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62화 (162/258)

제162화. 다가오는 최후 (2)

기숙사 랩소디관.

루빈은 새벽이 될 때까지 깨어 있었다. 다른 생도들이 깊은 잠에 빠진 반면, 그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마지막 할 일. 푸른 깃털의 그리폰, 셀록을 제 주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잠들었군.’

투명천장 너머, 오스카가 확실하게 잠든 게 느껴졌다. 루빈은 곧바로 움직였다. 복도로 나가 다른 층에 위치한 오스카의 방으로 향했다.

C반 야외수업의 영향으로, 짐승들의 경계는 학기 초처럼 강화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루빈을 잡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윽고, 오스카의 방으로 들어온 루빈.

그를 반기기라도 하듯 마침 오스카의 잠꼬대가 이어졌다. 흐흐흐흐, 하는 웃음과 음식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보니 꿈 속에서 진수성찬이라도 누리는 모양이다.

‘셀록의 말대로면 오스카의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지.’

루빈은 들고 온 푸른 구슬을 손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잠든 오스카의 고른 숨소리가 이어지는 그때.

스스스.

눈앞으로 다시 육화(肉化)한 셀록이 나타난다. 푸른 빛무리와 함께 등장하는 셀록으로 인해, 방이 순식간에 비좁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잠에 푹 빠져 있는 오스카.

셀록의 전음이 이어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스카가 깨어나는 건 내가 미리 알 수 있으니.

-곧바로 주머니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냐?

셀록은 대꾸 없이 페르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첫 대면이겠군. 잠든 페르는 꿈에서라도 생각지 못하겠지만.

-지금도 안 늦었어. 언제든 알려줘도 좋아. 내가 전에 물어봤던 그거 말이야.

-말했잖아, 그건 ‘그 녀석’과의 맹약이라고.

셀록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루빈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려는 게 아니었다. 거꾸로, 자신이 알고 싶은 궁금증이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아까 네 로브 주머니 속에 있으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은 것 같았다. 5성 무인과의 대화 말이지.

-엿듣는 것으론 상황 파악이 안 됐을 텐데.

-나한테 설명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무인이 페르의 적인지 알고 싶을 뿐이니까.

셀록에겐 페르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경계의 대상. 적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이는 지금으로선 루빈뿐이었다. 그러니, 루빈과 심상찮은 대화를 나눈 그 무인을 향한 경계심은 당연했다.

‘나쁘지 않군.’

루빈은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들었다. 페르가 곧 존재 이유라더니, 아직 제 진짜 정체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수호 임무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제 페르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되겠는데.’

그런 생각과 함께, 루빈의 대답이 이어졌다.

-페르의 잠재력을 두고 많은 권력들이 교차했다. 난 우리 가문을 위해 페르를 지켰던 것이고.

-그 말은, 아까 그놈이 적이 아니라는 뜻인가?

루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놈은 나한테나 오스카한테나 적이 맞아. 다만, 곧 제거될 적이지.

-곧 제거될 적이라? 그럼 다행이군.

-뭐, 놈의 명복이라도 빌어주든지.

-적한테 명복은 무슨.

그뿐이었다. 셀록은 구차하게 이것저것 더 묻지 않았다. ‘곧 제거될 적’이라는 표현만으로 만족한 듯했다.

-그놈 덕분에, 그리고 아마 오늘 죽게 될 교수 하나 덕분에 네가 깨어난 거니까.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셀록으로선 루빈의 의지를 읽어내기엔 충분했다. 틀림없이 제거하리라는 자신감이 서려 있는 태도였으니.

-어쨌든 나한테도 느낌이 별로인 놈이었어. 위험 요소를 제거해 준다니, 고맙군.

-감사는 나중에 제거하고 나서 받을게. 대장장이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는 정보인데.

그래도 좋지만, 당장은 시간이 없다. 또 언제든 다시 물어보면 될 일이니. 루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중에. 얼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나 해.

페르와 연결되어 있기에 그의 아공간 주머니를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셀록이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자, 그 자리로 페르의 아공간 주머니가 활짝 펼쳐진 것이다.

주인의 성격이 반영되어, 아공간 주머니 내부는 각종 잡화들로 어지럽기 그지없는 상태. 푸른 구슬 하나쯤 추가돼도 눈에 띌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셀록은 육화 상태를 끝내고 다시 구슬의 형태로 돌아갔다. 그런 다음, 아공간 주머니로 서서히 흘러 들어갔다.

이윽고 완전히 닫히는 아공간. 다시 오스카의 품으로 돌아가 내려앉았다.

“잘 부탁해, 셀록.”

이후, 루빈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드러누운 그는 로젠탈러를 떠올렸다. 대부분이 예상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로젠탈러의 성미는 예상 밖이라 해야 할 만했다.

‘지금쯤 가이젠을 죽였을 거야.’

교묘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룰포라면 그런 면에서는 히탄을 더 신뢰했을 게 분명했다.

이르면 내일. 가이젠의 사망이 학교에까지 알려지겠지. 아마 학교는 물론이고, 카포티니 전체가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룰포는 어떤 얼굴이 될까?

‘룰포가 로젠탈러를 용납하려나.’

두고 볼 일이다.

* * *

“…….”

가이젠의 집에서 제 거처로 돌아온 로젠탈러.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책상 앞에 앉아야만 했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지니고 있던 철제 원통의 뚜껑을 땄다. 칼리키개미들을 쏟아냈다.

스스스슷.

책상 위에 오르자마자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바로 분절된 말들이 만들어졌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군.

룰포의 한마디. 로젠탈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먼저 수장에게 오늘의 실패를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물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그사이, 룰포의 말이 이어졌다.

-하마터면

-취해

-잠들 뻔했다.

칙명부 수장은 술을 좋아한다. 거의 모든 순간 취해 있는 자였다. 그에게서 취기가 보이지 않을 땐 둘 중 하나였다.

그 강함을 드러내야 할 때이거나, 황제 텔마흐를 알현해야 할 때.

-죄송합니다.

로젠탈러는 이렇게 써서 보냈다. 그다음으로, 오늘의 실패를 보고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그 찰나를 가로채며, 룰포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일전에

-감식을

-요청했던 것.

-그 결과가

-나왔다.

룰포는 로젠탈러가 실패했을 리 없다고 믿는 걸까. 그래서 작전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미루고, 다른 화제를 올리는 걸까? 그럴수록 로젠탈러의 낯빛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감식을 요청했던 것이라.

그건 로젠탈러가 ‘협곡 감옥’에서 발견했던 오러의 흔(痕)을 말한다. 엔조 로렌치니의 탈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의문의 오러 말이다.

제각기마다 발현 모습이나 색에 차이가 있는 오러는, 그 특유의 흔을 남기게 되어 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흔만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면 오러를 추적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륙을 통틀어도 오러의 흔을 감식할 수 있는 전문가는 귀했지만, 당연하게도 칙명부는 그만한 인력을 소유한 조직.

-놀랍게도

스스스슷.

칼리키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브리온

-오러였다

브리온 오러?

분노를 살 만한 보고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로젠탈러는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다.

‘브리온 오러라면.’

전대 대장군 하네케 가문의 오러이지 않던가. 손자의 역모를 미리 알아채고, 손자를 죽인 뒤, 자살을 한 것으로 기록된 인물. 비록 반역자의 핏줄이지만, 그 충성심과 숭고함이 인정되어 ‘빛의 탑’에 안치된 자였다.

물론, 로젠탈러로서는 대장군의 죽음에 황제와 암살검가가 얼마나 관여되어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대륙의 떠들썩한 죽음엔 언제나 암살검가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것. 이건 칙명부 요원이라면 당연하게 품게 되는 의심이었다.

‘브리온 오러가 남아 있을 리 없는데?’

하네케의 가문은 멸족됐으니까. 오러를 이을 후손 역시 모두 처형됐다고 했다.

애초에 브리온가(家)는 군인 가문인 데다 따로 기사단도 없어서, 가문 바깥에서 오러의 전승이 이어졌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그런데 브리온 오러의 흔이 발견됐다니? 죽은 대장군이 살아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로젠탈러.

호명에, 로젠탈러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수그렸다.

-재밌는 건

-말이지.

문어(文語)의 전달인데도 취기가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로젠탈러와 달리, 룰포는 칼리키개미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그는 지껄이고, 옆에 있는 칙명부 요원이 칼리키개미로 문장을 받아적는 것이다.

‘그나저나, 뭐가 재밌다는 거지?’

때마침 룰포의 문장이 이어졌다.

-북부초원에서

-똑같은

-오러가

-발견됐다.

“……!”

하네케의 핏줄이 살아 있었나?

대륙에서 흔히 ‘북부초원’으로 지칭되는 곳은, 유목민족 ‘투흔족’이 살아가는 초원, 즉 투흔 초원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아귀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왜냐면 ‘협곡 감옥’에서 탈옥한 1급 죄수 중 하나의 이명이 ‘투흔의 바람’이었으니. 투흔족에서 영웅처럼 떠받드는 놈이었다.

-너에게

-브리온 오러를

-추적하는

-과업을

-맡길까 한다.

이는 곧 따분한 카포티니에서 벗어나 제도로 복귀하라는 명령? 예상치 못한 달콤한 말에, 로젠탈러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네가

-페르 문제를

-잘 해결했다면.

역시나 룰포였다.

잠시 유예되어 있던 압박이 다시 가해지며, 로젠탈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드디어 이야기 흐름이 ‘페르 포획 작전’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보고하라.

짤막하게 내리꽂히는 한마디. 이제는 로젠탈러의 순서였다.

거짓 보고?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칙명부 수장을 대상으론 무의미한 수작이었다.

스스스슷.

스스스슷.

분주하게 움직이는 칼리키개미들. 그와 동시에, 멀리 떨어진 제도에까지 전달되는 이번 작전의 경과가 적혀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이젠의 착오, 그놈의 만행.

가이젠을 제거하려다 실패했던 일.

위더스푼가 시녀와의 예상치 못한 일전까지.

“후우, 미치겠군.”

로젠탈러가 특히나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았다는 점, 루빈이 별다른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

전송을 마친 로젠탈러는, 제도에서 회신이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외침.

“제기랄!”

회신은 오지 않았다.

회신은커녕 칼리키개미들이 갑자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적과 아군의 개념도 없이 마구잡이로 서로를 공격해 댔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반대쪽에서 통신용으로 쓰이던 개미들이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룰포라면, 분노에 차서 책상 위의 개미들을 주먹으로 내리쳤을 거다.

벌게진 얼굴, 충혈된 눈.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뻗친 채로 개미들을 짓이겼을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쨌든 룰포한테 손발이 벗겨지도록 빌어야 할 거야. 실각되지 말라고.’

그 순간, 로젠탈러의 머릿속에 비릿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낮에 마주쳤던, 루빈 로이넨의 빈정거림이었다.

쾅!

로젠탈러 또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혈투에서 살아남은 몇몇 칼리키개미가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짓이겨져 버리고 말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자신을 비웃던 그 암살자 놈도 이렇게 터뜨려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밀 작전은 그렇게 어설프게, 감정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고.”

“…빌어먹을 꼬마 새끼.”

* * *

다음 날의 흐름은 루빈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무 기별 없이 출근하지 않은 가이젠 교수. 이상하게 여긴 교수들의 방문. 자택에서 처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 가이젠…….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가이젠의 시체가 무수히 많은 생쥐들에게 파먹히고 있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마법학교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로.

목숨을 거둔 당사자 로젠탈러를 제외하고는, 가이젠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아낸 건 루빈이었다. 이른 새벽, 티나를 보내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니까.

그후 등교한 루빈은 평소처럼 수업을 들었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서 곧 퍼질 소문을 기다렸다.

‘지금쯤 학교에서도 대책을 수립했겠지. 종례 시간쯤이나 생도들한테 알려주려나.’

오후 수업까지 끝난 뒤.

C반 생도들은 베니테즈 교수의 종례를 기다렸다. 지금 도시에 퍼지는 끔찍한 소문을 알 리 없는 생도들. 오늘따라 베니테즈가 교실로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루든.”

“음?”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생도들 틈에서, 달리아가 루빈을 불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조만간 델린 가문과 이엘로스 가문이 합동으로 연회를 열 거야.”

“너희 가문과 에릭의 가문이?”

그렇게 묻던 루빈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아, 티나가 미리 알려줬었지. 두 가문이 연회를 주최할 거라고.

장교육성위 시험 결과에 대한 축하연이었다.

장교생도로 차출되어 마땅한 성적임에도, 하필 그때 발생한 마나 폭발 사고 때문에 임명식이 흐지부지된 것이다. 결국 달리아와 에릭은 ‘차출 후보’라는 애매한 신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마저도 삼휘 마법사들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인 건 분명했다. 그랬기에 이들 가문은 이전부터 연회를 계획 중이었고, 이제야 그 연회일을 공표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루빈이 빤히 쳐다보자, 달리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주 희미한 변화였지만, 루빈의 눈썰미를 피할 순 없었다.

이쯤 되니, 그녀가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도 참석해 줬으면 해서.”

“내가 왜?”

“그야 당연히… 1위 자격이 있는 네가 참석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당연하지! 이엘로스가에선 네가 없어도 별 상관없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라. 너 없는 축하연은 패배자들의 위로연일 뿐이야.”

앙다문 입술 모양으로 보건대, 진심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어렵게 돌려 말하고 있긴 하지만, 달리아는 루빈을 차출시험의 ‘비공식 1등’으로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루빈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하지 않자, 달리아는 조급해졌다.

“그러니까, 난 시험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잖아. 네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알고 있다고. 대체 어떤 이유로 네가 ‘차출 후보’조차 되지 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1등이라고 생각한다?”

“…응.”

“알겠어, 달리아. 생각해 볼게.”

그제야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 달리아는 처음보다 더 상기된 얼굴로 살짝 웃었다. 눈치 없고 둔감한 오스카조차도 금방 눈치챌 만큼, 발그레한 낯빛.

“…잘 생각했어. 꽤 성대한 연회가 될 거야.”

그렇겠지. 아무리 삼휘 가문이라지만, 제국을 통틀어 명문으로 인정받는 이엘로스와 델린 가문의 합동 연회이니. 근방의 권세 귀족들은 물론, 삼휘의 유명인들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들 것이다.

‘연회가 제대로 열릴 수나 있을까.’

물론 열리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루빈이 보기엔, 가이젠의 죽음이 마법학교나 도시 전체에 가져올 여파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럼 너도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날짜는 2주 뒤야. 정식 초청장을 보내줄게.”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 강한 달리아가 저렇게 말해오는 걸 보니, 정말 학기 초와는 많은 게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그럼 이만.”

“달리아, 잠깐만.”

“응?”

목적을 달성하고 막 돌아서려는 달리아.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곤 두 눈을 댕그랗게 떴다. 무슨 할 말이 남았냐는 듯이.

루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고마워. 초대해 줘서.”

“…….”

대꾸는 없었다. 그저 몸을 홱 돌려, 총총걸음으로 멀어질 뿐. 루빈은 피식 웃었다. 지금 달리아의 얼굴빛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빤했다.

‘그나저나 성대한 연회라…….’

그 순간.

문득 하나의 시나리오가 루빈의 머릿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로젠탈러를 제거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를 찾은 것 같았다.

마침 근처의 클로이가 눈에 띄어, 그녀를 불렀다. 확인할 게 하나 있었다.

“클로이, 이엘로스랑 델린 가가 합동 연회를 주최한다던데.”

“응, 들었어. 근데 왜?”

“요즘처럼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어도 연회를 여는 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좀 눈치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엥? 왜 눈치가 보여? 귀족들의 연회는 중요한 자리야.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대. 설사 전쟁 중이더라도 말이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늘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그야 그렇겠지. 권세 가문들끼리의 사교 현장이다. 온갖 정치적 사안들과 은밀한 거래, 암투가 이루어지는 각축장인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없다는 말이지?”

“당연하지. 델린이나 이엘로스 가문이 주최하는 거라면 꽤 성대한 연회가 될 것 같은데? 물론 우리 위더스푼가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때, 기다리던 베니테즈 교수가 교실로 들어섰다. 동료 교수의 죽음을 전해야 하는 그 얼굴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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