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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21화 (21/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21화

<스퀘어>에 들어온 에반 테일러스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조금 비뚤어진 의자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특별한 아티팩트로 구축한,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그만의 공간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의자를 반듯이 해 두고 장식장 위에 올려놓은 탁상시계를 집었다.

시계에는 시간이 연, 월, 일, 시간별로 표시되고 있었다.

이내 에반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것을 조작해서 다시 올려놓고는 소파에 앉았다.

지금의 테일러스는 예상치 못했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 제국의 여론이 좋지 못합니다. 사과 사절을 보내시는 것이…….

체노아 테일러스는 바른말을 하는 부관을 감옥으로 보냈다.

― 볼모를 요구할 것이라는 전언이 있습니다. 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에반도 겪어 본 적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했다.

언제나 승세는 테일러스에게 있었는데, 이번만은 묘하게 다르게 흘러갔다.

내부의 문제로 레카르도 윈체스터는 아피니제까지 폐지했다고 했었지.

과거 윈체스터가 승기를 쥘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피니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걸 이렇게 빨리 제거하다니…….

“…….”

에반은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무기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을 닳게 했다.

잠시 지녔던 희망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었다.

자신에게 청명이 발현하든 그렇지 않든, 체노아는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이다.

그 자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것이 될 테고.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가 동일하다면…….

“…….”

째깍, 째깍, 시계 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잠시 후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 순간 뒤늦게 보인 것은, 펼쳐진 채 찢어져 있는 책상 위의 책이었다.

에반의 눈썹이 굳었다.

의자의 방향이 조금 비뚤어진 것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확실한 침입의 증거였다.

이곳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올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

한 번도 일어난 적 없었던 변수의 연속에 그의 입술이 낮은 소리를 냈다.

* * *

“네가……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

오셀로가 내게 다가왔다.

오셀로도 놀랐지만 나도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몸을 낮추어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설마 혼자 온 거야? 마야는?”

나는 입을 우물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그만 바라보고 있자, 오셀로는 대충 알겠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마야는 애를 어떻게 보길래 이렇게 혼자 돌아다녀. 혼을 내야겠어.”

“…….”

“그리고 저택에 위험한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겁도 없는 꼬맹이.”

마야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나는 아직 너무 아기였다.

그런데 저택에…… 위험한 게 많다고? 금시초문이었다.

아까 이동되었던 문이나 방도 그런 종류일까.

나는 말똥말똥 그를 바라보다가 아까 소독하고 있던 그의 어깨를 문득 보았다.

뭔가 예리한 것에 스친 듯한 상처였다.

어디에서 다쳤길래 이렇게 혼자 소독을 하고 있지?

남들에게 말하기는 좀 비밀스러운 상처인가.

“우에에…….”

나는 오셀로의 상처가 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야?”

그러자 오셀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거? 놀다 다친 거야.”

아직 어린애가 뭘 가지고 놀다 다쳐야 저렇게 베이지?

“호야, 호야.”

내 옹알이를 듣던 오셀로가 입술 끝을 피식 비틀었다.

“꼬맹이 주제에, 걱정하는 거야?”

“우웅. 오뱌뱌.”

내가 봤던 원작 속 윈체스터 형제는 희대의 악당에 위험한 인물들이었지만, 실상 내가 마주한 그들은 아직 어린애들이었다.

영 피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가 다쳤으면 걱정이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호야!”

주먹을 꼭 쥐고, 제대로 치료하라는 듯한 눈빛을 그에게 반짝반짝 보냈다.

“…….”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오셀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었다.

“제기랄, 진짜 토끼장에라도 넣어 둬야 하나.”

쓴웃음이 섞인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린 그가 몸을 일으켜 윗옷을 입기 시작했다.

“……닮아서는.”

그리고 내게 다시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은 녀석, 따라와. 다시 데려다줄 테니까.”

서늘함이 풀풀 풍기는 말이었지만 그 손은 따뜻했다.

말이 손을 잡은 것이지, 나는 오셀로의 검지와 중지만 간신히 쥐고 있었다.

이내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방을 나섰다.

* * *

창백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근처 복도를 둘러보던 하녀가 모퉁이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하녀를 불렀다.

“얘 여기 있어, 하. 십년감수했네.”

다른 하녀는 화가 난 얼굴로 오더니 내 앞에 멈추어 섰다.

“아가씨, 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신 거예요?”

그녀의 눈썹 끝은 위로 매섭게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찾았잖아. 짜증 나게!”

멀쩡히 서 있는 내가 얄미운지 그녀는 눈을 부라리며 따지듯 말했다.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입만 아프지.”

처음 나를 발견한 하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제멋대로 굴면 때찌 할 거예요. 이렇게.”

그녀는 내 눈앞에서 때리는 시늉까지 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말 못하는 아기라고 해도, 기분이 매우 나빴다.

“하, 진짜. 재수 없는 애 하나 때문에 이게 뭐야. 간 떨어질 뻔했네.”

“뭐 해. 아가씨, 얼른 방으로 들어가요. 짜증 나게 굴지 말고.”

둘 다 비슷하게 더러운 성격인 것 같다.

내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자 하녀는 억세게 내 팔을 잡고 이끌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팔을 잡는 순간 검은 연기로 된 뱀이 그녀의 팔을 후려쳤다.

“아악!!”

내 팔을 잡으려던 하녀는 충격에 뒤로 넘어졌고, 다른 하녀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나타난 오셀로의 모습에 놀라 얼굴이 굳었다.

“고…… 공자님…….”

“……헉…….”

오셀로의 눈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오셀로의 안광이 번뜩였다.

나를 발견한 하녀들의 주제넘은 행동에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감히.”

이 세계에는 엄격한 신분의 구분이 있었고, 나는 윈체스터 가에서는 아마도 꽤 아래쪽에 있는 위치인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윈체스터가에 국한되는 것.

진 윈체스터나 오셀로 윈체스터에게 하녀 같은 한낱 평민은 물건만도 못한 존재였다.

“윈체스터의 아이를 모욕해?”

서슬 파란 오셀로의 목소리에 하녀들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셀로 윈체스터.

가문을 물려받을 진 윈체스터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목숨은 쉽게 거둘 수 있는 괴물이었다.

그럴 만한 지위와, 그가 흑염의 힘을 드러낼 때 나오는 검은 뱀의 환영.

그것들은 본능적인 거대한 두려움을 자아냈다.

“공자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녀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아…… 아가씨가 사라져서 당황한 차라…… 큰 말실수를…….”

다른 하녀 역시 무릎을 꿇으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실수?”

가문 권력의 중심에 설 진과 오셀로와는 달리, 그 아이들의 이복 남매인 샤샤 윈체스터는 뒷방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의 오셀로는 마치 자신이 모욕을 받은 듯 서늘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흑염이 아가리를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아가씨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금방이라도 제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은 검은 연기의 뱀들이 공중을 휘저으며 자신들을 위협하자 하녀들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표정이었다.

아까의 의기양양하고 귀찮아하는 듯한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오셀로는 차가운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닥치고,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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