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216화 (216/258)

제216화. 그림자 망치 (2)

캄누이트의 대장간은 숲속에 위치했다. 정확히는 널찍한 호수 한가운데의 섬, 그 위에 대장간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깊지 않으니 그냥 건너오게.”

선뜻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캄누이트. 섬과 연결된 다리도, 오가는 배도 없었다. 루빈과 블라네 그리고 좀 떨어져 있는 엘키오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나저나, 라유비아는 어디에 있는 게지?

하네케는 라유비아의 정체를 안 뒤로 줄곧 증손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고 보니 라유비아도 여기에 들어와 있을 텐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엘키오, 라유비아는 어디에 있지?”

“그 아이는 왜 찾는 거냐?”

아무리 평화지대라지만, 당연하게도 엘키오의 경계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루빈은 더 캐묻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라유비아는 하네케의 증손녀이기도 하지만, 엘키오 입장에선 적운의 성주,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신뢰부터 회복해야 했다.

스르르륵.

섬에 올라선 그들.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몸에 묻었던 물기가 스르륵 사라졌다. 루빈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물이 아닌가 봅니다.”

“물처럼 보일 뿐이지. 실은 세 가지 달빛을 품은 쇳물이야. 작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재료지.”

이계의 대장간은 대륙의 양식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한쪽 벽에 갖가지 제작 도구들이 걸려 있고, 그 반대쪽엔 모루와 쇳물, 주형틀 등이 보였다.

-흠, 평범하군.

루빈이 보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어떻게 영혼무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지.

“루빈.”

“예, 캄누이트.”

대장장이는 작업대 앞에 앉았다. 천장에 내걸린 등불이 대장장이를 환히 비추건만, 등 뒤 그의 그림자는 부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내게 뭘 의뢰할 건가?”

“우선 무엇으로 작품의 값을 치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말에 캄누이트가 끌끌 웃었다.

“값을 치른다라, 재밌는 소리군. 내가 황금이라도 요구할까 봐?”

“어떤 식으로든 값은 치러야죠. 특히 당신의 작품이라면요.”

“좋아. 대가가 없는 건 아니지. 하지만 작품의 대가는 자네가 아닌, 날 여기에 데려다 놓은 고귀한 존재들께서 대신 지불할 걸세. 그저 난 최대한 많은 일감이나 받아내면 돼.”

이계의 대장장이로 은퇴하는 그날, 밀렸던 대가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의뢰나 하게. 존재할 가치가 있는 거라면 뭐든 만들어 주지.”

“존재할 가치요? 그 가치의 기준이 뭡니까?”

“기준? 바로 내가 기준이지. 내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면,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거야.”

자신감이 넘치는 말이었다. 그 자신의 능력이 곧 이 세상의 한계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로젠탈러의 비검(飛劍)’부터 내놓아볼까.’

우선은 비검의 개조였다. 너무 크고 무거워 루빈이 사용하기엔 비효율적이었다. 단검의 형태로 바꿀 요량이었다.

루빈은 아공간 주머니를 펼쳐 비검을 꺼내 넘겨주었다. 캄누이트는 검의 곳곳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루빈이 설명하거나 시연하지 않았는데도, 캄누이트는 곧바로 검의 능력을 꿰뚫었다.

“비검(飛劍)인가? 검신에 두 가지 힘이 담겨있군. 비행과 귀환.”

“정확합니다. 혹 그것도 이곳 대장간의 작품입니까?”

“아니, 인간이 만든 거다. 이 정도로 ‘작품’ 소릴 듣긴 힘들지. 그래도 인간이 만든 것 치곤 꽤 잘 뽑혔군.”

“흠, 그렇군요.”

인색한 칭찬이었지만, 저 정도면 인간 입장에선 굉장한 극찬이리라. 새삼 이런 무구를 만든 칙명부의 권세가 실감이 갔다.

룰포가 자신의 수족이었던 로젠탈러에게 하사한 비검이다. 그렇다는 건 룰포에겐 비검과 비등한 수준의 무구가 더 있다는 뜻이겠지.

“비검을 단검으로 개조했으면 합니다.”

“그쯤이야. 당연히 그게 다는 아닐 테지?”

역시 대장장이는 루빈의 요구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루빈은 비검이 자신의 암연에 조응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암연에 따라 비행을 주도하려는 의도였다.

검이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루빈의 의지에 따르는 비검이 되는 것이다.

“가능하지. 그게 끝인가?”

“아뇨. 하나 더 있습니다. 생전 이 검의 주인은 검을 쥐지 않은 채로 오러를 발현했습니다만, 그 상태는 불안정했죠. 오러의 발현을 극한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러?”

그 말에, 캄누이트가 양 눈썹을 오므린다.

어째서 암연의 ‘선택받은 자’가 오러를 논하는가? 암연을 지닌 자는 오러나 마나를 품는 게 불가능할 텐데?

하지만 다음 순간, 대장장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놓쳤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그래. 루빈 자네는 오러의 환도 지니고 있군? 아, 글레이튼의 팔찌를 차고 있으니 마나의 환도 있겠고?”

“그렇습니다.”

선선히 수긍해오자 캄누이트는 도리어 웃음이 났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네와 싸우려 한 엘키오를 말리길 정말 잘한 것 같군.”

이제껏 대장간을 찾아온 이들 중 이토록 예외적인 인물은 없었다.

앞선 의뢰자들 중엔 오러의 ‘선택받은 자’도 있었고 마나의 ‘선택받은 자’도 있었다. ‘선택받은 자’가 아니긴 했지만 마도무인, 즉 오러와 마나를 모두 지닌 자도 있었고.

그런데 암연의 ‘선택받은 자’이면서 오러와 마나의 환을 지니고 있다?

신기하면서도, 또 두려웠다.

마주 앉은 이 청년이 두렵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알기로, 암연의 존재 이유는 ‘균형’. 세상의 균형을 해치는 해충들을 도려내는 역할인 것이다.

그런 암연이, 오라와 마나를 허락하는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다.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려 할 때.’

캄누이트는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뭐, 알았네. 자네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지.”

이윽고 캄누이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눈이 멀었을지라도 대장간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대장간 안에 머무르는 시간만으로도 생전 대륙에서의 수명을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그 행동 하나하나 거침이 없었다. 한 손으로 쓱 모루를 쓸어내렸다. 그다음, 벽에 걸린 망치를 손에 쥐었다.

“……!”

바로 그 순간.

숨죽이고 지켜보던 루빈이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림자가 없었던 이유가 이거군.’

망치를 손에 쥐자, 비로소 나타나는 캄누이트의 그림자. 동시에 백안(白眼)뿐인 그의 눈동자도 검게 물들었다.

“시력이 되돌아온 겁니까?”

“아니. 겉모습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라네.”

마치 전투 중에 각성한 무인의 모습과 비슷했다. 대장장이의 온몸에 생기가 들끓었다.

이윽고, ‘로젠탈러의 비검’이 모루 위에 놓인다. 마침내 이계의 대장장이가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캄누이트는 움켜쥔 ‘그림자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검을 내리치듯, 힘차게 망치가 떨어진다.

그리고.

“……?!”

-…뭘 하는 거지?

증손녀를 보게 될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하네케였다. 그런 그의 관심마저 끌어당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망치를 내리쳤다. 하지만 소음이 없다.

사실 그게 당연했다. 내리치는 도중 허공에서 멈추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실수인가?

“…….”

각도를 잘못 맞춘 듯, 모루 위의 비검을 한참 비껴 나간 동작. 루빈은 말없이 지켜봤다. 실수라 하기엔 대장장이의 태도는 진지했다.

이윽고 다시 한번 머리 위로 올라가는 망치. 또다시 힘차게 내려오더니 허공의 한가운데에서 그 움직임이 멎는다. 소음 역시 없다.

‘설마…….’

-음? 뭐가 있는 건가?

‘그림자를 보세요, 하네케.’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대장장이의 등 뒤, 다시 생겨난 그림자에 비밀이 숨어 있었다.

그림자 연극.

루빈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대장장이는 허공에 망치질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그림자는 정확히 모루 위의 비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겉모습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라네.’

방금 전, 캄누이트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 아니 ‘그림자의 그림자’인 대장장이.

“후우… 후우…….”

그림자의 망치질이 계속될수록 캄누이트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의 성성한 수염마저 적실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루빈은 대장장이 곁으로 몇 걸음 다가가 모루 위에 놓인 비검의 상태를 살폈다.

비검은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었다. 핏빛서리에 맞섰을 때에도 깨지지 않던 검신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후드드득.

망치질과 함께 대장장이의 땀이 튄다. 눈을 부릅뜬 대장장이는 오랜만의 작업이 즐거운지 미소를 품고 있었다.

“캄누이트.”

“말하게, 루빈.”

망치질에 집중하면서도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보고도 놀랍네요. 그림자의 마찰… 그게 제작의 비밀이었다니.”

“이 망치와 모루가 평범한 것이라 생각했나? 그 어떤 영혼무구보다도 뛰어난 작품이라네. 영혼을 매듭짓는 놈이랄까.”

대륙에서 수명이 다해 죽은 캄누이트. 죽음 이후, 그는 영혼 상태로 이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 그림자 망치가 영혼 상태인 그의 육화(肉化)를 이끌어주는 것이었다.

“이 망치와 모루가 영혼인 당신에게 육체를 만들어 주는 거군요. 일시적으로요.”

“정확하네.”

이어서 캄누이트는, 이 망치와 모루를 가리켜 ‘신의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하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그림자 또한 스르륵 사라졌다.

순간, 그걸 본 루빈의 뇌리에 강렬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신의 조각. 영혼을 육화한다…….’

루빈은 제 머릿속을 헤집는 강렬한 상념을, 황급히 붙들었다. 꽉 막혀있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럼 어쩌면……?’

루빈의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린 캄누이트가 불쑥 물어왔다.

“왜, 뭐 문제라도 생겼나?”

“…캄누이트.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좀 어려운 부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캄누이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어려운 부탁이라니, 대체 뭐길래?

상황을 지켜보던 하네케도 궁금한지 불쑥 말을 걸어왔다.

-대체 뭣 때문에 그러나? 내면세계 전체가 동요하고 있네.

루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캄누이트에게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진 얼굴로.

“캄누이트, 당신의 망치와 모루를 빌려주십시오.”

“뭣이?”

“신의 조각이 필요합니다.”

“……?!”

이계의 대장장이는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조각’이 필요하다니? 그 말인즉, 이 망치와 모루를 깨부수겠다는 말이 아닌가?

“걱정 마세요. 완전히 부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작은 조각만 있어도 됩니다.”

“뭐라고? 하핫!”

이내 캄누이트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의 조각’은 그런 게 가능할 만큼 물렁하지 않다. 생일 케이크처럼 원하는 만큼 잘라서 나누는, 그런 종류의 물질이 아니란 말이다.

“루빈, 뭣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네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빌려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걸 부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가능합니다.”

“허허, 그만두게. 이 망치나 모루는 부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어떤 영혼무구를 가져와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거야. 내 장담하지.”

그러나 루빈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해보죠.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요.”

그 말에 캄누이트는 또다시 커다랗게 웃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신의 조각을 부술 순 없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말이다. 부수기는커녕 이 망치를 집어 들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직접 망치질을 해 모루를 부수고, 신의 조각을 취하겠다? 아무리 루빈이 ‘선택받은 자’라 해도, 코웃음이 절로 나올 말이었다.

어쩌면 화가 날 법도 한 허무맹랑한 요구였지만, 캄누이트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루빈은 확신했다.

‘부술 수 있다. 그리고 부숴야만 해.’

‘신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그림자 망치와 모루는 일시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육화한다.

이것이 영혼 상태인 캄누이트가 실재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이유였다. 망치질을 할 때만큼은 그림자를 되찾고, 살아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하네케. 당신을 되살릴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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