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3화
윈체스터 가문의 딸은 나 하나뿐이니 그럴만하다.
그…… 그런데, 방금 말투가 조금 이상하지 않았나?
감히 내 딸? ……태어나서 서너 번밖에 본 적 없던 레카르도 공작의 입에서 나오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레카르도 공작에게 안긴, 아니, 매달린 채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
오셀로가 화들짝 놀라 눈썹을 올리고, 진 역시 눈썹을 굳혔다.
“샤샤에게 초대장이 왔다고요?”
레카르도는 가만히 있으라는 듯 오셀로에게 차갑게 눈짓했고, 오셀로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주먹을 꼭 쥐었다.
체노아 공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 딸이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져 나는 레카르도 공작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그에 응수하듯 레카르도 공작의 뒤로 흑염이 더욱 진해지는 것이 보였다.
“어울리지 않게 네가 데리고 있는 애를 말하는 건가?”
아까부터 자꾸 어울리지 않다는 수식언이 뒤따른다.
뭐, 이건 인정.
“그 머리의 주인은 이 아이를 공격한 자들과 같은 저주의 낙인을 가지고 있었지, 귀 뒤에.”
레카르도가 응수했다.
아까 나를 습격한 사람들의 동료였던 모양이었다. 예컨대 일의 성공 여부를 보고하기 위한 연락책.
“확인해.”
체노아 공작이 턱짓하자 사병 중 하나가 자루 안에 든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공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노아 공작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레카르도를 보았다.
레카르도는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낙인의 모양을 알아보겠나?”
레카르도는 서늘한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이었다.
“……카이사의 저주.”
장내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이사의 저주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나는 그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 용어가 나오자 체노아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곧장 따졌다.
“이건 음모다! 카이사의 저주는 100년 전에 이미 사라진 술법, 저주의 낙인을 제멋대로 내 사병에게 새겨 놓고 감히 테일러스를 음해하려 하다니……!”
그리고 그제야 나는 <테일러스의 가주>에서 읽었던 ‘카이사’에 대한 단어를 떠올렸다.
네 개의 가문이 언제나 비등한 힘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둠의 윈체스터’는 본디 박해받는 쪽이었다.
‘빛의 테일러스’는 다른 두 가문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데 반해 윈체스터는 멸문 직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둠보다 빛에 이끌리지 않는가.
악과 어둠은 인간이 타파해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테일러스의 가주 ‘카이사’가 권력욕에 미쳐 가다가 알 수 없는 무언가와 계약해 나라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고 당대 윈체스터 가주가 카이사를 물리쳐 사태를 수습하며 판도는 뒤바뀌게 되었다.
‘빛의 테일러스’라고 ‘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을 견제하고, 빛은 어둠을 견제한다.
‘카이사’는 테일러스가의 흑역사이자 윈체스터가에게는 기회의 역사였다.
저주의 낙인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목적을 성취한 뒤 재가 되어 사라지게 하는 술법. 제국민의 일곱 중 하나가 이로 비롯된 전쟁에 휩쓸려 죽었으니, 다시 그 저주가 나타났다는 말에 사람들은 웅성댈 수밖에 없었다.
“조작이다…… 이 낙인도! 레카르도, 감히 나를 모함하려 하다니!”
체노아의 목에 핏대가 섰고, 둘을 둘러싼 청명과 흑염이 동시에 발작하듯 기운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순간.
“이래서 나를 불렀구나, 고고하신 윈체스터 공작 전하께서.”
그리고 그때 훅 들어오는 목소리는 이 순간과 어울리지 않게 발랄했다.
어떤 낯선 손길이 내 겨드랑이 쪽으로 들어왔다.
“……?”
공중에 뜬 나는 나를 갑작스레 안아 든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아니, 애를 왜 이렇게 불편하게 안고 있어요. 애 처음 안아 본 사람처럼.”
칼단발의 푸른 머리카락과 하늘색의 눈을 가진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 좀 편하지? 우쭈쭈.”
그리고 곧장 그녀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바네사 헤일로, 그녀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 있었다.
괄괄한 성격과 불같은 무력, 헤일로가의 가주인 그녀는 여러모로 소문이 많았다.
어린 시절의 바네사 헤일로가 체노아 테일러스를 주먹싸움으로 이겼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바네사의 등장에 체노아가 제기랄, 하고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모든 생명의 근원, 물. 그에서 나온 ‘수형’은 4대 가문 중 하나인 헤일로의 강력한 이능이었다.
따스한 물줄기가 나를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젖지 않았다.
“겉모습은 닮았네, 셋 중 가장.”
나를 보며 즐겁다는 듯 바네사가 입술을 달싹이자 레카르도는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속은…… 많이 다른데? 내 판단은 아니고 물의 전언이야.”
내 귀에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이내 스멀스멀 내 몸을 기어가던 물줄기가 다시 바네사에게 빨려 들어가더니 그녀의 뒤에 커다란 수룡의 형상을 지닌 물안개로 살아났다.
바네사는 안고 있던 나를 내려놓으며 눈을 찡긋했다.
“그럼 진실을 보고 빨리 제 갈길 가자고.”
놀랍게도 물안개의 형태는 남자들이 공격했던 그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내게서 읽은 기억을 재구현하는 형식인 것일까.
이어 윈체스터의 기사와 하인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눈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윈체스터, 어둠의 윈체스터, 악명 높은 윈체스터.
그 문양이 새겨진 마차에 감히 공격을 가할 사람은…… 테일러스뿐일 것이다.
“말도 안 돼.”
체노아 테일러스의 눈썹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검은 복면과 검은 옷의 사람들은 분명 윈체스터의 마차를 공격 중이었다.
레카르도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했던 그에게는 충격임이 분명했다.
이내 마차 옆구리가 뚫리며, 나를 안은 마야가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 세상에.”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내 정신을 일깨웠다.
와,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이내 남자가 검을 들고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동그란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은 뻔히 내가 살아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떡해…… 하며 제 입을 가리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든 검이 멈추었을 때, 정적이 흘렀다.
아마 저때 ‘스킬’이 발현되었던 것 같다.
“……멈춘 건가요?”
“아뇨, 멈춘 게 아닌 것 같은데.”
“어?”
그런데 저기요, 시스템?
이렇게 다 까발려질 거라는 건 몰랐잖아요.
진과 오셀로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눈썹이 굳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뺘뺘?”
오셀로가 다시 물안개 화면을 바라보았다.
“우뺘뺘.”
나는 아기입니다. 나는 평범한 아기랍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화면 속 나는 열심히 남자와 눈싸움을 하는 중이었고, 남자의 검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열쇠를 망가뜨리지 않으면 그분이…….
남자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리자 문득 나는 흠칫했다.
열쇠. 대체 저 말의 의미가 뭘까.
내게 스킬을 강제 부여한 ‘메키우스의 열쇠’라는 전설 등급 운명과 관련이 있는 걸까.
언젠가 필히 조사해 봐야 할 영역이긴 한데 이 몸으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체노아 테일러스 공작도, 그리고 레카르도 윈체스터도 나를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다.
심지어 이 영상을 재생시킨 바네사 헤일로마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아기야, 너?”
“……어떻게 한 거지?”
바네사와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카르도는 눈을 찡그린 채 유심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에나……! 역시 윈체스터가의 아기님…….”
“하지만 말도 안 돼요. 아무리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고작 두 살 아기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성인 남자가 저렇게 찌르고 싶어서 안달인데,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내게 다가오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저게 사실이라면 대체…….”
“이미 진 공자님이 윈체스터 공작가의 후계시잖아요.”
아, 이건 위험한 발언이다. 형제에게 죽는 일종의 클리셰 발언과 다름없다고.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흡…… 흡…….”
진의 시선을 피하며 나는 심호흡을 두어 번 했다.
이건 아까 썼던 스킬만큼이나 절박한 기술이다. 후아.
그리고 제법 시동을 걸었을 때 우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우아아앙!!”
내가 목청 높여 울기 시작하자, 나에 대한 말들이 잦아들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마야가 있을 때와는 달리 몇 초 동안 나를 달래 주는 사람은 없었고, 한참 뒤에야 바네사가 나를 다시 안아 주었다.
“우쭈쭈. 무서웠어?”
“우앙…… 히끅…… 히끅…….”
“그래, 아기가 뭘 알겠어. 쉬이―”
안쓰럽다는 듯 나를 보는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잠시 후 영상에 레카르도가 등장했고, 그 뒤로 이어진 상황은 드디어 모두가 내게서 시선을 돌릴 만큼 강렬했다.
땅에서 피어오르는 수십 개의 검은 줄기들, 파멸적인 풍경과 재가 되어 사라지는 남자들…….
다시 봐도 ‘와, 정말 미친 거 아니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의 눈에는 세상을 멸망시켜 버릴 것 같은 분노가 들어차 있었다.
내가 죽었더라면, 향후의 상황이 더 지독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뚝, 하고 장면이 끊기자 딱딱하게 굳은 체노아의 얼굴이 보였다.
‘카이사’는 테일러스가의 사람들만 시전할 수 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체노아 테일러스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건 납득할 수 없소! 모함이란 말이오! 테일러스는 이제 카이사를 취급하지 않는다!”
이내 그는 나를 손가락질했다.
“분명 이 아기가 뭔가 이상한 짓을!”
체노아의 뻔뻔한 부인에, 레카르도의 살기가 담긴 흑염이 더욱 짙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혀가 길군, 체노아.”
분노가 담긴 파장에 얇은 유리잔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윈체스터 공작. 많이 화난 건 알겠지만…… 아기는 괜찮으니 차차 이야기하는 게.”
조만간 무도회장이 박살 날 것 같은 분위기에 바네사는 중재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레카르도뿐 아니라 나 역시 무섭다는 듯 보고 있고…… 대혼란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체노아의 뒤로 움직이는 로브를 발견했다.
그러다 문득 한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은 너무 강렬하여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진과 오셀로 또래는 되었을까, 분명 어린아이인데…… 어린아이가 아닌…….
아이의 푸른 눈은 어둠보다 짙은 심연을 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로 담기엔 어색한 어둠이었다.
아이는 잠시 멈추어 나를 본 뒤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무언가 떠올랐다.
[에반 테일…… 만남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