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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검가 로이넨-149화 (149/258)

제149화. 새벽의 특별 수업 (3)

덜컥, 소리와 함께 투명천장 너머의 문이 열렸다. 오스카였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땅이 꺼질 정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힘들어 죽겠네.”

침대 위로 책들을 내던지며, 쏟아지듯 엎어지는 오스카. 뒤늦게 돌아누운 다음에야 루빈을 발견했다.

“어? 너 언제 왔냐!”

오스카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두 개의 방 사이의 유일한 매개체인 마나구를 찾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마나구를 던질 참이었는데.

“어딨어? 아씨, 어딨지? 어디 있냐고.”

마나구는 루빈 손에 있었다. 이번엔 루빈이 먼저 마나구를 던졌다. 휘이이이익.

“오스카, 잘 있었지?”

탁, 마나구를 받은 오스카의 표정이 살짝 음흉해진다.

마나구의 투구 조건은 받아냈을 때보다 더 많은 양의 마나를 주입하는 것.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기쁜 건지, 오스카도 제대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잘 있었지! 감방 갔다 온 소감은?”

감방은 무슨.

루빈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나구를 바라봤다. 정확히 얼굴을 노리는 투구였다. 그대로 받아내려다가, 마음을 바꿔 홱 피해버렸다.

무시무시한 마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오스카도 성장하고 있구나.’

오스카의 마나는 유망주들로 넘쳐나는 올해의 신입생도 중에서도 단연 압권.

루빈이 적절하게 성장시켜준다면, 각성의 사슬을 끊어낼 필요 없이 잠재력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C반의 생도들만 눈여겨볼 뿐이지만, 언제 오스카에 대한 이야기가 칙명부한테까지 가닿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수다스러운 자기 성격의 반만이라도 마나의 경지를 뽐내는 데 할애했다면, 그 이름이 학교 밖으로 새어나가는 건 시간문제.

‘하루빨리 오스카 근처에서 칙명부를 떼어내야겠군.’

후다다닥!

방 안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피곤에 절어있던 오스카가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뛰어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는 스레힘의 호통이 투명천장 너머로 곧장 들려왔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루든! 감옥 얘기 좀 해줘!”

그 뒤로, 루빈은 한동안 오스카의 수다에 시달렸다.

* * *

그날 저녁.

스레힘 사감의 동물들이 돌아다니며 인원 파악을 하고 있을 때. 의외의 손님이 루빈을 찾아왔다.

앞서 루빈의 방으로 들어온 건 스레힘 사감이었지만, 방문 목적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사감의 뒤편에서부터 목소리가 건너왔다.

“루든 생도, 잘 다녀왔나요?”

“베니테즈 교수님.”

베니테즈는 뒷짐을 진 채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빈이 무사히 조사를 받고 나와 만족스러운 듯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려고 왔어요. 사감님한테 허락도 받았으니, 괜찮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베니테즈 교수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려놓고 눈짓했다. 여기에 앉아도 좋겠냐는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헉, 교수님! 여긴 웬일이세요.”

마침 천장에서 울리는 오스카의 목소리. 고개를 들어 오스카를 확인한 베니테즈가 멋쩍게 웃었다.

“아, 오스카 생도. 루든 생도한테 할 말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잠깐만 양보해 주세요.”

“루든한테 또 무슨 특혜를 주시려고요!”

“특혜라니요. 조사를 받고 오느라 수강하지 못한 제 수업 처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

그 말에, 오스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지난 한 주 동안 운신마법학 수업이 연달아 이어졌다던데, 그건 오스카가 떠올리기에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수다를 떨었을 때에도 잔뜩 흥분한 채 말했지. 그토록 ‘몸을 쥐어짜는’ 수업은 처음이었다고.

“아, 이거 ‘마나구’죠? 제가 학생일 때는 다른 기숙사에 있어서 써보고 싶어도 써볼 수 없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마나구를 쥐어보는 베니테즈. 선량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마나구 안에 마나를 집약시켰다. 그러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오스카를 올려다봤다.

“자, 오스카 생도!”

그와 동시에 투구했다. 교수의 손을 벗어나는 마나구를 바라보며, 루빈은 담임교수가 상당한 경지의 마법사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마법사 사회에 ‘베니테즈’라는 이름을 알린 게, 단지 운신마법학에 관한 연구 실적만이 아니라는 거다.

슈우우웅.

오스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호기롭게 손을 뻗어 마나구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파앙!

그러곤 눈을 커다랗게 떠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얼얼함을 넘어, 일시적으로 감각을 잃을 정도의 힘이었다.

“와, 교수님! 장난 아니네요!”

당연하게도, 오스카는 마나구를 다시 이쪽으로 던지지 못했다. 베니테즈가 집약시킨 마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야 본래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베니테즈는 다시 입술을 붙이며 미소 지었다.

“루든 생도는 2주 동안 수업을 진행하지 못했으니, 시간을 쪼개서 보충수업을 하려고 해요.”

“네,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교수님.”

“다행이네요. 운신마법학이 실은 인기가 별로거든요. 지난주 수업 때 낙오자도 꽤 많이 나왔고요.”

“전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관심 분야였거든요.”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은 똑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입학식 전, ‘숨은 상인’과 ‘신입생도’로 마주했던 그날.

그때까지만 해도 베니테즈는 루빈이 마도무인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저 엄청난 마법 재능을 가진 신입생도라 여겼을 뿐이다.

“그땐 루든 생도가 운신마법을 수준급으로 펼치는 줄 알았어요.”

“속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게 순수한 육체적 움직임이었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이전에도 무인들을 여러 번 보아온 베니테즈였다. 마도무인이라는 걸 감안한다 해도, 루빈의 움직임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여하튼. 그때 호수에서 보여준 움직임이 운신마법이 아니었다면, 저로서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을 것 같군요.”

“보충수업은 언제, 어디서 할까요?”

“지금 얘기하려는 것도 그거였어요. 오전과 오후에는 수업이 있을 테니, 시간은 저녁뿐일 텐데…….”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사실 저는 기상 시간 이전에도 괜찮습니다. 교수님께서 사감님 허락만 받아주신다면, 남들 기상하기 전에 조금씩 수업을 받아도 됩니다.”

“깜깜한 새벽일 텐데요? 흠…….”

그러나 베니테즈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로서도 만족스러운 방법이었다.

“새벽 다섯 시라도 상관없겠어요?”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공과 연파공을 배울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알겠어요, 사감님한테 따로 말해두죠. 수업은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으려나…….”

전투 능력을 상승시키는 일이었으니, 빠를수록 좋았다. 로젠탈러와의 일전을 위해서라면…….

“당장 내일부터 어떠세요?”

“내일부터라? 호오.”

당돌한 루빈의 말에, 베니테즈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운신마법의 최고 권위자를 스승으로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루빈의 제안대로, 바로 다음날부터 베니테즈의 운신마법학 보충수업이 시작됐다.

새벽 네 시 반.

루빈은 감았던 눈을 떴다. 보충수업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전날 밤 교수가 찾아와 수업시간을 정한 지 딱 일곱 시간 만에 첫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

투명천장을 통해 들여다보니, 오스카는 이불을 돌돌 만 채 잠들어 있었고, 그건 다른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의 기숙사. 루빈은 적막한 복도를 혼자서 걸어 나갔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스레힘의 짐승들이 루빈이 지나갈 때마다 목을 세우며 쳐다봤지만, 경계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베니테즈가 스레힘 사감에게 언질했다는 뜻이다.

이후, 루빈이 향한 곳은 사감실이었다. 처음 랩소디관에 들어온 날에 오스카와 함께 불려갔던 곳.

‘여기가 보충수업이 진행될 임시 교실이라는 거지.’

시간도 새벽이거니와 루빈 단독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스레힘은 사감실에서만 수업하는 조건으로 보충수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끼이이익.

‘공간 확장’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 루빈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야행성 짐승들이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다. 스레힘 사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참, 얌전한 놈이네.”

한쪽에서 베니테즈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다가가니, 커다란 바위 뒤쪽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기린을 관찰하는 교수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 루든 생도! 역시 지각하지 않았네요.”

“베니테즈 교수님의 특별 수업인데, 잘 시간도 아깝죠.”

루빈은 본격적으로 수업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예의상 입고 왔던 마법사 로브를 한쪽에 벗어두고, 활동적인 차림으로 베니테즈 맞은편에 섰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공격적인 암연을 뻗쳐 거치적거리는 기린을 저쪽으로 내몰았다.

후다다닥.

“…가버렸네. 근데 아직 다섯 시가 되려면 좀 남았는데…….”

진지하기만 한 루빈의 눈빛. 기린을 쫓은 게 루빈의 짓이라고는 꿈에도 모를 베니테즈 교수였다.

결국 교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수업을 개시했다. 열의를 보이는 학생을 마다할 수는 없지.

“일단 지금 여기가 너무 어두우니까…….”

베니테즈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정한 구역을 설정했다. 그런 다음, 간단한 마법을 시전했다. 구역 안이 빛으로 채워졌다.

빛에 놀란 근처의 짐승들이 일제히 초원의 저편으로 달아났다.

다음 순간.

‘휘식이다.’

시야에 삼휘의 휘식이 나타났다. 루빈이 훤히 볼 수 있도록, 휘식이 그려지는 속도는 아주 느릿했다.

“이게 어떤 마법의 휘식인지 알아 보겠나요?”

“…파공입니다.”

휘식의 형태는 직각삼각형. 가장 긴 변이 11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 그래요. 공기계열의 기초 공격마법인 파공이죠.”

휘식 분류법에 따르면, 파공은 베니테즈 말처럼 공격마법에 속했다.

하지만 수년 전, 베니테즈가 ‘파공의 운신마법화 연구’라는 개인 논문을 게재하였고, 그 덕분에 파공의 색다른 활용법이 대륙 곳곳에 널리 퍼졌다. 벌써부터 파공을 공격마법이 아닌 운신마법으로 분류하는 학파가 있을 정도.

‘…이제 파공이 시전되는 건가?’

느릿하게 그려지던 휘식이 비로소 멈추었기 때문이다.

암연으로 한껏 예민해진 감각 속에, 공기의 일부분이 응집되는 게 느껴졌다. 그 지점은 루빈과 베니테즈가 마주 보며 서 있는, 그 한가운데였다.

파스스스.

공기 일부분이 공 모양으로 응집했고, 그다음에는 빠르게 압착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암연 덕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꽤 큰 소리가 울리면서 파공이 발현되었다.

펑!

슈우우웅.

위협이 될 만한 건 아니었기에, 방어 자세를 취하지는 않은 루빈. 무해했지만, 공기의 폭발로 인해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 반대쪽에선 베니테즈도 마찬가지,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밀려난 거리는 각각 3미터 정도.

다만, 두 사람의 자세는 상반됐다. 루빈은 기습적인 공격을 맞은 모양새였다면, 베니테즈는 부드러운 부유에 가까웠다.

“이것이 바로 ‘파공’입니다. 주변에 떠도는 공기를 일시적으로 압축시켜 터뜨리는 마법이죠. 지금 것은 위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이걸 공격마법으로서 시전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마법으로서의 파공은 적의 육체를 포함한 허공 일부분을 압축하여 터뜨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뢰마법에 접촉한 것처럼, 육체적 손상을 입게 되는 방식.

‘다만 어지간한 무인들은 파공이 발현되기 직전에 공기의 흐름을 읽어내고, 몸을 뒤틀겠지.’

반면, 운신마법으로서의 파공은 전혀 다른 ‘시전 지점’을 정했다. 육체가 아닌, 그 육체와 맞닿아 있는 허공을 목표로 시전하는 것이다.

루빈이야 5성 암연의 잔뜩 벼려진 감각으로 자신 앞에 공기가 응집하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암연이 아닌 오러만으로는 그 작은 틈을 감지하기는 어려울 터.

“육체가 포함되지 않는 허공을 압착시킴으로써, 그 폭발력으로 몸을 이동시키는 거군요.”

“그래요. 지금은 단발로 터뜨린 거죠. 하지만 만약 내가 앞쪽에 하나 터뜨리고, 그 밀려나는 거리를 계산, 정확한 지점에 터뜨린다면? 그리고 이 과정을 연속적으로 해낸다면?

”끊임없이 추진력을 얻게 되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죠.”

“맞습니다. 그게 바로 ‘연파공’의 원리입니다.”

듣기로는 간단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파공의 압력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면 자신의 몸을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자학하는 꼴이 될 테니까.

“이제부터 루든 생도는 파공의 휘식을 반복적으로 그려보게 될 겁니다. 지겹도록 많이요.”

루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야말로, 그가 원하는 바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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