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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3화 (3/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3화

진과 오셀로가 다녀가고 며칠 뒤,

“으으…… 으애앵…….”

얼굴이 빨개진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나는 신나게 터미 타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터미 타임이란 아기가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들고 버티는 것으로서 아기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것도 생전에 교양 과목에서 배웠던 지식!

“어머, 우리 아가씨. 언제 뒤집으셨어요……!”

나는 아마도 발달이 빠른 편인 것 같았다.

세 달이 지나자마자 뒤집기를 하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물론 뒤집은 뒤 다시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이 일탈은 항상 내가 파닥거리며 우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아가씨, 자꾸 뒤집고 싶으세요?”

마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뒤집기란 마치 아기의 본능인 것 같았다.

뒤집을 줄 아는데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너무도 좀이 쑤시는 일……!

마야는 끙끙대던 나를 곧장 바로 눕히고는 쪽쪽이를 물려 주었다.

여기도 이전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일 정도 되면 쪽쪽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쪽쪽이 역시 나의 지루함을 감소시켜 주는 유용한 물건으로써 아주 애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인이었을 때는 쪽쪽이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 진짜 아기가 되었나 봐!

“우리 아가씨, 냄새나는데요?”

불쑥 들어오는 공격에 나는 팔다리를 바동거렸지만 마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기저귀를 갈았다.

쪽쪽이를 물고 하늘에 달린 모빌을 바라보니 수치심을 점점 잊을 수 있었다.

“변 상태도 괜찮고, 냄새도 괜찮네요…….”

저기요, 쪽쪽이 물고 있는데 입맛 떨어지게 그런 이야기 하지 마.

나는 애써 주의를 돌렸다.

잠시 뒤 내 기저귀를 갈아 준 마야는 나를 토닥이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흠칫했다.

“아, 생각해 보니 오늘 엘르 토이숍에서 새로 입고된 장난감이 온다고 했는데……!”

마야는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가씨. 소포가 도착했을 테니 금방 가져올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방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정말 간만에 혼자 있게 되었다.

원래 어린 아기를 혼자 두고 나가면 안 되는 거라지만, 아기 침대의 가드가 높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멍하니 쪽쪽이를 빨며 지금의 내 상황을 정리했다.

샤샤 윈체스터, 태어난 지 아마도 백일쯤 된 것 같다.

원작에서의 내 미래는 다소 병약한 몸으로 잔병치레를 겪으며 자라다가 열일곱 살 정도에는 지병이 심해져서 산책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에반 테일러스는 먼치킨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다운 막강한 힘으로 윈체스터가를 파멸시킨다.

그때가 내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일 테다.

두 오빠들은 쓰러지고, 최종 보스인 내 아빠도 사망 엔딩!

그리고 가문이 멸망하는 것을 보며 샤샤는 에반에게 차라리 나도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만, 에반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이를 무시하고, 결국 쓸쓸히 혼자 죽어 가는 운명이다.

독자로서는 악당 가문이 절멸하는 것을 보며 사이다!…… 를 외쳤지만.

‘원작 꺼져.’

하지만 환생자답게 운명에 순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영 안 좋은 곳에 태어났다고 해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길은 있다고!

악당들인 아빠나 오빠들과 엮이지 않게 조심하며 지내다가 최대한 빨리 독립할 거고, ‘위대한 마탑주’ 카실리온과 접촉해 내 치료약을 얻어 낼 것이다.

에반의 동료가 될 마탑주 카실리온, 땅의 가문인 아카다 공작가의 혈족인 그는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엘릭서’를 제조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한 에반 일행의 목숨을 구한다.

그러니까 에반이 카실리온과 접촉하기 전 내가 먼저 그를 만나면…….

바동―

지나치게 생각에 열중한 탓인지 나는 또 몸을 뒤집고 말았다.

큰일이네, 마야도 없는데.

당연하게도 남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운 좋게 날 찾아와 줄 사람도 없을 테고 말이다.

나는 힘을 주며 자꾸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는 고개의 무게를 버텼다.

제기랄, 힘이 빠져.

머리는 왜 이렇게 무거워서는.

눈썹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며 열중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마야! 마야, 맞지?

반가운 마음에 있는 힘껏 그곳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움찔했다.

레카르도 윈체스터, 은발과 짙은 녹안의 잘생긴 최강 빌런 우리 아빠…… 현재 나이는 아마도 스물여덟.

그가 눈썹을 찡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백일이 다 되도록 한번 찾지도 않은 아빠가…….

“…….”

그는 내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가 매우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바둥거리며 그에게 요청했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아빠라도 필요했다.

다시 뒤집어 줘. 목 아프다고! 으으으!

엎드린 채 간신히 고개를 들어 바동거리는 나를 보며 그가 더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노려보고…… 있는 건가?”

젠장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 같은 귀여운 아기에게 뚱뚱하다고 한 오셀로와 다를 게 없었다.

도와 달라고 끙끙대는 것을 자신을 노려본다고 해석하다니…… 아기에 대해서 다시 공부해 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레카르도는 드디어 내 날갯죽지에 손을 넣어 나를 들어 올렸다.

그래, 이제 곱게 눕히기만 하면…….

내 작은 발은 아직도 허공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 눈 가까이 그의 짙은 녹색 눈동자가 보였다.

‘저기…… 요?’

그는 나를 안아 든 채, 마치 관찰하듯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친한 사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무섭게 왜 이러세요.

내가 읽은 <테일러스의 가주>에서의 레카르도 윈체스터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남자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을 때,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그 비정한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고 말이다.

아마 내가 죽어도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낯을 가리는 건가.”

나를 바라보던 레카르도의 입술이 옅게 비틀렸다.

나는 목덜미가 섬뜩해졌다.

잘생긴 악당이 웃으면 더 싸하고 무섭다.

“으앵…….”

나는 힘을 주었고 눈썹의 붉은 기가 다시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울음을 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노력으로도 내 배 속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앙!!”

놓아줘, 이 나쁜 아빠야! 나 이제 누울 거야!!

공작의 손에 들려 발버둥 치며 울던 나는 등에 닿는 폭신한 느낌과 함께 점점 울음을 멈추었다.

그는 울어 젖히는 나를 곱게 다시 침대에 눕혀 주었다.

내가 눕자마자 울음을 그치자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만 관찰하고 이제 떠나 주시겠어요……?

내가 소망을 담아 그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 때였다.

불쑥 문이 열리고, 장난감 꾸러미를 가득 든 마야가 방에 들어오며 흠칫했다.

“고…… 공작 전하……?”

마야의 눈이 내가 봤던 그녀의 모습 중 가장 커져 있었다.

* * *

마야는 그에게 크게 혼이 났다.

혼…… 보다는 위협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레카르도의 차가운 눈빛과 방 안을 옥죄던 흑염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야는 바들바들 떨며 엎드렸었고 레카르도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 다시는 곁을 떠나지 마라. 아이가 다치면, 너도 죽는다.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닌 건가?

그렇게 살벌하게 혼을 내다니 말이다.

뭐 나 같은 아기를 혼자 두고 그렇게 자리를 비운 것은 그녀가 잘못하기는 했다.

만약 레카르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기절했을 수도 있다.

푹신한 침구 재질 때문에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미안해요, 아가씨…… 흑…… 흑…….”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하루 종일 훌쩍이는 이유는, 레카르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뒤집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자신을 자책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신나게 젖병을 빨고 있었고, 마야는 소중한 것이라도 매만지는 듯 계속해서 내 다리를 주물렀다.

‘괜찮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고말고…….’

역시 포만감만큼 나를 자비롭게 하는 것도 없다.

젖병 하나를 원샷 한 나는 마야의 어깨에 기대어 다시 크게 트림했다.

그리고 그때 내 눈앞에 이상한 글자가 떠올랐다.

[우유 500/500회]

[트림 500/500회]

[진 윈체스터와의 만남 달성]

[오셀로 윈체스터와의 만남 달성]

[레카르도 윈체스터 공작과의 재회 달성]

[당신은 모든 튜토리얼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100일 아기의 까꿍 패키지’가 선물함에 도착하였습니다.]

[메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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