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23화 (23/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23화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집무실에 들어온 로웬이 그늘이 진 표정으로 보고했다.

“로빈이 진 공자님과 놀아드리다가 부상을 입어 몇 달간은 복귀하지 못할 듯합니다.”

“부상의 정도는.”

“오른쪽 어깨의 탈구, 왼쪽 정강이뼈 골절, 그리고 손가락뼈가 두어 군데 골절되었습니다.”

“진에게 석 달간의 근신 명령을 내리겠다. 로빈에게는 1년 치의 월봉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라.”

사정을 더 듣지 않아도, 레카르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했다.

로웬이 답했다.

“놀아드릴 만큼 실력을 쌓지 못한 로빈의 잘못이니, 공자님의 근신을 거둬 주십시오.”

로웬은 로빈의 친형이었다.

레카르도는 눈썹을 찌푸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진 윈체스터, 자신을 닮은 윈체스터가의 후계자.

이능은 수십의 병사들이 들이닥쳐도 홀로 상대할 만큼 강력하지만 감정 처리는 아직 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구가 없는 소유욕과 공격성의 예외 범위에 있는 것은 그나마 형제인 오셀로뿐.

“제어하지 못한 진의 탓이다.”

아버지로서 충분히 주의시킬 필요가 있었다.

진이 무엇을 경고하려 했는지는 명확했다.

샤샤를 위험하게 만들 뻔했다는 이유로 마야가 살아 있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장차 윈체스터의 후계자가 될 아이답지 않은 방식이었다.

“로빈이 회복하기까지는, 제가 직접 아가씨의 호위를 맡겠습니다.”

로웬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라.”

레카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레카르도가 일어서자 로웬은 한발 물러섰다.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레카르도는 집무실을 나서서 복도를 걸었다.

긴 그림자가 로웬과 함께 그를 따라왔다.

북쪽 건물을 지나 남쪽으로 가자, 문 모서리에 덕지덕지 완충제가 붙어 있었다.

레카르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지났고 로웬은 레카르도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레카르도는 2층의 방 앞에 도착했다.

마침 샤샤를 재우고 나온 마야가 레카르도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입을 막아 제 소리를 삼켰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

레카르도는 마야와 로웬을 문밖에 두고 샤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깊은 적막이 감돌고 있었고, 샤샤는 세상모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은 채 잠들어 있었다.

샤샤의 방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과일의 향기 같기도 하고, 파이의 단내 같기도 한, 윈체스터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향기가.

레카르도의 몸 뒤로 거대한 흑염이 일렁였다.

깊이 잠든 사람도 깰 만한 흑염의 기운이었지만 샤샤는 마치 자장가라도 듣는 듯, 새근새근 자고 있을 뿐이다.

레카르도는 샤샤의 침대 옆에 다가섰다.

“……우웅.”

곤히 잘 자고 있던 샤샤였으나, 가까워진 기척은 느꼈는지 몸을 뒤척였다.

작은 솜뭉치 같은 손이 레카르도의 눈에 띄었다.

제 손이 닿으면 부서질 것 같은 아주 작은 손이다.

“…….”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눈썹을 찡그린 레카르도가 이내 돌아서려던 순간, 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헤헤.”

배냇짓이라도 하듯 샤샤가 미소 짓고 있었다.

작은 입술의 끝이 위로 올라가 있었고, 풍성한 속눈썹으로 덮인 감은 눈은 웃는 모양새였다.

아마 좋은 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압빠아……”

레카르도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고, 한참 샤샤를 응시했다.

샤샤는 다시 잠에 빠져든 듯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레카르도는 서늘하게 눈썹을 찡그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알 수가 없군.”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그는 샤샤의 방 밖으로 발을 옮겼다.

마야는 고개를 깊게 숙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레카르도는 왔던 복도를 다시 걸었다.

그가 조금 멀어지고야 고개를 든 마야는 가슴에 손을 대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마야는 싱긋 웃으며 혼잣말을 이었다.

“……관심받고 계신 거겠지?”

* * *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2)]

[직업 : 무직]

[특성 : 딸랑이 마스터(근력+3)]

한 해가 꽤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진과 오셀로와의 자잘한 사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듯 나는 쑥쑥 자랐다.

그렇게 나는 세 살 아기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무직의 샤샤 윈체스터이지만 내게도 변한 것이 조금은 있었다.

우선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머리숱이 그리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매일 아침 마야가 묶어 주었는데, 거울을 보니 제법 여자아이인 티가 났다.

상태창의 프로필에는 이제 양 갈래의 내 모습이 예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꽤 잘 걸을 수 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50미터쯤은 혼자 걸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감개무량한 것은 내가 기저귀를 뗐다는 것이다.

전에는 어쩐지 조절이 잘되지 않아 자괴감을 많이 느꼈는데, 이제 ‘시할래’라는 말로 화장실에 가겠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쪼심…… 야야!”

마야가 내 머리카락을 묶어 주며 세게 잡아당기자 나는 약간의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살살 하고 있어요, 아가씨.”

“앞파!”

“알았어요. 더 살살 할게요.”

마야의 손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앉아 있었다.

“오늘은 공작님 곁에서 얌전히 잘 계셔야 해요. 중요한 날이니까요.”

아침부터 마야가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었다.

“저번 저녁 식사 때처럼 접시를 깨트리면 안 돼요. 알았죠?”

윈체스터 가문의 모든 사람이 모이는 <어둠의 기일>, 1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사흘간 저택은 손님들로 상당히 시끄러울 것이다.

‘바쉬론도 오려나?’

1년 전 습격으로 인해 상당히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은 뒤로는 통 소식을 못 들었다.

내게 ‘심연의 그림자’를 사용하려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기만 한데.

“괴팍한 나리들에게 트집 잡히시면 곤란하니까요, 우리 사랑스러운 아가씨.”

마야가 머리카락 묶기를 마무리 지으며 말했다.

“물론 공작님과 공자님들이 가만있지 않으시겠지만.”

“아써.”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혀가 좀처럼 능숙하게 굴러가지 않아, 아직은 발음이 상당히 힘들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은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기분 좋으세요?”

뒤에서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 시선은 거울 속의 나로 향해 있었다.

통통하고 귀여운 볼살을 가진, 녹안의 아기가 거울에 서 있었다.

양 갈래로 묶은 은색 머리카락은 제법 깜찍했다.

나는 보랏빛의 아기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은 마치 인형이 하나 서 있는 것 같았다.

나 자신조차 빠질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야!”

“네, 아가씨.”

한참 내 얼굴을 감상하던 나는 마야에게 안아 달라고 손을 뻗었다.

마야는 기쁜 표정으로 나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제가 안고 데려다 드릴게요. 아직 어리시니까 공작 전하께서도 이해…….”

이내 마야가 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기척도 없이 기다리고 있던 진과 오셀로의 모습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야 역시 조금 놀란 티를 내며 물었다.

“공자님들, 왜 여기 계세요?”

오늘의 진과 오셀로는 평소보다 더 꾸민 느낌이었다.

아마 하녀들이 최선을 다해 꾸며 주었을 것이다.

이내 딱딱한 표정의 오셀로를 힐끗 보던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짙은 시선에 내가 담긴 것이 보였다.

“에스코트하러 왔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