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6화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2)]
[직업 : 무직]
[특성 : 딸랑이 마스터(근력+3)]
후드득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눈앞의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야는 오늘도 내게 저택 내부와 외부의 여러 소식들을 알려 주었는데, 로웬이 베루스에 카이사의 저주에 대한 안건을 전달했다고 들었다.
테일러스는 시체 한 구를 가져와서 놈이 저주에 대한 흑막이라고 했는데, 당연하게도 수긍하는 가문은 없었다.
테일러스에 대한 강력한 제제가 시작되었고, 야누트의 정국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나였을까?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내가 탄 마차를 습격하고 나를 죽이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고작 무력한 아기일 뿐인데.
‘무엇보다 샤샤 윈체스터는 엑스트라일 뿐이라고.’
후우,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인물 열람]이 나타났다.
[1. 레카르도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지배자
인과율: 1.5%]
이내 그 밑으로 내렸다.
[2. 진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1.9%]
[3. 오셀로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2%]
[4. 체노아 테일러스
칭호: 청명의 지배자
인과율: 해당 없음]
[5. #@$% , #$%%, $#$%^^$$#@
이하의 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용기를 내어 [인물 열람]을 살핀 나는 화들짝 놀랐었다.
체노아가 추가되었다는 사실과, 인과율이 해당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쓰러졌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5번란에 이상한 특수문자만 가득 떠 있었다.
프로필 사진에는 지금처럼 검은 그림자 모양의 실루엣만 있었고 말이다.
스킬을 처음 발현하게 되었을 때 떴던 메시지들도 그렇고, 오류 같은 건가? 아니면 역시 에반 테일러스?
“하아…….”
간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차이베리 요거트를 가져오며 마야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웅?”
“테일러스 공작가에서 보낸 항의서가 들어왔대요.”
그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스푼에 가득 담긴 달콤한 요거트를 받아먹었다.
“윈체스터에서 보낸 자객들의 공작으로 자신들의 서쪽 탑이 전소되었다, 이거예요.”
그 순간 나는 내가 읽었던 ‘테일러스의 가주’ 속 사건을 떠올렸다.
“지금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은데, 그래 봐야 누가 믿어 주겠어요. 카이사의 저주 같은 끔찍한 술법을 되살려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인데.”
소설의 주인공 에반 테일러스가 일곱 살일 때 일어난 일이니 시간의 흐름은 동일하다.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명을 받은 숙련된 자객의 침입을 알아낸 테일러스에서는 자객을 포위하려 했지만, 자객은 서쪽 탑에 불을 놓았다.
에반 테일러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놀라울 만큼 강한 청명의 능력을 발휘해 자객을 쓰러트리고, 테일러스 공작가에서는 월례 회의에 참석해 자객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발하게 한다.
하지만 윈체스터 공작은 반성은커녕 테일러스의 전부를 불태우지 못해 아쉽다는 태도로 일관하여 회의는 파국을 맞는다.
다른 두 가문은 테일러스의 편에 서고, 윈체스터는 점점 고립되어 간다.
이는 테일러스가의 후계자 에반 테일러스의 뛰어난 재능이 알려지고, 윈체스터와의 적대 구도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카이사의 해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테일러스를 믿을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카이사의 저주’로 나를 공격한 그 사건 이후, 원작과는 매우 다른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혼란스러웠다.
소설에서의 테일러스는 다른 가문들과 제국민들의 무한한 지지를 얻었다.
그리나 지금은 카이사 사건 이후로 모두가 테일러스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 때문에 원작이 완전히 틀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아가씨…….”
바깥에서 자신을 부른 누군가와 잠시 대화한 뒤,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마야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 * *
가주가 지닌 이능이 가장 강하다고는 하나 이능은 가주만의 것이 아니다.
이능의 근원은 가문, 가문은 진한 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각 가문에서 원로회는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윈체스터의 원로회인 ‘아피니제’는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큰아버지 바쉬론 윈체스터와 그의 수양딸 제스티아 윈체스터가 주축이며, 이번 아피니제에는 평소 참석하지 않던,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조부이자 전대 가주인 헥토르 윈체스터가 참여했다.
참고로 레카르도의 아버지이자 헥토르의 아들 에녹 윈체스터는 형인 바쉬론과 대립하다가, 젊은 나이에 음독으로 죽었다.
그의 죽음이 바쉬론의 짓이라는 혐의가 있었지만 진실은 파헤쳐지지 못하고 유야무야.
이후 바쉬론은 당연히 제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가주의 자리를 조카인 레카르도에게 빼앗긴다.
그러니 레카르도와 바쉬론의 관계는 좋을 리가 없다.
원탁에 자리한 열두 개의 의자에 착석한 의원들은 가주인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독주를 비난 중이었다.
언제나 비어 있던 열두 시 방향의 가장 큰 의자가 오늘은 채워져 있어서인지, 분위기는 평소보다도 상당히 무거웠다.
“레카르도의 행태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어요. 상의도 없이 자객을 보내다니, 긴장이 짙어지는 형국에 반격할 거리를 주지 않았습니까.”
제스티아 윈체스터는 은색보다는 회색에 가까운 구불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가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쉬론 윈체스터의 말에도 헥토르 윈체스터는 가만히 앉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가문의 번영보다 제 핏줄이 중요하다면 더더욱 그렇고.”
바쉬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곧이어 바쉬론의 두 사병들이 보였고, 그들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마야를 거칠게 안으로 밀었다.
바쉬론 윈체스터는 어린 아기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젓더니 손바닥을 짝 부딪쳤다.
그러자 영상석이 빛나더니 여자아이가 성인 남자를 방어해 내고 있는 놀라운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을 본 헥토르 윈체스터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저 아이는 레카르도가 애인에게서 본 계집아이입니다. 이능을 발현하지 않은 나이이고. 그런데, 저런 힘을 발휘했다?”
마야는 쭈뼛거리며 원탁 가까이 멈추어 섰다.
원탁에 앉은 무서운 인상의 로브를 쓴 사람들은 모두 샤샤 윈체스터를 보고 있었다.
아직 제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작고 어린 아기를.
“마땅히 아피니제에 보고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카르도 윈체스터는 우리에게 아이의 힘에 대해 숨겼습니다. 검은 속내가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겠고…….”
바쉬론의 뒤에서 흑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의 서늘하고 살기가 넘치는 시선이 샤샤를 향했다.
“고작 애 하나 때문에 이런 긴장 국면을 조성한 가주의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이 아기에게 ‘심연의 그림자’를 사용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연의 그림자’라는 말에 모두가 흠칫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레카르도가 숨기고자 한 그날의 진실을, 우리도 알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심연의 그림자는 흑염의 기술 중 하나로, ‘정신적 부검’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미지화하여 꺼내 놓고 나열하는데 당사자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강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적의 앞잡이질을 하다가 발각된 이들에게 사용하였는데, 당연하게도 부작용이 엄청나 거의 정신을 망가뜨리다시피 했다.
“레카르도의 뒷감당을 누가 하겠습니까.”
“가주는 얼핏 막무가내로 보여도 이득이 없는 일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어미의 혈통도 변변치 않은 아이 때문에 가문을 뒤집을 리는 없을 테고, 이미 진실을 알아낸 뒤에는 자기도 어쩌하겠습니까.”
바쉬론은 눈을 번뜩였다.
레카르도는 쉬이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고, 바쉬론은 이 사건에서 레카르도의 약점을 발견할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보셨듯 습격자는 아이에 대해 아는 듯, ‘열쇠’라는 말로 아이를 지칭했습니다. 내통의 가능성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마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도망칠 곳을 살폈지만 병사들이 사방을 지키고 있었다.
“대가주님…….”
결국 다른 대답을 기대할 곳은, 전대 가주이자 레카르도의 조부인 헥토르 윈체스터뿐이었다.
헥토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녀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았다.
레카르도를 빼닮은 듯한 환한 은발과 선명한 녹안, 그리고 영상석의 기록이라.
“대가주님, 결의를 진행해 주시겠습니까.”
바쉬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정적만이 깔렸다.
쿠과광-!
바깥에서는 열 수 없는 아피니제의 문이 폭격을 맞은 듯한 소리와 함께 처참히 부서졌다.
바쉬론의 표정이 구겨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저벅저벅 소리와 함께 검은 제복을 입은 장신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발은 바람에 옅게 살랑였고, 그의 녹색 눈동자는 무료한 살기로 뒤덮여 있었다.
“가칙 7조의 9항, 가주는 아피니제 구성원 과반수의 허가 없이는 아피니제에 나타날 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서 레카르도를 책망하려던 제스티아는 말을 멈추었다.
레카르도에게서 뻗어 나온 칼날 같은 흑염이 제 눈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을 멈추지 않았으면 흑염은 그녀의 눈을 꿰뚫었을 것이다.
“감히…….”
바쉬론이 제 흑염을 일으키며 레카르도에게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레카르도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마자, 그의 흑염은 금방이라도 꺼질 촛불처럼 일렁였다.
마치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가주의 힘을 가진 레카르도 앞에서 그의 힘은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바쉬론은 목을 타고 올라오는 스멀스멀한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레카르도의 흑염에 목이 조이며 발이 떠올랐다. 그가 제 앞에 서서 살의와 어둠밖에 남지 않은 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의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