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칙명부의 끄나풀 (4)
“좋다, 이제부터 루든 포이넨 생도가 내 수업의 보조학생으로 활동할 거다. 혹시 이 결정에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 있나? 뭐, 루든 말고 자신이 보조학생을 더 잘할 자신이 있다거나.”
“…….”
그럴 리 없었다. 오히려 생도들은 교수의 시선을 피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입장에선 벌칙을 피하게 해준 루빈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보조학생을 뽑았으니, 아까 말했던 대로 조를 만들어라. 오늘 만들어진 조는 1년 내내 이어진다는 걸 참고하도록.”
1년 내내라고? 오늘 만들어진 조가 하루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생도들의 눈빛이 짙어졌다.
다들 서둘러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잠시 미뤄졌던 영입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너, 마리엔이라고 했지? 어제 얘기했을 때 기본적으로 마법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우리 조에 들어올래?”
“제이크. 우리 조 한 명 남았는데, 너 껴줄게.”
“…뭐? 클로이 있냐고? 걔가 우리 조로 와줄 것 같아? …뭐? 달리아? 걔도 어렵지!”
웅성대며 뒤엉키기까지 하는 아이들. 퀴닝 조교의 눈에는 그런 생도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사실, 저는 오늘 신입생도 수업에 처음 들어오거든요. 늘 고학년 수업만 다녔으니까…. 근데 다들 벌써부터 친해져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 말에 옆에 있던 톰슨 조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생도였을 때 생각하는 거죠? 신입생도들끼리는 늘 경계하고 틀어지기 일쑤이긴 했죠. 목걸이를 없앴다고 해도 귀족은 귀족끼리, 평민은 평민끼리 어울리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맞아요, 그사이 학교 분위기가 달라진 건가 봐요.”
그 말에 톰슨 조교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퀴닝 조교님. 사실 이건 C반 특유의 분위기예요. 신입생들 중에서 C반만 이렇거든요.”
퀴닝은 무슨 뜻이냐며 톰슨을 쳐다봤다. 톰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베니테즈 교수의 방식을 설명해 줬다. 석판과 깃펜을 활용하여 생도들 사이를 가까워지게 하는 방법.
“그런 베니테즈 교수님의 C반이었으니 활발한 거지, 다른 반들은 이렇지 않아요.”
“D반은 어때요? 가이젠 교수님이 맡으신 학급이잖아요.”
잠깐 대화를 끊은 두 조교가 가이젠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교수는 돌아다니며 생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목소리를 좀 더 낮췄다.
“D반이요? 거긴 이미 평정됐어요.”
“평정? 어떤 생도가 학급 전체를 휘어잡았다는 뜻인가요?”
“이번 신입생도 중에 에릭이라고, 들어봤죠?”
“아 그 이엘로스 가문의?”
“네, 맞아요. 어제 하루 사이에 D반은 이엘로스 왕국이 된 거나 다름없어요.”
“앗, 그러면…….”
“에릭 생도가 자기 마음에 드는 생도들을 선택해서 자기 수족으로 다루고 있어요. 일종의 측근이자 공신이랄까요.”
톰슨 조교는 D반 교실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그 서늘함과 아찔함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생도들이 나서서 학급을 다잡아 버리니까, 다른 생도들은 아주 얌전해졌고요. 뭐… 그 덕분에 가이젠 교수님으로서는 아주 편안해진 거죠. 어찌 보면 전체를 다루기엔 그보다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일 수 없으니까.”
“그러면 나중에 경쟁수업 때, D반에선 에릭이 학급을 대표하겠네요.”
“네, 사실상 확정된 거예요. 그런데 여기 C반은…. 음, 아무래도 위더스푼의 영애이려나? 휘식이 원휘라서 안 되려나. 그러면 달리아 델린?”
거기까지 말했을 때, 톰슨과 퀴닝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클로이와 달리아가 누구와 조를 꾸렸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만들어진 조가 1년의 성적을 좌우한다. 아이들 모두 그 사실을 깨닫고 있던 터라, 교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뒤엉킨 아이들 틈으로, 두 조교가 찾던 클로이 위더스푼이 보였다.
“저기 있네요.”
“그 옆에… 달리아 델린 생도도 있어요.”
“설마 둘이 같은 조를 만드는 건가? 그러면 이거 엄청 재밌겠는데요.”
“아니, 그러기에는 저 구도… 어쩐지 의견 충돌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싸우는 거 같기도 한데.”
“흠, 그런가? 두 사람 앞에 또 누가 있네요.”
“어? 저 생도, 아까 보조학생을 자처한 아이 맞죠?”
클로이와 달리아. 두 사람의 대치 구도를 지켜보는 건 두 조교만이 아니었다. 가이젠 교수 역시 그쪽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흥미로운데.’
가이젠 교수는 그들의 대화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생도들도 그걸 알아차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달리아, 네가 루든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클로이의 낭랑한 말소리. 미소를 유지한 채였고, 그녀 말투에는 조심스러움도 배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은 의지도 엿보였다.
조를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클로이는 세 명의 생도를 영입하여 자신의 조를 꾸렸다. 어제 하루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 나름대로 마법 인재들을 추려놓았던 터였다.
그렇게 클로이 포함하여 넷.
클로이는 다섯 번째 조원으로 루든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클로이가 루든에게 다가갔을 때, 그에게는 이미 다른 생도가 먼저 접근한 뒤였다. 달리아 델린이었다.
“…….”
왜 루든이 필요하냐니. 잠깐 대답을 미루곤 아랫입술을 깨무는 달리아 델린.
달리아도 클로이처럼 주도적으로 자신의 조를 꾸려가던 참이었다. 남들 제의를 고민하는 건 그녀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남들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를 원했다.
그래서 달리아는 우선적으로 두 명의 생도를 영입했다. 그녀 포함하여 셋.
예상대로라면 네 번째 조원은 루든이 될 터였다. 다가가 막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클로이 위더스푼이 다가와 훼방을 놓은 것이다.
“클로이, 나야말로 그 이유가 궁금한데. 왜 루든을 원하는 거야? 혹시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친분 때문이니?”
클로이가 자신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았다는 생각에, 달리아의 말투에선 어쩔 수 없는 공격성이 묻어났다.
“나는 루든처럼 관찰력 좋은 애가 필요해서 그래.”
“관찰력? 아… 어제 에겔러 교수님 수업 때문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루든의 관찰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달리아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실, 그녀가 루든을 원하는 이유는 관찰력 때문이 아니었다.
“달리아. 내 생각에 넌 루든이 보조학생이기 때문에 데려가려는 거 같은데. 안 그러니?”
“뭐?”
“보조학생을 조원으로 두면, 수업 중에 이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서. 만약 그런 이유라면, 그냥 나한테 양보하는 게 어때?”
“클로이… 너, 나를 오해하는 것 같은데.”
달리아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클로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오해라면 미안해.”
사실, 클로이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달리아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루든을 영입하려 했고, 심지어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클로이가 지적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사실을 밝히기가 싫어졌다.
“말했잖아. 나도 루든처럼 관찰력 좋은 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지금처럼 이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런 재능이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알았어. 근데 나는 루든뿐만 아니라 오스카 투니오도 같이 영입할 생각이라는 걸 알아둬.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은 이미 같은 조를 만든 것 같거든.”
“오스카 투니오?”
“응, 마침 오스카도 내가 원하는 조원이거든. 너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 말처럼, 달리아는 오스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클로이야 오스카가 마법적인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루빈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달리아는 아니었다.
달리아가 보기에 오스카는 그냥 수다스러운 멍청이였을 뿐이다.
“두 조장님들?”
때마침 두고 보던 오스카가 둘 사이로 나섰다. 오스카는 자신과 루든을 묶어 ‘우리’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흠, ‘우리’가 이렇게 인기 있을 줄 몰랐네요. ‘우리’로서는 참 고민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 감정이 격해지면 ‘우리’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클로이 양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조를 형성한 2인조로서…….”
“아니, 클로이. 나도 오스카를 원했어.”
달리아의 단호한 한마디가 오스카의 말을 끊어버렸다.
안중에도 없던 오스카까지 조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솟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클로이한테 루든을 뺏기는 건 두고 볼 수 없으니까.
“오스카. 너하고 루든을 우리 조로 영입할게. 거절할 이유 있어?”
“거절할 이유 있냐니…. 이것이 귀족 가문만이 뿜어낼 수 있는 담대함이란 건가.”
“당연히 넌 없겠지. 그러니까 이제 좀 비켜줄래? 루든하고도 말하고 싶으니까.”
달리아는 오스카를 옆으로 밀어내며 루빈과 마주했다. 클로이도 그들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루든. 넌 어떻게 생각해?”
루든이 자신을 고를 거라고 내심 확신하고 있는 클로이. 아무리 그래도 루든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다고 믿는 달리아.
그러거나 말거나, 루빈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가이젠 교수를 더 의식하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루빈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두 마법생도를 한 번씩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달리아.”
“시간 끌지 말고 대답해.”
“나는 네 조에 들어갈 생각 없어.”
달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반면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 클로이.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클로이의 조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곧바로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버린 클로이였다. 그걸 본 달리아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이번엔 루빈을 향해 조소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든, 지금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다면…….”
“대신에 난 다 같이 조를 만들었으면 해.”
“뭐? 하…….”
이렇게 모여서 조를 만들자고? 어이가 없는 제안이었다. 달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보조학생으로서 이점이 있을 것 같아 루든을 찾아왔는데, 도리어 조원으로 들어오라니.
“숫자도 딱 맞아. 나하고 오스카는 둘, 달리아 조는 셋, 클로이 조는 넷. 합하면 아홉 명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클로이?”
“음. 난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
나쁘지 않은 생각? 달리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클로이가 더 이해 가지 않았다.
클로이가 조금 전의 마찰을 간단하게 잊은 것 같다는 사실이 더욱 거슬렸다. 아무렇지 않게, 상냥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대하는 저 모습에 자존심이 구겨졌다.
제국귀족 영애에게, 델린 가문의 영애 따위는 인상에 남지도 않을 먼지 같은 존재란 뜻인가?
일그러지는 달리아의 표정을 보고 루빈은 그녀의 심리를 파악했다.
‘이쯤에서 자존심을 챙겨줘야겠군.’
달리아가 클로이를 견제하고 질투하는 건 관심 없다. 루빈은 달리아를 적당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가이젠은 페르를 찾으면서, 그 후보 중 달리아와 클로이를 제외했다. 어제저녁 가이젠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속임수로 쓰기에 유용했다.
루빈이 벌일 수상쩍은 행동들을, 마법 능력이 출중한 달리아의 소행으로 꾸미는 방식으로 말이다.
클로이를 대상으로 하기엔 위험 부담이 따랐다. 제국귀족이라는 신분은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으니까.
“달리아, 어떡할래? 나랑 클로이를 포함한 여섯 명을 네 조에 받아주는 거야.”
“…….”
“그럼 네가 조장을 해도 좋아.”
그런 다음, 루빈은 클로이를 쳐다봤다. 달리아에게 조장 자격을 주어도 괜찮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어진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클로이.
“…….”
달리아는 흔들리고 있었다.
조별 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질지 예상할 수는 없어도, 조장이라는 말에 끌리는 것이다.
거기에 제국귀족 신분인 클로이 위더스푼을 자신의 조원으로 둘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겠지. 이것만으로도 사교계에서는 커다란 화젯거리가 될 테니까.
“이제 슬슬 마무리하도록.”
교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생도들은 더욱 다급해졌다. 달리아를 원했던 어느 생도 하나가 그녀 쪽으로 다가온 것도 그때였다.
“달리아, 우리 애들이랑 같은 조 할래?”
새로운 제안에 달리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루빈과 클로이에게 말했다.
“좋아. 대신.”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녀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조금이나마 그녀의 자존심을 회복할 만한 조건이었다.
“내가 조장이야. 수업 방식에 따라서, 어쩔 땐 내가 조원들을 직접 지휘할 거야. 클로이 너라고 해도 예외는 없어.”
“난 괜찮아. 뭔가 용병단에 들어가는 것 같아서 기대되는데?”
“…그래, 알았어.”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클로이의 천진한 모습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클로이와 조를 이루는 게 잘하는 결정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달리아는 생도들을 이끌고 교실 뒤편에 자리 잡았다.
“…….”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루빈은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달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났다. 생도들은 교실 뒤편에 각 조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조를 꾸릴 땐 생도들 모두 정신이 없어 미처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달리아와 클로이가 같은 조가 됐다는 걸 알고는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거기다 루든까지 함께한다는 사실은, 한숨을 푹 내쉬게 하기에 충분했다.
“뭔가 체급부터 다른 것 같은데.”
“게다가 달리아 조만 귀족이랑 평민들이 고루 섞여 있잖아. 다른 애들은 다 신분 차이를 못 깨트렸는데.”
그때.
“다들 조용.”
가이젠 교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교수 뒤쪽으로는 톰슨 조교가 서 있었다.
조교 앞에 놓여 있는 상자 여러 개.
“각 조장은 여기에 놓여 있는 상자 하나씩을 골라 가라.”
지시가 떨어지자, 달리아를 비롯한 조장들이 교실 앞쪽으로 나갔다. 각 상자의 구성물은 전부 동일했다. 액체 용기 아홉 병이었다.
툭.
생도들은 조장들이 가져온 액체 용기를 하나씩 들어보았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각자 병 하나씩을 집어 들어라.”
생도들 전부 그 말에 따랐다.
“왠지 이거 마시라고 할 거 같은데.”
오스카의 불안한 한마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그대로 가이젠의 지시가 떨어졌다.
“다들 자신이 손에 쥔 마법약을 들이켜라.”
“이거 마법약이라고요? 교수님! 이게 어떤 마법약인지도 모르는데요.”
“네가 오스카 생도인가?”
“맞습니다. 오스카 투니오입니다.”
“…뺀질댄다는 평가가 사실이군.”
그러나 오스카만이 걱정은 아니었다.
생도들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다들 이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겁이 나나? 다칠까 봐?”
“…….”
“마법약제사들 사이에 ‘가장 완벽한 마법약은 죽음이다’라는 말이 있지. 겁먹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걱정은 말도록. 이 자리에 있는 생도 중, 오늘 죽을 사람은 없으니까.”
가이젠 교수는 더 이상의 말을 생략했다.
그는 겁을 내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뒤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커다란 안경을 올려 쓰는, 치유마법학 조교 퀴닝이 있었다.
불안 가득한 생도들의 시선에 그녀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치유 마법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는지, 다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누군가 마법약을 들이켜는 소리가 교실 안에 울렸다.
꿀꺽꿀꺽.
모든 시선이 한데 모였다. 병에 가득 채워져 있던 마법약이 빠르게 줄어드는 중이다. 마치 맛있는 음료수를 들이켜는 듯한 모습.
“…….”
병을 모두 비운 루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