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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26화 (26/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26화

메시지를 본 순간 1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혼자 방을 나서서 길을 잃었을 때, ‘특별 구역’이라는 곳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테일러스의 가주>라는 일기 같은 책이 있었지.

다시 그 방에 들어가게 되면 그 책도 여전히 있을까.

찢어 낸 한 장만으로는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 그리고 언제 또 특별 구역이 열릴지 모르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무도회는 한창이었고 나는 마야를 따돌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오셀로도 계속 가까운 곳에서 맴도는데.

게다가 레카르도는 먼 거리이지만 충분히 내가 이상 행동을 하면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미 저번의 스킬 발현만 해도 그에게 이상한 인상을 주었을 텐데, 굳이 더 수상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릴 방법이…….

‘맞아. 그게 있었지!’

그리고 그 순간 잊고 있던 아이템이 떠올랐다.

인벤토리를 열자 두 개의 아이템이 보였다.

[뽁뽁 신발]

[국민 깜짝볼]

뽁뽁 신발은 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내 위치를 전해 주고, 국민 깜짝볼은 1분가량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 긴가민가했지만, 나는 국민 깜짝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깔깔깔 높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꼬물꼬물 몬스터 한 마리 이리저리 기어 오다가 ♬”

그리고 내 치마폭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육각형 구체의 깜짝볼은 하부에 바퀴라도 달린 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매우 형형색색이며 촌스러운 디자인이었지만 깜짝볼은 매우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야 나비 될 거야 멋쟁이 애벌레♪”

계속해서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신나는 동요까지.

“어머, 저게 뭐죠?”

“공녀님이나 공자님들 장난감인가, 아니면 누가 가져온 건가?”

물론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는 덤이다.

깜짝볼의 표면은 쉴 새 없이 여러 색으로 깜빡거려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어디에서 만든 건지는 몰라도 대단한데?”

“노래가 계속 나와. 좋은 마석을 박았나?”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은 깜짝볼로 쏠렸다.

참고로 이곳은 마석 혹은 연금술로 간단한 현대적 기술이 구현 가능한 세계였다. 특별한 돌로 만든 기계로 녹음과 상영이 가능했고, 전구처럼 빛나는 것도 만들 수 있었으니.

그러니 이 사람들의 반응은 마냥 신기해서는 아니었다.

“설마요. 아이들 장난감에 박기에는 마석이…….”

“제스티아 님의 광산을 가져갔으니, 가문에 돈은 넘쳐 나겠죠.”

“그런데 진짜 귀엽다. 저기에 독침을 장착해 암습 무기로 쓰면 정말 좋을…….”

그저 아이템의 기능에 걸맞게 잠깐의 최면이 걸린 것처럼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잠시 오셀로의 눈을 보니 그도 멍하니 깜짝볼 쪽으로 시선이 쏠려 있었다.

“노는 게 젤로 좋아! 꼬마친구 모여라♪”

오오, 신나는 동요 메들리.

깜짝볼의 어느 한 면에 달린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 순간 나는 제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차,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얼른 도망가야겠다.’

너무 신나게 생긴 나머지 하마터면 나조차 정신없이 쳐다볼 뻔했다.

깜짝볼에 시선이 쏠린 마야를 두고 나는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서자 그전과 마찬가지인 긴 회랑이 펼쳐졌다.

뒤를 돌아보자 총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오, 신기해.’

조금 걷자 눈앞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나는 순식간에 공간 안으로 이동되었다.

* * *

이곳은 1년 전의 그 방이 맞았다.

배치가 변한 가구도 없었고 조명의 색도 똑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스럽게 아장아장 걸어간 나는 예전보다 제법 세진 힘으로 의자를 밀고 낑낑거리며 그 위로 올라탔다.

아기에게는 하루하루의 발달이 유의미하게 다르다.

이전의 나는 책상 위를 향해 그렇게 낑낑대었지만, 무럭무럭 성장한 지금의 나는 다른…….

“이야앙 야야!”

나는 또 열심히 낑낑대고 있었다. 안 닿아, 안 닿는다고!

책상 위에는 또 책이 한 권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저걸 꼭 가져가서…….

“으꺄아!”

팔이 짧아서 간신히 잡았다.

나는 책을 품에 넣었고 발이 닿자마자 책의 무게에 휘청대다가 의자에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야…….”

아프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울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테일러스의 가……? 응?

하지만 책상 위의 책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책이 아니었다.

제목도 없는 책, 그리고 책의 두께는 내가 봤던 책보다 얇았다. 책이라기보단 노트에 가까울 것이다.

조금 두껍게 느껴졌던 것은 꽂혀 있던 깃펜 때문일 터.

깃펜이 있는 부분이 펼쳐지자 나는 흠칫 놀랐다.

‘너는 누구지?’

선명히 적힌 글씨가 뇌리로 파고들었다.

그 필체는 <테일러스의 가주>를 쓴 필체와 현저히 닮아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이 쓴 글씨인가.

그렇다면 테일러스의 가주도 이 방의 주인이 쓴 거겠지?

추측만 할 뿐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노트를 노려보던 나는 깃펜을 들었다.

깃펜조차 내게 무겁고 투박했기에 수전증에 걸린 듯 손이 흔들렸지만, 나는 야누트어로 한 글자 한 글자 세심히 써 갔다.

‘그러는 너는 누군데.’

솔직히 말하자면 <테일러스의 가주>를 얻지 못해 조금 뿔이 난 상태였다.

그 책이 궁금해서 아이템까지 써 가며 이 방으로 온 건데, 고작 이런 메모뿐이라니.

낑낑대며 겨우 글씨를 쓴 나는 책에 깃펜을 다시 꽂아 의자 위에 그대로 두고 의자 아래로 내려왔다.

저 노트를 다시 책상 위로 올릴 자신은 없었다.

하아, 그래. 다음에 또 와서 확인하기로 하자.

이곳이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돌아가면 나는 아까와 거의 다름없는 시간대에 있을 것이다.

레카르도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았기를.

나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 * *

스퀘어에 들어간 에반 테일러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특별한 이능과 복잡한 수식으로 만들어진 이 스퀘어에 발을 들일 정도면 엄청난 천재이거나 연금술사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카실리온이 나타날 시기는 아닌데.”

에반은 저벅저벅 의자로 다가갔다.

의자 위에는 제가 일부러 올려놓은, 책을 가장한 노트가 있었다.

저번에 책을 뜯어 간 것도 그렇고, 목적은 역시 책이었나.

에반은 깃펜이 꽂힌 자리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제 질문에 답을 해 놓은 흔적을 보며 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발로 쓴 건가.”

언제나 과묵한 입술이지만 어이없는 흔적에 잠시 달싹였다.

스퀘어에 들어올 정도라면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다.

‘그러는 너는 누군데’라는 말을 보면 스퀘어의 주인인 자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것 같고, 아니,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능과 마석이 통하지 않는 오로지 물리적인 힘만 통용되는 스퀘어였지만, 만약 침입자가 주인인 자신을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트랩이라도 설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힌 흔적 말고 공간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 비뚤비뚤한 글씨는 절대 정상적인 방법으로 쓴 글씨가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의 필적을 숨기려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쳐도 형편없군.’

에반은 살짝 구부러진 깃펜의 끝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다음 장에 글씨를 썼다.

‘남의 공간에 함부로 침입해 놓고 누구냐고 물어보다니 뻔뻔하기 그지없군.

경고한다. 다시는 내 공간에 들어오지 말아라.

경고를 무시한다면…….’

그리고 잉크가 마르자마자 그것을 덮고 책상에 올렸다.

신경 쓰이는 침입자의 존재로 에반의 눈썹은 살짝 찡그려진 채였다.

변화의 바람조차 달갑지 않았다.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가 반짝였다.

허리를 숙인 에반은 그것을 주워 올렸다.

손바닥 정도 길이의 은사가 에반의 손 위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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