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차출시험 (3)
“D반 애들이 들어간 문으로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오스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릭 무리를 뒤쫓아 가다가는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에릭이라면, 탈락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꺼이 싸움을 걸어올 것이다.
“아,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쟤네랑은 겹치지 않는 게 낫겠다.”
뒤늦게 상황을 예측한 오스카도 생각을 바꿨다.
“일단 처음은 여기로 하자.”
루빈은 고민하지 않고 문 하나를 골랐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 너머로 두 개의 문이 나왔다. 각각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문이다.
선택지가 놓였지만, 루빈은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파란색 문을 골라 열었다.
끼이이익.
그 너머에도 역시나 두 개의 문.
“뭐야, 이거? 이번에는 각각 네모랑 세모가 그려져 있는데.”
오스카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색깔의 차이였는데, 이번에는 문양의 차이. 난해한 수수께끼를 맞이한 기분이었다.
“하…. 도대체 이게 뭔 짓거리인 거지. 아직 해도 안 떴을 텐데. 안 그래, 달리아?”
슬쩍 뒤를 돌아보자, 뒤쪽에서 거리를 벌린 채 두 사람을 따라오는 달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 팀을 이루기보다는, 앞서가는 둘의 상황을 관망했다. 루빈이나 오스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곧바로 대응, 모면할 수 있을 테니까.
“달리아, 너도 이리로 와서 차라리 머리를 맞대보는 게 어떨까.”
오스카가 달리아를 향해 이렇게 말했을 때.
끼이이익.
루빈은 마치 도움 따위 필요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세모 문양의 문을 열었다. 그다음엔 각각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쯤 되니, 오스카도 의심의 눈초리가 되었다.
“루든, 너 설마 둘 중 아무거나 막 찍고 있는 거냐?”
“쉿, 조용히 해. 이제 확실히 알 것 같거든. 서두르자.”
“야, 야! 뭘 알아냈다는 거야, 도대체! 설명 좀 해줘.”
“그래, 좀 알려주지 그래? 슬슬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거든.”
이번엔 달리아까지 거들며 나섰다.
루빈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D반 애들보다 빨리 가야지.”
오스카와 달리아가 대놓고 투덜댔지만, 마지못해 따라왔다.
이후, 루빈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계속해서 두 개의 선택지가 나타났지만,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간단해.’
눈에 보이는 건 선택을 지체시키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다. 정답은 훨씬 본질적이고 간단한 데 있었다.
* * *
“흥미롭네.”
폰드리안 위장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폰드리안은 ‘이상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한’ 생도가 있다는 직속부관의 말에 따라, 시험 과정이 녹화된 마적석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특별하단 말을 듣긴 어렵지.”
폰드리안은 직속부관을 째려봤다. 고작 이걸로 호들갑이냐는 것이다.
검은머리 후보생이 1단계에서 보여준 모습은 분명 시험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행동들이었다.
‘반복해서 나타나는 두 선택지의 일관성을 찾아내는 것.’
1단계는 판단력을 가려내는 시험이었다. 빠르게 선택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다간 시험 자체가 종료되고 만다.
그렇긴 해도, 1단계였으니 심각하게 난해하지도, 압박감을 주는 시험은 아니었다.
“이 검은머리가 에릭인가 하는 그 주황머리 귀족보다는 확실히 나은 것 같긴 하군. 그놈들은 척후병을 써 팀에서 한 놈씩 희생시키며 문을 골랐으니까.”
그게 에릭이 속한 D반의 방식이었다.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도록 짜여져 있는 이 시험에서, 에릭은 매번 척후병들을 희생시켰다.
지휘관의 덕목으로 따지자면, 에릭과 같은 선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검은머리처럼 아무런 피해 없이 정확하게 정답을 찾아내는 게 더 나은 건 자명했다.
“확실히 정답을 알고 있군. 외형이 아닌 재질의 일관성으로 문을 골라야 한다는 걸.”
문의 외형은 속임수일 뿐, 정답은 문의 재질에 있었다.
정답은 철제.
철제문은 계속해서 나온 반면, 그에 대응하는 다른 문의 재질은 계속하여 바뀌고 있었다. 조금만 집중한다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트릭이었다.
“지금까지 정답을 맞힌 후보생이 이 녀석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1단계였으니까.
일관성을 찾아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수고만 들이면 결국에는 알맞은 출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잘못 선택한 문을 되짚어가면서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게다가 폰드리안이 지적한 것처럼, 정답을 맞히는 후보생들도 없지 않았다.
3년 전, 모휘의 마법학교에서 진행했던 시험에서도, 오늘처럼 빠르게 통과한 생도가 둘이나 있었으니.
“부관, 고작 이걸로 그렇게 호들갑을 부린 건가?”
폰드리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머리가 유능하기는 해도, 직속부관 말처럼 ‘대단하다’며 감탄할 정도는 아니다.
“위장님, 2단계를 보셔야 합니다.”
“2단계? ‘검은 강’ 말인가.”
“예. 녹화된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 검은머리 후보생. 평범한 생도가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겠지, 마법사니까.”
“제 말은… 그 후보생은 무인의 재질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재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마도무인이라는 건가.”
말로 설명을 듣느니, 직접 확인하는 게 빨랐다.
폰드리안은 마적석을 가동시켰다. 이번에는 시험 2단계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펼쳐졌다.
‘검은 강’
2단계가 되면, 시험장은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생도들이 집결해 있는 지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이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깊은 물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마도구에 의해 시험장의 면적은 실제보다 늘어나게 된다. 출구와의 거리가 늘어나게 되면서, 실제 강 면적 만큼이나 커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물엔 특별한 힘이 담겨 있지. 물에 닿은 자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힘.’
두려움 없이 물에 뛰어들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강을 건널 수 있는지가 이 시험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다.
“왜 그러지? 그 검은머리가 뭘 어쨌기에?”
“그게, 한번 보시죠.”
폰드리안은 팔짱을 낀 채, 마적석을 들여다보았다.
풍덩!
시험이 시작된 뒤,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든 건 바로 그 검은머리 생도였다.
‘일단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높이 살 만한데.’
곧 폰드리안의 지적이 시작됐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이 시험에서는 지형부터 파악하면서 나가야 하잖나.”
검은 강 중간중간엔 수많은 인공섬들이 있었다. 이 중에 시험을 끝낼 수 있는 출구가 있는 식이었다.
운이 좋다면, 몇 번 만에 출구를 찾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전부 다 뒤져야만 찾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멀찍이 서서, 어느 섬부터 들를지 효율적인 동선부터 짜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검은머리 생도는, 마치 어느 섬에 출구가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출구가 어디 있는지 파악한 건가? 근데 무슨 수로?’
눈에 보이는 장면에 반신반의하며, 폰드리안은 검은머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꼼꼼하게 지켜봤다.
‘일단 물에 뛰어들어 깊숙이 잠수를 했고…….’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도 계속 기다렸지만 도통 나오질 않았다.
대체 언제 물 밖으로 나오려는 거지? 이쯤이면 근처 인공섬에 들러 체력을 회복하는 게 정상인데.
“이놈, 뭐야?”
의자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던 폰드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 숨을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은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아직도 검은머리 생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시험 중 사고?’
우선 그런 생각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검은 강 단계에선 사고가 다반사였다.
다만, 시험관들의 완벽한 통제하에, 수영을 하지 못하는 생도들은 안전하게 구출되는 식이다.
“사고가 아닙니다.”
직속 부관이 폰드리안의 생각을 짐작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뭔데?”
“재생 속도를 높여보겠습니다.”
직속부관은 마적석의 화면을 조작하여 빠른 화면을 보여주었다. 5분, 10분. 한참이 지나도 검은머리 생도는 물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의아해하는 폰드리안에게, 직속부관이 덧붙였다.
“위장님, 이렇게 계속 잠수하고 있던 이 응시생도는 결국 출구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음…….”
그의 말대로, 한 인공섬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머리 생도. 물 밖으로 나와 ‘푸하!’ 크게 숨을 내쉬곤, 곧 섬 한가운데에 있는 출구로 들어가 시험을 마쳤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부 사실이었다. 폰드리안이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진 사실 말이다.
“너, 나 없는 동안 시험 제대로 통제한 거 맞아?”
폰드리안이 눈을 부라리며 직속부관을 향해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목격했으니, 진위를 파악해야 했다.
“마나를 확실히 차단한 게 맞느냐고!”
“마도구에는 분명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저렇게 한 번에 출구를 찾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저 잠영은? 마법 없이 10분 이상을 잠수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느냐고.”
아무리 무인의 재질을 품은 마도무인이라 해도 저만한 거리를 잠영으로 주파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지금 바로 내려가서 시험 마도구를 살펴보겠습니다!”
직속부관이 차려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폰드리안 위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함께 내려간다. 어차피 응시생도들한테 설명할 시점이 됐으니. 내부에 있는 시험관들도 전원 지상에 위치하도록.”
위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험관들이 군례를 올렸다. 통신석을 이용해 방공호에 들어와 있는 다른 시험관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상층부에 있던 제국군 전원이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뒤이어 폰드리안도 자리를 옮겼다.
지상으로 내려온 장교육성위의 군인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며, 시험마도구의 상태를 확인했다.
“…….”
폰드리안 위장은 팔짱을 낀 채로 생도들 맞은편에 섰다. 잠시 구두로 흙바닥을 쓱쓱 문지른 그는 냉엄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둘러봤다.
“뭐야, 저거 제국군이야?”
“하…. 허탈해.”
“허탈? 넌 지금 무섭지도 않냐?”
“제국군 표시 옆에 있는 저 휘장은 무슨 뜻이지?”
“저거? D반 애들 몇 명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유도 모른 채 시험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생도들이었다.
수십 개의 문을 열었고, 두려움을 인내하며 헤엄쳐 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총 122명.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제국군 장교를 향해 따질 수는 없었다. 그저 주눅 든 표정에,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폰드리안을 쳐다볼 뿐이다.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응시생들,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나는 제국군 마법사여단 장교육성위의 위장 폰드리안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민간인에게 제국군 체계는 낯설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마법사여단의 산하 조직인 장교육성위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 장교육성위는 3년마다 마법학교를 선정하여 장교생도 선별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앞선 2개 단계를 통과했기에 일단 응시생들에겐 이 상황을 파악할 자격이 주어졌다.”
조용한 생도들. 다들 지치기도 했고, 이 상황이 낯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에 선 제국군에 주눅들었기 때문이다.
폰드리안은 내심 이 상황을 즐기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올해는 카포티니 마법학교가 그 대상이다. 올해 입학한 마법생도 모두가 응시생으로서 시험에 임하게 되었지.”
생도들은 침을 꿀꺽 삼켰고, 폰드리안의 딱딱한 설명이 죽 이어졌다.
현재 시험은 시험관들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안전상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내용이었지만, 필사의 정신으로 앞으로 남은 시험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명령조의 조언도 이어졌다.
“이 시험은 응시생들의 마법적인 능력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오늘 시험 중에 마나는 제한된다. 우리가 차출하여 육성할 장교는 마나에 의존하는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장교 그 자체를 차출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폰드리안은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왜 마나를 제한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마법사여단의 장교에게 마법적인 능력은 부차적이다. 실전적인 마법은 그 아랫것들이 할 테니까. 그리고 오늘 시험에 참여한 응시생들 중 상당수가 훗날 바로 그 아랫것들이 되겠지.”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건 판단력과 통제력, 그리고 전략‧전술적인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위장님.”
그때, 시험마도구의 상태를 확인한 시험관들이 돌아와 속삭였다. 그들은 응시생도들 앞으로 일렬로 늘어섰다.
“뭐? 이상이 없다고?”
“예. 시험마도구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생도들이 듣지 못하도록, 소리를 낮춰 보고하는 직속부관에, 폰드리안은 곧바로 수긍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확인용 마적석을 들고 방공호를 돌아다녔다.
피이이잉.
마적석이 빛을 내뿜으며, 방공호 사방면에 자리 잡은 마도구를 진단했다.
“흠…….”
그가 확인했음에도, 시험마도구엔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럼 저 검은머리 생도는 어떻게 설명하지?
폰드리안은 생도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머리 생도를 찾으려다가, 순간적으로 우뚝 멈췄다.
“…….”
아이들 무리 틈에서, 바로 그 검은머리 생도가 폰드리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듯이.
폰드리안은 흥미를 넘어, 구미가 당겼다. 저 녀석,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위장님.”
“세 번째 단계, 그대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