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9화
그의 서늘한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후…… 후환이라는 게 날 말하는 건가?’
그 생각이 떠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우엑거리고 있을 때가 아닐지도.
원작에서의 샤샤 윈체스터에게는 놀랄 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나는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진이 내게 경계심 비슷한 것이라도 느끼게 된다면?
나는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작에서의 진과 오셀로의 악독한 손속을 떠올리면, 그저 곱게 죽기를 바라야 할 정도.
“우야야…….”
내 지근거리에 있는 진의 몸에서 흑염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너에게 무해한 존재야, 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 진에게 손을 뻗었다.
찹쌀떡 같은 내 두툼한 손이 제 볼에 닿자 진이 눈썹을 꿈틀했다.
“지지! 지지!”
진, 나 좀 봐. 이렇게 어린 아기잖아.
오빠가 돼서 아기에게 못된 마음 품고 그러면 안 된다. 응?
어차피 난 좀만 더 자라고 나면 집에서 독립해서 엘릭서 찾으러 갈 거예요.
“오야…….”
나는 열심히 눈빛을 통해 진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초라한 옹알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어머…… 설마…….”
뒤에서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야가 제멋대로 내 옹알이를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해석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힘주고 계신 거예요?”
후환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듣지 못했던 그녀가 와서 서슴없이 내 엉덩이 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거 아니라고……!
참고로 아기의 몸은 아직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작은 일을 하더라도 꽤 집중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이 내가 그의 얼굴을 잡고 볼일에 힘쓰고 있다고 이해한다면…….
경계심이 경멸로 바뀔지도.
“……?”
다행히 진은 마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마야는 내 엉덩이에 코까지 킁킁거려 본 뒤 진에게 말했다.
“아, 아가씨가 큰일 보실 때…….”
쪽―
“…….”
“…….”
시X. 망할.
나는 엉덩이를 빼다가 진의 볼에 입술을 문지르는 참사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마야도 진도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시간 진짜 멈춘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때야 마야가 숨을 들이켰다.
“방금…… 방금 아가씨가 공자님께 뽀뽀를…….”
다행히 내 엉덩이를 킁킁거리던 이유를 말하려던 것은 그만둔 것 같았다.
나는 천진난만한 아기의 눈으로 진을 보며 옹알이를 했고, 진은 눈썹을 굳힌 채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일전에 나를 협박하던 모습보다 훨씬 경직한 얼굴이었다.
“오뱌뱌…… 오뱌…….”
“어머, 아가씨가 방금 오빠라고 한 것 같은데요?”
마야는 들떠 있었지만 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을까.
찰나의 순간 그의 눈은 소년답지 않은 평소의 잔잔하고 차가운 눈으로 돌아가 있었다.
입술이 달싹인 것은 한참 뒤였다.
“……역시 재미있어.”
평이한 어조였지만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진은 잠시 뒤 작은 한숨을 섞어 마야에게 말했다.
“참, 마야. 머플러 가져와.”
진에게 유독 친근한 나를 흐뭇하게 보고 있던 마야가 아, 하며 손뼉을 쳤다.
“맞아요. 제가 곧장 가져다드린다는 것을……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야, 자리 비우지 마!
마야를 힐끔거린 나는 다시 진을 올려다보았다.
진의 짙은 눈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팔을 바동거리기도 하고 옹알이를 하기도 하며 그에게 재롱 같지 않은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원래 아기는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하다지 않는가.
“우뱌, 우뱌뱌…….”
기어들어 가는 내 목소리에 진의 입술이 문득 비틀렸다.
“이제 로빈이 늘 곁에 있겠군.”
“우야야?”
“방금 했던 거.”
진의 눈동자 표면에 내 통통하고 귀여운 얼굴이 맺혀 있었다.
“로빈에게도 한다면, 죽여 버릴지도 몰라.”
그 순간 나는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섰다.
농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는데, 진의 표정은 잔잔한 차가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로빈을 죽이면 안 되지…… 미래에 내가 떠나면 네가 로빈의 주인이 될 텐데.
“으야야…….”
잠시 딸꾹, 하고 숨을 들이켠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기가 때에 맞추어 반응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음으로 들린 진의 목소리에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네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 알고 있어.”
“우응……?”
나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진의 존재감은 나를 집어삼킬 듯 거대했다.
어디까지 아는 거지……?
아니면 그냥 떠보는 건가.
나는 원작에서 진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떠올렸다.
오셀로가 행동파라면 진은 두뇌파였다. 윈체스터의 정점에 설 아이.
눈치가 빠른 것은 말해 무엇하고, 그는 온 나라의 조직들을 한 손에 주물렀다.
에반이 없었다면 그가 제국을 집어삼켰을 것이다.
“으웅…….”
하지만 아무리 흑염이 있어도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심연의 그림자’더라도 그 사람이 겪어 온 기억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줄 뿐.
그러니 내 눈앞에 이렇게 상태창이 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조금은 더 커야 내 장식장과 맞을 텐데.”
그리고 때에 맞추어 마야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머플러를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진은 마지막으로 내게 속삭이듯 협박했다.
“오늘은 자꾸 다른 생각이 드네, 샤샤.”
잠시 후 그가 내 침대에서 물러났다.
샤샤에게 머플러를 받은 뒤,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한참 뒤에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야는 내 속도 모르고, ‘모두가 아가씨를 좋아한다’며 즐거워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눈앞에 어떤 경고가 떴다.
[※특정 인물과의 인과율이 5%에 도달하였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비해 인과율의 보유치가 매우 높으니 주의하십시오.]
나는 문득 꿈이 보여 주었던, 어느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욕설을 뱉으며 인물 열람을 띄웠다.
과연 생각대로, 진 윈체스터와의 인과율이 5%를 간당간당하게 넘어 있었다.
* * *
고운 선을 타고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목도(木刀)가 날렵한 선을 그리고, 목도에서 튕겨 나온 바늘 같은 검은 기운들이 허수아비에 우수수 꽂혔다.
그리고 이내 갈라지고 산산조각이 나는 허수아비.
그것을 응시하던 오셀로는 목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때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형제란 그런 것이니까.
“저번 달보다 실력이 나아진 것 같은데.”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었어.”
조금 가빴던 오셀로의 숨이 균일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오셀로는 목검을 들고 돌아섰다.
“샤샤는 괜찮아 보였어. 조금 놀란 것 같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아피니제를 해체하셨어. 옳은 조치지.”
오셀로는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아피니제가 아무리 유서 깊은 기구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윈체스터 가문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없애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느덧 하늘은 어슴푸레해지고 대지에는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곧 밤이네.”
오셀로는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아피니제에서 샤샤에게 ‘심연의 그림자’를 사용하려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오셀로의 눈동자에 서늘한 불길이 들끓었다.
하지만 체노아에게 덤벼들려 했던 그때와는 달리 오셀로는 진의 말을 따랐다.
자신이 상황을 지켜보고 올 테니 기다리라는 진의 말.
진이 저보다 상황 판단이 빠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붉은 노을이 푸른 밤의 기운과 만나 진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오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진의 입술이 비틀렸다.
“우리, 간만에 사냥이나 할까?”
진의 말에 오셀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지.”
윈체스터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이일수록, 밤은 아주 좋은 놀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