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38화 (138/258)

제138화. 차출시험 (4)

‘폰드리안이 날 의식하기 시작했군.’

앞선 두 개의 단계에서 루빈이 의도했던 건, 시험관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1단계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일관성을 찾아내어 통과했고, 2단계에서는 암연을 이용해 출구를 찾고 잠영을 펼쳐 보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하필 그때 폰드리안이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험 내용이 녹화되어 보고될 거라는 것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분명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시험마도구를 조작했을 거야.’

절정의 현상마법을 펼치는 시험마도구엔, 엄수해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작동 후에는 임의로 조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조작은 시험마도구 과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니까.’

과부하 상태가 되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그럼 다시는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루빈이 캔시온 마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직 과부하가 많이 축적된 상태도 아니라서 폭발하더라도 위력은 미미할 것이었다.

‘시험마도구를 부수고, 1급 마적석도 얻고. 인명 피해까지 줄인다. 일석삼조군. 이제 남은 건 폰드리안을 자극하는 건데.’

지금보다 더 자극해 조작 횟수를 늘리고, 폭발 가능성을 높이는 것. 그게 루빈의 계획이었다.

“폰드리안 위장님.”

서로를 응시하던 중, 루빈이 입을 열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난 질문하라 허락한 적 없는데.”

“왜 클로이는 여기에 없는 거죠?”

“…허”

폰드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랑곳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태도도 그랬지만, 루빈 입에서 클로이의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이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클로이의 쾌활한 성격도 알고 있고, 그녀가 교류학생으로 여기에 와 있다는 것도 알지만, 분별없는 저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슨 의도로 묻는 거지? 부당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뇨, 같은 반 친구인데, 걱정돼서요. 그뿐입니다.”

폰드리안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위더스푼가의 영애를 친구라 말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그 건방진 태도가 더 화났다.

이엘로스가나 델린가 같은 인근 지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도 일단 굽히고 들어가는 게 제국군 장교였다. 그런 그에게 맞서는 듯한 루빈의 태도라니.

주변에 있는 생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스카조차 당황하여 루빈의 팔을 툭툭 칠 정도였다.

하지만 루빈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3단계에서도 폰드리안이 마도구를 조작하게 하려면 이걸론 부족하지. 더 자극해야 해.’

3단계부터는, 시험마도구가 응시생도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주는 구간이었다. 그만큼 마도구의 마나 응집 또한 강렬해지는 단계였는데, 달리 말하면 조작 시 과부하에 더 취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름이 무엇… 아니, 네 이름을 알아둘 필요는 없겠군. 당장 다음 단계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을 테니.”

루빈을 노려보던 폰드리안의 눈길이 응시생도 전체로 향했다.

“이봐, 카포티니의 응시생도들. 한마디 충고해 주지. 너희와 같은 교실에 있다 해서, 제국귀족을 친구로 생각하진 마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격의 없이 다가간다 해도, 현실감각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루빈은 다시 끼어들었다.

“제가 이 시험에서 우승한다면요?”

“…뭐?”

“그러면 클로이를 친구로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아니면 저는 삼휘이기에, 원휘의 마법사와는 절대로 맞먹을 수 없다는 뜻입니까?”

순간적으로 폰드리안의 얼굴이 벌게졌다.

‘허, 아가씨께서 어쩌다 이런 격 떨어지는 학교에 와 계신 건지.’

8년 전 응시생도 자격으로 이 시험을 치른 바 있던 폰드리안이었다. 최고의 명문 마법학교 아메릭마나였는데도 학생으로서 그가 마주한 장교육성위란,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 당시 위장을 향해 이따위 언사를 할 수 있었던 생도는 없었다.

‘키건 교장에, 저 검은머리까지. 똥통 학교가 따로 없군.’

폰드리안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위장의 자격으로 저 검은머리 생도를 당장에 탈락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험에서 절망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도무인… 보잘것없는 잡종 주제에.’

방금 전 비현실적인 잠영을 봤으면서도, 폰드리안에게 루빈은 그저 삼휘의 열등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럼 그 잘난 자신감을 어디 한번 제대로 보여주면 좋겠군.”

“이제부터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폰드리안이 휙 돌아서서 상층부로 향했다. 시험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층계를 오르던 폰드리안은 잊었던 사실 하나가 떠올라 부관을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위장님.”

“클로이 아가씨께서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생도들이 몇 있더군. 내가 말하는 이 생도들이 현재까지 탈락하지 않았는지 확인해 봐. 이름은… 달리아 델린, 오스카 투니오 그리고 루든 포이넨. 이렇게 셋이다.”

하지만 직속부관은 시험명부를 든 채 대답에 뜸을 들였다. 폰드리안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문제 있나?”

“세 응시생도 모두 저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씀하신 생도 중에 루든 포이넨 생도가 방금 저 검은머리 생도입니다. 2단계에서 말도 안 되는 잠영을 해보인…….”

“뭐?”

폰드리안은 층계를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생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든 포이넨이 저놈이었다니. 놈이 말한 ‘친구’가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야 이해되는 그였다.

3단계가 시작하기 전, 짧게 주어진 휴식시간. 오스카는 루빈을 붙잡고 소리쳤다.

“루든. 너 미쳤냐?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는 거야?”

“장교생도를 뽑아가는 사람들이잖아.”

“그래! 여기서 뽑히면 그냥 장교도 아니고, 제국군 고위장교로 직행할 수 있는 거라고. 저기 저 에릭, 얌전한 거 보이지? 그 대단하신 이엘로스가의 적자한테도 이건 엄청난 기회인 거라고.”

때마침 그들 쪽으로 달리아가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국 본토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인 거야.”

“그래, 달리아가 말하는 거 들었지? 봐봐, 달리아는 벌써부터 군기가 바짝 들었잖아.”

“…조용히 해. 어쨌든 루든, 가이젠 교수님 때랑은 달라. 괜히 저 장교 자존심을 건드리지 마. 너 때문에 저 사람 감정 상하면, 나까지 피해 볼 수 있잖아?”

“그러지, 뭐.”

자존심이라면 이미 충분히 긁어줬으니, 어차피 이제부터는 원하는 대로 나올지 지켜볼 참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오스카를 어느 시점에 탈락시키느냐는 건데.’

루빈이 지켜봤을 때, 오스카 본인은 이 차출시험을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면 황제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제국군 고위장교에 임관하려 할지도 모르지만, 루빈이 보기에 그건 너무 위험했다.

아니면, 적당히 있다가 일부러 시험에서 탈락하려는 걸까?

‘회귀 전엔 어땠지? 어쩌면, 장교육성위 때문에오스카의 신분이 노출됐던 걸지도 몰라.’

비록 이번엔 루빈이 상당 부분 개입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하더라도,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회귀 전에도, 클로이와 오스카라는 두 마법천재는 서로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 친근함이 독이 되어 폰드리안을 자극했을 수도 있고, 그게 오스카의 정체가 발각되는 빌미가 됐을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 역시 최대한 빨리 탈락시키는 게 최선이다.’

루빈은 이번 단계에서 오스카를 탈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서, 얼른 3단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쟤가 그 루든 포이넨이지?”

“맞아. 쟤야. 검은머리.”

폰드리안과의 마찰 때문에 생도들의 이목이 루빈 쪽으로 몰려 있었다. 특히 에릭을 비롯한 D반 생도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장교육성위 위장한테 대드는 거 봤어?”

“뭘 어쩌려고 저러지? 무슨 배짱이야?”

루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뭐라 떠들든, 어차피 이번 차출시험의 1등은 자신이 될 테니까.

그때였다.

생도들이 서 있는 바닥으로부터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3단계가 시작되면서, 시험장이 새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 * *

차출시험 3단계.

방금 전 치른 2단계에서의 ‘검은 강’처럼, 질퍽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강물이 응시생도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수면 위로 띄엄띄엄 놓인 징검돌.

“그러니까, 저걸 밟고 건너가라는 말이잖아?”

출구까지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였고, 그곳에 도착하는 유일한 방법은 징검돌을 밟아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슈우웅! 슈웅!

허공에서 나타난 화살이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강물 위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표적 지점은 당연하게도 징검돌 위였다.

“저 화살… 진짜는 아닐 거야, 그치?”

아쉽지만, 오스카의 걱정과는 달리 전부 진짜였다. 맞으면 온전하게 고통을 느끼는 마법 화살 말이다.

‘물론 실재는 아니겠지’

그러니, 화살을 맞아도 죽는 일은 없을 거다. 앞선 시험에서 물속에서 정신을 잃은 생도들이 익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쨌든 아플 거야. 아까 그 장교가 말했잖아. 허상이지만, 그 감각은 온전히 전달될 거라고.”

풀어진 머리를 다시 끈으로 묶으며 설명하는 달리아의 말에, 오스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거기에 하나가 더 있군.’

루빈은 뒤로 돌아서서 자신의 암연에 감지되는 무언가를 기다렸다.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서서히 다가오는 무언가를.

크르르르.

“미, 미친!”

“죽여! 죽여버려!”

“죽이긴, 도망쳐야지 멍청아!”

응시생도들 사이로 다시 소란이 일었다. 맨 처음 해골들이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혼란스러웠다.

마나가 차단된 뒤로 정신도 몸도 취약해진 생도들이었다. 밀림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흑표범의 등장에 잔뜩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르르.

바닥에 내리깔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흑표범 한 마리가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었다.

‘적의는 없어. 시험 방식을 알려주려는 건가.’

다음 순간.

흑표범은 바닥에서 튕기듯 뛰어오르며 앞으로 치달았다. 그러고는 검은 강 위에 있는 징검돌을 향해 도약했다.

징검돌의 개수는 모두 아홉. 그렇게 흑표범이 모든 징검돌을 밟고 나아가려나 싶었는데.

푸슉!

화살이 살갗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울렸다.

세 번째 징검돌 위에서였다. 화살은 흑표범의 오른쪽 앞다리를 꿰뚫으며 징검돌에 박혀 들어갔다.

그 때문에 흑표범은 징검돌에 못 박힌 꼴이 되어버렸다. 축 늘어진 몸뚱이가 검은 강물에 삼켜졌다.

“저게 표범의 역할인 거야.”

달리아가 말했다. 그 말과 함께 루빈과 오스카도 화살이 사출되는 허공을 바라봤다.

“화살이 날아드는 간격을 보여주는 거지.”

“미친!”

“저기, 한 마리 더 있네?”

두 번째로 나타난 흑표범도 앞의 놈이 그랬던 것처럼 징검돌을 뛰어나갔다. 그러다가 여덟 번째 징검돌에서 또다시 화살에 맞았다.

루빈은 계획을 다시 되뇌었다.

‘여기서 오스카를 떨어트려야겠군. 징검돌에 착지하는 순간, 암연으로 정신을 흩뜨리면 되겠지.’

저절로 강물에 빠지도록 말이다.

루빈은 다른 생도들이 하나둘씩 나설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폰드리안이 루빈의 차례에 시험마도구를 조작하게끔 만들려면, 나중 순서가 나을 터였다.

* * *

시험장 상층부. 시험관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에겔러 교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3단계에서 확인하려는 능력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사출되는 화살은 일정한 간격을 지닌다. 그 간격을 가늠하며 징검돌을 건너뛰면 도착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다만, 방법을 강구했다고 해도 그걸 실천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 결국 전쟁터에서의 승패란 머릿속에 세운 전략을 얼마큼 실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니. 이번 단계는 행동력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그 곁으로 폰드리안 위장이 다가왔다. 에겔러가 말했다.

“지금 통과한 저 생도는 사냥꾼 부모의 자식입니다.”

“예, 참으로 다채로운 출신들이군요. 그럼 지금 출발한 저 생도도 아십니까?”

“저놈은…….”

삼휘를 조롱하는 듯한 폰드리안이었지만, 노회한 교수는 침착하게 넘어갔다. 에겔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제가 담당하는 학급 생도는 아니지만, 저쪽 반을 수업해 봐서 압니다. 수다쟁이에, 뺀질대는 놈이죠.”

머리칼을 휘날리며 징검돌을 향해 뛰어드는 오스카였다. 으라라아아앗! 소리치면서 첫 번째 징검돌에 안착했다.

그런데 다음 행동은 바보나 다름없었다. 화살의 간격을 가늠하여 슬쩍 발을 내딛는가 싶더니, 그만 잘못 디디면서 물에 빠지고 말았다.

명백한 실수였다.

“으악! 사, 살려줘, 친구들!”

두 번째 징검돌에 겨우 매달려 소리치는 오스카를 보며, 몇몇 장교가 웃음을 터뜨렸다.

“물에 빠져도 입만 떠다닐 놈이죠.”

에겔러 교수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윽고, 오스카는 검은 강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흠…….”

폰드리안 위장은 직속부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짓했다. 오스카 투니오는 클로이 위더스푼이 잘 살펴보라는 친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 어떤 과정으로 탈락했는지 따로 표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저놈은 에릭인가.’

뒤이어 출발점에 선 것은 에릭 이엘로스였다.

에릭이라면, 폰드리안 위장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 현시점 삼휘 마법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법가문이라고 했다.

카포티니 행정부에 영향을 끼칠 정도이고, 사업적으로도 득세하여 이 근방 사업권을 꽤 여럿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따금 본토에서 열리는 마법사들 행사에서도, 참석자 명단에 있는 이엘로스가를 본 적이 있었다.

‘패거리 우두머리인 줄만 알았는데, 몸놀림도 좋고 겁도 없군.’

에릭은 화살의 간격을 정확하게 짚어내며 빠르게 징검돌을 건너갔다. 착지하기가 쉽지 않은 징검돌에서도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았다.

무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평소 가문 안에서 따로 몸 관리를 했다는 뜻이었다.

에릭은 무사히 3단계를 통과했다. 뒤돌아서는 그 눈빛엔 자연스러운 오만함이 풍겼다.

“이번엔 달리아 델린.”

폰드리안은 또다시 고개를 돌리며 부관에게 눈짓했다. 달리아 역시 클로이의 친우라 했으니 유심히 살펴봐야 했다.

달리아는 망설이지 않고 징검돌로 뛰어들었다. 금세 첫 번째 표범이 있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푸슉!

화살의 간격을 잘못 판단한 달리아. 그녀의 종아리 뒤쪽으로 화살이 박혀 들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외침을 참아냈다.

“호오…….”

에겔러가 흥미롭게 바라봤다. 델린 가문답게 오만하기만 한 아이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달리아는 종아리에 화살이 박힌 채로도 포기하지 않았다.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징검돌에 달라붙어 안간힘을 쓰면서.

“괜찮군. 3단계에서 저런 모습이면 이후 단계에서도 오래 살아남겠네.”

폰드리안이 솔직하게 말했다. 승부욕이 대단한 생도 같았다. 옆에 있는 직속부관은 빠르게 상황을 기록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달리아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징검돌 너머로 몸을 내던졌다. 풀어헤친 머리카락 일부가 빗겨나간 화살촉에 잘려나갔다.

어쨌든 통과였다. 달리아는 숨을 헐떡였다. 통과함으로써 종아리에 박혔던 화살은 스스스 자연스럽게 소멸됐고, 그녀의 고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위장님.”

직속부관이 다가와 폰드리안에게 속삭였다. 에겔러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폰드리안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말해라.”

“이제 곧 루든 포이넨 생도 차례입니다. 정말… 아까 말씀하신 그대로 진행할까요?”

“문제 있나, 부관?”

“저, 갑자기 화살의 간격을 바꾼다면…….”

“필요한 일이다. 우린 가장 뛰어난 재목(材木)을 찾아내야 하잖아? 2단계에서 보여준 그 모습이 사실이라면, 그만큼의 기대치를 높여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번 단계의 목적은, 예측 가능한 공격 상황 속에서 적절한 행동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압니다.”

폰드리안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직속부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직속부관은 곤란한 얼굴로 입을 간신히 뗐다.

“게다가 마도구를 임의적으로 조작하다가는…….”

“부관.”

“…예, 위장님.”

“내가 그래야 하는 이유는 방금 말했을 텐데.”

“…….”

“얼른 내려가서 시킨 일이나 해.”

직속부관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명령에 불복종할 수는 없었으니.

“알겠습니다…….”

직속부관은 계단을 내려가, 시험마도구를 통제하고 있는 시험관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어질 비극을 마치 제 손으로 행하는 것 같다는 찝찝한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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