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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7화 (7/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7화

진의 머플러는 확실히 좋은 재질이었지만 그것을 어깨에 두르자 부담감에 담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천년 같은 30분의 산책이 끝나고 진은 유아차를 마야에게 넘겼다.

나는 십년감수한 표정으로 힘이 풀려 유아차에 축 처진 채 앉아 있었다.

마야는 아무 일 없이 산책이 끝나자, 자신이 오해했다는 듯 따뜻한 표정으로 진을 보고 말했다.

“공자님께서 이렇게 아가씨를 예뻐하시는지 몰랐어요.”

나는 침을 튀기며 반박하고 싶었다.

마야, 쟤가 나 협박했어!

더 울면 마른 꽃처럼 비틀어 버리겠다고 했다고!

정확히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느낌상 분명 그 뜻이었어.

억울한 눈빛으로 뚱하게 마야를 보고 있는데 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히끅.”

“저런, 아직도 딸꾹질을 하네.”

진의 입술이 고운 모양새로 비틀렸다.

남자의 성격과 외모는 반비례하는 세계관인지도 모른다.

레카르도 공작, 진, 오셀로 셋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왜냐면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하면 마야 같은 순진한 사람은 진이 다정한 줄 알거든.

“머플러는 다음에 받으러 올게, 샤샤.”

그 말에 나는 흠칫했다.

아…… 아냐, 지금 가져가라고. 나는 발버둥을 쳤지만 마야는 내 옷매무새를 점검할 뿐이었다.

“네, 공자님.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래.”

마야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진은 피식 미소 지으며 뒤돌아섰다.

멀어져 가는 연하늘색 머리칼을 보며 나는 세상을 잃은 듯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또…… 또 오겠다고? 싫어!

들리지 않는 외침이 내면에서 메아리칠 뿐이었다.

* * *

“샤샤에게 다녀왔어.”

단도 목검을 칼로 깎던 오셀로의 방에 들어온 진이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진의 말에 오셀로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몇 초 뒤, 오셀로는 다시 칼을 깎기 시작했다.

여덟 살의 손놀림이라고는 보기 힘든 정교하고 섬세한 손짓이었다.

“네 걱정처럼 상태가 안 좋지는 않아.”

그 말에 오셀로가 발끈 입을 열었다.

“그 꼬맹이 걱정한 적 없어.”

세상모르고 만세 포즈로 자는 샤샤의 모습이 오셀로의 뇌리에 떠올랐지만, 오셀로는 다시 목검 깎기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진의 목소리.

다시 멈칫한 오셀로의 손을 보던 진이 피식 웃었다.

정말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녀석이었다.

트리샤가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메르코 사냥터의 소년 사냥 대회에는 참여할 거야?”

진은 모른 척 말을 돌렸다.

원하는 방향의 말이 아니자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오셀로가 입을 열었다.

“애들 장난에는 관심 없어. 잡을 수 있는 동물은 새와 토끼, 쥐 같은 것들뿐이고 치렁치렁한 보호 장비는 우스꽝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날 지경인데.”

진은 이해한다는 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누가 새 사냥을 하고 있는지, 총구 소리와 함께 검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풍경이 보였다.

“적당한 핑계를 찾아볼 생각이야. 너는?”

일곱 살부터 열세 살까지 참여가 가능한 소년 사냥제는 야누트 제국의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작년에 첫 출전한 윈체스터 형제는 최연소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 테일러스가 출전한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진의 말에 오셀로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테일러스라면 그 재수 없는 검은 머리 꼬맹이?”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 테일러스, 빛의 테일러스인 체노아 테일러스 공작의 아들이자 장차 테일러스의 가주직을 이어받을 후계자.

레카르도 윈체스터와 체노아 테일러스가 평생의 숙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듯 그 후대도 그러할 것이다.

두 가문은 늘 대립해 왔으니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목검을 다 깎은 오셀로가 단검을 내려놓았다.

그가 깎은 목검은 정말 물건을 벨 수 있을 듯 날이 날카로웠다.

오셀로의 짙은 녹안에 날카로운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

* * *

제기랄, 샤샤…… 오늘도 잘 버텼어.

힘든 싸움이었다.

곧장 마야가 타 준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며 나는 스스로를 격려했다.

원작에서 두 쌍둥이 오빠가 샤샤를 괴롭혔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았다.

샤샤는 엑스트라에 가까운 조연이었고, <테일러스의 가주>는 남주인 에반 테일러스에 대한 서사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최근의 일들을 통해, 적어도 그녀의 두 쌍둥이 오빠들 중 하나는 그녀를 매우 싫어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둘 다.

“진 공자님이 그렇게 아가씨를 귀여워하실 줄 몰랐어요.”

마야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칠 뻔했다.

“근신하고 계신 오셀로 공자님도 많이 후회하고 계실 거예요.”

마야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를, 내심 보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요? 얼음 같은 진 공자님조차 아가씨에게 빠진 것 같은데…… 아가씨가 걱정되어 밤중에 찾아와 잠까지 든 오셀로 공자님은…….”

필터…… 귀 필터 작동!

아무튼 호들갑을 떠는 마야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젖병 하나를 또 비웠다.

조금 몸집이 커진 나는 이제 마야가 안아 주지 않아도 엉덩이가 파인 아기 의자에 앉아서 트림을 할 수 있다.

혼자 트림을 하게 되니 가끔 우유를 게워 내며 옷이 젖는 일도 줄었고. 아무튼 내 삶의 질은 성장과 함께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내 트림 소리가 들리자 싱긋 웃은 마야는 나를 안아 들었다.

“어머, 예뻐라.”

그리고 무릎에 앉혀 책 하나를 펼쳤다.

“우리 아가씨 우유도 잘 마시고 트림도 하셨으니, 오늘은 제가 재미있는 책 읽어 줄게요.”

마야가 펼친 책은 그림이 한가득 들어간 동화로 오랫동안 윈체스터가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졌던 영유아 전집 구성 도서 중 하나였다.

9대 가주가 직접 검수하고 개정했다고 했었지. 실력 있는 동화 작가들이 집필한 것이 원본이라고 했고.

“옛날 옛날 토끼와 호랑이가 살았어요. 아기 동물이었던 토끼와 호랑이는 아주 친한 친구였답니다.”

동화책을 펼친 마야는 실감 나고 힘차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좋아하는 총천연색의 동화책에는 귀여운 토끼와 호랑이가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가 이가 나기 시작했어요. 날카롭고 뾰족한 이가요.”

“으꺄꺄!”

여기서 그만하면 안 될까. 이 전집…… 역시 아기가 읽기에는 내용이 별로라고.

“네, 맞아요. 그리고 호랑이는 발톱도 길어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기 토끼는 호랑이를 떠나지 않았답니다.”

대체 뭐에 ‘네, 맞아요’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야는 계속 동화를 읽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호랑이의 눈빛이 아주 무섭게 변할 때까지요. 토끼는 호랑이를 믿었어요. 호랑이는 하나밖에 없는 토끼의 친구였으니까요. 영원히 둘의 사이가 끈끈할 줄 알았죠.”

이 영유아 전집의 특징을 말하자면…….

“결국 다 자란 호랑이는 배가 고파져서 토끼를 한입에 잡아먹었어요. 토끼는 아주 육질이 좋고 맛있었죠. 그러니까 토끼처럼 안일한 삶을 살면 안 된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이며, ‘악당 가문’에 어울리는 그로스테크한 내용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퀠른 출신이라던 마야는 완전히 윈체스터 가문에 감화된 듯, 순진한 표정으로 무서운 내용을 줄줄 읊어대고 있었다.

“다가오는 위협을 모른 체하고 외면한다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어요. 특히 빛이라는 허울 좋은 낯짝 아래 맹수 같은 발톱을 숨기고 있는 테일러스 놈들을 대할 때는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동물들을 통해 교훈을 얻는데 그 교훈이 씁쓸할 만큼 현실적이다.

“밟을 수 있다면 기꺼이 싹을 밟고 뭉개 버려야 하죠.”

아무튼 동심이란 다 갖다 버린 것 같은 동화책!

이런 걸 읽고 자라니까 레카르도 공작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된 거라고!

진도, 오셀로도 말이다.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죠, 아가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으엑!”

마야의 말에 외계어로 답한 나는 책을 더 읽기 싫다는 듯 옹알거렸다.

“다음에는 ‘늑대의 약육강식’을 읽어 드리려 했는데, 졸리신 거군요.”

마야는 누워 있는 나를 침대로 옮겼다.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제가 다음에는 꼭 그 책도 읽어 드릴게요.”

“에엑!”

팔다리를 휘저으며 사양하는 내 이마를 마야는 사랑스럽다는 듯 여러 번 쓰다듬었다.

창밖으로 은은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몇 달이 흘렀다.

레카르도 윈체스터, 그러니까 내 아빠는 그동안 나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과 멀어졌다고 해서 마냥 안도할 수는 없었다.

복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나를 괴롭히는 데 재미라도 들린 것일까.

그는 볼 때마다 싸한 말을 한 뒤 내 반응을 보듯 관찰하다가, 오묘하게 미소 짓고는 했다.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아차에서 산책하다가 진이 보이면 자는 체를 한 것도 몇 번이다.

― 오늘도 재미있는 반응이네.

어떻게 그의 안중에서 벗어나야 할까, 고민이 많다.

시간이 흘러 바깥의 찬바람이 잦아들 무렵.

딸랑, 딸랑, 딸랑.

나는 깨어나자마자 인벤토리 안에 있던 딸랑이로 열심히 운동을 했다.

처음 이 물건을 꺼냈을 때 마야는 ‘어머, 이 딸랑이는 처음 보는 건데’라고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죠’ 하며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직업 : 무직]

[특성 : 빈둥거리기 좋아하는 게으름뱅이]

[능력 : 1(종합 능력치 보기가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 틈이 나면 딸랑이를 흔들어 댔지만, 내 능력치는 그대로였다.

직업과 특성 여전히 그대로였고 말이다.

‘얼른 자라야 도망치는데.’

1분에 근력 0.01씩 오른다더니…… 거짓말 아니야?

결국 흔들다 지친 내가 딸랑이를 내려놓았을 때였다.

[특성 획득!]

오, 드디어 뭔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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