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30화
우렁차게 우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진과 오셀로, 그리고 나는 같은 마차를 타고 있었다.
가을의 초입을 바라보는 늦여름. 우리는 여름 저택으로 가는 중이었다.
윈체스터 영지에 있었기에 마차로 한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아 가까운 곳이다.
진은 책을 보는 중이었고, 오셀로는 낮잠을 자고 있었으며, 나는 창밖의 녹색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카르도에게 적대적인 제스티아의 얼굴을 떠올리면 찝찝했지만, 로젠토로 출장을 간지라 이번 방문에 그녀를 마주칠 일은 없다고 한다.
대신 잠시 후 여름 저택 소유주인 제스티아의 딸, 페르메티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스티아의 저택과 가까운 파슈리트 산맥, 그 초입의 사냥터에서 진과 오셀로는 여름 사냥을 즐기게 될 것이고.
나는 문득 얼마 전 내게 보였던 상태창을 떠올리며 인벤토리를 보았다.
지난 레벨 업 선물로 받았던 뽁뽁 신발과 함께, 이번 레벨 업 선물로 들어온 ‘수호의 구슬’이 보였다.
푸른빛을 띤 구슬은 내게 들어오는 공격을 1회 막아 준다고 하며, 질병에는 효험이 없다고 한다.
이것도 언젠가 사용할 일이 있겠지.
그런데…… 원작 속 샤샤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일까. 병이 절정에 달하는 열일곱 살 전부터 아팠을 텐데.
“콜록.”
지금도 틈만 나면 아프기는 하지만, 원작 속 샤샤의 병약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얼른 커서 카실리온과 엘릭서를 찾아야 하는데…….’
내 운명을 알기에 시간은 더욱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3)]
[직업 : 무직]
[특성 : 딸랑이 마스터(근력+3)]
그래도 성장함에 따라 이제 제법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
내가 어려운 이야기도 꽤 알아듣는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줄어들었고.
나는 하녀들에게 ‘영특한 샤샤 아가씨’로 불렸다.
탁―
진이 책을 덮는 소리에 움찔한 나는 그를 보았다.
“도착했군.”
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시선이 멀리 보이는 푸른 지붕 저택을 향해 있었다.
3층짜리 저택은 윈체스터 성만큼은 아니지만 꽤 웅장한 편이었다.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다.
* * *
마차가 서고 진과 오셀로가 내린 뒤 나는 허공으로 양손을 뻗었다.
“안아 조!”
안아 달라는 내 말에 뒤쪽 짐마차에서 막 내린 마야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지만, 그보다 먼저 내 앞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진이었다.
너 말고…… 너 말고 마야 부른 거야!
힘껏 올렸던 내 팔은 점차 힘이 풀렸지만 진은 내 겨드랑이 쪽에 양손을 넣어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진의 뒤쪽에서 싱긋 웃는 마야가 얄미웠다.
내 발이 바닥에 닿고, 나는 진을 올려다보았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 그의 뒤에 산들거리는 나뭇잎과 햇살이 보였다.
역광이었기에 나는 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질색하면 서운하잖아.”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가 뒤돌아섰다.
바람이 다시 불어오며 내 연분홍빛의 드레스 자락이 살랑였다.
습하지 않은 여름 바람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름 저택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페르메티스와 하녀들을 보았다.
저번에 보았던 것보다 키가 조금 큰 듯한 모습으로 푸른색 프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페르메티스는 오셀로 앞에 섰다.
오셀로는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페르메티스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름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오라버니.”
그리고 이내 진을 향해서도 가슴에 손을 올리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페르메티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너도 환영해, 아기야.”
페르메티스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 미소에서 오묘한 적대심을 느꼈다.
어둠의 기일에서의 일을 속에 품고 있겠지.
잠시 뒤 저택의 하녀들이 우리가 데려온 하녀들, 그리고 시종들과 함께 우리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페르메티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파슈리트 산맥의 시원한 바람으로, 여름에 지내기에 좋다는 여름 저택.
저택은 개방적인 구조로 바람이 솔솔 통했다.
마야는 짐을 정리하기 위해 내 방에 올라갔고, 나는 진, 그리고 오셀로와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물론 아직 차를 마실 수 없는 나이라서, 내 앞에는 내가 좋아하는 차이베리 주스가 놓였다.
내가 그것을 잡으려 했지만 누군가가 휙 채갔다.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시는 오셀로를 나는 힘껏 노려보았다.
그는 내 차이베리 주스를 다 비우고 약 올리듯 말했다.
“더운데 차보다는 주스가 좋군.”
짜증이 치밀어 그를 노려보자 진이 한마디 했다.
“오셀로.”
진은 소파에 머리를 기대며 입술을 달싹였다.
“한 잔 더 줘. 마신 것 같지도 않네.”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하녀는 금세 다시 차이베리 주스 두 잔을 가져왔다.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셀로가 재주문한 것이다.
내 앞에 놓인 차이베리 주스에 손을 뻗었을 때, 오셀로가 다시 내 잔을 휙 뺏었다.
“오센노!”
내가 빽 소리를 지르자 오셀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내 잔을 제 앞에 놓고 제 잔을 내 앞에 주었다.
나는 그의 의도를 몰라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않고 내 앞에 놓였던 주스를 마실 뿐이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썹이 일그러진 페르메티스를 보던 나는 오셀로의 주스를 마셨다.
* * *
우리는 산장이 있는 사냥터의 초입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놓고 의심하는 건 좋지 않아, 오셀로.”
진과 오셀로는 흑색의 말을 타고 있었고, 나는 그 뒤의 마차에서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글쎄.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진이 다그치듯 한마디를 하자 오셀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모른 체를 했다.
이내 오셀로의 말이 앞서가고, 잠시 뒤 페르메티스가 탄 흰색 말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아까의 드레스를 갈아입고, 남색의 사냥복을 입고 있었다.
“먼저 가요, 오라버니.”
페르메티스는 진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 오셀로를 따라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은 입술을 달싹였다.
“마야.”
진의 부름에 나를 무릎에 앉혀 두었던 마야가 곧장 대답했다.
“네, 공자님.”
“산장에서 샤샤를 보고 있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거야.”
정오가 막 지난 오후였다.
“알겠습니다.”
마야의 대답을 들은 진은 말을 빠르게 몰기 시작했다.
그 뒤로 기사들 열 명 정도가 말을 타고 진을 쫓았다.
우리 마차는 초입의 산장에 멈추어 서고, 마야는 나를 안고 내렸다.
저 아래 여름 저택이 작게 보였고, 우리는 산맥의 초입에 있었다.
파슈리트에는 위험한 몬스터가 서식하지 않았고, 사냥하기 좋은 초식동물들이 많았다.
그래서 윈체스터의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서 사냥을 하곤 했다.
이 시기는 흰뿔사슴이 많이 출몰하는 때였다.
큰 그늘이 져 있고 통나무집에 가까운 깔끔한 구조였기에 형제들이 사냥 다녀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주스 죠.”
“안 돼요, 아가씨. 차이베리 주스는 너무 많이 마시면 배탈이 난다고요.”
“오센노는 두 개 마셔써.”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이며 항의했지만, 내 건강에 관심이 많은 마야에게는 어림이 없었다.
“물 드세요.”
하, 당 떨어지는데 이러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산맥의 초입이기는 하지만 고도가 꽤 있어서, 풍경이 꽤 멋졌다.
산 아래의 풍경을 즐기며, 오늘만은 조용할 윈체스터 저택을 생각하기도 하던 나는 심심해서 오랜만에 인물 열람을 보았다.
[1. 레카르도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지배자
인과율: 6%]
이내 그 밑으로 내렸다.
[2. 진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7%]
[3. 오셀로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6%]
[4. 체노아 테일러스
칭호: 청명의 지배자
인과율: 해당 없음]
[5. #@$% , #$%%, $#$%^^$$#@
이하의 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6. 페르메티스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해당 없음.]
5번은 여전히 글자가 깨져 있었다.
그나저나 페르메티스라…….
이 여름 저택도 내가 자기표현에 능숙했다면 따라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녀가 보낸 초대장에 내 이름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다.
초대하면 가는 것이 예의라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과 달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원작에서는 오셀로가 페르메티스에게 절절매는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 지금은 페르메티스가 오셀로를 따라다니는 느낌이다.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아가씨, 방금…… 느끼셨어요?”
바닥이 덜컹거리는 느낌과 함께 마야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응?”