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1화 (1/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Prologue.

유서 깊은 윈체스터 대저택의 창문이 바람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스산한 저녁, 온 가족이 함께하는 만찬의 시간이었다.

긴 식탁 중앙의 금촛대에 꽂힌 촛불이 일렁였다.

중앙 상석에는 암왕이라 불리는 내 아버지 레카르도 윈체스터 공작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악명 높은 악당들인 진, 오셀로 오라버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버지의 오른쪽 자리에는 내가 있었고 말이다.

“아버지, 방금…… 하신 말씀의 의미가……?”

나는 표정이 굳은 채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과 오셀로의 서늘한 시선만이,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

제국 최강의 악당, 내 아버지 레카르도 윈체스터는 오늘 식사 자리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안 돼요……. 그 명령은 거두어 주세요!”

탁, 하고 나이프를 놓는 소리에 나는 흠칫하며 내 앞에 앉은 오셀로를 보았다.

“매번 네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오셀로가 눈썹을 찡그리며 나를 다그쳤다.

“하…… 하지만…… 그건 이미 가문에서 지불하고 있는…….”

“염치없게 굴지 마.”

그의 사나운 눈빛에 나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항의의 말을 꺼냈다.

“아버지, 그리고 오라버니들. 저는 이제 더 바라는 것도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한……!”

“샤샤.”

가만히 앉아 있던 진이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

윈체스터의 후계자인 그의 부름에 나는 움찔했다.

진 윈체스터, 그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독 서늘하게 보였다.

그는 차가운 눈빛을 한 채 부드럽게 나를 협박했다.

“넌 아직 허약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몸으로…….”

강요가 담긴 목소리였다.

“제멋대로 아버지의 명령을 거절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짙은 눈빛이 내게 명령하고 있었다.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아까부터 레카르도 윈체스터는 은식기를 들지 않았다.

숨이 막힐 정도의 무거운 정적이 식탁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입을 열어 작게 화답했다.

“……콜록.”

― 내일부로 윌너스 광산의 소유권을 샤샤 윈체스터에게 넘긴다.

온갖 진귀한 보석들의 창고라 불리우는 윌너스 광산의 권리를 앞으로의 치료비 보조를 위해 내게 넘긴다는 아버지의 말이 다시 떠오르자 나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윌너스 광산은 가문 소유의 광산들 중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광산으로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요지이다.

윌너스 광산에서 채굴되는 진귀한 광물과 보석들 중 엄지손가락만 한 금덩이 하나 정도면 내 주치의 비용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광산 전체를 다 가지라니?!

게다가 난 겨우 열 살이라고!

그래, 처음부터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식기를 들고는,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 사태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화

“으애애앵!”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려 울컥하는 마음에 따지려는데, 어쩐 일인지 내 입에서 항의의 말 대신 이상한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그러다가 희미하게 보였던 주변이 점차 선명해졌다.

잠깐……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어둑하고 싸늘한 아스팔트 도로 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중세 분위기의 화려한 방 안이었다.

천장의 층고는 수 미터에 이를 만큼 높았고, 처음 보는 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상에나, 너무 예쁜 아가씨예요.”

“이렇게 피부가 뽀얀 아기는 처음 봐요. 녹색 눈 좀 봐.”

철컥하고 가위로 뭔가 자르는 소리와 포근한 천으로 젖은 내 몸을 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여자의 소리, 그리고 한국어는 아니지만 분명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여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장 연락을 해야겠어요. ……님도 참, 이런 날 부인을 혼자 두다니 너무하세요.”

“마야, 그런 말 하지 마. 요즘 영지의 일로 얼마나 바쁘신 줄 알면서.”

“참, 그래도 아가씨를 낳으신 날인데 너무하시잖아요.”

나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짧은 팔다리가 내 의지를 배반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마야.”

“죄송해요, 제가 괜히 서운해서…….”

몸이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었다.

한편 마야라고 불린 시녀는 천에 싸인 나를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에게 안겨 주었다.

출산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여자는 매우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를 낳은 여자와의 첫 만남에 얼떨떨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청색 눈을 가진 그녀는 땀에 젖은 채 꽤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기야…… 그분께서 네 이름을 지어 줄 거야.”

이름, 이라는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 과거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 다시 태어났었지.’

* * *

고된 야간 알바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트럭 하나가 나를 치고 달아났었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인, 땀을 뻘뻘 흘리는 저승사자의 설명은, 내 예상 범위 안이었다.

동명이인을 잘못 데려왔다며, 다시 살아나는 건 무리니 대신 새 인생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었지.

― 화…… 환생 시스템은 원래 무작위가 원칙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환생한다면 이만한 기회가 어디 있을까요?

내가 읽었던 <테일러스의 가주>는 전체 연령가의 소년 판타지 소설로 웹툰에 게임까지 나온 히트작이었다.

로판, 현판, 가리지 않고 잡식성으로 읽던 나도 재미있게 읽었고 말이다.

― 염라대왕께서 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게임을 어찌나 즐겨하시는지 몰라요. 부……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제가 잘 말씀드려 특전도 잔뜩 넣어 드리도록 할게요.

저승사자는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말투로 내게 간절히 부탁했다. 어쩐지 내가 이대로 죽어 저승으로 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죽여서 그런 거겠지.

뭐, 좋은 조건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니 받아들일 수밖에.

― 저승 규칙에 의해서 누구로 태어난다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선하게 살아오셨으니 분명 좋은 조건으로 환생하실 겁니다.

<테일러스의 가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배경은 야누트 제국.

제국의 황제는 전설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인 고룡 메키우스이다.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제로 통치하고 있지는 않다.

제국의 실제 통치권은 땅의 아카다, 물의 헤일로, 어둠의 윈체스터, 빛의 테일러스라는 네 가문에 있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은 ‘테일러스 공작가의 가주’가 될 에반 테일러스라는 소년이다.

점점 먼치킨 주인공으로 각성해 나가는 에반 테일러스의 화려한 성장 사이다 소설.

로맨스라고는 한 줌도 첨가되지 않아서, 내가 보았던 일반적인 책빙의물…… 그러니까 여주로 환생한다거나 여주의 라이벌인 악녀로 환생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조건으로 환생시켜 준다고 했으니 소녀 가장으로 살아오며 누리지 못했던 평온하고도 지루한 삶을, 다음 삶에서는 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영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내가 없으면 생계가 곤란해지는 아픈 엄마, 그리고 동생들.

― 그 부분은 잘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저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결국 남은 가족들이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조건을 추가한 뒤 환생하기로 했고, 이렇게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 * *

“오래 기다려 왔어…… 이렇게 만나게 되기를.”

여자가 다시 내 볼을 쓰다듬었다.

주인공 에반 테일러스의 가문인 테일러스 공작가는 절대 아닌 것 같고, 다른 귀족 가문인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아카다나 헤일로일까? 변방의 귀족 가문이라고 하기에는 방 안이 꽤나 웅장하니 말이다.

“있잖아요. 아가씨가 부인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벌써 앞이 보이실 리가 없는데…….”

젊은 여자의 말에 산파는 나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보이시는 건가? 이렇게 또렷한 눈빛의 아기는 처음 봐요.”

보통 아기들은 태어난 지 한 달은 지나야 어느 정도 앞을 식별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환생자의 버프인지 내 눈앞의 모든 것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천장의 반짝이는 샹들리에마저 눈이 부실 정도로 또렷한걸.

한참 나를 보던 산파는 잠시 뒤 내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상태를 체크하다가 손을 미끄러트렸다.

“헉…….”

시선을 아래로 향한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못 볼 것이라도 보았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던 그녀는 황급히 표정을 감추었다.

입술이 하얗게 변한 그녀는 내 엄마에게 말했다.

떨리는 손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부인, 출혈이 있으니 의사를 불러올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의 말대로 엄마의 얼굴에선 핏기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놀라 눈동자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자 그녀의 흰 치마가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놀란 나는 입을 열었지만 ‘이애앵’ 따위의 말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트리샤 님……! 괜찮으신가요?!”

이윽고 문이 쾅 열리고 한 명이 더 들어왔다.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이 의사인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트리샤라는 이름은 본 적 있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세상에. 과다 출혈입니다. 저 보이세요? 정신 차리셔야 해요, 부인!”

“공작…… 전하께…….”

엄마는 희미한 눈을 뜨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막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어느새 침대에는 피가 흥건했고 나를 감싼 천까지 물들 정도였다.

“저를 도와 이 천을 잡아 주시겠어요? 오, 이런…….”

뚝, 뚝, 뚝,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는 빛이 꺼져 가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는 약속의…… 열쇠야…….”

그녀의 입술이 달싹이며 내게 뜻 모를 소리를 힘겹게 내뱉었다.

“부인……!”

의사가 그녀를 애타게 불렀지만, 트리샤는 생명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내 얼굴을 담은 그녀의 눈이 점점 눈꺼풀에 덮였다.

나는 충격에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출산이 원래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죽는다고?

그리고 그때 쿵, 하고 문이 다시 열렸다.

문밖에는 190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를 가진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은발과 짙은 녹색의 눈동자, 깊고 서늘한 눈매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드는 잘생긴 얼굴…… 허리춤에 찬 장검, 어디서 사냥이라도 하고 온 것인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제복…… 위압적인 분위기.

넓은 양어깨에는 검은 바탕에 화려한 금사로 용이 수놓여 있었다.

그의 뒤에는 많은 기사들이 있었지만, 오른팔로 보이는 부관이 그를 따르며 문을 닫자 그들의 모습은 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남자가 내 아빠이자 트리샤의 남편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외모를 보자 나는 내가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보다 무거운 정적이 흐를 수 없는 방 안으로 남자는 뒤늦게 무거운 발을 내디뎠다.

이내 그가 침대 옆으로 다다랐을 때 그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졌다.

“공작 전하, 부인께서…… 흑…….”

마야라는 이름의 시녀가 울먹였다.

“죄송합니다. 운명하셨습니다.”

의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아빠는 소설 속에서 ‘흑염의 주인’, ‘암왕’이라 불리는 자일 것이다.

“…….”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던 공작이 손을 뻗어 트리샤의 눈을 마저 감겼다.

한참 동안 엄마를 바라보던 그의 차가운 시선은 그녀에게 안겨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목을 죄는 듯 위압적인 그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정말 울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았을 때 우리 집은…….

“…….”

<테일러스의 가주> 속 최악의 악당 가문이었다. 온갖 악당 짓을 하다가 결국 파멸하게 되는 ‘어둠의 윈체스터 공작가’.

산파는 울먹이며 말했다.

“부인께서 아기의 이름을 공작 전하께서 지어 주실 거라고…….”

나는 목 놓아 마음껏 울고 있었고 공작은 여전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남자, 내 아빠는…… 이 소설 최고 악당인 ‘레카르도 윈체스터’였다.

주인공의 적인 그에게는 그의 뒤를 잇는 악당이 될 두 아들과,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 딸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내가 그 딸인 모양이었다.

“샤샤.”

그의 시선은 몸이 시릴 만큼 서늘했다. 보지 않아도 그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나직하고 거친 그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샤샤라고 하지.”

“응애! 응애! 응애!”

나는 저승사자를 불러 따지고 싶었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잖아!

“시초의 고룡 메키우스시여, 부인을 바른길로 인도하소서. 그리고 부디…… 이 가여운 공녀님께 축복을.”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작에서의 트리샤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던 첫 번째 부인이 사고로 죽고 수년 후 레카르도의 아이를 임신한 채 저택에 들어온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하게 태어났지만, 트리샤는 출산 후 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윈체스터의 규율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악당 가문의 사생아 막내로 태어나 병약한 몸으로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살다가, 가문이 파멸하며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내가 아는 샤샤의 결말이었다.

“응애애!!”

나, 태어나자마자 망한 거야?

목청껏 우는 나를 놀리듯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환생 특전 모드 실행 중]

[System : 새 계정이 생성됩니다.]

[계정명 : 샤샤 윈체스터]

[전설 등급 운명 ‘메키우스의 열쇠’가 당신의 영혼에 깃듭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