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다가오는 최후 (1)
로젠탈러를 따라잡는 건 쉬웠다. 5성 오러를 지녔다고 하나, 부상당한 상태. 암연을 지닌 자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동굴로부터 꽤 떨어진 곳. 우거진 나무들 틈에서, 루빈이 로젠탈러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 담당하는 칙명부 요원이 이렇게 멍청한 줄 몰랐군.”
“…해바라기 놈들한테서 용케 살아나왔네? 역시 본가의 아들이라는 건가.”
로젠탈러는 놀라지 않았다. 셀레스네로 인한 상처를 부여잡고, 바닥에 침을 탁 뱉는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방금 전의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젠장, 그만한 마법사가 있었을 줄이야.”
“셀레스네는 교수들보다도 위야. 위더스푼 가주가 괜히 막내딸을 맡겼겠어?”
위더스푼이라.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로젠탈러가 클클 웃었다.
“아, 위더스푼 가문이 껴 있었지. 내가 깜빡했던 게 그거군. 그래, 제국귀족. 위더스푼가가……”
“대체 뭘 하는 거지? 네가 가이젠과 벌이려던 짓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멍청하게 행동하는 거야?”
페르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으니, 로젠탈러는 또다시 대화를 회피하겠지. 놈은 롭슨의 비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곤, 루빈을 툭툭 쳤다.
“비켜라, 루빈. 너랑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까.”
“칙명부는 칙명부답게 행동해라, 로젠탈러.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면 나한테 부탁하라는 뜻이다. 헛짚고 이따위 곤란한 상황 만들지 말고.”
“그래, 좋을 대로 지껄여라.”
그때였다. 루빈의 암연이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인영 하나를 감지했다.
그 속도는 암살자의 것처럼 엄청났지만, 암살자는 확실히 아니었다. 루빈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로젠탈러, 마법사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뭐?”
이만한 속도를 낼 수 있는 마법사는 단 한 명뿐, 베니테즈였다.
“베니테즈 교수야. 알지? 셀레스네에 필적할 만한 자다.”
셀레스네의 경지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베니테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매일 새벽, 그에게 운신마법학을 익혔던 루빈. 그때마다 베니테즈가 구사하는 여러 공격마법을 접할 수 있었다.
전공이 운신마법학일 뿐, 공격마법을 가르치는 솔라나 교수에 뒤지지 않는 경지였다.
“퉤! 누가 됐든, 내가 질 것 같나? 그리고 네가 날 조금만 돕는다면… 놈을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닐 것 같은데.”
그 말에 루빈은 피식 웃었다. 멍청한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밑바닥을 보이려는 건지.
“그럴 바엔 베니테즈를 도와 널 없애는 게 낫겠는데.”
“뭐? 미쳤나?”
“미친 건 너겠지. 넌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겠지만, 난 이미 마법생도로 알려져 있어.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암살검가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인데?”
“…쳇.”
루빈에겐 이미 대책이 세워져 있었다. 로젠탈러가 자신에게 품었을 약간의 의심까지 없앨 만한 일이자, 베니테즈의 추격을 멈출 방법.
“로젠탈러. 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무슨 수로?”
“간단해. 나랑 싸우는 거야. 나랑 몇 번 검을 맞부딪치다가, 적당한 때에 날 찔러.”
“호오…….”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그의 눈빛에 여유가 생겨났다.
복면 속에서, 루빈은 피식 웃었다. 내 덕에 살아 돌아간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라면, 로젠탈러는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한 놈이다.
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게 되어 있다.
단지, 오늘이 아닐 뿐.
“네가 뭘 하려다 실패했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룰포한테 손발이 벗겨지도록 빌어야 할 거야. 실각되지 말라고.”
“…….”
“그리고 또 하나. 비밀 작전은 그렇게 어설프게, 감정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고.”
“닥……!”
물론 닥치라는 말을 가만히 서서 들을 루빈이 아니었다. 루빈은 곧바로 로젠탈러의 말을 끊으며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로젠탈러는, 검을 들어 황급히 공격을 막아냈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루빈의 등 뒤로 빠르게 근접해오는 베니테즈가 보였기 때문이다.
무인 이상의 움직임. 달려오는 게 아닌, 날아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챙! 챙! 챙!
검과 검이 부딪친다.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루빈이 적당한 틈을 내어주고, 이를 붙잡아 검을 찔러 넣는 로젠탈러.
푸슉!
현장에 막 도착한 베니테즈는 목숨을 건 싸움 중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귓가에까지 닿을 정도의 파열음은,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대신 말해주었다.
“루든 생도!”
때마침, 루빈이 상처를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사이, 복면 쓴 무인은 숲 저편으로 달아나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분명 보통 경지의 무인은 아니리라.
“크흑.”
“루든 생도! 괜찮아요?”
“…놓쳤어요. 교수님, 죄송합니다. 가이젠 교수님의 원수를 갚으려 했는데…….”
의도한 대로, 베니테즈는 더는 로젠탈러를 쫓지 않았다. 부상당한 생도가 먼저였다. 그는 루빈의 상처 부위를 확인하곤, 일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피이이잉.
“됐어요, 루든 생도. 상대는 최소 5성 이상의 무인이었어요. 의욕은 알겠지만, 살아남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요.”
베니테즈의 치유마법 덕에, 칼날이 베고 지나간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초에 가까운 치유마법이어서 그런지 효과는 미미했다. 이는 응급조치 정도에 불과했다.
루빈은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뭘까요? 왜, 우리를…….”
“잘 모르겠어요. 위더스푼가를 노린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갈 노린 건지…….”
“친구들은요? 다 괜찮나요?”
“다 무사히 대피했어요. 동굴 일부분이 붕괴했는데, 루든 생도가 경고한 덕분에 미리 피할 수 있었던 거죠. 다행히 가이젠 교수님도 무사하고요.”
베니테즈는 루빈을 일으키곤 부축했다. 둘은 동굴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위험요소는 모두 사라졌지만, 베니테즈에겐 아직 풀지 못한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루든 생도.”
“네, 교수님.”
“아까 쫓아오면서 보니까, ‘파공’을 쓰지 않더군요. 이미 완벽하게 습득했으면서 어째서 전투 중에 활용하지 않은 거죠?”
생도가 다친 상황. 엄밀하게 말하면 때에 적절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베니테즈 교수는 학구열이 높았다. 피어난 궁금증은 곧장 풀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따라잡은 거지요? 아무리 상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 해도…….”
파공도 쓰지 않고서 저 정도 경지의 무인을 따라잡다니. 그저 마도무인의 재능인 걸까? 아니면 혹시, 또 다른 힘을 숨기고 있는 건가?
하지만.
“실전엔 아직 미숙한 것 같네요, 면목 없습니다. 교수님.”
잔뜩 풀이 죽은 루든의 얼굴을 보곤, 베니테즈는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너무 앞서갔구나.’
분명 재능은 있지만, 고작 신입생도일 뿐이다. 느껴지는 마나의 경지도 신입생도의 범주 안에 있지 않나.
상황이 편견을, 편견이 의심을 만든 것이다. 익숙했다. 자신의 높은 학구열 때문에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곤 했으니.
베니테즈는 한결 수그러진 목소리로 위로했다.
“나무라는 게 아니었어요. 단지,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물론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또 일어난다면 꼭 ‘파공’을 써봐요. 오늘 같은 위험이라면, 얼마든지 루든 생도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루빈은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교수 말처럼, 꾸준한 보충수업 덕분에 어느덧 루빈은 ‘파공’과 ‘연파공’을 완벽히 익힌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써먹지 않은 것은, 오직 로젠탈러에게 숨기기 위함이었다.
‘내가 파공을 쓰는 날, 로젠탈러는 죽게 될 거다.’
느릿하게 걸어 동굴로 돌아온 두 사람. 생도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동굴이 무너진 거야? 지진인가? 아니면 산사태?”
“휴, 하마터면 깔려 죽을 뻔했잖아.”
“쉿, 조용해. 교수님이 여기는 안전하다고 했으니까.”
동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 알았지, 5성 무인과 5성 원휘 마법사 간에 전투가 있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교수들은 달랐다.
주먹 쥔 손으로 제 대머리를 두드리고 있던 행정실장 팔란트. 그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어, 베니테즈 교수님!”
루빈과 베니테즈를 발견하곤 헐레벌떡 뛰어왔다.
“어찌 됐나요? 그놈은 잡았나요?”
“놓쳤습니다. 그보다… 저기, 브첸코 교수님? 여기 루든 생도 좀 치유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손쓰긴 했지만 응급조치밖엔 안 돼서요. 다시 봐주시지요.”
브첸코 교수가 뒤뚱뒤뚱 걸어와 루빈의 상처를 쓱 확인한 뒤, 곧바로 고차원의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피이이잉.
채 아물지 못했던 상처가 말끔해졌다. 기력 또한 빠르게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한결 여유가 생긴 루빈은 다른 생도들부터 살폈다.
클로이는 저쪽에서 자신의 시녀를 살피는 중이었고, 달리아는 조원들을 다독이고 있다.
셀레스네는 상처를 회복된 뒤였지만, 오늘의 사태가 왜 일어난 것인지 여전히 경계하는 중이었다.
그때, 오스카가 다가왔다.
“루든! 너, 괜찮아?”
“괜찮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어휴. 아무리 보조학생이라지만, 너무 무모한 거 아냐? 가이젠 교수의 복수라니. 무슨 동화책 주인공 보는 줄 알았잖아.”
“그러게. 무모했지.”
루빈을 걱정한 듯한 오스카. 일단 무사하다는 것에 안심한 건지, 그 관심은 곧바로 다른 데로 옮겨갔다. 그는 자신의 로브 후드를 돌아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 그건 그렇고…. 내가 1등 할 수 있었는데, 이게 뭐람.”
후드에 빵빵하게 채워져 있는 마핵초들. 수업이 불의의 사고를 맞이하면서 채집 활동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오늘 여기서 자신이 뭘 얻어냈는지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텐데.’
루빈은 피식 웃었다. 때마침, 제 주인을 감지한 셀록이 로브 속에서 또다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알았어, 셀록. 조만간 주인한테 보내줄게.’
원래는, 오스카를 만나자마자 푸른 구슬을 전해주려 했다. 로젠탈러가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일단 기숙사로 복귀하고, 적당한 때를 노려 오스카의 아공간 주머니에 구슬을 넣어둘 계획이었다.
“자, 이제 학교로 복귀합니다!”
행정실장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그렇게 야외 수업은 끝이 났다. 모두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학교로 복귀했다.
“…….”
루빈은 앞서 걸어가는 가이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차마 루빈 쪽으로는 눈길조차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루빈과 로젠탈러를 모두 죽이겠다며 간계를 꾸민 것까진 좋았지만, 너무 무모한 수였다. 자기한테나 위협적인 괴수였을 뿐이지, 두 사람한테는 어림도 없었으니.
‘그래도, 덕분에 많은 걸 얻었지.’
로젠탈러의 보구 ‘롭슨의 비검’에 어떤 능력이 깃들어 있는지. 다음번 싸움에서 공략할 로젠탈러의 약점은 무언지. 전부 파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받은 자’와 ‘반신의 지성체’라는, 전생엔 알지 못했던 이 세계의 비밀들까지.
이 모든 것의 가치로만 따지자면, 가이젠의 목숨을 살려주고 싶을 정도다.
물론…….
‘마음만 그렇다는 거지.’
생각해 보면, 오늘은 로젠탈러에게 최악의 하루였을 거다. 가이젠이 페르를 잘못 짚어낸 것도 모자라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했으니, 쉬이 분이 풀릴 리 없다.
보아하니, 로젠탈러 성격상 오늘을 넘길 것 같지는 않은데.
‘로젠탈러, 멍청하게 코앞의 상황만 보는 놈. 나였다면, 오늘 가이젠을 죽이려 하진 않았을 텐데.’
야외 수업 중에 떠들썩한 사건까지 일어났으니, 오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카포티니 마법학교 측에서는 보안을 강화할 것이고, 그만큼 칙명부의 운신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을 터.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모르겠지.’
* * *
그리고 그날 밤.
루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C반 생도들이 기숙사로 복귀한 뒤, 마법학교에서는 키건 교장이 주관하는 대책 회의가 벌어졌다.
셀레스네가 우려하는 것처럼 위더스푼가를 노린 것인지, 아니면 동굴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인지. 그 원인을 밝혀낼 순 없지만, 일단 학교의 보안을 대폭 강화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대책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후우, 이제야 끝났네.”
“베니테즈 교수. 우리 반이나 B반이 야외 수업일 땐 아무 일도 없다가, C반 순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 보면… 위더스푼을 노린 것 아니겠어?”
솔라나 교수가 베니테즈를 향해 말했다. 베니테즈로선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진짜긴 한 거지?”
야외 수업을 통제했던 교수들을 제외한 다른 교수들은 5성 무인의 습격을 좀처럼 못 믿는 눈치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어느 분야, 어떤 조직에서든 5성이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경지였으니.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진짜였다.
“저로선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좋겠네요, 솔라나 교수님.”
“그래, 가이젠 교수의 상태를 보면, 믿을 수밖에 없긴 해.”
솔라나가 보기에도 가이젠의 상태는 심각했다. 부상을 입은 몸이야 곧바로 치유됐지만, 정신적인 손상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퇴근길, 몇몇 교수들이 가이젠에게 다가가 한마디씩 건네기도 했다.
“충격받았다는 거 알지만, 금방 나아질 거요, 가이젠 교수.”
“그나마 위더스푼 사람이 있었으니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가이젠 교수님, 혹시 뭐 짚이는 데라도 있어요?”
하지만 가이젠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내부엔 로젠탈러와 루빈으로 인한 공포가 가득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둘 다 죽지 않은 거지? 아니, 5성 무인으로부터 루든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오로지 이런 생각들로 가득할 뿐이다.
“…가보겠습니다.”
1학년 생도들의 담임들만 남아 있던 나루에서, 결국 가이젠이 가장 먼저 곤돌라에 올랐다. 그는 대충 인사하곤 곧바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스윽스윽.
멀어지는 곤돌라를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다른 1학년 담임교수들이었다.
물론, 그 불안감이 이튿날 가이젠의 사망으로 확인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일부터 또 학교가 어수선해지겠군요. 다들 퇴근합시다.”
바로 그날 밤에, 각 교수들이 귀가하여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그때에.
집 안에서 가이젠을 기다리고 있던 정체불명의 무인이 그의 목을 뎅강 잘라낼 거라 생각하기란, 평범한 마법사에겐 어려운 일이니까.
“…….”
…방 안에 낭자한 피. 실험용으로 데려다 놓은 생쥐들로 여전히 들끓고 있는 집 안. 가이젠의 잘린 머리가 나뒹굴었다.
“후우, 후우.”
분이 가시지 않는지, 숨을 삼켰다가 뱉을 때마다 로젠탈러의 몸뚱이가 크게 들썩였다.
이미 목숨이 끊어졌음에도 그는 검을 놓지 않았다. 가이젠의 시체는 계속해서 헤집어졌다.
그러던 중.
“…….”
타닥. 타닥. 타닥.
로젠탈러는 품속에 있는 철제 원통을 꺼냈다. 안에 있는 칼리키개미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고 있었다.
룰포가 그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기랄!”
또다시 화가 뻗친 로젠탈러는, 다시 한번 가이젠의 머리통에 검을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