랑 엄청 닮았다니까? 맨날 춤 연습하던 파트너여서 내가 잘 알아. 너도 바로 코앞에서 보면, 룰루랑 저 할아범 얼마나 똑같은지 알걸.”

그러자, 하네케가 전보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재미있는 룸메이트군. 자네 눈에도 저 노인이 건물관리인처럼 보였나?

‘글쎄요. 저 노인, 하네케가 아는 사람 맞죠?’

-알다마다. 키건이라는 자일세.

‘…키건이라면?’

-자네들의 교장이지.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군.

루빈은 놀랐다. 카포티니의 교장에 대해 미리 정보를 수집하긴 했지만, 그의 외형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루빈이 알고 있는 건 그가 20년 전에 이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카포티니 시민들에게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정도.

-내가 대장군이었을 때, 마법사여단 소속 마법사였네. 여단장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던 인재지. 뭐, 결국 학을 떼며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긴 했지만.

짤막한 설명이었지만, 키건 교장의 경지를 얼마간 가늠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사실 키건이 마법사여단에 남았다고 해도, 그가 여단장으로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게 분명했다. 여단장 직책은 위더스푼 가문에서 승계하다시피 하는 자리였으니까.

다만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신분이나 출생이 아닌, 오로지 실력만으로 인정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

-루빈, 난 마법은 잘 몰라도, 삼휘가 공격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개념 정도는 안다네. 저 덩치 큰 마법사가 몸소 깨우쳐 주었거든.

그가 키건을 마지막으로 본 건 20년 전이라고 했다. 그 당시 오십 대였던 키건은 어느덧 하네케가 죽음을 맞이했던 그 나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키건도 이젠 늙어버렸군. 흐음, 카포티니로 돌아가 정육점이나 하겠다던 이가 어찌 마법학교 교장을 하고 있는지.

하네케의 목소리가 추억에 젖어 들 때쯤.

단상 위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키건 교장에게 다가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교수 베니테즈였다. 루빈은 암연으로 청각을 증폭시켜,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키건 교장님. 어서 예복 입으셔야죠.”

“어서 와, 베니테즈. 근데 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세요.”

“자네, 룰루라고 아나?”

“스레힘 사감이 키우는 울르딘 곰 아닙니까?”

“…혹시 녀석이 날 닮았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표정을 보아하니 자네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저기 저 신입생도들 보이나? 날 보고 룰루라고 하더라고.”

키건의 손가락을 따라, 베니테즈의 시선이 루빈 쪽을 향했다. 엉겁결에 눈이 마주쳐 버린 루빈과 베니테즈.

곧 교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숨은 상인으로 마주했던 그날 이후 두 달 만이었다.

“흠, 건방진 녀석들이군요. 제대로 혼쭐을 내야겠습니다.”

“아주 좋아. 눈물을 쏙 빼놓도록. 교장으로서 명령이야.”

키건의 농담에 웃어준 베니테즈가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흥미롭다는 표정. 그는 루빈과 오스카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두 사람이 룸메이트인가요?”

“네, 맞습니다, 교수님.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군요, 오스카 생도.”

둘이 아는 사인가? 루빈은 내심 놀랐다.

베니테즈가 이어 말했다.

“룸메이트 배정은 순전히 운이라는 거, 알고 있었나요? 귀족과 평민 출신의 비율만 고려하고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거죠. 근데 그 많은 생도 중에서 하필 두 사람이 룸메이트가 됐다니, 재밌네요.”

이게 무슨 말인가.

이해하지 못한 루빈과 오스카가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때.

“아, 두 사람은 아직 모르고 있었나 보군요?”

“네? 잠시만요, 교수님! 야, 루든, 너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냐?”

“글쎄.”

어깨를 으쓱이며 흐뭇한 표정만 지을 뿐, 베니테즈 교수는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지 않았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됐군요.”

때마침 기숙사를 나선 학생들이 하나둘씩 2층 홀로 들어왔다. 베니테즈 교수는 떠나기 전에 단서를 던져 주었다.

“각자 날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이야기해 봐요.”

처음 만났을 때라면?

“설마?”

깜짝 놀라는 오스카에 비해, 루빈은 침착했다.

그날, 베니테즈가 숨은 상인 역할을 하며 만난 학생은 클로이와 루빈뿐만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루빈이 가고 난 뒤, 교수는 그토록 기다리던 평민 생도를 한 명 만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오스카였다. 귀족 생도들 영역으로 서슴없이 넘어온 평민 생도.

“귀족 출신도 첫 번째로 발견하면 특별품목을 받을 수 있다더니, 그게 너였구나.”

“예상 밖이네.”

사실 생각해 보면, 겁 없고 마법 실력이 출중한 평민은 오스카밖에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오스카, 넌 뭘 받아냈어?”

“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대체 교수님한테 뭘 받아낸 거냐? 교수님 아공간이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니까!”

“네가 안 알려주면 나도 비밀.”

“뭐? 난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진짜 하나도…….”

“쉿. 조용해 봐.”

그때.

입학식장에 와 있는 생도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리는 게 느껴졌다.

아래쪽 단상 뒤편, 결강석의 투명한 벽면으로 호수를 건너오는 수십 척의 곤돌라가 보였기 때문이다.

저건, 입학식과 연회에 참석하는 귀빈들이 막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잘만 스윽스윽 다가오던 수십 척의 곤돌라가 갑자기 호수의 중앙에 가만히 멈춰 섰다.

“흐음? 왜 갑자기 멈춘 거지?”

“아마 호수를 모두 건너오지는 못하는 건가 봐. 결계 때문이겠지.”

“근데 루든, 저 관리인 할아범, 지금 저 앞에서 뭐 하는 거냐?”

오스카가 가리킨 곳은 단상 위였다.

키건은 창밖을 내다보듯 결강석 가까이 서 있었다. 어느새 입학식을 거행하는 교장다운 예복으로 갈아입은 그가, 매섭게 손을 휘저었다.

마법을 펼치는 것이다.

루빈만이 그걸 알아보았다. 글레이튼의 팔찌 덕분에 키건의 얼굴 옆으로 떠오른 삼휘의 마나선이 훤히 보였으니까.

‘얼음계열 마법이다.’

스드드드득.

잠시 후. 얼음 결정이 솟아나는 소리와 함께, 호수 위로 귀빈들을 위한 얼음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와!”

“뭐야, 얼음 계단인가?”

“저 할아범은 뭐 하는 거야? 왜 단상 위에 서 있어?”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

아직도 생도들은 지금 교장이 마법을 시전하고 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엄청난 규모로 생성되는 얼음길을 넋 놓고 구경할 뿐.

루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경지다.’

호수를 얼리는 정도의 마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시전자가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교장이라면, 그 위력은 천지 차이.

호수와 마탑 사이의 거리 차이를 간단히 무시해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게다가 얼음길의 형태 또한 단순한 통행로 정도가 아니었다.

“와, 저것 봐. 무슨 황궁 계단 같잖아?”

“실제로 본 적은 있고?”

“닥쳐라.”

생도들의 말처럼, 얼음길은 궁전의 대로인 양 아름다운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심지어 길 양쪽엔 카포티니의 역사적 사건들이 담긴 삽화까지 새겨진 상태.

“근데 아까부터 저 관리인 할아범은 왜 저래? 저기서 왜 혼자 지휘하는 거냐고. 노망든 건가?”

오스카도 마찬가지. 아직도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 해서 말해주면 좋겠지. 어차피 곧 알게 될 테지만.

“오스카, 저 할아범이 카포티니 마법학교 교장이야.”

“응?”

“교장이라고. 교장 키건.”

“…뭐, 뭐라고!”

삐죽 튀어나오는 외침에, 키건 교장이 고개를 이쪽으로 휙 돌렸다. 울르딘 곰, 룰루의 얼굴을 한 교장의 앙증맞은 윙크.

“입학식 날부터 교장 면담인가…….”

오스카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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